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완전 망가졌네.”
등명기를 살피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보호용 유리와 동그란 등은 곳곳이 깨져 있었다.
“고칠 줄 알아? 이거 켜야 하는 거잖아.”
“알 리가 없잖아.”
무슨 화장실 전구를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누가 들으면 정말 쉬운 일인 줄 알겠다.
“음…. 예비 부품 같은 게 어디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긴 한데… 일단 여긴 없는 것 같다. 다시 내려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올라가는 선택지도 있어.”
“올라가?”
용주가 의문을 표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여기가 등대 꼭대기 층인 게 당연하니 말이다.
“응. 저기.”
수지가 가리킨 곳은 지붕 위였다.
돔 형태를 하고 있는 지붕의 중간엔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다.
“그래. 확실히 뭔가 있을 법하긴 하네.”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
용주는 저 위로 올라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계단이나 사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뛰어 올라갈 높이는 아닌데….
등대지기들은 그 정도로 점프력이 좋은 건가?
아니, 아무리 점프력이 좋다 한들 굳이 그런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을까?
“밖에 길이 없으면, 혹시 안에 있지 않을까?”
등대를 한 바퀴 빙 돈 수지가 이야기했다.
“안?”
“응. 여기 길이 있으면 비 오면 다 젖을 거 아니야.”
“안에 있어도 사람이 젖는 건 똑같잖아. 케이스를 여는 게 몇 배는 더 번거롭겠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엄밀히 말하면 지붕 바깥이었다.
길이 어디 있든 간에 비 오는 날 여기 나온 순간 젖는 건 확정이었다.
“으응. 그게 아니라. 아예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기 들어올 때 썼던 포탈 같은 거? 그런 건 없는 거야?”
“아니. 없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만….”
“그럼 있을 수도 있단 거네?”
“뭐… 그렇지.”
정말 퀘스트 게이트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열린 발상도 그렇고.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그렇고.
하긴, 뭐….
원래 이상한 녀석이긴 했으니까. 여러 의미로.
다시 아래로 내려온 두 사람은 조금 더 자세히 등대 내부를 살펴보았다.
층이 나뉘어 있던 것처럼 등대 내부엔 방 역시도 분리되어 있었다.
“뭐 좀 찾았어?”
“아니, 특별한 건 못 찾았다만.”
방의 개수에 비해 막상 활용하고 있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 듯 보였다.
흡사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노부부의 저택처럼 말이다.
꽈당!!
그때.
아래층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넘어지는 것 같은 그런 소리랄까?
“들었어?”
“그래. 넌 여기 있어라. 내가 확인해 볼 테니.”
“왜?”
“등대지기가 우리에게 우호적일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방금 그 소리가 등대지기가 낸 거란 보장도 없고.”
용주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선형 계단 아래로 꽤 덩치가 있는 것들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쥐처럼 보이는 녀석들의 머리엔 양초가 타오르고 있었다.
“정말 좋다. 비도 피할 수 있고, 눅눅하지도 않다.”
흔들의자에 기대어 놀던 두 녀석이 소리에 반응했다.
작은 돌조각이 튕기는 소리를 따라간 녀석들의 눈에 보이는 건 용주였다.
“너… 넌 누구냐?”
용주를 발견한 두 녀석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용주는 칼을 뽑고 있진 않았지만, 충분히 두 녀석을 경계하고 있는 눈치였다.
‘랫맨?’
용주가 두 녀석을 번갈아 보았다.
언어를 번역한다는 메시지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게 이 녀석들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랫맨들에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났다.
마치, 더러운 대걸레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물비린내와 온갖 이물질이 섞인 그 냄새 말이다.
“너희가 여기 등대지기냐?”
“등대지기?”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 너 누구냐!”
두 녀석의 덩치는 여기 가구들을 사용하기에 크게 부족함 없는 크기였다.
모자에 난 구멍도 뿔이 아니라 양초를 빼내기 위한 구멍이라고 생각하면, 납득가는 부분도 있었고.
“등대지기에게 볼 일이 좀 있다만.”
“등대지기라면 그 머리가 두 개 달린….”
“맞다! 우리가 등대지기다! 무슨 일이냐!”
다른 한 녀석의 옆구리를 친 랫맨이 이야기했다.
“…등대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지 묻고 싶은데.”
