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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46화 (246/357)

246화

* * *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3초간 천장을 바라보던 서윤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여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기가 병원이란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간 과정이 기억에 없었다.

“난 분명 그리드랑 싸우고 있었는데….”

마지막 기억을 더듬은 서윤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녀석과의 싸움 중간에 힘이 샘솟았었다.

그다음은….

“안수지….”

기억의 절단면을 찾은 서윤이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제야 놓치고 있던 한 가지를 발견했다.

이 방엔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예나?”

건너편 침상으로 다가간 서윤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여기 있는 이는 분명 예나였다.

겉으로 보이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특별히 무슨 장치를 했다거나, 링겔을 꽂고 있지도 않았다.

예나의 모습은 그냥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어나셨나 보네요. 다행입니다.”

그때.

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승우였다.

“예나네 집사? 아니, 그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내가 여기에. 예나는 어떻게 된 거고? 안수지. 안수지는? 카오스 게이트는? 팬텀은?”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물어보시는 거 같은데요.”

“아…. 아무튼! 빨리 말해 봐.”

“저보다 더 잘 말씀해 주실 분을 알고 있습니다. 회복실로 가보시죠.”

“회복실? 아니, 그냥 네가 말해 주면…!”

목소리를 높인 서윤에게 승우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가서 우측으로. 거기서부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 * *

“자기보다 잘 말해 줄 사람이란 게 누구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서윤이 안내도를 따라 움직였다.

조용했던 복도에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아이들은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정신없이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뭐야? 일반 병동이랑 헌터 병동이랑 따로 구분 안 하는 거야? 아니면 부모님 따라온 애들인 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야! 거기 너희! 뛰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서윤.

놀란 아이들은 멈추기는커녕.

“메롱-.”

약을 올리더니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렸다.

“뭐야, 저 녀석들?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불만을 뒤로한 서윤은 회복실 문을 열었다.

텅 빈 회복실에 있는 이는 한 사람뿐이었다.

“응, 뭐야? 네가 예나네 집사가 말한 사람이야?”

새장을 지난 서윤이 한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구면이지? 그러니까 이름이….”

“한태영입니다. 그쪽은 서윤 헌터였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태영이 그녀를 맞이했다.

서윤의 얼굴은 분명 태영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건 태영이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하셔도, 제가 드릴 말씀은 별로 없는걸요.”

“뭐?”

“아마 그 집사란 분이 말씀하셨던 사람은 제가 아닐 거예요.”

“네가 아니라고? 그렇지만….”

서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여기 있는 건 태영뿐이었다.

“좀비 헌터.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거든요. 아마 그쪽을 말씀하셨던 걸 거예요.”

“이용주가 여기에?”

“네.”

“혹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었어?”

“아뇨. 혼자였습니다.”

“음…. 그래? 그래서 그 녀석 어디 갔는데?”

“음, 글쎄요.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하는 타입은 아닌지라.”

“하긴 뭐, 그것도 그렇네. 알았어. 내가 적당히 찾아 보지, 뭐.”

“별 도움이 못 돼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단발머리를 흩날린 서윤이 쿨하게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태영은 가지고 있던 강철 케이스를 움켜쥐었다.

감정이 실린 그의 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빙고. 역시 내 감은 정확하단 말이야.”

1층 로비에서 이어지는 야외 산책로.

용주가 있는 곳은 산책로 초입에 있는 작은 쉼터였다.

난간에 걸터앉은 용주는 캔 하나를 들고 있었다.

“거긴 앉으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 아니라고.”

정자 아래에서 핀잔을 준 서윤이 난간을 타고 넘었다.

“그럼 거긴 올라오라고 뚫어 놓은 곳인가 보지?”

서윤을 흘겨본 용주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 그건.”

“몸 상태는 좀 어떠냐? 어디 불편한 곳은?”

“아, 괜찮은 것 같아. 응.”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너한테 듣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그러던데.”

“누가 그랬는진 몰라도, 떠넘기기 좋아하는 녀석이군.”

