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간 용주는 윤현의 상태를 살폈다.
가슴 중앙이 뻥 뚫려 있었다.
윤현의 안광은 완전히 빛을 잃어버렸고, 호흡도 맥박도 없었다.
‘배신당한 거냐?’
윤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략적인 흐름 정도는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끝을 맞이할 거란 걸.
윤현 본인만 모르고 있었던 거겠지.
‘바보 같은 녀석.’
두근…!
윤현의 상태를 살피던 용주의 심장이 순간 크게 요동쳤다.
호흡이 가팔라졌고, 동공의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다.
뻥 뚫린 녀석의 가슴 중앙에 붉은 피가 보였다.
녀석이 이 모습이 되고 나서는 볼 수 없던 피였다.
“카…각…!”
머리보다 먼저 움직인 몸은 녀석의 가슴을 짓눌렀고, 네 개의 촉수는 움직일 리 없는 녀석의 팔을 고정시켰다.
3초 정도 의식에 혼란이 있었다.
간신히 충동을 억눌렀을 때 윤현의 피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멈춰….’
의식이 있었지만, 몸이 멋대로 꿈틀거렸다.
뭔가에 빙의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멈추라고…!’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충동에 온전히 삼켜지지 않았음에도 몸이 멋대로 날뛰려 하고 있었다.
‘광폭화를 어떻게든 해야 해.’
스킬을 잠재우려 했지만, 이것 역시도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피를 마셔야겠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 힘에 짓눌리는 데 반해 나는 힘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게 말했었던가?’
순간 윤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아직도 이 힘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 못했다.
‘짓눌릴까 보냐.’
용주의 입과 어깨에 경련이 일었다.
부패한 입을 앙다문 용주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윤현에게서 물러나고 있었다.
탕!!
그때.
한 발의 총성이 텅 빈 거리를 채웠다.
소리에 반응한 촉수엔 두 발의 탄흔이 남아 있었다.
“쿠스쿠스. 뭐야, 이 괴물은 대체?”
용주의 귀를 긁는 특이한 웃음소리.
용주의 옆을 스쳐 간 자동차 한 대가 급커브를 하며 빙글 돌았다.
차에는 TF.
태스크 포스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태스크 포스?’
네발로 도약한 용주는 자동차 보닛 위에 착지했다.
차엔 총 두 사람이 타 있었다.
눈은 아니었다.
TF의 마크가 새겨진 제복을 입은 그들은 좌우 하나씩 단안경을 나눠 쓰고 있었다.
“오~ 세상에, 끔찍해라. 정말 괴물이네요. 우릴 공격하려나 봐요.”
“그럼 우리가 또 공격하면 되지.”
“오~ 역시 천재시라니까요.”
앞 유리를 겨누는 두 자루의 권총.
유독 길고 넓게 제작된 권총 디자인은 데저트 이글과도 베레타와도 달랐다.
탕!
또다시 하나처럼 울리는 총성.
앞 유리에 난 두 개의 구멍에 차창이 하얗게 금이 갔다.
“오… 세상에.”
칼날 같은 꼬리로 총알을 막아 낸 용주가 앞 범퍼를 찍어눌렀다.
순간, 붕 하고 날아오르는 차체.
내동댕이쳐진 차체는 몇 바퀴를 구른 뒤에야 간신히 멈춰 섰다.
“아유유유~ 이건 또 뭐야? 이거 청구하면 보험 되려나?”
문을 열고 나온 지한이 뒷목을 잡았다.
그렇게 처참하게 굴렀음에도 차도, 사람도 상당히 멀쩡했다.
“오~ 글쎄요. 일단은 저것부터 어떻게 한 다음에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고개를 저은 지훈이 단안경을 고쳐 썼다.
용주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가로등에 꼬리를 감고 있었다.
“저것도 언노운일까요? 곤충형? 아니면 야수형? 거의 키메라인데요, 저건. 오늘 밤은 혼자 못 자겠어요.”
용주의 모습을 살피던 지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에 있는 건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데 저 이상한 언노운이 방금 뭘 하고 있던 걸까요?”
시선을 돌린 지훈이 조금 전 용주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까맣게 그을리고 가슴의 일부가 뜯겨 나간 시신 한 구가 누워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저기 좀 보세요!”
깜짝 놀란 지훈이 윤현을 가리켰다.
