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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50화 (250/357)

250화

“너… 언제부터.”

당황한 용주가 물었다.

“일어나 있었냐고? 들어올 때부터일걸. 아니, 그 전인가.”

“…그럼 말이라도 하지 그랬냐? 일어나 있다고.”

용주가 불만을 표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그런 이야기 하지도 않았을 텐데.

“음. 그냥 가만히 있어 보고 싶었어. 상황이 반대된 건 특별하니까.”

“…….”

용주가 뒷목을 긁적였다.

그때부터 일어나 있었다는 건.

자신이 혼자 중얼거린 이야기들도 다 들었다는 뜻 아닌가.

“그냥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온 거였다. 쉬어라.”

“응. 그래도 그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싶은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 네가 기억하고 있는 거.”

“…….”

“나한테 그 말을 해줬던 사람. 그 말이란 건 역시 그거지? 헌터는 가족이란 거.”

“그냥 정신 나간 놈의 헛소리였다. 깊이 받아들이지 마.”

“응. 그렇지만 난 그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를 듣고 싶은걸.”

“집요하게 굴지 마라.”

“집요하게 굴 거야. 정말로 듣고 싶으니까.”

몸을 일으킨 수지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한 걸음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용주는 다시 간병인석에 앉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용주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만을 만난 것.

러스트에 관한 것.

부모님의 죽음과 그 후에 있었던 일들에 관한 것.

그리고.

형만과의 통화를 통해 전해 들은 것까지.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수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러스트가… 송이 아줌마였다고?”

수지가 숨을 내쉬었다.

잠깐 사이에 들은 이야기엔 믿기 힘든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잊어버린 사람은 너희 어머님이고?”

“확신은 없다. S급 녀석들이 입을 맞추지 않았을 거란 확신도 없고. 말했잖아. 그냥 내 망상이라고.”

“망상. 음. 그럼 내 망상도 하나 들려줄게.”

수지가 두 다리를 쭉 뻗었다.

“너희 집에 처음 갔었을 때, 거실에 있는 가족사진을 봤었어. 그 사진을 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

“글쎄.”

“익숙함. 편안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었어. 그리고 뭔가 찌릿한 통증이 스쳐 갔었고.”

“통증?”

“응. 꼭 전기가 찌릿 흐른 것 같은 느낌. 더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

용주의 머릿속에 아까의 통화가 떠올랐다.

부모님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이안과 서아는 동시에 이상한 반응을 보였었다.

“성함. 알려줄 수 있어?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

그녀의 물음에 용주는 두 분의 성함을 일러 주었다.

잠시 눈을 감은 수지는 한쪽 귀를 막았다.

마치 소라고둥에 귀를 기울이듯이.

“왜? 이명이라도 들리는 거냐?”

“안수지, 꼭 친자매 같은 이름이라고. 그렇게 불러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되게 편안하고 안심되는 그런 느낌.”

“…….”

“송이 아줌마를 그렇게 만든 건 이준 아저씨라고 했지. 그럼 혹시….”

“글러트니, 엔비, 그리드, 프라이드, 슬로스, 러스트. 라스. 직접 본 녀석도 있고, 듣기만 한 녀석도 있지만, 적어도 저 7명 중에 두 분과 닮거나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이준이 배후에 있다.

그것 역시도 꽤 무게가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만약 같은 방법으로 두 분이 살해당한 거라면, 팬텀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음. 그럼? 너는? 너는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그걸 알면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

“응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진실에 크게 다가갔단 생각이 든다. 머지않아 분명….”

“응.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다 기억할 수 있겠지? 너희 부모님에 대해.”

“…그럴 거다. 가족이니까.”

* * *

“아! 오빠! 어서 와!”

집으로 돌아온 용주를 예은이 반겼다.

“뭔가 엄청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 그치?”

“그렇네. 뭐 별일은 없었고?”

“응. 언노운들이 나타난 곳이랑은 많이 떨어져 있었으니까. 뭐, 수업이 완전 엉망이 되긴 했었지만.”

“그래. 다행이네.”

“그러는 오빠는 괜찮아? 헌터 길드…. 완전 난리 났던데.”

“뭐, 괜찮아지고 있어. 다들 열심이니까.”

고개를 돌린 용주가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오해는 다 풀린 거야?”

주제를 돌린 예은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응. 다 잘 해결됐어.”

이 사건을 계기로 태스크 포스 전체가 변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향했던 화살은 완전히 걷혔다고 봐도 좋았다.

“잘됐다. 역시 오빠야. 잘 해결할 줄 알았다니까.”

“내심 아쉽진 않고? 호텔 라이프.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잖아.”