“뭐, 아무튼 말해 봐. 이쪽은 찾는 수고까지 했으니까.”

“이야기하자면 길다.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용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들어야겠어. 기다릴 테니 말해 봐. 카오스 게이트랑 팬텀은 어떻게 된 건지.”

“…게이트라면 닫혔다. 언노운도 다 정리됐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용주가 이야기했다.

“그럼 팬텀은? 그리드 녀석은 어떻게 된 거야? 안수지는?”

“윤현은 목숨을 잃었다. 러스트도 아마 그랬을 거라고 하더군. 나머지는 물러갔다고 알고 있다.”

“윤현이….”

순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쁜 녀석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잠깐만. 그럼 그리드도 도망간 거야?”

“그래. 녀석은 도망갔다.”

“다른 녀석들은 도망간 게 아니란 것처럼 들리는데?”

“…프라이드라면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듣자 하니 녀석은 전투 중 갑작스럽게 전장을 이탈했다고 했다. 끓어오르는 흥을 간신히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더군.”

“그 녀석이?”

“뭔가 신호가 있었던 걸 거다. 녀석들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카오스 게이트가 또 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준.

길드의 수장이었던 자가 팬텀의 보스였다.

그의 가면은 누군가 벗긴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벗은 거지.

그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단 거겠지.

“음…. 그거 골치 아프네. 아! 안수지는? 아직 못 들었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헌터들과 민간인들이 많다더군.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을 거다.”

“아…. 그래?”

서윤이 자신의 팔등을 짚었다.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 녀석.

자신이 편하게 두 다리 뻗고 있던 사이에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단 이야기였으니까.

“그럼 다른 녀석들은? 예나가 여기 있단 건 주원이랑 금화 아저씨도 거기 있었다는 이야기잖아?”

“그거라면 내가 말해 주겠네.”

“응?”

익숙한 목소리에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덥수룩한 수염을 늘어뜨린 금화가 정자를 올라오고 있었다.

“우린 슬로스란 자와 만났었다네. 식물과 곤충을 사용하는 자였지.”

“슬로스?”

“우린 박형만 헌터의 도움을 받아 보다 정교하게 마나를 활용하는 법을 연습했었다네. 덕분에 실력에도 조금 자신이 붙었었지. 하지만….”

금화가 그때의 상황을 회상했다.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 모두 자신들이 가진 실력을 100% 다 끌어냈었다.

하지만 이길 수 없었다.

실력의 격차는 그걸로 좁혀질 만큼 좁지 않았다.

“그래. 아마 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서윤 역시도 수지의 도움을 받아 비슷한 과정을 겪었었다.

새로운 스킬을 발현시키며 자신감도 넘쳤었지만, 결과는 그 모양 그 꼴이었다.

“적절한 때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가 봤던 다른 헌터들이 우리 모습이었을 걸세. 무기만 남긴 채. 식물 배 속에서 사라졌겠지.”

“도움?”

서윤이 자연스럽게 용주를 바라보았다.

“우릴 도와준 건 태스크 포스였네. 그들의 눈 말일세.”

“눈? 내가 생각하는 녀석은 아닐 테고. 아~ 그 사이비 수녀를 말하는 거야?”

눈이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면 크게 이상할 건 아니었다.

선대 눈인 나은이 거기 있었으니 말이다.

“도움을 준 이는 두 사람이었네.”

“두 사람?”

“그렇네. 한 사람은 아마 자네가 말한 사이비 수녀일 걸세.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정수호. 지난번에 만났던 TF의 눈이었지.

“그 녀석이 거기? 아니, 잠깐만! 녀석이 너흴 도와 줬다고?!”

“틀림없는 사실이네. 두 사람의 도움에 슬로스란 자가 물러갔지. 하지만 우리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네. 두 사람이 우릴 수지 양이 있는 곳까지 업어다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금화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치료를 받은 거면, 괜찮아진 거 아니야? 예나는….”

