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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59화 (259/357)

259화

“저… 저게 뭐냐?!”

“괴물?!”

“얼굴이 세모다. 눈코입도 없다! 귀신이다!”

“한쪽 팔이 칼이다! 손대신 칼을 박아 놨다!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생전 처음 만나보는 존재에 랫맨들이 우왕좌왕했다.

“캬아!”

“캬아아~!!”

랫맨들이 밟는 육망성이 늘어날수록 세모의 분신들 역시 숫자를 불려 나갔다.

세모의 위협적인 포효가 미궁 안을 메아리쳤고, 그들에게 공격당한 랫맨들의 피가 여기저기 튀었다.

“두… 두목 어떻게 해!”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증식하는 것 같다!”

“저기! 문 열렸다! 저기가 길인가 보다!”

정신없는 와중 한 랫맨이 무리를 이끌고 뛰기 시작했다.

“잠깐! 가지 마라! 아무래도 뭔가 수상해!”

두목의 외침에도 랫맨들은 멈추지 않았다.

쿠구구궁!!

한 무리의 랫맨들이 들어선 입구는 다시 입을 닫았고, 대신 반대편의 입구가 열렸다.

지금 열렸던 문보다 훨씬 넓고 거대한 문이었다.

“캬아~!”

“당황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지금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상황을 분석하던 두목이 외쳤다.

그의 외침에 간신히 잡힌 통제.

세모들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지를 뿐, 육망성 밖으론 나오지 못했다.

“못… 움직이는 건가?”

“뭐야. 그럼 근처에만 안 가면 되는 거잖아. 괜히 쫄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랫맨이 근처에 있던 세모에게 다가갔다.

“입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소리를 내는 거냐!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까불어!”

“야! 거기!”

“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랫맨이 고개를 갸웃했다.

동료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거기 그 녀석…! 발판이 없어! 별 모양 낙서가 없다고!”

“에이~ 농담하지 마라. 그런 거짓말에 속을 줄….”

손을 젓던 랫맨의 얼굴이 마찬가지로 사색이 되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

정말로 육망성 위에 서 있지 않았다.

“캬아아~!!”

“꺄아아!!!”

세모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른 랫맨이 삼지창을 꺼내 들었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공포에 질린 랫맨이 마구잡이로 삼지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세 손가락으로 삼지창을 움켜쥔 세모는 랫맨을 집어 던졌다.

찹찹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뛰기 시작한 세모에 랫맨들은 혼비백산 흩어지고 있었다.

“으…. 적은 겨우 하나다! 싸워서 굴복시켜라!”

선봉에 선 두목이 거대한 해머를 휘둘렀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공방.

끈적하게 흘러내린 붉은 포자가 랫맨의 손을 적셨다.

액체에 가까운 포자는 마치 점성이 있는 피를 보는 것 같았다.

“플레이그(Plague)!”

흩뿌려진 부식성 포자.

“캬악!”

세모는 어깨와 가슴에 눌어붙은 붉은 포자를 떼어내 보려 발버둥 쳤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다! 무력화시켜!”

두목의 명령에 랫맨들이 일제히 세모를 공격했다.

풀썩 주저앉은 세모의 모습에 랫맨들은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육망성에 갇혀 있던 다른 세모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두목이다. 멋지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남자. 두목이 키우는 병균은 세계 제일이다.”

“내가 멋진 건 나도 안다. 그러니 3절까지만 더 해봐라.”

해머를 어깨에 얹은 두목이 승리를 만끽했다.

“그런데 저쪽으로 가버린 녀석들은 어떻게 하냐?”

“음. 아마 별일 없을 거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하냐? 저 수상쩍은 길로 가야 하는 거냐?”

부하들의 물음에 두목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절퍽! 절퍽!

등 뒤에서 다시금 아까 그 소리가 들려왔다.

“두… 두목!”

“살아났다! 괴물! 다시 일어난다!”

놀란 랫맨들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분명 쓰러졌던 세모가 관절을 꺾으며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불사신인 거냐?”

혼잣말을 중얼거린 두목이 뛰기 시작했다.

