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날 패줄 거라고? 키힛! 웃겼어. 너무 웃겨서 웃음도 안 나온다고.”
급격한 온도 차이를 보인 프라이드의 정색.
시우에게 1차 저지를 당한 프라이드가 속도를 높였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시우는 프라이드의 앞을 또 한 번 막아섰다.
방금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감히 내 흥을 깨려고 하다니!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온 줄 알아?!”
프라이드가 분노를 표했다.
칼날이 부딪칠 때마다 튀는 번개는 깨진 아스팔트 위를 흐르고 있었다.
“그럼 나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온 줄 알아?”
강대한 두 힘의 충돌이 두 사람을 밀어냈다.
“그게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뭐, 복수의 화신이라도 되는 거야? 정의의 사도라도 되고 싶으신가 보지?”
“귀는 장식으로 달았나? 말했잖아. 그건 덤이라고.”
교차하며 지나가는 두 사람.
장창을 빙글 고쳐 잡은 프라이드는 날카롭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오른팔을 등 뒤로 당긴 시우는 프라이드의 공격을 정확히 가드해 냈다.
가드와 동시에 들어오는 시우의 반격.
칼날을 부딪친 프라이드는 무기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전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이쯤에서 템포를 좀 더 올려 볼까?”
찌릿거리는 번개가 스쳐 가자 시우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바뀌었다.
템포가 올라간 거친 락 리듬.
“!”
순식간에 프라이드의 시야에서 사라진 시우는 그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왔다.
‘이 녀석. 빨라졌잖아?!’
시우를 쫓는 프라이드의 눈동자.
작렬하는 번개는 순간 일대를 하얗게 물들였다.
“칫!”
“어딜 보는 거냐? 거긴 내 잔상도 없다고.”
뇌격에 밀려난 프라이드를 쫓은 시우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이 부딪치는 곳마다 뇌성이 울려 퍼졌고, 깜빡거리는 빛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젠장! 기어오르지 말라고!”
순식간에 무기를 바꾼 프라이드가 묠니르를 휘둘렀다.
번개와 번개의 충돌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도로였던 것들이 조각나 하늘로 치솟았다.
“전기가 특기라면, 정공법으로 힘의 차이를 보여 주지!”
부유석처럼 튀어 오른 블록 사이를 빠르게 오른 프라이드는 그대로 시우를 내리찍었다.
묠니르에서 시작된 번개는 지면을 12방향으로 찢어 놓았고, 부서진 아스팔트 조각이 사방으로 빗발쳤다.
“아이고, 그러셔? 그래서? 지금 다 보여 준 거야?”
프라이드와 눈이 마주친 시우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는 지금 묠니르에 올라타 있었다.
“그럼 이번엔 내 차례.”
12방향으로 뻗어 나간 번개의 흐름이 큰 원을 그리며 솟아올랐다.
“한마디만 해줄까?”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모여드는 번개의 흐름.
“네 번개 쩔더라.”
일점에 집중된 번개는 순간 엄청난 섬광을 토해 내며 내리꽂혔다.
빛보다 한발 늦게 따라온 소리는 공간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젠장! 이 녀석 꽤 귀찮게 굴어 주잖아?’
바닥을 구른 프라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방금의 그 일격.
생각한 것 이상의 위력이었다.
‘설마 내 묠니르를 거꾸로 이용할 줄이야. 제법이잖아?’
정공법으로 찍어 누르려고 했건만.
그걸 오히려 역이용당하고 말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걸. 하이해. 꽤 하이해지려고 하고 있다고.’
머릿속엔 온통 용주밖에 없었다.
녀석과 다시 한번 싸울 수 있단 생각에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이 기뻤다.
훼방꾼은 그저 훼방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녀석을 빨리 처리하고 용주를 막아설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휘우~ 뭐야. 그걸 맞고도 멀쩡한 거야?”
저기 있는 저 녀석에게도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건 엄청난 기회일지도 모른다.
맛이 다른 하이함을 두 번 느낄 절호의 기회 말이다.
‘뛰기 시작했으면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어. 둘 다 즐기면 되는 거야. 둘 다 먹으면 되는 거라고!’
희열에 취한 프라이드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진 모르겠는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시우가 가볍게 손목을 풀었다.
잔잔하던 멜로디는 악센트를 기점으로 고음으로 치솟고 있었다.
“좀 뜨거울 거거든.”
“……!”
프라이드의 시야에 순간 붉은빛이 치고 들어왔다.