물음을 던진 용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건 간단하다! 우리가…!”
“폭풍우가 왔었다! 엄청난 비바람! 파도가 안쪽까지 들이닥쳤었다!”
“물이? 이 절벽 위까지 말이냐?”
용주의 미심쩍은 눈빛에 두 랫맨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때.
“음~ 그 사람들이 여기 등대지기인 거야?”
난간을 미끄럼틀 삼아 내려온 수지가 폴짝 뛰어내렸다.
수지를 본 두 랫맨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거기 있으라고 했잖아.”
“음 그치만 별로 위협적인 분위기가 아닌 것 같길래.”
“…….”
“그런데 그 사람들이랑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저 말 알아들어?”
수지는 랫맨들의 언어를 해석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용주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아, 너한텐 그렇게 들리겠구나.”
용주도 그게 어떤 느낌인진 알고 있었다.
지능 스탯이 떨어져 번역에 필요한 지능이 부족했을 때 경험해 본 적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다르게 들리는 거야?”
“그래. 나한테는 이 녀석들이 말하는 게 그냥 우리 둘이 나누는 대화처럼 들린다만.”
“뭔가 굉장하네.”
“굉장할 것 없어. 그냥 룰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니까.”
어깨를 들썩인 용주는 다시 랫맨들을 바라보았다.
두 랫맨은 냄새를 엄청나게 킁킁거리고 있었다.
“좋은 냄새. 살면서 처음 맡아보는 꽃 내음이다.”
“털도 엄청 부드러워 보인다. 가지고 싶다.”
용주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다.
“아! 혹시 배고프지 않냐?! 우리가 식사라도 대접하겠다!”
“배고플 텐데! 배고플 텐데?!”
무언가를 속삭이던 두 랫맨이 수지 주변을 돌았다.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낀 용주는 수지를 조금 물러나게 했다.
“왜? 뭐라고 했는데?”
“별거 아닌 헛소리다.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배고프지 않냐는 이야기였다.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응. 그럼 그렇게 하자.”
“뭐?”
“그렇게 하자고. 왜? 안 돼?”
“…….”
수지의 순진한 눈망울에 용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원.
“대신 꼭대기에서 먹고 싶은데, 아까 봤던 그 경치 좋아 보이던 곳.”
“거기?”
“응. 등대지기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올라가는 법.”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수지가 두 랫맨을 번갈아 보았다.
뭔가를 속닥거린 두 녀석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 * *
“눈치채고 있던 거냐?”
목소리를 낮춘 용주가 물었다.
식사를 준비한다던 두 랫맨은 저쪽 구석진 방으로 가고 있었다.
“응. 대충은.”
“어떻게 눈치챈 건지. 들어보고 싶은데.”
생각해 보면, 용주가 이상함을 느꼈던 건 녀석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어서였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수지의 입장에선 상황이 전혀 달랐을 텐데.
“아까 봤던 우비랑 모자.”
“우비랑 모자?”
“응. 거긴 털이 전혀 안 묻어 있었으니까. 이런 냄새도 안 났고.”
“단순히 빨아서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응.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사이즈. 묘하게 안 맞더라고. 옷도 모자도. 입으면 아마 어깨도 찢어지고, 앞도 안 보일 거야.”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두 랫맨.
수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가자. 놓치겠어.”
“…그래.”
고개를 끄덕인 용주가 먼저 앞장섰다.
퀘스트가 실패하지 않았단 건 적어도 등대지기가 숨이 붙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녀석들이 여길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이라면.
등대지기의 행방 역시도 알고 있을 테지.
“음~ 여기 이런 공간이 있었구나.”
수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타일이랑 똑같이 생긴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아래로 연결된 사다리 같은 게 보였다.
랫맨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말곤 딱히 사라질 곳도 없으니 여기로 내려간 게 분명했다.
“여긴 뭐 하는 곳일까?”
아래로 내려온 수지가 물었다.
중간중간 불이 켜져 있는 지하 공간엔 거대한 나무통들이 2층으로 늘어서 있었다.
“글쎄, 그냥 보기엔 와인 창고 같은 걸로 보인다만.”
길게 이어진 통로를 따라간 용주는 사라졌던 두 랫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빨리 말해라. 그 위로 어떻게 올라가는 거냐?”
