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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53화 (253/357)

253화

“그런데 우리 수지 양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혹시 그쪽이 부른 건가?”

“그런 건 여기 끌어들이기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용주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지 뭐야. 뭐, 조금 늦었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동생한테 물어봐 달라고 했어. 오빠 일정.”

이번엔 수지가 대답했다.

“동생?”

“응. 오늘 늦게 들어오거나 못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다더라고. 그래서 집에 갔어.”

“오호. 동생이랑 연락도 하고, 집에도 찾아가고.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거야?”

이안이 호기심을 표했다.

“그런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잖아.”

이안에게 꿀밤을 날린 서아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 듣고 싶은데?”

두 S급 헌터를 번갈아 본 용주가 물었다.

녀석들에게 완전히 우호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다면,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준은.

광폭화 상태의 자신의 팔다리를 너무도 손쉽게 뜯어냈었다.

그게 아직 도달하지 못한 S급 헌터의 힘이란 걸 테지.

“음~ 그래. 그럼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이준의 능력, 혹시 알고 있어?”

“벡터 조작이라고 했었지. 분명.”

“빙고. 류은의 헌터, 맑고 온화하단 뜻의 이명은 준이의 성격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전투 방식에서도 영향을 받았어.”

“전투 방식?”

“가령 이런 거지.”

이안이 공깃돌만 한 돌 두 개를 집었다.

처음 날아간 돌은 바위에 부딪히며 그대로 튕겨 나왔다.

이어서 날아가는 두 번째 돌.

분명 똑같은 동작에 똑같은 힘이 실린 돌일 텐데, 두 번째 돌은 급격하게 속도를 받으며 총알처럼 날아갔다.

바위에 부딪힌 돌은 튕겨 나오기는커녕 바위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온화하고 유려한 전투.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투, 그게 류은의 헌터의 방식이야.”

“방금 그건?”

“아아~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한 눈속임이었어. 벡터를 조작했다기보다는 구성 물질이랑 주변에 작용하는 힘에 차이를 둔 거지.”

이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용주에겐 그건 절대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신의 힘이라 불릴 만한 건 이준이 가진 힘만이 아니었다.

“설령 같은 능력을 지닌 헌터가 세상에 한 명 더 있다고 해도, 준이처럼 능숙하게 다룰 순 없을 거야. 그만큼 벡터를 계산하는 건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니까.”

“이안, 지금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고 있다고.”

서아가 핀잔을 주었다.

“아차차. 미안, 나도 모르게 그렇게 가버렸네.”

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 힘은 어떻게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답이라면 네가 알고 있겠지.”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봐. 사고의 과정도 충분히 가치 있는 거니까.”

이안이 손을 내밀었다.

“벡터를 조작하는 게 계산의 영역이라면, 계산해 낼 수 없는 무언가를 일으키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계산할 수 없다면, 힘을 돌려주는 데에도, 힘을 왜곡시키는 데에도 장애가 생길 테니까.”

“흐흠~? 예를 들면?”

“지구의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무언가. 혹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활용한다든가 하는 식이겠지.”

“호오. 대단한데? 그런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백이면 백의 대답이었는데.”

이안이 감탄을 표했다.

S급 헌터의 힘을 공략하는 법 따위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대답이니 말이다.

“50% 정도는 정답이라고 생각해.”

“50%?”

“지구의 자연 법칙,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 방금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돼. 이준이 경험한 자연 법칙과 물질은 카오스 게이트까지 확장되어 있으니까.”

“…….”

“그럼 그런 현상과 그런 물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어때? 여기에도 답을 내놓을 수 있겠어?”

“네가 여기로 이준을 데려왔으니, 이 세계에 답이 있겠지.”

“빙고. 제법이야.”

이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난 한 마리의 용.

용주는 이 용을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은….

헌터 시험 때 상대했었던 ‘이안’이었다.

“이게 뭔지 알겠어?”

“너랑 똑같은 이름을 가졌던 녀석이잖아.”

“아니. 그쪽 말고 이쪽 말이야.”

이안이 움켜쥐었던 손을 펴 보였다.

강착 원반을 두르고 있는 초소형 블랙홀이 그의 손에 있었다.

“블랙홀?”

“그래 맞아. 블랙홀. 미니미니하긴 하지만, 꽤 그럴듯하지?”

“그게 네가 말한 방법이란 건가 보지?”

“맞아. 세상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상과 물질. 거기 딱 부합하잖아.”