시야의 사각에서 모여든 분진은 폭발을 일으켰고, 연쇄 작용으로 터진 또 다른 분진들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키힛!”
폭발을 뚫고 오른 프라이드는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프라이드의 목표는 머리 없는 언노운들.
“트랜스 폼- 레바테인.”
일렁거리는 불의 검을 빚어 낸 프라이드는 단번에 언노운을 베어 냈다.
작렬하는 화염은 언노운의 몸과 날개를 한 줌 재가 될 때까지 불태웠다.
긴 불의 꼬리를 남기며 날아오른 프라이드는 언노운 사이를 헤집었다.
불과 10초 남짓한 시간 만에 하늘엔 뿌연 재가 휘날리고 있었다.
“좋아. 그럼 이쯤에서 변주를 한번 넣어 보자고.”
시우의 한마디에 언노운들이 순식간에 산개했다.
‘뭐지?’
2열 횡대로 프라이드를 포위한 언노운들.
언노운들 사이에 흐르기 시작한 전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비행을 개시한 1열의 언노운들이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했다.
“하! 바보 아니야?! 여긴 하늘이라고!”
날개를 움츠린 프라이드가 폭발적으로 고도를 높였다.
그런 프라이드를 쫓는 1열의 언노운들.
원을 그리던 번개는 언노운들이 뒤섞이며 서로 꼬이고 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그저 하나의 원에 불과했던 끈이 실뜨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하게 얽혀 가는 것처럼 말이다.
“칫! 귀찮게시리! 전부 불타 버리라고!”
달려드는 언노운 하나를 둘로 가른 프라이드가 레바테인을 높게 쳐들었다.
동그란 원을 그리는 레바테인.
검이 그린 궤적대로 생겨난 불의 고리는 주변에 있던 언노운들을 일제히 빨아들였다.
고리 쪽으로 빨려간 언노운들은 지옥문에 들어간 죄인들처럼 고통스럽게 스러져 갔다.
“날갯짓 정도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전기 파리채보다 훨씬 유용하겠는데?”
더욱 큰 원을 그리며 멀어졌던 2열 언노운들이 프라이드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2열의 언노운들에겐 한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그들의 침과 연결된 배 아래 쪽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해 있었다.
거리를 좁혀 가던 언노운들은 자신의 침으로 자신의 배를 갈랐다.
프라이드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언노운의 체액.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감지한 프라이드는 체액을 피해 움직였다.
프라이드의 뒤를 쫓는 언노운들.
자기 배를 찢은 언노운의 체액이 공사 중인 쇠기둥에 흩뿌려졌다.
‘킥! 그래. 그런 거였나?’
쇠기둥의 상태를 확인한 프라이드가 모퉁이를 끼고 돌았다.
체액에 뒤덮인 쇠기둥에 변화가 있었다.
기포가 지글거리고, 색이 변했다는 건 저 체액에 뭔가 반응했다는 것.
하복부가 저 정도로 팽창했다는 건 녀석의 안쪽에서 뭔가 비정상적인 현상이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프라이드가 생각하는 그 비정상이란 건.
안쪽에 있는 독샘을 비정상적으로 팽창시킨 것이었다.
“멍청해 보이더니만, 보기보다 눈치가 빠르네.”
시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선 언노운의 유해와 체액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녀석들을 써먹는 것도 여기까지인가. 하긴 뭐, 큰 기대는 안 했어.”
속도를 높인 시우가 공사장 안전벽 위로 뛰어올랐다.
그 속도 그대로 쇠기둥을 향해 도약하는 시우.
쇠기둥에 발을 올린 시우는 수직으로 건물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내 말이 맞잖아. 언노운보단 사람 쪽이 훨씬 더 싸울 맛 난다고!”
하늘을 수놓던 마지막 언노운이 불길 속에 스러졌다.
언노운을 처리한 프라이드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시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숨은 거지?”
“숨긴 누가 숨었다고 그래?”
“……!”
발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프라이드가 검을 바짝 당겼다.
“키힛! 뭐야. 그런 묘기도 부릴 수 있는 거냐?”
충격에 날아간 프라이드는 활시위를 당겼다.
표적이 된 시우는 철근에 가로로 서 있었다.
“근데 괜찮겠냐?”
불길 속에 사라지는 레바테인.
그 대신 프라이드의 손엔 혜성을 쏘아 내던 페일노트가 들려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쏴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활시위를 당기는 프라이드.