“음~ 글쎄. 딱히 아쉽거나 한 건 없는 것 같아.”

“의외네.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그간 못 해 봤던 것들 맘대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에이~ 맘대로 하라고 진짜 맘대로 할 순 없잖아. 내 돈도 아닌데.”

“어른이네.”

“어른은 무슨. 그게 당연한 거지. 그리고 정말 내 맘대로 돈을 펑펑 쓸 수 있대도 편안한 맛이 없잖아. 역시 집이 최고지.”

“…그래?”

용주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있잖아, 오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보고 싶은 거?”

“응. 혹시 남자들은 선물 뭐 좋아해?”

“선물? 누구한테 주려고?”

“아! 그 특별 조사관님한테. 그간 신세 졌잖아. 이것저것 많이 알려 주시기도 했고.”

“이것저것?”

“아! 공부 말이야! 조사관님 엄청 머리 좋으시더라.”

“그래, 뭐.”

동제에겐 자신도 신세를 지긴 했다.

예은이가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한다면, 거기에 더 해줘야 할 정도로 말이다.

“조사관님 마지막에 뵀을 때 엄청 우울해 보이셨어. 현장이 좀 정리돼서 이제야 헌화하러 가신다고…. 뭘 해드리면 조금이라도 힘내실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 녀석도 힘들겠지.’

본사는 동제가 근무하던 곳이기도 했다.

많은 희생자들과 알고 지냈었겠지.

“선물이라. 글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선물은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거다. 원하지도 않을 거고. 그런 것보단 정상이 담긴 무언가면 어떨까 싶은데.”

“음. 정성이라. 뭔가 추상적이라 어렵네.”

“간단한 디저트에 편지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 아니면 100점짜리 시험지라든가.”

“음…. 시험지는 당장 나올 게 아니잖아. 그건 기각. 그래도 앞에 나온 건 괜찮을 것 같다. 달달한 게 들어가면, 세로토닌이 분비돼서 기분이 좀 나아지실지도 모르니까.”

고개를 끄덕인 예은이 용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직접 만들 생각인 거야?”

예은의 의도를 알아차린 용주가 물었다.

저건 분명 도와 달란 눈빛이었다.

“그렇지만 좀 전에 오빠가 그랬잖아? 정성이 들어간 거면 좋을 것 같다고. 사는 것 보단 역시 만드는 게 정성이 있지 않을까?”

“뭐… 그렇긴 하겠지.”

“뭐 만들지 정해서 나갔다 올 테니까, 오면 도와 주는 거다. 알았지?”

‘달달한 디저트라….’

순간, 서윤의 얼굴이 스쳤다.

“그래. 대신 좀 넉넉하게 준비해 줄래?”

“넉넉하게? 왜? 우리 것도 만들게?”

“응. 우리도 좀 해 먹고, 나도 선물로 쓸까 해서. 바나나랑 초콜릿 좀 따로 부탁할게.”

“오빠도? 응! 알았어!”

* * *

“아아~ 좋다.”

서윤이 고개를 뒤로 최대한 뉘었다.

넘칠 만큼 가득 채운 탕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노곤하네.”

온몸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탕에 몸을 담근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뭐.

이렇게 두 다리 쭉 뻗고 있을 상황은 영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진각성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물 밖으로 손을 꺼낸 서윤이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다면, 무진장 축하받아야 할 일일 텐데.

여러 방면으로 전혀 체감이 되지 않았다.

“역시 아까 그 말 하지 말 걸 그랬나?”

뭐라도 좀 먹었으면, 그래도 기분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용주랑 함께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겠지.

하지만.

“아니야! 네가 잘못했잖아! 난 잘못한 거 없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서윤이 손을 팍 내리쳤다.

참방거리며 튄 물은 그대로 서윤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

“응?”

눈가를 쓸어내린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세면대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이용주?!’

발신인을 확인한 서윤은 서둘러 손에 물기를 닦아 냈다.

“여, 여보세요?”

목소리를 낸 서윤이 흠칫 놀랐다.

뭔가 화장실 특유의 울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집 앞으로 잠시 나와 줄 수 있을까?”

“뭐? 집 앞?!”

서윤의 움직임에 욕조의 물이 넘쳤다.

“혹시 밖에 나가 있는 거냐?”

“아니. 집이긴 한데, 너 어딘데?!”

“너네 집 앞.”

“뭐?!!”

놀란 서윤이 벌떡 일어났다.

“우리 집? 우리 집 앞에 네가 왜 있는데?! 아니, 그것보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안 건데?!”

“길드 쪽을 통해 들었다.”

“아니, 남에 개인 정보를 그렇게 막 줘도 되는 거야?! 그리고 그런 거면 나한테 직접 물어보면 됐잖아!”

