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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39화 (239/357)

239화

* * *

“드디어 한 웨이브가 끝난 모양이네요.”

지상으로 내려온 승우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지상과 하늘에 남아 있던 언노운의 무리는 그의 칼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람을 다룬다라. 조커란 이름을 쓸 때 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건가?”

“트릭을 찾아내는 건 관객들이 할 일이죠.”

“…그러냐. 그건 그렇고, 왜 방해했던 거냐?”

영혼 안개를 거둔 용주가 물었다.

전투가 한창인 와중 용주는 지하도 내부로 밀고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리꽂힌 바람이 용주의 진행을 방해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던 바람은 승우가 한 짓이 분명했다.

녀석이 계속 날 수 있었던 것도 그 연장선이었겠지.

“악의는 없었습니다. 다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여기 있던 언노운들. 이용주 헌터는 만나 본 적 있으십니까?”

“아니. 기껏해야 오면서 만났던 정도지.”

“이 언노운들 모두 B급 게이트에 출현하는 종들입니다. 이 앞에 있을 게이트가 적어도 B급 게이트란 소리죠.”

“그래서?”

“C급 게이트부턴 생각이 바뀌고, B급 게이트부턴 사람이 바뀐다. 이 말 들어 보신 적 있으시겠죠?”

“그래. 등급에 따른 변화와 차원 압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쓰는 말이었지.”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의 지평선은 대개 게이트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상적으로 그게 맞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이곳의 구조는 상당히 뒤틀려 있습니다. 차원 압력이 지평선 바깥쪽에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차원 압력이 사건의 지평선 바깥으로?”

“믿기 힘드시겠죠. 저도 제 몸으로 느끼기 전까진 확신이 서지 않았었습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 몇 개를 내려간 승우가 손을 뻗었다.

불과 계단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승우의 손은 보이지 않았다.

“불과 한 걸음. 이 한 걸음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갈라놓았습니다. 이 안쪽엔 지옥이 펼쳐져 있죠. 왜 제가 이용주 헌터를 막았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래…. 대충은.”

차원 압력을 버틸 수 있는 기준은 실력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나는 여전히 E급에 해당하는 수치.

당연한 상식으로 비춰 볼 때 자신이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승우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도 단순히 합류 지점에서 다른 녀석들을 기다렸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녀석들이 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녀석들의 목숨이 위험할 테니.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무언가를 말하려던 승우의 시선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계단을 걸어 내려온 용주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안쪽으로 쑥 들어가고 있었다.

“이용주 헌터!”

놀란 승우는 반사적으로 안쪽으로 따라 들어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용주의 손을 붙잡은 승우가 거칠게 용주를 끌어당겼다.

“아무리 정신력이 좋아도,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란 게 있습니다. 포커페이스는 그만두시죠.”

승우의 다급한 목소리와 달리 용주의 반응은 차분했다.

승우는 그걸 용주의 고집이라 생각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움직이던 용주였으니 말이다.

“포커페이스? 적어도 지금은 이 구역감 말고는 아무것도 참고 있지 않다만.”

주변을 둘러보던 용주가 대답했다.

눌려 터지고, 찢겨 흩어진 사람들의 신체 조각이 여기저기 뒤엉켜 있었다.

피와 내장에 범벅이 된 이걸 보고도 구역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적어도 인간은 아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고.”

승우의 손길을 뿌리친 용주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친 바람을 일으킨 승우는 그런 용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신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계속 가시겠다면, 힘으로라도 끌어내겠습니다.”

“또 녀석들이 뛰쳐나오면, 시간은 더 지체될 거다. 게이트를 닫는 게 우선이야.”

“당신이 들어가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기 도달하기도 전에 100% 목숨을 잃을 겁니다. 이건 개죽음일 뿐입니다.”

물러설 기미가 없는 승우의 태도.

그와 잠시 기 싸움을 벌이던 용주는 승우에게 달려들었다.

“!”

갑작스러운 용주의 공격에 승우는 재빠르게 반응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아라크네형 언노운을.

캬아악!

휘젓는 양 팔을 피해 간 용주는 언노운의 팔 하나를 잘라 냈다.

잘려 나간 녀석의 팔을 공중에서 낚아챈 용주는 그대로 놈의 가슴에 박아넣었다.

고통에 몸서리치는 놈의 발버둥에 용주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때.

등 뒤에서 불어온 바람이 용주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다.

캬악!

그와 동시에 잘려 나가는 언노운의 다리.

잘려 나간 8개의 다리엔 날카로운 절상이 남아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용주는 떨어지는 놈의 머리를 잘라 냈다.

녀석의 체액을 뒤집어쓴 용주는 얼굴을 대충 닦아 냈다.

“신세를 졌군요.”

승우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용주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었다.

“일말의 거짓도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차원 압력에 정말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지.”

용주에게선 영향을 받는단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식과 사람.

두 가지가 충돌하며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그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고.

이 사람은 상식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영향을 받았다면, 진작 이상이 생겼지 않을까 싶은데? 아닌가?”

용주가 소매를 조금 걷어 보였다.

몸이 버틸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다.

승우가 직접 했던 말이었다.

정말로 차원 압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몸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출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여기 죽어 있는 사람들의 시신엔 그런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동공이 텅 비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잇몸의 출혈, 피멍. 기형적인 골절 등등.