쏟아지는 폭격에 무참하게 부서진 쇠기둥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작용엔 반작용이 있는 법이라고.”
시우에게서 시작된 번개가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중력을 거스르며 고개를 드는 철근들.
포구를 겨누고 있던 철근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끼히히힛! 재밌는데? 점점 더 하이해지고 있다고!”
속도를 높인 프라이드가 철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빙글 돌아 시우를 내려찍는 프라이드의 엑스칼리버.
위아래를 구별하지 않고 철근 사이를 빠르게 이동한 시우는 검을 휘둘렀다.
양손에 들려 있던 시우의 검은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했지? 작용엔 반작용이 있다고.”
“……!”
시우의 나머지 검 하나는 지금.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이트닝 보텍스(Lightning Vortex).”
사방으로 번개를 흩뿌리는 칼날.
천지를 찢는 진동과 함께, 한 마리의 뇌수가 이빨을 드러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날카로운 번개.
신세를 지고 있던 쇠기둥에서 발을 뗀 시우는 근처 건물에 수직으로 섰다.
번개를 흩뿌린 검은 시우의 손으로 정확히 돌아왔다.
“심장이 멎었어도 전혀 안 이상한 일격이었는데. 괴물이잖아, 완전.”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우가 입맛을 다셨다.
까맣게 타 버린 아스팔트 한가운데엔 공동묘지처럼 수많은 철근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엔 사람이 있었다.
분명 정통으로 들어간 게 분명하건만.
녀석은 덤덤히 일어서고 있었다.
“킥킥. 키히힛! 캬하하핫!!”
앞머리를 쓸어 올린 프라이드가 미친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위험한데. 이거 위험해. 위험하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프라이드.
광기에 찬 그의 눈동자는 시우를 향해 있었고, 그의 입꼬리는 귀에 걸릴 만큼 올라가 있었다.
“이제 와서 그렇게 느껴 봐야 늦었어. 곱게 끝낼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하! 착각하지 말라고. 지금 위험한 건 네가 아닌 나니까.”
“뭐?”
“죽여도 될까? 죽여도 되겠지? 지금의 이 하이함을 최고로 즐겨도 되겠지?! 꺄핫! 꺄하하핫!!”
비틀리며 뿜어져 나온 프라이드의 기운이 일대를 잠식했다.
“트랜스 폼 - 발뭉.”
구축되어 나타나는 새로운 검.
파란 보석이 박힌 검에선 섬뜩한 불길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데스 클로.”
낫이 그린 궤도를 따라 칠흑빛의 검기가 뻗어 나갔다.
까마귀의 발톱 자국을 연상시키는 검은 물결이 지면을 긁고 건물에 날카로운 상처를 만들어 냈다.
떨어져 나온 건물의 잔해는 언노운들의 사체 위로 떨어졌다.
“큭…!”
어깨를 스친 강렬한 통증에 서윤이 이를 악물었다.
막아 내지도.
그렇다고 흘려보내지도 못한 힘은 서윤에게 고스란히 대미지로 들어왔다.
“흐흐흐. 약하네. 전혀 흥미롭지 않아. 한마디로 낫 쿨.”
순식간에 파고든 전투마가 서윤을 걷어찼다.
검과 함께 날아간 서윤은 인근 카페의 창을 깨며 내동댕이쳐졌다.
“젠장…! 젠장!!”
악에 받친 소리를 내며 달려든 서윤은 폭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너무도 명확했다.
데스 사이드에 휩쓸려 날아간 서윤은 수지의 품에 안겨서야 간신히 멈춰 설 수 있었다.
“힘에선 밀려.”
서윤을 받아 낸 수지가 그녀의 상처를 치유했다.
이미 굳은 핏자국 위론 또 다른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도 알아. 근데 뭐 어떡하라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
여기 있는 건 자신과 수지가 전부였다.
포탈 밖으로 튕겨 나왔을 땐 용주도 나은도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싸우고 있잖아. 혼자만 싸우려고 하고 있잖아.”
“…….”
“틈 만들어 볼게. 우선 저 전투마부터.”
날카롭게 치고 들어온 그리드의 돌진에 두 사람이 반대 방향으로 찢어졌다.
그리드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수지는 단검을 고쳐잡았다.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미끄러지는 수지.
“흐흐흐. 한 번 봤던 움직임이네.”
안쪽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수지는 왼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엔 은은한 형광빛이 머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