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 * *
“그래서 아까 둘이 뭐라고 한 거야? 비밀 병기 어쩌고 한 이야기 말이야.”
길드를 나선 서윤이 물었다.
“평범한 실전 훈련 이야기였다.”
“실전 훈련? 그럼 이안이 스파링 상대라도 돼주겠단 거야? 비밀 병기 이야기치곤 너무 시시한데?”
“녀석에게 생각이 있겠지.”
“음…. 그렇겠지? 뭐,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 란 말도 있으니까.”
깍지를 낀 서윤이 용주를 곁눈질했다.
용주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 어두워 보였다.
“아~ 갑자기 뭔가 달달한 게 막 땡기네.”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서윤이 쭈욱 기지개를 켰다.
“이 근처에 뭐 맛집 없어? 마카롱도 좋고, 아이스크림도 좋고, 아! 컵케이크나, 푸딩, 와플 같은 것도 괜찮은데. 초코 바나나! 초코 바나나도 좋아!”
지이이잉~!
서윤이 손뼉을 친 그때.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용주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핸드폰에 형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화 받았다.”
기다려 달란 신호를 보낸 용주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잘못 걸린 건가?’
십 초 이상을 더 기다린 용주가 통화를 종료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아 달라고 부탁한 건 나긴 한데….”
액정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에 가까이 대고 말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차도에서 멀어진 용주는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설마 3차까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제법 거리가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이안이었다.
* * *
“그래서 무슨 일이래?”
이안이 어깨를 들썩였다.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총 세 명.
이안과 서아.
그리고 형만이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팔을 고쳤으면 하는 거야?”
서아가 물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형만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주력으로 사용해 오던 팔의 빈자리가 분명 크게 다가왔겠지.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음, 그래? 그럼?”
“슬슬 지루할 즘이란 거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희 두 사람에게 물어야 할 게 있다. 아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야.”
두 사람을 번갈아 본 형만이 왼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보통 이야기는 아닌가 보네?”
“서울에 나타났던 S급 카오스 게이트. 분명 기억하고 있겠지?”
“그럼, 물론이지. 그걸 어떻게 잊으려고.”
“그래, 나도 기억하고 있어. 그런 게이트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까.”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게이트 토벌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
“거기 있던 사람이라면….”
“나랑 서아. 그리고 준이. 아! 그분도 있었다. 주일 할아버지.”
“헌터는 아니었지만, 태스크 포스 소속이었던 나은이도 있었어.”
두 사람이 기억하는 멤버는 그렇게 다섯이었다.
“정말 그 사람들이 전부냐?”
형만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고 그래? 무섭게.”
“그럼 하나 물어보지. 게이트 토벌팀의 리더는 누구였냐.”
“토벌팀의 리더?”
“그거야 당연히 주일 할아버지였지.”
“주일 할아버지라니. 이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때 리더는 이준이었잖아?”
서아가 반박했다.
“준이었다고? 내 기억엔 아닌데. 제일 연륜 있었던 주일 할아버지가 하셨던 게 당연하잖아? 우리 빨간 할아버지 대단했었다고.”
“아니래도?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계획하고 계산하고, 실행하는데 이준만 한 적임자가 없잖아. 뭐… 지금 시점에 그런 말 하는 게 좀 불편하지만….”
엇갈리는 두 사람의 의견.
두 사람을 번갈아 본 형만은 작은 불꽃을 튕겼다.
“그럼 게이트의 마지막은 어떻게 됐냐?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리고, 게이트를 닫은 건 누구지?”
“그건 내가 딱 말할 수 있지. 마지막은 서아랑 준이가….”
“내가? 아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마지막은 너랑 이준이 끝냈잖아.”
이번 질문에도 역시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럼 참고로 그때 상대했던 게이트 보스는?”
“아…. 음….”
다음 질문엔 답이 곧장 나오지 않았다.
“추상적인 이미지라도 좋다. 단어로 단정 짓지 않아도 돼.”
“뭐였더라? 언노운…. 게이트 보스….”
“어…. 어라? 왜 기억이 안 나지?”
서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게이트 보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그래. 반응을 보아하니 거짓은 없는 것 같군.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이칠성, 안수영, 혹시 이 이름들을 알고 있나?”
“이칠성?”
“안수영?”
찌릿!
두 사람의 이름을 읊은 이안과 서아가 동시에 고통을 표했다.
“방금 그건….”
“이안, 너도?”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통증을 느끼다니, 보통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대답은?”
“아니. 역시 모르는 이름이야.”
“나도, 딱히 기억나는 얼굴은 없는데.”
“…그래?”
형만은 두 사람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관찰했다.
시선 처리, 눈의 떨림, 입 모양의 변화 그 모든 걸.
얼굴만이 아니었다.
목소리 톤, 목소리의 떨림.
손가락의 작은 동작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
적어도 형만이 느끼기엔 두 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진 않았다.
“그래서 그건 왜 물어본 건데? 두 사람은 또 누구고?”
“때가 되면 알 수 있는 날이 올 거다. 답을 일러 줄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희 둘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으면 됐다. 이만 해산하지. 할 일이 많다.”
* * *
뚜…. 뚜…. 뚜….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통화 종료 음에 용주는 핸드폰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형만은 분명 일부러 전화를 건 거였다.
설마 자신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그 녀석….’
형만의 의도.
거기에 대해선 추측 정도만 가능할 뿐이었다.
어쩌면.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그걸 기억해 주길 바랐을지도 모르지.
가령 형만에게.
두 분께 일어났던 일이 일어난다든지 하는 것 같은.
‘임나은…. 녀석도 거기 있었다고?’
