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시, 싫어. 잡아먹힐 거야. 잡아먹힐 거라고.”
용주에게 사로잡힌 지훈이 거칠게 발버둥 쳤다.
“아까 봤던 그 시체처럼 될 거라고!”
저 위에.
부서진 천사가 소멸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땅에 닿기도 전에 한 줌 빛 망울이 되어 사라지겠지.
“당장 그거 놔! 이 괴물아!”
먼저 추락했던 지한이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의 탄환은 수십이 되어 산탄처럼 흩뿌려졌지만, 용주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싫어. 싫다고…!”
“……!”
불안을 감지한 용주가 빠르게 총을 쳐 냈다.
지훈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권총은 땅을 뒹굴었다.
하지만 총성은 이미 들린 뒤였다.
‘설마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놈이 자기 머리를 날리는 건 막았단 것 정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쳐 내진 총탄은 그의 어깨와 쇄골을 관통해 있었다.
뚝…!
위를 올려다본 용주의 얼굴로 핏방울들이 흩뿌려졌다.
두근…!
순간 요동치는 용주의 동공.
위기감에 잠시 가라앉았던 충동이 더욱 거센 폭풍이 되어 용주를 덮쳐왔다.
“카…가각!”
멋대로 움직인 일곱 개의 촉수가 지훈의 몸 여기저기를 꿰뚫었다.
그의 입에선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단복은 붉게 물들었다.
용주가 의식을 간신히 붙들었을 때는 지훈이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몸이 멋대로…!’
의식을 집중한 용주는 지훈을 관통한 촉수들을 뽑아냈다.
‘젠장!’
촉수를 크게 휘저은 용주는 지훈을 집어 던졌다.
나머지 촉수 중 절반이 그를 붙잡으려 움직였지만, 용주의 꼬리가 한 발 더 빨랐다.
잘려 나간 촉수들은 산 낙지처럼 꿈틀거렸다.
‘광폭화를 어떻게든 해야 해….’
바짝 몸을 낮춘 용주가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문이었다.
정신이 일그러지는 것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기고, 메말라 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속적으로 HP가 깎여 나가는 고통은 그나마 양반.
얼굴에 튄 피 때문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당장 이 피를 핥고, 저 앞에 있는 두 녀석을 둘로 찢어 피와 내장을 들이붓고 싶었다.
그거라면.
이 갈증이 잠시라도 가실 것 같은데.
“정신 차려! 도망가야 해!”
급하게 움직인 지한이 총을 건넸다.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은 지훈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움직여야 한다고!”
힘으로 지훈을 잡아끈 지한이 자동차 쪽으로 달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차체.
용주의 움직임엔 아직 큰 변화가 없었다.
이대로면.
이대로면 정말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그런데.
“!”
불과 몇 미터 앞에 있던 TF의 차량이 공중으로 내던져졌다.
순간 굳어 버린 지한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지면을 뚫고 나온 꼬리가 한 마리의 이무기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저 꼬리는 분명….”
마른침을 삼킨 지한이 뒤를 돌아보았다.
용주의 꼬리가 땅속에 처박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저기서 여기까지 꼬리가 이어져 있다는 뜻.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들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 틀렸어.”
두 사람의 총에 깃들었던 빛이 차차 희미해져 갔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킨 용주는 꼬리를 들어 올렸다.
얼굴에 튄 피를 핥는 용주에게선 공포심을 넘어선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살 수 없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카칵!”
서서히 다가오는 용주.
부자연스럽게 버벅이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속도는 전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벗어날 수 없었다.
의지가 완전히 꺾인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가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자신들은 녀석의 사정권 안이었고, 대응할 수단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남은 방법은….”
아까 전 일을 떠올린 지한이 지훈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녀석을 먼저 보내고 곧 뒤따라갈 생각이었다.
지독한 꼴을 당하며 잡아먹힐 바에야 이편이 훨씬 깔끔한 죽음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랄 말고. 얌전히 꺼지지 그러냐.”
그런 지한의 귀에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 앞에 착지한 익숙한 뒷모습.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사내는.