“다들 따라와라! 저쪽으로 간다!”

“그치만 거기 수상하다!”

“우리가 저기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문 닫힐 거다! 괴물 못 따라온다! 여기 있으면 다 위험하다!”

랫맨들은 크게 2개 무리로 나뉘었다.

하나는 두목을 따라가는 무리.

다른 하나는 왔던 출입구를 향해 도망가는 무리였다.

활동을 재개한 세모는 두목의 무리를 쫓았다.

세모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 닫힌 문은 짙은 흙먼지를 내뿜었다.

“하~ 살았다.”

“등대 도착하기도 전에 괴물 밥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저 괴물 뭐냐? 여기 저런 것도 살았던 거냐?”

랫맨들에게 이곳은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장소도.

저런 존재도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엄청 오래된 유적지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두목. 오래전에 멸망해 버린 저주받은 장소 말이다.”

양초로 벽면을 비춘 랫맨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기둥이 지키는 복도는 적막감에 잠겨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치만….”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따라와라. 무슨 장난을 친 건진 그 오우거랑, 같이 있던 두 녀석을 만나면 알 수 있을 거다.”

땅땅!

두 번 바닥을 내리친 두목이 앞장섰다.

자유를 위해선 물러날 수 없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크레아탄이 가만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 * *

“음…. 이게 다 뭐냐?”

왼쪽 문으로 먼저 도망쳤던 랫맨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공간은 각기 다른 크기를 가진 방들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문도, 창문도 없는 방은 아무런 특징도 없이 똑같았다.

“여기! 여기 와봐라! 여기 뭐라고 적혀 있다.”

흩어져서 주변을 수색하던 한 랫맨이 외쳤다.

“음, 어디 보자. ‘다섯 개의 석상을 부수면 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석상?”

“아! 혹시 저거 아니냐!”

발에 땀이 나도록 달린 랫맨이 불을 비추었다.

어항을 뒤집어쓴 듯 동그란 머리를 가진 여인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 본 괴물이랑은 다른 괴물이다. 혹시 움직이는 건…!”

세모의 모습을 떠올린 랫맨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건 정말 돌로 조각된 석상이었다.

“안 움직인다. 이거 정말 돌이다.”

“머리가 동글동글하다. 팔도 다 있다.”

“휴~ 다행이다. 랫맨 놀라게 하고 아주 못된 돌멩이다.”

삼지창을 휘두른 랫맨이 석상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석상이 부서지자 벽이었던 공간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새롭게 나타난 방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이다. 지하에 또 지하가 있다.”

“음…. 이런 걸 4개만 더 부수면 여길 나갈 수 있단 거잖냐? 흩어져서 찾아보자.”

고개를 끄덕인 랫맨들이 몇 개 무리로 갈라졌다.

계단을 내려간 랫맨들은 어둠을 헤치며 나아갔다.

“콜록… 콜록…!”

“누가 이렇게 기침을 하는 거냐?”

“나 아니다.”

“나도 아니다.”

“어! 저기! 저기 있다!”

석상을 발견한 랫맨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세 면이 막힌 복도에 아까 봤던 것과 똑같이 생긴 석상이 있었다.

“음, 이상하다. 조금 전까진 분명 저기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네가 멍청해서 그렇다.”

“뭐? 내가 왜 멍청하냐!”

“그만 싸워라. 이러고 있을 때 아니다.”

두 사람을 중재한 랫맨이 다시 석상을 바라보았다.

복도 끝에 있던 석상이 그 앞 삼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 야, 저거 지금 움직인 것 같지 않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라. 아까 돌인 거 봤잖냐?”

콧방귀를 뀐 랫맨이 석상에 다가갔다.

그 순간.

휘이익!!

날카로운 줄톱이 랫맨을 공격했다.

“아아악!”

“뭐야?!”

“움직였어! 움직였다고!!”

“석상이 살아 움직인다!”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랫맨들 사이로 이동한 동그라미는 공격을 이어 갔다.

“순간이동?!”

“다리가! 다리가 없어!”

“귀신이다! 도망쳐! 도망쳐!!”

마른기침을 하는 동그라미.

