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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57화 (257/357)

257화

‘물소리가 변한 것 같은데.’

길을 따라 걷던 용주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흘러가던 물소리에 변화가 생기는 지점이 있었다.

‘폭포? 저 앞에 떨어지는 경사면이 있단 건가?’

속도를 줄인 용주는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나아갔다.

물소리가 변하는 지점에는 정말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리고.

‘저건 또 뭐야.’

폭포 아래 원형의 호수에 인위적으로 조각한 신상이 있었다.

물속으로 몸을 던진 용주는 외곽으로 헤엄쳐 나왔다.

호수의 외곽엔 두 사람 정도가 걸을 수 있을 만한 길이 있었다.

“문어?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머리가 이상한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와 몸통 둘 다 이상했다.

다리는 분명 문어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그 외에 것들은 문어라고 할 수 없었다.

몸통은 뱀장어처럼 길쭉했고, 머리엔 네 개의 집게 턱이 자라 있었다.

‘아름답다’나 ‘멋지다’보다는 ‘무섭다’라는 첫인상이 드는 비주얼이었다.

“크라켄도 아니고, 레비아탄도 아니고, 여기 사는 녀석들이 섬기는 신이나 괴물 정도 되는 건가?”

고대의 재앙이 봉인되어 있던 석실에는 녀석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었다.

석조 드워프들 역시 종교 같은 걸 가지고 있었고.

오우거나 랫맨.

혹은 다른 어떤 생명체가 이 생명체를 섬긴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더 안쪽으론 길이 없는 것 같은데.”

길을 따라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봤지만, 딱히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색깔도 그렇고, 질감도 그렇고, 녀석들의 털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물에 젖은 털 뭉치를 살피던 용주가 이야기했다.

여기 있는 털들은 랫맨들의 것과 상당히 유사해 보였다.

“녀석들이 이 괴물을 섬기는 건가?”

녀석들이 누굴 섬기고, 누굴 기리든 딱히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여기 아르고 수정이 없다는 것.

그리고 해가 질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녀석이랑 합류해야….”

폭포수 아래에 선 용주가 목소리를 잘랐다.

위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랫맨들이 만드는 소리처럼은 들리지 않았다.

이건….

엄청난 양의 물이 밀려오는 소리였다.

“물소리?”

순간,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수정길에 끼어 있던 촉촉한 이끼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

생각보다 미끄러웠던 돌들.

수지에게 조심하라 말했던 자신이 정작 중요한 단서들을 전혀 조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썰물 때가 되면, 물이 들어오는 거냐?!”

그걸 눈치챘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거침없이 밀려온 바닷물이 물대포마냥 뿜어져 나왔고, 범람한 물이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올랐다.

물 때를 놓치면 코앞 갯벌에서도 익사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절대 과장된 게 아니란 생각이 들 속도였다.

“젠장. 바보같이.”

물은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적어도 입구의 천장까진 가득 채울 것이고, 입구 또한 물속에 푹 잠길 것이다.

“그 녀석한테 가야 해. 최대한 빨리!”

광폭화를 사용한 용주는 물살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수압은 맨몸으론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그 녀석이 있는 곳이 제발 저지대가 아니기를.’

물갈퀴와 뾰족형 꼬리지느러미를 만든 용주는 악어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랐다.

마개가 뽑힌 듯 밀려 들어오는 물은 벌써 천장 근처까지 차올라 있었다.

* * *

푸왁!!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쳐 오른 용주가 육지 위로 기어 올라왔다.

갈림길 천장까지 물이 완전히 차올랐는데도, 이곳엔 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그 녀석. 더 안쪽까지 들어간 건가?’

두 발로 선 용주는 뚜벅뚜벅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란 안도감이 들었다.

여기까진 물이 차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 있는 거지?’

안도감과 동시에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물이 들어찬 만큼 빛의 투과율은 크게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수정에 반사되는 빛 역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형광등이라도 켜 놓은 것처럼 밝았다.

단순히 자신이 사는 곳의 상식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뭔가가 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빛은 안으로 갈수록 점점 더 밝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으니까.

