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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28화 (228/357)

228화

‘이건 분명….’

사슬검을 뻗은 용주가 빛 속으로 사라졌다.

붉은 혜성을 미처 피하지 못한 용주의 분신은 벌집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옆 건물 옥상까지 날아간 용주는 실외기들을 박살 내며 멈춰 섰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곳을 바라보는 용주.

“끼하하핫!!”

그곳에는.

백발의 머리를 흩날리는 프라이드가 있었다.

“프라이드….”

“역시 그때 널 망가뜨리지 않은 건 최고의 판단이었어. 벌써부터 하이하다고.”

가지고 있던 활을 버린 프라이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근데 그 모습은 또 뭐래? 지난번에 그게 난 훨씬 하이했던 거 같은데.”

쪼그리고 앉은 프라이드가 용주를 내려다보았다.

겉모습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고.

뿜어내는 기운도 그렇고.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언노운들을 도륙한 걸 보니 기대는 되네. 윤현 녀석도 보기 좋게 끝장낸 모양이고.”

“…….”

“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네가 여기까지 왔단 건 그 자식이 실패했단 거잖아. 어땠어? 집요하게 따라붙던 복수귀를 끝장낼 때의 기분은. 미쳐 버릴 정도로 짜릿했어? 최고의 하이함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기라도 했어?”

프라이드의 물음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정말 모르고 한 질문이든.

아니면 그냥 자신을 떠보는 말이든.

여기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뭐야?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아니면 그때처럼 날뛰어 보든가.”

용주의 머릿속에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에 공백이 있는 그날.

이 녀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 네가 그냥 물러갔던 이유는… 오늘을 기약해서였던 거냐?”

방금 프라이드의 말로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게 있었다.

녀석은 쫓기듯 도망간 게 아니었다.

일부러 자신을 남겨둔 거지.

어쩌면.

그날부터 이어진 일들이 오늘까지 온 걸지도 모른다.

윤현을 포함해서 말이다.

“당연한 걸 뭘 물어. 그 최고의 하이함을 한 번만 느끼기엔 너무 아깝잖아. 넌 내가 지금껏 상대했던 녀석들 중 최고였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프라이드가 양팔을 확 펼쳤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그날에 일을 이어서 하자는 거냐?”

“키힛. 당연하잖아. 그게 아니라면 내가 왜 여기 있겠어?”

“너희 카오스 게이트가 곧 날아간다고 해도 말이냐?”

“아~ 당연하지. 난 나만 즐거우면 그거면 장땡이라고. 게다가 그쪽 일은 그쪽이 알아서 할 거야. 나한테 주어진 임무는 개집을 지키는 게 아니라고.”

프라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당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보지? S급 헌터를.”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난 지금 최고로 하이해지면 그걸로 족하다고.”

“그렇게 따지면 저쪽에 있는 게 훨씬 더 하이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한판 붙어보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야. 근데 그랬다간 내 목이 날아갈 게 분명하거든. 보스. 윤현이랑 그리드 때문에 보스 인내심이 이미 바닥이었단 말이지.”

프라이드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자~ 그럼 각설하고. 슬슬 즐겨 볼까나? 내가 이 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넌 모를 거야.”

오른손을 앞으로 뻗는 프라이드.

“트랜스 폼 - 엑스칼리버.”

그의 손엔 검붉은 빛을 내뿜는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시작을 알려 보자고. 그때처럼 말이야!”

일순간 뻗어 나오는 검붉은 빛.

용주가 있던 곳을 깨끗하게 날려 버린 프라이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렸다.

“끼~햐아~!!”

용주를 따라붙는 프라이드.

추락하는 와중에도 용주는 자신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자강불식!”

용주의 손을 떠난 네 개의 사슬검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튕기며 불규칙하게 휘었다.

흩뿌려진 사슬검의 종착지는 하나.

양손으로 검을 움켜쥔 프라이드는 보기 좋게 사슬검을 쳐 냈다.

“한 방 더 간다! 잘 받으라고!”

양손으로 검을 움켜쥔 프라이드는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용주의 머리 위론 보라색의 빛이 떨어졌지만, 프라이드가 한 발 더 빨랐다.