“몸의 상처와는 별개로 소모된 체력이나 정신력이 원인일 거라고 들었네. 좀 쉬면 분명 일어날 걸세.”

“이주원 녀석도 아직 못 일어난 거야?”

“그쪽이라면 걱정할 거 없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아~ 그래? 하긴 그런 문제면 녀석은 걱정할 거 없겠네. 돌도 씹어 먹을 바보니까.”

“그러는 서윤 양이야말로 어떻게 된 건가?”

금화가 주제를 바꿔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니?”

“그렇게 태연하게 시치미 뗄 생각인가?”

“음?”

“그 표정…. 설마 정말로 자각하고 있지 못한 건가?”

“자각하다니, 뭘?”

“네가 두르고 있는 헌터의 기운.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다.”

금화를 대신해 용주가 입을 열었다.

“내 기운?”

“그래. 어쩌면 진각성을 했을지도 모르지. 안수지 녀석도 그렇게 말했고.”

“진각성…? 내가?”

놀란 서윤이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블러드 퓨리.

새로운 스킬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오며 뭔가 충만함에 잠긴 느낌을 받았었다.

어쩌면 그게…?

“티르의 손으로 계측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바로 길드로 가서….”

“본부의 티르의 손은 사용하지 못할 거다.”

“뭐? 왜?”

핸드폰을 연 용주는 뉴스 하나를 틀어 주었다.

화면을 본 서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헌터 길드.

본부라 할 수 있는 그곳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길드 주변엔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의 망연자실한 모습도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길드가 왜….”

“오성덕 헌터가 한 짓인가?”

금화가 물었다.

성덕이 팬텀과 내통하고 있었단 걸 알아 버렸으니 말이다.

“오성덕? 오성덕이면 그때 그 꼰대 아저씨?”

“길드 쪽엔 이안이 가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만간 녀석한테 들을 수 있을 거다.”

캔을 구긴 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 * *

“왔나, 애송이?”

향냄새가 깊게 밴 납골당.

잠시 눈을 감고 있던 형만이 눈을 떴다.

그의 앞엔 두 개의 함이 있었는데, 각각 한송이, 그리고 박건우란 명패가 놓여 있었다.

“…날 처음 만났던 날도 여기 왔었던 거냐?”

형만을 처음 만났던 날.

그에게선 향냄새가 났었다.

“뭐, 그렇지.”

“괜찮은 거냐?”

용주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이준과 녀석이 나눴던 대화.

분노와 증오를 불사르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 어떻게든.”

“…….”

애송이 주제에 라든가.

웃기지도 않는군 이라든가.

조금 더 녀석다운 말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형만의 대답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

“할 말이 있다고?”

“그래.”

형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장소도 시기도 영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할 것 같으니까.”

“감사 인사?”

“그래. 네가 건네 줬던 그 편지에 대한 감사다.”

의문을 표한 용주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

한송이란 이름이 적힌 저기 있는 사람은.

러스트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포커페이스가 특기인 줄 알았더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지?”

형만이 어깨를 들썩였다.

“내가 이준 녀석이랑 했던 대화 기억하고 있나?”

“뭐, 대충은.”

“그래? 그 괴물 같은 모습으로도 인지 능력은 그대로인가 보지?”

“뭐, 그렇지.”

“러스트란 이름을 가졌던 녀석이 그러더군. 자신은 송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 있는 건 분명 송이였어.”

“…….”

“녀석과의 첫 다리를 놓아 준 건 너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미래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감사받을 일 한 적 없다. 그건 너희 둘이 만든 거야.”

“흥! 애송이다운 답변이군….”

형만이 잠시 눈을 감았다.

“이봐 애송이. 헌터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음을 던진 형만이 용주와 눈을 맞췄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나온 대답에 형만이 다시 한번 물었다.

“좋은 아빠를 뒀었으니까, 확신하는 게 당연하잖아.”

“…….”

조금 놀란 듯한 형만이 용주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물음을 던진 건 이쪽이었는데.

이쪽이 더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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