“저거… 사람 맞죠? 세상에. 까맣게 타고 뜯어 먹혔나 봐요. 끔찍해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사람이지.
저기 있는 걸 사람이라 판단하는 건 상당히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상당히 예리하게 찢겨 나갔어. 저 꼬리로 반듯하게 도려낸 건가? 쿠스쿠스. 언노운 주제에 익혀 먹고 썰어 먹기까지 해? 인간이 무슨 스테이크인 줄 알아?”
“어떻게 할까요? 딱히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긴 한데. 저희가 저런 괴물이나 잡으려고 여기 온 건 아니었잖아요.”
“음… 아! 나한테 아주 기가 막힌 생각이 났어!”
지한이 허벅지를 탁 쳤다.
“기가 막힌 생각이요?”
“그래! 저 시체. 용주인가 뭔가 하는 녀석한테 뒤집어씌우자고! 때마침 근처에 아무도 없잖아. ‘좀비헌터. 사람을 먹다.’ 제목도 아주 그냥 기깔나게 나오잖아?”
“오~ 역시. 그거 엄청 나이스한 아이디어인데요?”
맞장구를 친 지훈이 마찬가지로 허벅지를 쳤다.
“그럼 저 괴물은요? 저 언노운은 어떻게 할까요?”
“저 녀석이 남은 것까지 다 먹어치우는 건 곤란해. 처리해 버리자고.”
“오~ 그것도 그렇네요. 그런데 괜찮을까요? 저거 끄떡도 안 하는데요.”
“우리도 본격적으로 사냥에 임하면 되지, 우리한텐 쌍성의 천사가 있잖아.”
“그렇게 좋은 방법이. 역시 천재시라니까요.”
등을 맞댄 두 사람이 총구를 하늘에 겨눴다.
하얀빛에 감싸인 두 자루의 권총은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쿠스쿠스. 컴온~! 시리우스.”
“빛을 따라 내려오세요. 안타레스.”
하늘을 향해 당겨진 방아쇠.
떨어지는 빛의 기둥 사이로 하얀 깃털들이 흩날렸다.
“못생긴 언노운씨 잘 보세요~. 천사들의 저 성스러운 모습을! 이게 바로 저희 쌍성의 자랑이랍니다.”
작렬하는 빛 속에서 강림하는 천사들.
활짝 펼쳐진 천사의 날개와 찬란하게 빛나는 백색의 갑옷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머리를 덮은 백의의 후드 아래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빛조차 그 안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크기는 인간의 사이즈를 한참 벗어나 있었고, 땅에 내려앉지도 않았다.
머리 위와 머리 뒤.
각 개체의 머리엔 빛으로 된 링이 하나씩 있었으며, 가슴엔 푸른 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진짜 천사가 내려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의를 집행하세요, 천사여. 악마에게 베풀 자비는 정화뿐입니다.”
날개를 펄럭인 천사들에게서 빛이 흩뿌려졌다.
하늘을 하얗게 수놓은 빛의 구체들은 하나의 대상을 향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필 이럴 때….’
다짜고짜 공격을 개시해 오는 천사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빛 사이를 통과한 용주에게 강한 폭발이 전해졌다.
타이밍이 상당히 안 좋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광폭화라도 어떻게 억누를 수 있다면, 대화라도 해볼 수 있으련만.
일이 꼬이려니까 끝도 없이 꼬이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대놓고 자신을 언노운으로 보고 있었다.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언노운이 나타나기도 했고,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봐도 인간과는 영 거리가 있었으니까.
‘방해한다면, 제압하는 수밖에.’
빛 사이를 돌파한 용주는 곧장 두 사람을 노렸다.
두 사람에게 악의는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TF라면.
그렇게 망설일 필요도 없겠지.
“오~ 세상에 우릴 공격하려나 봐요.”
“지능이 꽤 높나 본데?”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쏴버려야지. 내가 하던 말 있잖아. 총은 답을 알고 있다고.”
용주를 향해 동시에 총을 겨눈 두 사람이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용주를 덮치는 섬광.
더욱 가늘고 날카롭게 변한 눈동자로 두 사람을 쫓은 용주는 지면을 내리찍었다.
범람하는 피의 폭발.
부서진 아스팔트를 딛고 뛰어오르는 두 사람을 네 개의 촉수가 맹렬한 기세로 추격했다.