극도의 공포감에 대항할 생각조차 못 한 랫맨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고개를 든 동그라미는 도망간 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 * *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냐? 비명 같은 거.”

두목과 함께 있던 랫맨이 물었다.

“못 들었다. 그보다 여기 집중해라. 여기 심상치 않다.”

이쪽 무리가 있는 곳은 어느 고성의 지하 미궁처럼 생긴 장소였다.

미궁이라 해도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은 한 곳.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다리 너머엔 뒤틀려 열린 철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전진하자.”

무리를 이끈 두목은 다리의 중간 부분까지 도달했다.

그때.

불길한 진동이 다리를 뒤흔들었다.

“뭐지?”

“두목 뒤에!!”

다급한 부하의 외침에 보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자신들이 걸어왔던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달려! 살고 싶으면 당장!!”

상황을 파악한 랫맨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랫맨들은 다리가 붕괴하기 전에 건너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두목~!!”

뒤처졌던 몇몇 랫맨들은 다리와 함께 저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그들이 만들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전진한다!”

굳은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보스는 뒤틀린 철문 사이를 통과했다.

안쪽은 폭 좁은 두 개의 외길로 구성되어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두 길은 폭과 형태가 완벽하게 동일했고, 길의 중간마다 총 4개의 플랫폼이 존재했다.

플랫폼의 폭도 그렇게 넓진 않았다.

기껏해야 랫맨 둘이 겨우 서 있을 정도.

길의 끝은 같은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두목, 이거 또 무너지는 거 아니야?”

“나 들어본 적 있다. 썩은 다리 이야기.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내 다리 내놔 하면서 귀신이 따라온댔다.”

“그거 네가 지금 지어낸 거 아니냐? 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긴데.”

“조용!”

외길 앞에 선 보스는 같은 힘으로 두 길을 모두 내리찍어 보였다.

두 길 모두 충격을 버틸 만큼 단단했다.

“두 길 모두 출발 지점은 안전하다. 다만 아까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럼….”

“부대를 두 개로 나눈다. 반씩 건넌다. 이의는 받지 않겠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 대표로 다리를 건너는 것일 것이다.

희생을 각오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랫맨들은 그런 선택지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일렬로 선 그들은 모두 함께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두목, 저기….”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랫맨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첫 번째 플랫폼에 해골이 놓여 있었다.

“흥! 이런 걸로 겁이라도 먹을까 봐서.”

콧방귀는 뀐 두목은 플랫폼에 올랐다.

그 순간.

까드득!

자리에서 일어난 스켈레톤이 쥐고 있던 돌조각을 휘둘렀다.

누더기 천을 뒤집어쓴 해골의 정체는 바로 잊힌 자.

죽음의 책으로 불러낸 소환체 중 하나였다.

“해골이….”

“움직여!!”

“미…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으아악!!”

놀라 뒷걸음치던 랫맨들 몇몇이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겨우 그런 돌조각으로!”

잊힌 자의 공격을 막아선 두목은 해머로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남아 있던 몸통 역시도 그의 발길질에 밀려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기분이군.”

잊힌 자를 처리한 보스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두 번째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잊힌 자 역시 랫맨들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그때.

“다들! 길에 매달려!”

“그게 무슨?”

“어서!”

다급하게 외친 보스는 뒤따라오던 한 명을 잡아끌었다.

보스의 다급한 외침에도 길에 매달린 랫맨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떨어지면 바로 저 나락으로 직행인데, 잡을 곳도 없는 여기에 감히 누가 매달릴 생각을 하겠는가?

“뭘 봤길래 저래?”

영문 모를 명령에 머리를 긁적인 랫맨은 먼 곳을 주시했다.

어둠 사이로 뭔가 다가오고 있었다.

폭에 딱 맞춰 굴러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고문 바퀴였다.

“저… 저게 뭐야?!”

“끄아악!!”

랫맨들이 위기감을 느꼈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순식간에 굴러온 고문 바퀴는 수십의 랫맨들을 깔아뭉갰다.

속도와 중심을 잃어버린 고문 바퀴가 선로를 이탈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랫맨들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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