“뭐, 결과만 같으면 된 거 아니겠냐?”

“안 같아! 전혀 안 똑같다고!!”

“아무튼 내려와 줄 수 있겠냐? 전해 줄 게 있는데.”

“전해 줄… 거?”

“천천히 내려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 *

“야…. 야!”

밖으로 나온 서윤이 용주를 불렀다.

가로등엔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뭐야? 올 거면 올 거라고 미리 말해 줬으면 좋았잖아. 당연한 매너라고.”

머리를 배배 꼰 서윤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 탕에 들어가 있었기에 그런지, 뺨엔 홍조가 드리워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아까 화장실에 있었다든가 한 거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복도에서 소리가 좀 울렸을 뿐이라고.”

통화를 끊자마자 정말 발에 땀이 나도록 움직였었다.

머리도 말려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하고….

물론, 드레스 코드도 빼먹지 않았다.

일상적이지만, 최대한 예쁘게. 최대한 새침하게.

이런 이벤트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래.”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전해 줄 거라니?”

팔짱을 낀 서윤이 물었다.

용주는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과의 표시다. 받아 둬.”

“사과?”

얼떨결에 봉투를 받아 든 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아까… 그러니까. 못되게 말해서 미안하게 됐다. 조금 더 잘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다못해 사과라도 했어야 하는 건데.”

두 사람 사이에 바람이 스쳐 갔다.

“…뭐야, 마음에 두고 있었어? 보기보다 여린 구석이 있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서윤이 어깨를 들썩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다.

여리다기보단, 자상하다, 속이 깊다 쪽이 전하고 싶은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난 전혀 마음 두고 있지 않다고.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용주가 자상한 거야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표현하는 방식이 좀 그럴 뿐이지.

“그래도 좀 고맙네…. 응. 이런 거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렇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감동이었다.

안에 든 게 뭐라고 할지라도.

아니, 빈손으로 왔다고 할지라도 그냥 감동이었다.

“안에 뭐 들었는지, 지금 봐도 돼?”

“그래, 뭐….”

서윤은 안에 든 걸 꺼내 보았다.

딸기 크로아상.

초코 푸딩.

고구마 컵케이크.

초코 바나나.

봉투 안엔 이렇게 4가지 디저트가 들어 있었다.

“달달한 디저트….”

“뭐, 아까 먹고 싶다고 그랬었잖냐?”

“그래서 일부러….”

서윤이 봉투를 꼭 끌어안았다.

“맛있게 잘 먹을게. 그래서 이건 어디 거야? 혹시 맛있으면 다음에 사러 가게.”

“집에서 만든 거다.”

“아~ 집에서….”

서윤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집에서?!”

그러고 보니 포장이 조금 밋밋하단 느낌이 있었다.

파는 거라기엔 데코나 접시 같은 게 심심한 느낌도 있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부분이었는데,…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그냥 파는 걸 적당히 사용해 만든 거니.”

할 일을 마친 용주가 뒤돌아섰다.

“그럼 들어가서 쉬어라. 진각성 축하한다.”

“……!”

서윤의 손에서 미끄러진 봉투가 땅에 툭 떨어졌다.

“야! 이용주!”

도전적으로 용주의 이름을 부른 서윤이 용주를 와락 안았다.

그리고.

뒤돌아선 용주의 입술에 확 입을 맞추었다.

“……!”

갑작스러운 서윤의 돌발 행동에 용주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리가 받아들이고 있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움직인 다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용주의 뒷머리에 손을 올린 서윤은 더욱 깊이 입을 맞췄다.

예쁜 불꽃도.

아름다운 폭죽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더 느끼고 싶었다.

“…….”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

진하게 입을 맞췄던 서윤이 서서히 입술을 떼었다.

당황해하는 용주의 얼굴이 보였다.

새빨개진 용주의 얼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용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 안 뺏길 거야. 누구한테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서윤이 검지 끝으로 용주를 가리켰다.

“널 좋아하니까.”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서윤의 고백.

당당하게, 당돌하게.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런 목소리가 나온 건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 소리가 용주에게도 들릴 것만 같았다.

“네가 날 안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아니, 안 좋아하는 게 더 당연하다고 생각해. 우리 첫 만남부터 별로였잖아. 그렇다고 예쁜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야. 말주변도 없고. 애교도 없어. 그뿐인가? 애들도 잘 못 다루고, 큰 도움도 안 돼…. 하!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 진짜 매력 없어 보이네.”

몰아치듯 이야기를 쏟아 낸 서윤이 자조적인 웃음을 머금었다.

동그래진 서윤의 눈동자는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날 좋아하게 만들 거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그게 내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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