“말해. 시간 없다.”
랫맨들은 어떤 녀석을 심문하고 있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 개인 괴물이었다.
흰 머리카락과 수염을 늘어뜨린 녀석은 딱히 저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덩치만 보면, 저런 허술한 포박쯤이야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머리는.
새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쪽이 등대지기인 모양이지?”
“!”
놀란 랫맨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 여긴 왜?!”
“그렇게 허접하게 연기하면 의심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
“뭐?! 허접해?”
“험한 꼴 보기 전에 사라지는 게 어떻겠냐? 딱히 너희를 해칠 맘은 없다만.”
용주의 도발에 불쾌함을 드러낸 랫맨들이 삼지창을 만들어 냈다.
“험한 꼴 볼 게 누군데 그래?”
“맞다. 땀 냄새 필요 없다. 꽃 냄새만 있으면 된다.”
“…….”
룬검을 뽑아 든 용주는 두 녀석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그렇게 빠르거나 위협적이단 느낌은 별로 없는데?’
한 녀석의 뒤를 잡은 용주는 그대로 녀석을 패대기쳤다.
서로 부딪친 두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용주는 검을 휘둘렀다.
두 녀석의 목은 그 자리에 붙어 있었지만,
두 녀석의 꼬리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지 않았다.
“꼬… 꼬리가!”
“일단은 후퇴다. 너희 나중에 두고 봐라! 두목에게 다 이를 거다!”
꼬리를 잃은 두 랫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두 녀석이 사라진 곳은 들어온 출입구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는데, 창고 가장 깊은 곳엔 꽤나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일어설 수 있겠냐?”
랫맨들을 쫓아낸 용주가 물었다.
죽이는 방법도 있었다.
보는 눈이 없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른기침을 한 노인이 힘겹게 대답했다.
오우거.
이 녀석은 그렇게 불리는 종족인 모양이다.
“그래.”
용주는 자연스럽게 옆 머리에 씌워진 천을 걷어 내려고 했다.
그런데.
용주의 손은 급하게 저지당했다.
용주의 손을 잡은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그냥 그렇게 두시면 됩니다.”
“왜지? 이렇게 두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천을 씌운 건 저입니다.”
“…….”
그의 말에 용주는 천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확실히.
숨을 쉬면 당연히 있어야 할 반응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진찰해 봐도 될까?”
오우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수지가 물었다.
오우거의 의사를 확인한 수지는 오우거의 몸 상태를 진단했다.
“어때?”
“음….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그런데?”
“몸이 엄청 쇠약해져 있는 것 같아. 심장도 엄청 약하게 뛰고.”
그거라면, 노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과 검버섯.
백발의 머리를 제외하더라고, 이 오우거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 몇 있었으니까.
“일단은 올라가자. 이야기는 거기서 해도 늦지 않을 테니.”
* * *
“후~ 이제야 좀 숨이 쉬어지네요. 고맙습니다.”
힘겹게 숨을 쉬던 오우거가 고개를 숙였다.
천으로 가려진 다른 쪽 머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가 여기 등대지기냐?”
오우거가 목을 축이기를 기다려 준 용주가 물었다.
“네. 저희가 이 등대를 관리하는 등대지기입니다. 아니, 이젠 저라고 소개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노엘입니다. 원래라면, 제가 노, 제 아내가 엘이죠.”
“이름. 뭐라고 하신 거야?”
오우거의 이름을 일러 준 용주는 이쪽의 이름도 알려 주었다.
“아까 그 녀석들은?”
“랫맨이라 불리는 자들입니다. 바위틈이나 땅속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자들이죠.”
“녀석들이랑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던 거냐?”
“아니요. 랫맨들과 저흰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활동 반경도 다르고, 서로 교류할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래? 등대를 이렇게 만든 건 역시 녀석들이냐?”
“네. 지하를 통해 들어와서는 이렇게….”
“왜지?”
“저희도…. 아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짚이는 게 없어도 뭔가 한 게 있을 텐데. 습격이 처음이라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이유가 있을 테니.”
“잘 모르겠습니다. 전 언제나처럼 안전한 길로 배를 안내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의심의 눈초리를 담은 용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이 녀석이 등대지기인 것만은 확실했다.
일단은.
다른 것보다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게 맞겠지.
뭐가 됐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