“그런데 그걸로 뭘 어쩔 생각이지? 나랑은 크게 관련 없는 물건인 것 같은데.”

“뭐, 대충 이런 느낌?”

이안의 손을 떠난 블랙홀이 용의 날개에 부딪혔다.

용의 날개는 비틀리고, 찢겼으며,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고통을 삼켜 낸 용은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엉망으로 망가졌던 녀석의 날개는 암흑 물질로 뒤덮여 있었고, 강착 원반이 내뿜던 신비로운 빛이 녀석의 날개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글러트니란 녀석은 인간의 생명력을 몸속에 비축해 둔 모양이더라고. 머리가 날아가도, 몸이 고깃덩이가 돼도, 멀쩡히 살아 있었어. 한 번 그걸 이용해 볼까 해.”

“이용하다니? 난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아가 끼어들었다.

“쉽게 말해. 내 것이 아닌 힘을 비축해 두는 거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힘을? 잠깐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아니. 충분히 가능해.”

자신감을 표한 이안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봤던 그 상태… 지금도 가능해?”

“그래. 다만 그 모습으론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거다. 이쪽이 느끼는 부담도 있고, 언어 기능이 완전 마비되어 버리니까.”

“그래? 하긴 그 모습으로 말하면 엄청 무섭긴 하겠다. 그래도 한번 해주겠어? 반응이 어떤지 한번 봐야 하니까.”

“…그래. 알았다.”

광폭화를 사용한 용주의 모습이 크게 변화했다.

용주의 변화에 서아는 크게 놀란 듯 보였다.

“두 사람에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두 번째 블랙홀을 만들어 낸 이안이 다른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첫 번째 블랙홀에 비하면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손톱만 한 블랙홀이었다.

“부탁?”

“만약 큰일이 생기면, 뒤를 부탁해.”

어딘지 불길한 미소를 지은 이안이 블랙홀을 떨어뜨렸다.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블랙홀 주변으론 공간의 뒤틀림이 일었다.

잔잔하던 물방울은….

용주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카…가각!!”

충격의 순간.

용주의 손이 끔찍하게 뒤틀렸다.

공간의 휘어짐을 따라 용주의 손 역시도 U자로 휘었고, 손가락이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렸다.

‘젠장! 이게 뭐야?!’

끔찍한 고통에 용주가 이를 악물었다.

손에 있는 모든 뼈가 으스러지고, 손등과 손바닥의 가죽이 맞닿는 듯한 그런 고통이었다.

“이안, 멈춰!”

“아저씨!”

상황을 지켜보던 서아와 수지가 동시에 외쳤다.

이안은 그제야 떨어뜨렸던 블랙홀을 회수했다.

용주에게 달려간 두 사람은 용주의 상태를 확인했다.

용주의 손가락은 두 개뿐이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뺀 나머지 세 손가락은 저쪽에 날아가 있었다.

두르고 있던 형상과 갑피는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으며, 그건 뼈와 살도 마찬가지였다.

피부와 살점이 모두 사라진 손 중심부론 바닥이 그대로 보였다.

“손가락들 좀 가져와 줄래?”

서아는 곧바로 회복에 들어갔다.

기괴하게 변이된 용주의 입에선 마르지 않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잘근잘근 씹힌 상처는 스스로 만든 것들이었다.

“저항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하네. 역시 생각만큼 쉽진 않은 건가?”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이안의 태평한 목소리에 서아가 그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야. 버틸 걸 버텨야지. 이게 참는다고 참아지는 일이냐고!”

서아가 손에 집중한 사이 수지가 손가락 봉합에 들어갔다.

두 의료 헌터의 도움으로 용주의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뒤를 부탁한다고.”

“아무튼 그 계획은 거기까지야.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라고.”

서아가 보기엔 두 사람 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걸 생각해 낸 이안도.

손이 지 지경이 됐는데도 이러고 있는 이 녀석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에 잘 풀릴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세상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너 설마….”

어깨를 으쓱한 이안은 용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할래? 꼭 말이 아니어도 그 정도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각.”

용주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계속하자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렇다는데?”

두 사람을 물러나게 한 이안은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일은….

계속해서 같은 실패를 만들어 냈다.

“이안. 정말 여기까지야. 더 하겠다고 고집부려도 안 된다고.”

수많은 실패의 끝에서 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너도 거기까지만 해. 이제 그 모습 유지하는 것도 한계잖아….”