정수호.
TF의 눈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놀랄 시간 있으면 썩 꺼져. 뒈지고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눈?!”
“당신이 어떻게….”
갑작스러운 수호의 등장에 두 사람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그런 건 됐으니까, 닥치고 꺼지라고. 방해되니까.”
원 오브 아이를 발동시킨 수호의 뒤로 갑옷의 형태가 나타났다.
“오, 오케이! 그럼 뒤는 맡긴다고! 망할 꼬맹…. 아니! 믿음직스러운 후배!”
“오~ 당신은 저희의 구원자예요.”
권총을 집어넣은 두 사람이 수호를 등지고 달렸다.
두 사람 뒷모습을 흘겨본 수호는 안대에 손을 올렸다.
“그리드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감지되는가 싶더니. 언노운들이 날뛰고. 녀석을 따라왔다 싶었더니 이제 이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거냐?”
일대엔 멀쩡한 게 거의 없었다.
쌍성과 녀석의 충돌로 인해 파괴된 것도 있었지만, 그전에 폭발적으로 커진 힘이 하나 더 감지됐었다.
여기서 있던 전투는 총 두 차례.
저 녀석은 혼자 그들을 전부 제압해 낸 것이었다.
“먼저 싸웠던 녀석은 어떻게 한 거냐?”
쌍성보다 먼저 용주와 교전을 펼친 이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드가 근처에 있었으니, 팬텀 중 하나였을 거란 추측 정도만 하고 있었다.
“정말로 죽여 버린 거냐?”
녀석의 힘은 촛불처럼 꺼져 사라졌다.
반대로 이 녀석이 두르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은 더욱 뒤틀려 있었다.
“어이~ 너 의식은 있긴 한 거냐?”
용주의 모습은 지난번과는 조금 달랐다.
훨씬 사납고 날카롭게 변한 게 마치 도마뱀이 아르마딜로 도마뱀으로 진화한 것 같았다.
변한 건 외형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녀석은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의식은 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용주의 움직임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한 걸음조차 수많은 저항 끝에 옮기는 것 같았다.
녀석이 정말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는 거라면 공격을 해왔어도 진작 해왔을 거다.
“그게 그 눈에 비치기에 부끄럽지 않을 모습인 거냐?”
“카…!”
수호의 한마디에 용주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삐걱거리는 용주의 모습은 망가진 구체 관절 인형 보는 것 같았다.
“만약 지금의 네가 저 두 녀석을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그 눈이 널 어떻게 봤을 거라고 생각하냐?”
바짝 치켜세운 날카로운 촉수들이 용주의 팔과 어깨를 꿰뚫었다.
날카로웠던 갑피가 서서히 떨어져 나갔고, 변화했던 것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용주는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형편없게 보였겠지. 분명히.”
자리에서 일어난 용주가 입가를 닦아 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됐다. 이 이상 너와 대치할 필요도 없겠지.”
수호를 지키던 원 오브 아이가 모습을 감추었다.
“설마 너한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흥! 착각하지 마라. 딱히 너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럼 여긴 무슨 일인 거냐?”
“그리드 녀석의 기운을 쫓아 왔다. 녀석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리드를?”
“그래. 그런데 네 그 보잘것없는 마나가 나타나더군. 팬텀이랑 여기서 한 판 붙은 거냐?”
용주의 물음을 무시한 수호가 물었다.
“…그래. 꽤 오랜 악연인 녀석이었지.”
“죽은 거냐?”
“그래.”
“그럼 죽인 거냐?”
“그래. 선수를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을 거다.”
“선수를 빼앗겼다라. 그럼 네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거냐? 내 앞에서?”
“녀석의 심장을 도려낸 이는 팬텀의 일원이었다. 믿든 말든 네 자유지만.”
“흠~ 그렇단 말이지?”
팔짱을 낀 수호가 한 건물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용주가 두 천사를 날려 버린 그 부근이었다.
“믿는 거냐?”
“그리드란 녀석 말고도 강한 힘을 가진 녀석들이 근처에 더 포진해 있다. 교전에 들어간 녀석도 있는 것 같고 말이야.”