“!”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던 용주의 눈에 수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수정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따라 용주는 코너를 돌았다.

그런데.

당연히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지는 거기 있지 않았다.

보이는 건 또 다른 수정에 비친 수지의 모습.

마치 거울의 방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더 깊은 데로 가는 건가? 아니면 그 반대?’

조금 속도를 붙인 용주는 수지를 쫓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수지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뛰기 시작했고, 그녀의 움직임에 뭔가 있음을 느낀 용주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용주가 서두를수록 수지 역시도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단 거였다.

“!”

가까워지던 발소리는 동시에 멈춰 섰다.

“아!”

용주를 발견한 수지는 좌우 수정을 번갈아 보았다.

“놀랐잖아. 왜 그 모습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수지가 물었다.

용주는 그제야 수정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긴 꼬리와 물갈퀴.

거기에 전신을 덮는 갑피까지.

물살 너머를 보기 위해 막을 씌운 눈동자는 노르스름한 빛까지 돌았다.

“최대한 빨리 오려고 그랬던 거였다.”

광폭화를 해제한 용주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최대한 빨리? 왜? 무슨 일 있어?”

“너…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

순진한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니 정말 모르는 모양이었다.

“동굴 입구에 물이 들어왔다. 우리가 있던 갈림길도 완전 물에 잠겼더군.”

“물이?”

“그래. 아무래도 썰물 때가 되면 바다 아래로 잠기는 구조인 모양이다.”

“음. 그래서 그 모습이었구나. 난 또 처음 보는 사람인 줄 알았네.”

“너… 설마 나 보고 그렇게 뛰었던 거냐?”

수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혼자였다.

쫓길 만한 무언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럼 그녀는 무엇에 쫓긴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역시….

“응. 부분부분 보여서 다르게 보였어. 내가 봤었던 거랑 모습이 조금 다르기도 했고. 따돌리고 입구로 가려고 했는데.”

“…그러냐?”

안도감과 동시에 황당함이 들었다.

설마 그 행동이 이런 해프닝을 만들 줄이야.

“혹시 그 수정 찾았어?”

수지가 물었다.

“아니, 저쪽엔 무슨 신상이 하나 있던 게 전부였다.”

“신상?”

“그래. 랫맨들이 섬기는 괴물인 모양이던데, 문어 다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문어라면… 크라켄 같은 거?”

“아니, 일단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넌 어때? 뭐라도 찾았냐?”

“응. 찾긴 했어. 그 수정인지는 잘 모르겠긴 한데.”

수지가 가지고 있던 작은 수정 조각을 내밀었다.

수정은 자체적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너무 커서 조각 일부만 떼어 왔어. 보여 주려고.”

용주는 수정을 살펴보았다.

아르고 수정.

찾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래. 그래서 여기가 이렇게 밝았던 건가?”

자체 발광하는 수정.

이거면 두 가지 의문이 모두 해결된다.

여기가 밝은 것도.

등명기에 원재료로 왜 이게 필요한지도 말이다.

“일부만 떼어 왔댔지? 원석은?”

“응. 저 안쪽에.”

수지의 안내를 받은 용주는 동굴의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보였다.

빛의 근원지는 거대한 수정 원석.

꽃처럼 피어 있는 수정은 용주가 봤던 신상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충분히 떨어져 있어라. 위험하니까.”

“어떻게 하려고?”

“필요한 만큼 잘라 내야지. 이걸 통째로 가져갈 필욘 없으니까.”

다시 한번 광폭화를 사용한 용주는 꼬리를 변형시켰다.

이번 꼬리는 베는 데 특화되어 있는 꼬리.

꼬리 끝을 문 용주는 마찰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대회전 베기에 잘려 나간 수정 파편은 벽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음. 정말로 물이 꽉 들어차 있네.”

바다와의 경계면을 살펴보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맨몸으로 헤엄쳐서 나가는 건 무리겠지?”

“물의 흐름도 역방향이고, 숨을 참기엔 동굴이 너무 깊어. 소금기도 있는 물이라 눈 뜨기도 힘들 거다.”

“음~ 그럼 그 방법밖에 없겠다.”

