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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47화 (247/357)

247화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질문을 바꿔보지, 애송이. 만약 너희 아버지가 네 눈앞에 나타난다면, 넌 어떻게 할 거냐? 지옥 같은 현실보다 행복한 망상 속이 더 좋지 않겠냐고 물으면?”

작은 한숨을 내쉰 형만이 다시 한번 물었다.

“제아무리 지옥 같은 현실이라도,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여기 있다. 그걸 두고 망상 속에 머물라고 하는 건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그래, 그렇겠군. 그럼 만약 지켜야 할 게 없다면?”

“글쎄…. 그땐 네가 한 것처럼 하겠지. 네가 무슨 결정을 내려던 간에.”

그의 눈을 바라보던 용주가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거다. 그날.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가?”

용주는 분명 과거형으로 이야기했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겠지.

“…그래. 온전한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건 그 두 분뿐이니까.”

‘두 분이라고?’

“괜찮다면, 이야기해 주지 않겠나? 네가 말한 그날과 그곳에 대해.”

형만의 물음에 용주가 잠시 망설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형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상처 많은 이 노장이라면 믿어도 좋을지도.

“서울에 나타났던 S급 카오스 게이트. 두 분이 돌아가신 건 그곳이었다.”

“S급이라고?”

형만이 의문을 표했다.

S급 카오스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 S급 헌터라는 이야기.

게다가 부모 양쪽이 다 S급 헌터라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난 그날을 오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후에 있었던 사건들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래. 그렇겠지.”

“두 분께 다른 친지가 없단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늘 가족이라 말씀하셨던 헌터들은 누구라도 올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두 분의 장례식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

누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굉장히 비참한 이야기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건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길드를 찾아갔지. 하지만 돌아온 건 그런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난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지.”

“믿기 힘든 이야기군.”

“이해한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안을 만났을 때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형만이 의견을 제시했다.

S급 헌터인 그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지. 혹시 누군가 일부러 두 분을 지운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는 의문이겠군. 지금 시점에선 그게 가장 타당하기도 하고.”

“그게 이안이 아닐 거란 보장이 없었다. 만약 나까지 사라져 버리면, 이란 공포심이 덮쳤었다. 내겐 아직 지켜야 할 게 있으니까. 게다가 말했다시피 찾아온 헌터는 한 명도 없었다. 단순 기록만 손댔을 뿐이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자리에 있었을 S급 헌터 모두가 공범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군. 단체로 뭔가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두 분의 성함은?”

“이 칠 자 성 자, 그리고 안 수 자 영 자.”

‘이칠성, 안수영….’

형만이 눈썹을 기울였다.

순간,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두 사람 다 역시 모르는 이름이었다.

몇 없는 S급 헌터라면 그래도 이름 정도는 대충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미안하게 됐군. 역시 낯선 이름들이야.”

“신경 쓰지 마라. 딱히 뭘 기대했던 건 아니니.”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 가지겠군.”

“세 가지?”

“그래. 천장이 붕괴했을 때 어떻게 피한 거냐? 그 상태론 제대로 반응하는 게 불가능했을 텐데.”

“…보였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설명을 망설이던 용주가 대답했다.

“보였었다고?”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거기가 무너지는 장면이 보였었다. 내가 본 풍경 속의 난 그 아래 깔렸었지.”

“근미래에 닥칠 사건이 보였단 이야긴가? 그 결과를 보고 미래를 바꿨다고?”

“뭐, 그런 셈이지.”

“듣고도 못 믿을 이야기군.”

“그래서 말했잖아. 믿거나 말거나라고.”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 그 상황을 봤으니, 못 믿을 것도 없겠지. 그럼 이번 게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굉장히 추상적인 물음이네.”

“뭐, 그렇지.”

“게이트의 매개는 보나 마나 그 관이랑 태영이었을 거다. 그리드가 아득바득 녀석을 회수해 간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 카오스 게이트에서 나온 언노운들의 등급은 대략 B급. 태영이 받은 헌터 등급과도 묘하게 일치하는 점이 있다고 느꼈다.”

“비슷한 생각을 했군.”

“게이트에서 나온 언노운들은 나와 엔비 모두를 공격했다. 녀석들이라고 딱히 아군의 개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관 속에 있던 태영은 공격하지 않았지.”

용주가 기억을 더듬었다.

모두를, 이라고 했지만 거기엔 실은 오점이 있었다.

언노운 중엔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단 개체도 하나 있었으니 말이다.

“게이트가 닫히는 방식도 이질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보통의 게이트라면 게이트 보스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닫혔겠지만, 이번 게이트들은 매개가 사라지자 모두 닫혔어. 아마 이쪽에서 문을 열었기에 발생한 차이겠지.”

대답을 끝낸 용주는 형만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이준은 분명 다시 게이트를 열 거다. 이안조차 녀석을 이기지 못했어. 다음 게이트가 열리면 넌 어떻게 할 거냐?”

“게이트를 닫으러 가겠지.”

“녀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어떤 녀석이 그랬거든. 배후를 찾아내 처단하라고. 굽힐 수 없다면, 죽이라고.”

“누군진 몰라도 대단한 소릴 하는군.”

“동감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 언노운이 그렇게 날뛰어서야 꿈을 꿀 사람들이 꿈을 꾸지 못할 테니까.”

“흥! 어울리지도 않는 소릴 잘도 하는군. 여동생 바라기 녀석이.”

“그거 하나면 충분한 거 아니겠냐?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이유는.”

“그걸 말이라고 물어보는 거냐, 애송이?”

왼손을 움켜쥔 형만이 팔을 쭉 뻗었다.

“당연히 충분하고도 남지.”