“교전이라고?”
흩어진 다른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각자 떨어져 있는 거냐?”
“아니. 두 녀석 모두 같은 곳에 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나마 안심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단 건 선대 눈인 나은도 함께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
세 사람이 함께라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뭔진 몰라도 일은 곧 끝날 거다. S급 헌터가 근처에 와 있었으니까.”
“S급 헌터라면, 이안 말이냐?”
“아마 그럴 거다. 역 근방에서 느낀 게 마지막이니. 그 뒤론 녀석들이 친 장막 안에 들어갔다고 봐야겠지.”
‘그 녀석이….’
이안이 움직였다면, 팬텀이라도 쉽진 않을 거다.
녀석을 전적으로 믿거나 신뢰하는 건 아니었지만.
녀석의 힘만큼은 진짜였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수호가 물었다.
“합류해야겠지. 녀석들이랑.”
수지나 서윤.
두 사람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녀석들 곁에 있고 싶었다.
“하! 그러냐? 그럼 따라와. 마침 목적지도 같은 모양….”
수호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뭔가.
뭔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뭔가 오고 있다. 수백. 아니, 수천이 되는 것 같은데.”
“뭐라고?”
놀란 용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녀석들, 갑자기 생긴 것 같았어. 뭔진 몰라도 언노운은 아니다.”
마른침을 삼킨 수호가 정면을 주시했다.
“온다.”
용주 역시도 그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앞 사거리에서 무언가 나타나고 있었다.
수호의 말대로 한둘이 아니었다.
차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
“저건….”
그것들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한 용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면 저건.
저 앞에 걸어오고 있는 건.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풀려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제대로 걷지 못해 비틀거리거나, 다리를 질질 끄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비틀댔으며, 얼굴빛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좀비 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 네 눈으로 봤을 땐 저게 뭐지?”
“사람…. 사람이다.”
“정상적인 사람 말이냐?”
“아니. 정상에 범주에 넣기엔 무리가 있겠지.”
저 사람들.
저번에 만났던 태영과 꽤 비슷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리드가 뭔가 손을 써 둔 걸지도.
“어쩐지 도시가 이상할 정도로 텅 비었다 했더니. 팬텀 녀석들이 장난을 쳐 둬서였군.”
안대에 손을 올린 수호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작은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는 엉망으로 부서진 건물에서조차.
“이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소리가 안내해 줄 거다.”
용주와 나란히 선 수호가 삐딱하니 섰다.
“뭐?”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뛰는 게 좋을 거야. 뒤쪽도 곧 막힐 테니까. 세밀한 조정 따위 할 생각 없으니 알아서 움직이라고.”
안대에 손을 올린 수호가 피식 웃어 보였다.
“다크 카니발.”
퍼져 나가는 수호의 스킬.
시야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멈춰선 이들이 손을 허우적거렸고. 서로 부딪치며 뒤엉켰다.
“신세 졌군.”
“가다 자빠지지나 말라고.”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어둠 속을 헤집고 나갔다.
“왠지 손해 보는 장사 한 기분인걸. 내가 왜 이런 짓을.”
머리를 긁적인 수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얻는 것도 없고, 귀찮기만 한 이런 일을 맡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고개를 저은 수호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서로 짓밟고, 밀치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일부만 해도 이 정도.
이만한 수 전부가 저렇게 뒤엉키면 사망자가 나올 게 불 보듯 뻔했다.
“자, 그럼 어디 너희들을 묶고 있는 그 실을 내가 끊을 수 있나 볼까?”
지난번 그리드가 조종하던 녀석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도 움직였다.
하지만 여기 이 녀석들은 그 녀석과는 다른 것 같았다.
녀석을 조종했던 게 단단한 로프 수백 개라면.
여기 이 사람들을 조종하는 건 가느다란 실 한 가닥.
시도해 볼 가치라면 충분히 있을 거다.
“이그노얼 나이트메어.”
붉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
하늘에 나타난 수십의 눈동자가 사방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