용주의 모습은 그가 만든 검은 파동 속에 완전히 잠겨 버렸다.

“내구성은 꽤 튼튼한 모양이네. 분명 정통으로 들어갔는데.”

사뿐하게 착지에 성공한 프라이드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의 등엔 한 쌍의 날개가 자라나 있었다.

트랜스 폼 - 이카루스.

착지 직전 사용한 그의 스킬이었다.

용주의 모습에 큰 변화는 없었다.

갑옷에 손상이 없진 않았지만, 고대의 재앙을 둘로 갈라 버렸던 엑스칼리버의 위력을 생각하면 데미지도 아닌 수준이었다.

‘녀석을 쓰러뜨렸을 때 고생했던 게 지금은 날 보호해 주고 있는 건가.’

자신을 덮쳤던 프라이드의 일격에 땅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어떠한 감속도 없이 그대로 지면에 처박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충격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급소란 개념이 없던 만큼 데미지도 최소화된 모양이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트랜스 폼 - 모랄타크!”

날개를 접은 프라이드에게 한 자루의 검과 장창이 구축되었다.

사슬검을 바짝 당긴 용주는 칼날을 부딪쳤다.

모랄타크.

아무리 이 갑옷이라 하더라도 저 무기는 경계해야 했다.

왜냐면 저 무기는.

사후 강직을 무시하고 찢었던 이력이 있는 무기였으니까.

“키힛!”

초근접에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전투는 프라이드가 다소 리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날카롭게 치고 들어간 장창은 사슬검을 지나 어깨 갑주를 스쳐 지나갔다.

날카로운 마찰 같은 건 없었다.

경계했던 대로.

녀석의 무기는 갑옷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갑옷 같은 걸로 막을 수 없다고.”

‘그딴 거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가로등에 사슬검을 휘감은 용주는 입체 기동을 하듯 빛 속으로 사라졌다.

프라이드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용주.

프라이드의 시선이 온전히 용주에게 향한 와중 벌집이 되었던 용주의 분신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뻥 뚫렸던 몸의 여기저기가 원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떨어지는 빛 사이로 치고 들어온 프라이드가 용주를 날려 버렸다.

빛의 규칙성은 용주의 경로를 미리 다 말해 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 심장이 뛰고 있지 않아! 지난번보다도 못하다고! 겨우 이 정도로 하이해지기엔 너무 많은 걸 봤단 말이야!”

“…….”

날아가는 순간 지면에 사슬검을 펼친 용주는 네 개의 사슬을 잡아당겼다.

“함분폭압!”

뜯겨 나가는 대지.

‘음?’

사슬을 피해 도약한 프라이드는 그제야 자신이 놓치고 있던 걸 마주할 수 있었다.

지면을 찢고 나오는 사슬은 네 개가 아니었다.

지면을 찢는 사슬은 총 여덟 개.

그물처럼 얽힌 사슬 중 절반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뜯겨 나가고 있었다.

“키힛! 그래. 그 요란한 동작은 이 한 방을 숨겨놓기 위함이었다 그건가?”

거칠게 착지한 프라이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옆엔 흑기사 하나가 장창에 꽂혀 있었다.

마치 사형이 집행된 죄수처럼.

용주는 아니었다.

거기 있는 건 용주와 방금 합을 맞추었던 분신이었다.

“분명 아까 페일노트에 맞고 구멍이 송송 났던 것 같은데. 역시 회복이라면 자신 있는 모양이지?”

검을 움켜쥔 프라이드가 분신의 머리를 베어 냈다.

목이 잘린 분신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해. 내가 기대했던 하이함에 도달하기엔 이 정도론 한참 부족하다고!”

장창을 뽑아 든 프라이드가 그것을 어깨에 걸쳤다.

깊은 한숨을 내쉰 프라이드는 무언가 결심한 듯 보였다.

“네가 그 모습을 꺼내지 않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네가 그걸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수밖에. 모든 걸 그때처럼 만들면 너도 그렇게 되지 않고서는 못 배기지 않겠어?”

프라이드는 또 한 번 무기를 바꾸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이페탐이었다.

용주는 저 검 역시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잊겠는가.

저건.

