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252화 (252/357)

252화

* * *

“안쪽으로. 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은 형만은 어느 방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의 최상층에 위치한 방은 한 면이 전체로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고급짐이 느껴지는 실내에는 클래식이 틀어져 있었는데, 컴퓨터 사운드가 아닌 LP판과 축음기가 연주하는 아날로그한 소리였다.

창가 가까운 곳에 놓인 쇼파엔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서진.

태스크 포스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내였다.

“편한 데 앉으시죠.”

담배 연기를 뿜어낸 서진이 담뱃불을 비벼 껐다.

재떨이엔 이미 세 개비의 담배가 쌓여 있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쪽이 이번에 새로 길드를 맡게 되셨다고.”

“박형만이다.”

“조서진입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분이 이번에 일어난 사건의 배후자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성함이 아마 이준 씨였죠.”

리모컨을 만진 서진이 환풍 기능을 좀 더 높였다.

“그 이야긴 그만하지. 우리 쪽에 있어서도 그건 적지 않은 충격이었으니.”

“그러시겠죠. 하지만 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고.”

“일어날 일이라고?”

“네. 헌터란 결국 자기 힘에 취해 날뛰는 오만한 존재니까요.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더 강한 힘을 가질수록 그 본능이 강하고 폭력적이게 발현되는 법이죠.”

“듣기 거북한 말을 잘도 지껄여 주는군.”

“듣기 거북하셨다면 그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서진의 반응.

형만은 일단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그쪽이 헌터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단 건 알고 있었다. 피차 말 못 할 사정이란 게 있겠지.”

“그렇게 거창할 건 없습니다. 전 단지 헌터의 본질을 꿰뚫고 있을 뿐이죠.”

“그렇게 따지면, 너희도 똑같은 부류의 인간일 텐데?”

진득하게 이어지는 형만의 물음에 서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단 얼굴이었다.

“아뇨. 저흰 여러분과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 다릅니다. 저희의 힘은 어디까지나 필요악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니까요.”

“그래? 내가 보기엔 그저 편협한 자기 합리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그쪽이 그쪽에 몸담고 계셔서 그러겠죠.”

“피차 마찬가지지.”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의 기 싸움.

담뱃갑을 꺼낸 서준은 한 대를 권했다.

돌아온 대답은 NO.

꼬나문 서진의 담배엔 저절로 불이 붙었다.

“불을 다룬다는 건 여러모로 편리해 보이는군요. 라이터를 안 들고 다녀도 되고.”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신 서진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개인적인 호기심이 하나 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쭤봐도 될는지요?”

“그건 담배를 물기 전에 물어보는 게 순서였다고 생각하는데.”

“뭐, 불을 붙여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걸로 허락을 받은 거 아니겠습니까?”

물음을 던진 서진이 형만의 오른 어깨를 바라보았다.

“오른팔은 언제 잃어버리신 건가요?”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군.”

형만이 의도적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꽤 오래된 이야긴가 보군요. S급 의료 헌터의 도움이 있으면 재생할 수 있을 텐데요? 지금 위치시라면 뭐든 다 가능한 거 아닙니까?”

“팔을 고칠 생각은 없다. 잃어버린 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거야.”

“그러신가요.”

“그러는 너도 그 얼굴의 흉터를 간직하고 있지 않냐?”

형만이 서진의 흉터를 바라보았다.

“이 흉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거든요. 그게 절 강하게 만들었고, 그게 절 지탱해 줬죠. 엇나가지 않게, 약해지지 않게.”

서진이 자신의 상처에 손을 올렸다.

“인사는 서로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죠. 이런 이야기나 하자고 먼 걸음 하신 건 아닐 테니까요.”

서진이 담뱃불을 껐다.

“신설동역의 폐쇄된 유령 승강장. 이번 카오스 게이트가 열렸던 곳이 거기라는 건 알고 있겠지?”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누비고 있었다. 우리 쪽은 어떤 전조도 감지하지 못했었지.”

“완벽하다 여겨졌던 시스템의 엄청난 허점이군요.”

“녀석들은 또 다른 게이트를 열 거다. 다음번엔 필히 이번처럼은 끝나지 않겠지.”

“수색에 협조를 요청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겠군요. 그건 지극히 타당하고, 지극히 합리적이네요. 그런데….”

서진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저희가 수색하지 않았다….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것처럼 들리는걸요. 지난번 도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전후로요.”

“…….”

“정말 그런 거라면, 큰 오해입니다. 사건 직후 저흰 팬텀이란 자들을 추격하려 했습니다. 뭐, 결과로 증명해 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요.”

“방금 그 말이 얼마나 이상한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겠지?”

“사건 진행 과정에서의 착오가 있었던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해프닝이었을 뿐입니다.

“착오? 해프닝이었다고? 그게?”

“결과적으론 잘 풀리지 않았습니까?”

“가죽인 줄 알았더니, 철판인가 보군, 그건.”

형만이 노골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태스크 포스는 정의를 집행하는 기관.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서라면, 협력해 드리는 게 맞겠죠. 명분도 충분하고요.”

어깨를 들썩인 서진이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결정했다 한들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저희가 보유한 눈으론 그자들의 아지트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아니,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다르다라. 그거,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그래서 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요? 저희 쪽 눈의 성능이라면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만.”

“아까 네 입으로 한 말은 벌써 잊었나 보지?”

“제가 한 말…?”

서진이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이 한 말 중에 특별한 분기점이 될 만한 건….