“그 방법?”

“응.”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용주의 품에 안겼다.

“이렇게 꼭 안겨 있을 테니까. 데려다줘. 그 변신한 모습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수지의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갑피를 변이시켜 중간에 주머니 같은 걸 만들면 운반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됐다. 오늘 밤은 그냥 여기서 보내자.”

“응? 왜?”

“이미 해가 져 있을 거다. 지금 나간다 한들 불 꺼진 등대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고. 게다가 너도 오면서 봤잖아. 주변 지형이 험한 거.”

“응. 그치만 괜찮을까? 등대지기 할아버지.”

“랫맨들이 그 녀석을 해치진 않을 거다. 죽일 거였으면 진작에 죽였을 테니까. 게다가 랫맨들은 우리가 자리를 비운 걸 몰라. 정말 뭔가를 준비한다면, 오늘 밤은 아닐 거다. 우리가 만만하지 않다는 건 그쪽도 잘 알 테니까.”

바닷물 가까이 다가간 용주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벌써 자려고?”

“그래. 아까 그 난리를 피워서 그런지 좀 피곤하네.”

“응. 그럴 만도 하지.”

용주의 옆에 자리를 잡은 수지가 용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용주는 시선을 피해 버렸다.

“여기 오면 항상 이런 식인 거야? 다치고, 긴장하고, 아무 데서나 자고.”

“뭐,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꼭 그런 건 아니야.”

적어도 앞에 두 개는 항상이라 봐도 좋긴 했다.

대동맥도 잘려보고, 손목도 잘려보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뼈가 훤히 드러나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로 굳이 걱정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눈부시진 않아?”

불편한 듯 뒤척이던 수지가 용주 쪽으로 바짝 붙었다.

수정 쪽에서 나오는 빛을 가려 주려고 한 모양인데 수지의 체격으론 어림도 없었다.

“이렇게 누우면 되는 거 아니겠냐?”

몸을 뒤척인 용주가 수지를 등졌다.

“응. 그렇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주가 미처 잠들지도 못한 시각이었다.

‘벌써 잠들다니. 말 그대로 눈 감자마자 곯아떨어졌잖아?’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잠드는 건 상당한 고역이었을 거다.

형광등을 켜놓은 것처럼 밝은 데다가, 끈적할 정도로 습기도 많고, 공기는 탁한데, 바닥은 차고, 딱딱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용주도 수지가 잠드는 데 꽤 애를 먹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지는 정말 곤히 잠들어 버렸다.

카오스 게이트에서의 경험이 아무래도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그만큼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겠고.

“나 때문에 괜히 엄한 곳까지 따라와서 고생이네.”

입고 있던 코트를 벗은 용주는 수지를 덮어 주었다.

“뭐,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라.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 * *

“살려 줘….”

“목이 너무 말라. 물…. 누가 물 좀.”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안수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통 서린 목소리.

“하아…. 하아…!”

피투성이의 수지는 전력을 다해 상처를 치유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나를 집중해도 배에 뚫린 구멍이 메워지지 않았다.

초점 잃은 사내의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이를 악문 수지는 사내의 눈을 감겨 주었다.

수지는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구할 수 없었다.

자신이 다가간 사람도.

자신이 다가가지 않은 사람도.

한 명씩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 살 수 있는 거지?”

“응.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

“!”

차디찬 목소리로 말한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해골로 변했다.

“말로는 누가 못해? 한 사람도 살리지 못한 주제에. 살 수 있을 거라고?”

놀란 수지가 도망치듯 물러났다.

“네가 죽인 거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

어깨를 잡는 손길에 뒤를 돌아본 수지는 도망치듯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모두가 해골이 되어 있었다.

입고 있던 옷차림새 그대로 자신을 원망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왜 같이 안 와 준 거야?”

“늦었어. 너무 늦었다고.”

“애초에 살릴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니야?”

“가족이라며, 가족이라고 그랬잖아!”

점점 다가오는 그들에게 수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서서 그들의 원망을 듣는 게 전부였다.

그때.

수지에게 손을 뻗은 해골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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