얼핏 봐도 가짓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겐 그런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필히 대항력에 발현된 동질화 효과 덕분일 테지.

“후….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직업을 잘못 고른 것 같네요. 아무리 봐도 사람 놀라게 하는 쪽에 조금 더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용주와 잠시 눈싸움을 벌이던 승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납득시키는 것 말곤 지금 이 일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라도 들어가실 생각이시겠죠?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뜯어말려도요.”

생각을 정리한 승우가 물었다.

“이안이 우리보다 먼저 여기 도착했다고 들었다.”

“S급 헌터가 말입니까?”

“그래. 믿을 만한 녀석한테 들은 정보니 틀림없을 거다.”

“그런데도 게이트가 아직?”

“같은 생각이다. 분명 뭔가 벌어지고 있어.”

쿠구궁….

이야기를 이어 가던 그때, 또 한 번 땅이 흔들렸다.

“너랑 같이 있던 녀석들은 여길 버티지 못할 거다. 그걸 경고하려고 합류 지점을 지키고 있던 거 맞지? 그거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한단 거고.”

“90점짜리 답안지네요.”

가볍게 손을 움켜쥔 승우가 다섯 장의 카드를 보였다.

두 장의 킹과 한 장의 퀸.

흑백의 조커와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의 구성은 이렇게였다.

“아까 이형 워프 장치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했었죠. 저희에게 장치를 제공해 주신 분은 박형만 헌터이십니다.”

“그 녀석이?”

“뭐. 단어 선택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혼자 조용히 움직이시려던 걸 다른 세 분이 필사적으로 저지하셨으니까요.”

“…….”

“이형 워프 장치의 비정상적인 작동. 그게 의도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흰 장치에 대해 잘 모르고. 여긴 우리가 있기엔 너무 위험한 장소니까요.”

보고 싶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끔찍한 모습들에 승우가 괴로움을 삼켰다.

“만약 그분이 그런 생각이셨다면, 이미 여기 도착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까 느꼈던 흔들림도 어쩌면 그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죠.”

“…….”

이형 워프 장치의 비정상적인 작동이 의도된 것인가.

그리고 형만이 여기 있는가.

두 가지 물음 중 최소 전자는 아니라는 게 용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잠식했던 회색 지대의 소멸.

그건 러스트와 관계된 일일 것이고.

러스트는 형만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말이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역 안내도를 살폈다.

지진의 진원지는 여기보다 아래.

적어도 한 층은 더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예나가 어디 있는진 확인해 본 거냐?”

“네. 하지만 GPS는 먹통이었습니다.”

“나가면 다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이라면 잡힐지도 모르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꼭 그래 보죠.”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용주의 이야기.

고개를 끄덕인 승우는 언노운 몇 마리를 불러냈다.

조금 전 위에서 상대했던 종류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개체들도 있었다.

“이건 제 답례입니다. 밑으로 내려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사양하지 않지.”

“무운을 빕니다.”

“그래. 셋 다 부디 별일 없으면 좋겠군.”

승우를 뒤로한 용주는 안내도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렸다.

진심으로 세 녀석이 걱정되었다.

서윤이 그랬던 것처럼 녀석들도 팬텀과는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녀석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도 분명 가능한 선택지였다.

얼굴도 모르는 100명이 희생되는 것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게 더 슬픈 법이니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이 선택지가 자신이 아는 한 사람들을 지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노운도 팬텀도.

게이트에 이상이 생기면 분명 지금처럼 활개 치진 못할 거다.

* * *

개찰구를 뛰어넘은 용주는 계속해서 달렸다.

시체가 여기저기 헤집어져 있었다.

여기서 뭔가 벌어졌단 추측이 가능했지만, 언노운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사체조차도.

‘저쪽인가.’

피로 물든 광고판과 배너들.

그 사이를 지나던 용주의 눈에 한 가지 이상이 감지되었다.

정체 모를 초록 액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정체 모를 초록 액체 주변엔 사람들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마치 고물상에서 폐품을 주워 조립하다 만 것 같은 형태로 말이다.

‘언노운?’

용주가 녀석을 발견함과 동시에 승우가 맡겼던 언노운들이 일제히 활동을 개시했다.

녀석들이 노리는 건 용주가 발견한 녀석만이 아니었다.

흩어진 언노운들은 누워 있거나, 기대어져 있는 사람들의 시신을 노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시신들의 상태는 저렇게 온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람의 시체를 뒤집어쓰고 있던 건가?’

언노운들의 공격에 시신들이 하나둘 일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어떠한 상처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팔 다리가 잘리고, 심지어 머리가 날아가도,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두 세력의 충돌은 얼핏보면 이쪽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인간의 몸에 아무리 상처를 내도 그것만으론 녀석들을 죽일 수 없었다.

인간의 시체는.

녀석들에게 한낱 갑옷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언노운에게 접근한 녀석들은 새로운 몸으로 옮겨타고 있었다.

‘지금 움직여야 해.’

그렇게 판단한 용주는 역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질퍽….

룬검을 비튼 용주는 전방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목을 베어 냈다.

머리가 사라진 목에선 초록 액체가 뿜어져….

아니,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숙주를 옮기려는 기생충처럼.

‘젠장.’

올라오는 구역감을 삼킨 용주는 계속해서 달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저 앞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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