“지금 이준이 녀석들과 함께 있다. 녀석을 숨기는 건 다른 녀석들을 숨기는 거랑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렵겠지.”

“아…!”

“다른 녀석들을 찾지 못했다 한들, 녀석을 찾지 못할 거란 말은 되지 않는다.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과연. 인맥만 가지고 거기 앉으신 건 아닌 모양이네요.”

날카로운 형만의 분석.

생각의 빈틈을 발견한 서진은 몸을 뒤로 뉘었다.

“확실히 그건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입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겠죠.”

“그럼.”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네. 범죄자들은 저희 쪽으로 인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자들을 체포한 건 바로 저희, 태스크 포스인 겁니다.”

“녀석들이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더더욱 저희 쪽에 공로를 넘기시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분껜 사람을 죽일 권한도, 범죄자를 심판할 권한도 없으니까요.”

서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았다. 녀석들을 제압한다면, 너희들에게 넘기도록 하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더.”

자리에서 일어난 서진이 축음기 쪽으로 걸어갔다.

자리로 돌아온 그의 손엔 마이크로칩 하나가 들려 있었다.

“모든 헌터들에게 이 칩을 심을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십시오.”

“칩?”

얼핏 들어도 수상해 보이는 제안이었다.

칩이라니.

이런 이야기 분명 어디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네. 인체에 무해한 건 이미 검증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침을 내려놓은 서진이 테이블에 있던 버튼 몇 개를 조작했다.

테이블 가득 들어온 화면엔 각종 보도 자료와 통계 자료.

그리고 기소와 판결에 대한 것들까지 다양한 자료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헌터들의 범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통계들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죠. 이 칩은 헌터들의 위치 정보와 몇 가지 생체 정보를 저희에게 전송해 줄 겁니다. 가령 마나의 사용 여부를 저희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죠.”

“…….”

“칩에는 식별 번호가 있습니다. 누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죠. 이로써 헌터들에 대한 보다 확실한 통제와 감시가 가능해질 겁니다. 사회는 안정되고, 저희 쪽 수고도 줄어들고.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죠.”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형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정말 당당하다면, 거절하실 이유는 없을 텐데요?”

“당당하냐, 당당하지 않냐. 그런 걸 논할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맹견에게 입마개를 하는 건 당연한 처사고 상식입니다. 헌터들에게도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범죄는 힘과 어둠에서 비롯되고, 질서는 공포에서부터 피어나는 법이죠.”

서진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모니터의 화면이 꺼졌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헌터는 많습니다. 하지만 자기 안에 있는 눈을 경계하지 않을 자는 없겠죠.”

서진은 형만 쪽으로 칩을 밀었다.

“‘아르고스’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이게 바로 제가 고안한 차세대의 눈입니다.”

“…….”

잠시 걸음을 멈췄던 형만이 가던 길을 계속했다.

담배 한 대를 꺼낸 서진은 침착하게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의 거리는 멀어졌고, 두 사람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그때.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오신다면, 두 번째 제안은 일단 철회하도록 하죠.”

서진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다만 첫 번째 제안만큼은 확실히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건 확실히 약속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쪽 인력도 그쪽에 동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눈이란 녀석도 한번 보고 싶은데.”

“네. 물론이죠. 금방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형만의 안내를 맡긴 서진은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헌터는 두 종류뿐이지. 범죄자이거나, 범죄를 저지를 자이거나.”

자리에서 일어난 서진이 LP판의 음악을 멈췄다.

“아르고스 계획이 미뤄진 건 아쉽지만 상관없어. 방법이라면 마침 괜찮은 게 굴러 들어왔으니까.”

창가에 선 서진은 잠시 동안 먼 곳을 응시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이준이란 자는 필히 숨통이 붙어 있을 거야. 카오스 게이트를 임의로 열 수 있는 게 정말 가능하다면, 방법을 알고 있는 건 역시 녀석이겠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서진은 마이크로칩을 만지작거렸다.

“헌터들에게 있어 카오스 게이트는 곧 돈. 그리고 욕구를 발산할 무대 역시 카오스 게이트지. 지금의 환경이 야생이라면, 우리 쪽에선 사파리를 만드는 거야. 언제 어디서 열릴지도 모르는 카오스 게이트를 기다리느니, 우릴 따르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그래. 설령 자기 몸에 칩을 심어야만 한다고 하더라도.”

작은 한숨을 내쉰 서진이 뒤돌아섰다.

아무리 정상적으로 보이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보여도, 헌터는 본질적으로 헌터였다.

이준이 그걸 증명했고, 형만 역시도 그 안에는 같은 괴물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위가 아무리 바뀌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아르고스.

필요악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이것뿐이었다.

* * *

“자~ 그럼 뭘 어디서부터 해야 좋을까?”

드넓은 초원에 선 이안이 뺨을 두드렸다.

평범한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이 풍경은 이안이 만든 것이었다.

“뭐야? 다 생각해 놓은 거 아니었어?”

서아가 따지듯이 물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길래 이미 다 계산을 마친 줄 알았는데….

하긴, 그렇게 철두철미하면 이안이 아니지.

“그런 눈빛 하지 말어. 생각이라면 해뒀다고. 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가 고민될 뿐이라고.”

“아~ 그러셔? 그런데 이렇게 차원을 막 구축해도 되는 거야?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지?”

“좀 무리하면 어때? 그러려고 같이 있어 달라고 한 거 아니겠어?”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칭찬으로 받을게.”

고개를 돌린 서아의 눈에 용주와 수지의 모습이 보였다.

이 공간에 있는 건 여기 네 사람이 전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