바로 그때.
“…….”
작렬하는 섬광이 촉수들을 튕겨 냈다.
섬광의 정체는 천사들의 전투검.
같은 형태의 빛의 검을 나눠 가진 두 천사는 각각 자신의 주인을 어깨에 태웠다.
“쿠스쿠스! 그 정도론 한~참. 하안참 부족하다고!”
포탄처럼 쏟아지는 빛의 세례.
용주를 중심으로 그려진 동그란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두 천사는 빠른 속도로 빛의 외곽을 돌았다.
쌍성처럼 회전하는 두 천사를 따라 나타나는 여덟 자루의 장창.
각기 다른 형태를 자랑하던 여덟 자루의 창은 두 천사의 손짓에 교차하며 내리꽂혔다.
강렬한 폭발이 만든 빛과 바람에 윤현의 시신이 나부끼고 있었다.
‘칫…!’
교차하며 지나가는 두 명의 천사.
그들의 칼날 사이를 통과한 용주는 윤현을 낚아챘다.
일단 이 녀석부터 어디 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오~ 세상에 저거 보세요. 도망가려는 건가요?”
“먹던 것까지 낚아챘어. 위험을 감지한 동물의 본능이란 거지.”
“그걸 맞고도 저렇게 멀쩡하다니. 갑피가 엄청 발달한 타입인가 봐요.”
“알게 뭐야. 일단 저걸 돌려받는 게 우선이라고.”
용주를 바짝 추격해 오는 두 천사.
반원을 그리며 날아간 두 자루의 전투검이 용주의 앞에서 교차했다.
공중을 차며 뛰어오른 용주는 꼬리를 가로등에 걸었다.
회전을 추진력 삼아 뛰어오르는 용주.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발톱을 박아 넣은 용주는 그대로 건물을 타고 올랐다.
상가 건물 꼭대기 난간에 걸터앉은 용주는 가지고 온 윤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렸다.
‘천사들부터 처리해야 해.’
모여드는 붉은 입자.
날개 없이 추락하는 용주의 페이탈 붐이 피를 토해 냈다.
페이탈 붐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천사는 빛무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천사의 중심이 되던 푸른 코어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시리우스가 한 방에….”
추락하는 천사.
붉은 잔해를 뚫고 오른 지훈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TF의 쌍성인 우리가.
고작 혼자 떨어져 나온 언노운 하나에게 이런 치욕을 당한다고?
“천사의 핵을 정확히 노렸어. 저거… 아무래도 평범한 언노운이 아닌 모양인데. A급의 특수 개체… 아니, 어쩌면 S급일지도 몰라.”
언노운을 상대하는 건 전문 분야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을 상대하는 헌터들의 힘이라면 대략적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그걸 기준으로 봤을 때 녀석은 자신이 지금껏 상대해 본 적 없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저걸 단독으로 제압할 수 있는 헌터가 있다면….
A급 중에서도 상위권.
어쩌면 S급까지 올라가야 할지도….
‘일단은 살아 나가는 게 최우선이겠어.’
그렇게 생각한 지훈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건….’
천사의 다리를 휘어 감고 있는 꼬리가 보였다.
하나였던 꼬리는 두 개로 갈라져 있었는데, 천사의 다리를 관통하며 몸을 완전하게 지탱해 주고 있었다.
“안타레스!”
적을 떼어 내기 위해 폭발적으로 상승한 천사였지만, 용주를 떼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카각…!”
천사를 타고 수직으로 내달리는 용주.
추가적으로 자라난 네 개의 갈고리 촉수는 용주의 몸이 중력에 딸려 가는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중앙 코어을 마주한 용주는 여덟 개의 촉수를 쫙 펼쳤다.
일점으로 모여든 촉수는 그대로 코어를 꿰뚫었고, 서로 다른 여덟 방향으로 상처를 찢어 놓았다.
“이… 이럴 수가.”
멍울지며 흩어져 가는 천사.
발 디딜 곳을 잃어버린 지훈의 몸이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점멸을 사용해 지훈을 따라잡은 용주는 촉수로 녀석을 낚아챘다.
그 속도 그대로 떨어진 용주에 의해 도로는 또 한 번 엉망이 되어 버렸다.
“으…… 흐아악!!”
공포에 질린 지훈이 지명을 질렀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지금 자신을 붙잡고 있는 건.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