조금 전 대화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게이트에 있었던 이는 그 다섯 사람이었다.
주일이란 사람만 빼면 그래도 한 번씩 만났던 자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의외였다.
태스크 포스 출신이 게이트에 들어갈 일은 보통 없을 테니까.
‘아니, 그것도 아닌가.’
나은이 자신들을 도운 과정을 되짚어보면, 사람들이 고통받고 희생되는 그런 데 꽤 민감하단 느낌이 있었다.
굳이 단어로 정의하자면, 정의감이나 인류애 뭐, 그 정도 되겠지.
이번 게이트에도 그렇게 반응한 녀석이 그때도 그랬다고 한들 크게 이상할 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녀석들에게 있던 기억의 차이.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본래 던지려던 질문을 던지기 전 형만은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토벌에 참여했던 명단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지만, 다른 곳에선 그렇지 않았다.
누가 팀을 이끌었는지.
어떤 적을 상대했는지.
어떻게 게이트를 닫았는지.
두 사람의 기억은 완전히 달랐다.
두 사람의 표정이나 눈빛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형만이 느끼지 못했다면, 자신 역시도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두 사람이 입을 맞췄을 가능성 역시 0이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입을 맞췄다기엔 뭔가 부자연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어딘 의견이 같고.
어딘 의견이 다르고.
그걸로 얻을 수 있는 게 대체 뭐란 말인가.
‘기억에 뭔가 착오가 생겼다?’
그렇게 가정하면, 많은 퍼즐이 맞춰지긴 했다.
하지만 그럼 결정적인 부분에 물음표가 찍힌다.
대체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S급이나 되는 헌터들의 기억에 관여할 수 있었는가.
그건 적이었는가?
아군이었는가?
현장에 있던 다른 헌터들.
그러니까 이준, 나은, 주일 이 세 사람의 기억은 또 어떠한가?
그리고 녀석은 왜….
부모님을 다른 헌터들의 기억 속에서 지운 것일까?
‘지웠다. 지웠다고?’
망각.
거기에 생각이 도달하자 배신자들의 왕이 남겼던 점자가 떠올랐다.
망각 속에 남은 조각.
자신과 같은 것을 기억하는 자.
녀석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게다가 녀석은 자신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강한 자의 눈’이라고.
그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이런 추측이 가능했다.
녀석은….
부모님에 대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
새로운 가설이긴 했다.
그 녀석이라면 S급 카오스 게이트에 있다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 역시 모든 게 설명되는 건 아니었다.
녀석이 만약 그랬다면,
왜 자신을 살려 주고, 힘을 준 것인가?
녀석이 부모님을 지울 이유는 무엇이며, 방법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기억을 조작한 자와 부모님을 살해한 자는 동일 인물인가, 아닌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늘어났다.
조직적 은폐.
누군가의 악의적 조작.
그동안 당연하다 생각해 왔던 그런 것들이 그럼 완전 잘못된 방향이었을 수도 있다는 건가?
난 그럼 무엇을 위해 헌터들을 경계하고, 증오하며 살아왔던 건가?
“이용주. 야! 이용주!”
생각에 잠겼던 용주에게 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샌가 다가온 그녀는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전화였길래. 그러고 있어?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야?”
서윤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통화가 끝난 건 확실해 보였는데, 용주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지금 네 얼굴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야!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그냥 놔둬.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그게… 그게 지금 걱정해 준 사람한테 할 소리야?!”
서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용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못했단 생각은 들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 됐다. 지금 더 이야기해 봤자 서로 기분만 더 나쁘겠다.”
한숨을 내쉰 서윤이 한 걸음 물러났다.
“나중에라도 고민 들어 줬으면 하면 말해. 언제든 들어 줄 테니까.”
한숨을 삼킨 서윤이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렀다.
주변 디저트 맛집.
그렇게 검색했던 창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다음에 보자. 조심해서 들어가고.”
뒷머리를 찰랑인 서윤이 손을 흔들었다.
용주는 서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 * *
방 안으로 들어온 용주는 커튼을 쳤다.
집으로 온 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침대엔 수지가 자고 있었다.
“바보같이, 무리나 하고.”
걸음을 옮긴 용주가 간병인석에 앉았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이런 그림에서 항상 누워 있던 쪽은 자신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상황이 반대였다.
“저번에 그 일 때문에 더 무리한 거지? 그때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서.”
수지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라면 분명 마음에 담고 있었을 거다.
그때 들었던 말.
그때 보았던 표정.
이 녀석이 그걸 잊을 리가 없겠지.
이 녀석은 그런 사람이니까.
“…….”
수지를 보던 용주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가족만이 기억하는 이름’ 전에 그런 이야기 한 적 있었지?”
용주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나란 사람을 너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도 물어봤었지.”
가지고 있던 이형 워프 장치를 꺼낸 용주는 그걸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에 수지가 줬던 물건이었다.
왜 그때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이게 수지의 바람대로 둘 사이를 이어줬다면, 그날 녀석이 죽음을 경험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네가 했던 말 기억해? 너한테 가족이란 말을 해 준 사람을 잊어버려서 슬프다고… 그랬었는데.”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런 걸 기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 하고 있는 건 단순한 푸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내가 기억한다면, 그럼 나도 너한테 말해 주는 게 맞는 걸까? 너한테 그 말을 해줬던 사람이 정말….”
이안과 서아.
만약 두 사람이 정말 두 분을 잊어버린 거라면,
수지가 잊어버린 사람 역시 자신이 생각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 말을 하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처럼 모르고 있는 게 아픔에서 격리되어 있을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니까.
“…….”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용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벌써 가는 거야?”
그런 용주에게 수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