* * *

“이 흔적은….”

자세를 낮춘 주원이 바닥에 남은 상처를 쓸었다.

주원이 있는 곳은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신설동역 인근.

여기저기 널린 잔해는 아직 그대로였다.

부서진 도로 한 복판엔 폴리스 라인이 세워져 있었다.

테이프로 표시해 둔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으로 보이는 상반신과 하반신은 조금 떨어진 곳에 표시되어 있었다.

“틀림없어. 그럼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단 거야?”

병원의 잡무를 돕던 주원에게 형만이 왔었다.

자신이 확인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고 그랬다.

“사슬에 안대. 특징적인 걸로만 들었을 때 짐작 가는 사람은 없는데.”

분명 그랬다.

하지만 여기 남아 있는 흔적은 분명 월영식이 남긴 거였다.

월영식은 가문 대대로 한 사람에게만 전수되는 일인 전승 검술이었다.

분명 그럴 텐데….

“검이 아닌 사슬로 이런 검기를 날린다고?”

지면에 남은 검기의 흔적은 놀라울 만큼 예리했다.

자신이 사용하는 월영식과는 격이 다를지도 모른다.

“팬텀 중에 월영식을 쓰는 자가 있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의문에 잠긴 주원이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월영식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라면 역시 그 사람이겠지.

* * *

“이안 헌터님께서 기다리시는 곳은 저 안쪽입니다. 안내도를 따라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나영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안내했다.

헌터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조금이라도 웃음기를 머금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있잖아. 나영아, 어떻게 생각해?”

멀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던 가영이 푹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본부 말이야. 거기 있던 사람들, 정말로 다 죽은 걸까?”

본부의 규모는 이 지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당연히 인력도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많았다.

그런 본부가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부상자만 해도 엄청나게 많았다.

실종자 중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그렇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원인이 밝혀진 것도 아니었다.

테러 같은 폭발에 의한 것도.

언노운의 습격 같은 것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자칭 전문가들의 추측이 난무하긴 했지만,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니, 그 이야기 며칠짼 줄 알아?”

나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가영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언니가 마음의 병이 생길까 걱정됐다.

“아…. 그랬던가?”

“며칠 동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잖아. 그러다가 정말 쓰러질지도 몰라.”

“아…. 응. 미안.”

“본부 쪽에 아는 사람들 있었지? 언닌 나랑 다르게 사교성이 좋으니까.”

“많진 않았어.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래도 이름이랑 얼굴 다 기억하고 있을 거 아니야? 언닌 그런 건 나보다 훨씬 잘하니까.”

“…….”

가영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메신저에 남은 숫자.

그 중엔 지워지지 않는 숫자들이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만약 우리가 여기가 아니고 저기에 있었으면…. 아니면, 날아간 곳이 본부가 아닌 여기 지부였다면…. 우린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

“무섭더라.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야 한다는 게. 그 사람들은 그냥 열심히 일하고 있었을 뿐이었을 텐데.”

“언니….”

“서포터…. 역시 그만두는 게 좋을까?”

가영이 나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영이 넌 처음에 별로 내키지 않아 했었잖아? 그냥 다시 고향에 내려가서….”

“그래. 그럼 언니는 그만둬.”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나영의 한마디.

잠시 벙쪘던 가영은 두 눈을 깜빡였다.

“‘언니는’이라니? 나영이 너는?”

“난 여기 있을 거야. 그만둘 거면 언니 혼자 그만둬.”

“혹시 화난 거야? 내가 뭐 말실수라도 했어?”

“말실수는 안 했다고 생각해. 근데 화는 좀 났어.”

나영의 눈매가 조금 사납게 변했다.

“어째서?”

“무섭고 위험하니까 그만두자고? 언니,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었어?”

“…….”

“매일매일 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곳이야. 내가 봐온 이 자리는 늘 그런 곳이었다고.”

“나영아.”

“맞아. 언니도 나도 헌터는 아니지. 카오스 게이트에서 직접 언노운을 볼 일도 없고. 사무적인 공무원이라 생각하면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근데 말이야, 난 적어도 언니는 그런 공무원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

“그런데 아니었나 보네. 언니의 웃는 얼굴은 그냥 가면이었던 거야?”

“나는 그냥 널 위해서….”

“핑계 대지 마. 그냥 언니가 무서워서 그런 거잖아?”

“…….”

순간, 가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본부가 날아가면서 네트워크도 엉망이야. 데이터베이스도 엉망이고, 어느 때보다 인력이 필요한 시점이야. 큰 힘은 아니겠지만, 뭐라도 돕고 싶어. 그게 내가 여기서 결심한 일이야.”

가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입은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영의 말이 맞았다.

무서웠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공무원이란 생각으로 여기 있던 건 아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미안. 내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 그래, 네 말이 맞아. 작은 손이라도 하나 보태야지. 응!”

고개를 끄덕인 가영이 나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떨어지라는 눈빛과 제스처에도 가영은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끝난 거냐?”

그때.

두 사람의 곁으로 용주가 다가왔다.

“용주 씨?! 대체 언제부터….”

“글쎄…. 대충 그만두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럼 거의 처음부터였잖아요!”

“누가 보면 내가 몰래 엿들은 줄 알겠어. 비밀 이야기면 비밀스러운 곳에서 하라고.”

“아….”

가영이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용주 말고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너희들의 결정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 사람도 아쉬울 때니.”

“이안 헌터님이 기다리시는 곳은 안쪽입니다.”

“그래.”

“저, 용주 씨!”

나영의 안내를 받은 용주를 가영이 급히 불러 세웠다.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 비밀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신경 쓰지 마라. 벌써 다 잊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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