서윤의 목숨을 빼앗으려던 검이었는데.

“뭐부터 하는 게 좋을까? 네 팔을 하나 날리는 것부터? 아니면 그때 그 년한테 이걸 다시 쑤셔 박는 것부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프라이드.

“…….”

조용히 사슬검을 내려놓은 용주는 투구를 벗었다.

이 힘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속도에 있어서도.

힘에 있어서도.

내구성에 있어서도.

변칙적인 활용도에 있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 힘으로 녀석을 쓰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을 끄는 정도론 녀석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힘 중에 녀석을 쓰러뜨릴 만한 건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

“키힛! 이제야 마음이 좀 생긴 거야? 자~ 그럼 어서 다시 보여달라고, 그때의 그 하이함으로 날 인도하란 말이야!”

희열에 찬 프라이드의 외침이 울려 퍼진 그때.

쿠르르릉 쾅!!

하늘에서 날카로운 뇌성이 내리꽂혔다.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 뒤론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이야~ 언제 보나 했더니만. 그게 오늘이구만?”

용주와 프라이드 사이에 선 시우가 이어폰을 뺐다.

“닮긴 뭐가 닮았다는 거야? 내 눈엔 전혀 아니구만. 난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넌 또 뭐야? 왜 딱 좋아지려던 때 끼어들고 난리야?”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프라이드가 불쾌함을 표했다.

“내 이름은 알 거 없어. 그냥 재수 지지리도 없는 사람 1이니까.”

고개를 돌린 시우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네가 이용주 같은데. 맞지?”

“…그래.”

“크큭! 소문대로 진짜 볼품없는 기운이네. 그런 주제에 B급 언노운들을 이렇게나 도륙 낸 거야?”

시우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자 머리가 잘려 나갔던 언노운 하나가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자신감의 이유는 알았어. 그러니 그 긴급 재난 문자를 보고도 여기 올 생각을 했겠지. 이 정도 수를 혼자 쓰러뜨릴 정도면, B급도 노려볼 만할 텐데 마나가 아쉽게 됐네. 예전의 누구처럼 말이야.”

시우가 한 번 더 고개를 까딱이자, 경련을 일으키던 언노운이 날개를 파닥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잘린 채 죽었던 언노운은 다시 살아난 듯 날아오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 녀석 내가 좀 상대하고 싶은데. 녀석한테 빚이 좀 있거든.”

“A급 헌터라도 혼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언노운을 힐끔 바라본 용주가 이야기했다.

“아아~ 알고 있어. 이 녀석들이 헌터들을 죽였다는 것 정돈.”

어깨를 들썩인 시우가 피식 웃어 보였다.

“겸사겸사 그놈들 몫까지 패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도 용주는 마지막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는 고를 수 없었다.

“그렇게 못 믿겠냐? 눈 딱 감고 한번 믿어 봐. 자신 없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난 네가 봤던 헌터 시험 시험관 중 하나였다고. 셀러맨더 아저씨나 이안 아저씨처럼 말이야. 그 두 사람이 말했어도 그런 반응 보였을 거야?”

“네가?”

용주가 의아함을 표했다.

당연하다.

시험장 감독관 중 이 녀석을 본 기억이 전혀 없었으니까.

“믿지 못하겠단 거 알아. 그렇지만 사실이라고. 중간에 사정이 있어서 잘려 버렸지만 말이야.”

순간, 일대의 건물들에 전부 불이 들어왔다.

형광등, 가로등은 물론이고.

컴퓨터와 TV 등의 전자제품까지 모두 말이다.

“녀석은 여러 가지 무기를 만들어내며 싸운다. 거리를 가리지 않고, 무기마다 고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용주는 결단을 내렸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너나 잘하라고.”

시우와 눈을 마주친 용주는 점멸을 사용해 프라이드를 뛰어넘었다.

“어이, 잠깐! 누구 허락 받고 가려는 거야?!”

곧장 반응한 프라이드는 용주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런데.

“그럼 너는 누구 허락 받고 가려고?”

그런 프라이드의 눈앞으로 날카로운 번개가 작렬했다.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무기.

그의 말을 그대로 돌려준 시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휘날리는 백발은 이 싸움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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