이안이 구축했던 차원은 붕괴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고.

용주의 광폭화도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설마 이안보다 더 머저리 같은 녀석이 세상에 있을 줄이야. 터무니없어, 정말.”

의료 헌터가 둘이나 붙어 있고, 그때마다 최선의 조치를 했다.

죽을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게 반복될 때마다 같은 고통이 수없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 거기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될까?

“조금씩 익숙해지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 그런 기미가 안 보이네. 하긴 하루 만엔 무리겠지.”

이안이 고통스러운 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서아 말대로 이 이상은 무리인 모양이었다.

용주는 물론이고, 이쪽도 말이다.

“그러게 말했잖아. 무리라고. 이런 게 될 리가 없잖아.”

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렇게 하지 말고 저 용을 사용하는 게 어때? 저게 그 암흑 물질을 흡수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잖아.”

“아~ 이안 말이야?”

“이안?”

“이 용한테 붙여준 이름이야. 넌 몰랐겠구나?”

“왜 거기 네 이름을 붙인 건데.”

서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를 보았다.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왜 자기랑 같은 이름을 붙이냐는 말이다.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아무튼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실은 저것 역시도 페이크거든. 아까 벡터를 설명했던 것처럼 참고용 이미지야.”

“저것도?”

“응. 그리고 내가 사용하면 비밀병기 아니잖아. 지금 상태로 제대로 싸울 수도 없고.”

“뭐… 그것도 그렇네.”

팔짱을 낀 서아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손 가득 물을 길어 온 수지는 마시라는 듯 양손을 내밀고 있었다.

뭐….

당연히 용주는 거부하고 있었지만.

“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더 강한 차원 압력을 버틸 수 있다면, 지금보단 조금 더 가망 있지 않을까 싶은데.”

“차원 압력? 갑자기 웬 차원 압력?”

“상처를 치료하면서 느꼈거든. 짓눌리고 찢기고 터진 그 일련의 현상들이 차원 압력에 버티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랑 꽤 닮았다고.”

“차원 압력이라…. 그렇게 말하니 또 그런 것도 같네. 일리가 있어.”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차원 압력에 획기적으로 저항을 높일 방법 말이야.”

“하나밖에 없는 걸 뭘 물어? 진각성 말고 뭐가 더 있나?”

“하아~ 역시 그런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큰 방법은 아니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더 강한 차원 압력을 버틸 수 있게 되면, 그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는 거냐?”

반강제로 물을 들이켠 용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지금처럼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무한 루프를 그리는 것보단 훨씬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방법을 물으면 나도 답을 줄 순 없지만 말이야.”

“…나에게 시간을 좀 줬으면 하는데. 가능하다면, 이형 워프 장치도.”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뭐… 대충은.”

더 강한 차원 압력을 버틸 수 있는 방법.

진각성이 아니라도 용주에겐 방법이 있었다.

대항력을 올리면 자연스레 버틸 수 있는 차원 압력도 올라갈 거다.

“양쪽 다 여유가 없는 건 알고 있지?”

서아가 물었다.

시간이야 당연하고, 이형 워프 장치 역시 본부가 날아가며, 상당량이 소실되었다.

원석도, 가공 장치도, 가공 기술자도 타격은 심각한 수준.

물량 공급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래?”

“생각이 있으면 도전해 봐야지. 한번 믿어 주자고.”

차원을 되돌려 놓은 이안이 용주에게 가지고 있던 이형 워프 장치를 건넸다.

“시간은 어느 정도 생각해?”

“3일.”

3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3일 동안 진행할 수 있을 만큼 타이트하게 퀘스트를 진행해 볼 생각이었다.

남들에게 없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면, 이 3일이란 시간은 30일이 될 수도 있고 300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퀘스트 게이트의 조건이 얼마나 잘 붙어 주냐가 관건이겠지만.

“3일이라. 그래. 그럼 3일 뒤 이 시간에 다시 보는 걸로. 준이가 그동안 얌전히 있어 주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 말 하지 마. 그거 플래그라고.”

핀잔을 준 서아는 수지에게 다가갔다.

“속으론 같이 움직이고 싶지? 말은 안 했어도.”

“…….”

“가져가. 터무니없는 네 친구 잘 감시하고.”

“…응. 고마워.”

“무리는 하지 말고. 의료 헌터가 쓰러지면, 남은 사람은 누가 돌봐?”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수지는 두 손으로 장치를 감싸 쥐었다.

서아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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