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머리 위로 쏟아지는 잔해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던 용주가 네 개의 촉수로 콘크리트 더미를 받아 부쉈다.
‘저 녀석….’
윤현을 중심으로 타오르는 불꽃은 일대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서 손을 뗐을 때. 녀석에게서 호흡은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지금 저기 저렇게 서 있었다.
전기 쇼크로 다시 심장이 뛰기라도 한 것처럼.
‘그게 아니면 일부러…?’
그런 가능성 역시도 없진 않았지만,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방심을 유도한 뒤 기습하는 게 목표였다면, 방금 그 공격은 오판 중에서도 오판이었다.
“괴물을 잡아먹으려면 나 역시도 괴물이 되어야겠지.”
지면에서 피어오른 조그마한 핏방울들이 윤현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왼손을 뻗은 윤현은 하나가 된 핏방울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저항에 윤현의 팔이 바들바들 떨렸고, 손가락은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것처럼 요동쳤다.
저항을 힘으로 억누르는 윤현의 손이 조각조각 깨져 나갔다.
하지만 윤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벗어나려는 힘을 누르고, 누르고, 또 억눌렀다.
이윽고 완전히 사라진 저항.
왼손을 펼친 윤현의 손 위엔 붉은색의 결정 하나가 떠 있었다.
“오로지 널 위한, 너만을 위한, 너에 의한 이형 리액터의 힘이다. 이게.”
붉은 결정을 눈으로 확인한 윤현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짙은 불길에 둘러싸인 붉은 결정은 윤현의 가슴 속으로 삼켜지듯 빨려 들어갔다.
“으윽…!”
고통스러운 듯 심장을 부여잡는 윤현.
“커헉…. 크어억…!”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은 윤현이 검은 불길을 토해 냈다.
토해진 불길은 주변에 있던 다른 불길들을 삼켰고, 이내 윤현의 몸 전체를 삼켜 버렸다.
잔존하는 불길을 돌파한 용주는 윤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녀석이 뭘 삼킨 건지.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시간을 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데.
순간 폭발한 엄청난 돌풍이 용주의 몸을 덮쳤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힘은 용주를 밀어냈고, 이내 공중에 뜬 용주의 몸을 날려 버렸다.
네발로 땅을 할퀴며 멈춘 용주는 윤현을 노려보았다.
번데기처럼 움츠렸던 불꽃이 찢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칠흑의 갑주를 두른 악마의 모습이었다.
“크으으…. 이 충동, 이 갈증, 이 허기짐. 그래. 이게 널 움직이던, 네 힘의 원동력이란 말이지?”
불꽃을 짚은 윤현이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
“카…. 각….”
“이 힘을 대가로 말조차도 못 하는 하등한 짐승이 되어 버린 거냐? 정말이지 현명하지 못하군. 주객이 전도된 노예라니.”
윤현의 손등을 타고 피어오른 불꽃이 날카로운 칼날의 형상이 되었다.
손잡이를 쥐는 일반적인 검의 형태가 아니었다.
용주의 손톱과 유사하게, 녀석의 칼날은 녀석의 손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타오르는 이 갈증과 타오르는 이 힘은 너보단 내게 더 어울리는 것 같군. 네가 힘에 짓눌리는 데 반해 나는 힘을 지배하고 있다.”
쫙 펼친 다섯 손가락으로 용주를 겨누는 윤현.
그의 손으로 응집된 불꽃은 혜성처럼 용주에게 날아들었다.
‘저 녀석 대체 뭘 한 거지?’
사선으로 달리며 혜성을 피해 낸 용주에게로 같은 공격이 연속해서 날아왔다.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훨씬 더 거대해졌고.
훨씬 더 강대해졌다.
프라이드나 러스트.
다른 팬텀의 녀석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수준이었다.
‘원인이라면 역시 아까 그 결정인가?’
용주의 뒤를 따르는 굉음과 폭발.
건물을 수직으로 달린 용주는 차 신호등을 가로질렀다.
‘지면에서 솟아올랐던 핏방울들을 결정으로 만들었었지.’
핏방울.
그리고 녀석의 말.
그 두 가지를 종합했을 때 그건 분명 자신의 힘이었다.
‘내 힘을 응축시켜 결정화시켰다.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건가?’
어떤 원리인진 몰라도 팬텀은 헌터들의 힘을 추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만을 위한 이형 리액터의 힘이라고.
그 말은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었다.
헌터의 힘이 아닌 자신의 이 힘을 대상으로 뭔가를 준비했다고.
만약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녀석이 흡수한 건 계승자의 힘.
녀석은 처음부터 이걸 준비해 두고 있었던 거였다.
“카각!”
신호등 끝에서 도약한 용주는 지면을 깨부쉈다.
빠르게 좁혀지는 두 사람의 거리.
윤현의 거센 공격에 연속해서 폭발이 일어났지만, 용주의 돌진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점멸을 사용해 화염구를 관통한 용주는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네 무기가 피라면, 내 무기는 불꽃이다, 괴물아.”
그에 맞서는 윤현의 화염검.
날카롭게 뻗은 네 개의 촉수는 그런 윤현을 노렸고, 촉수 중 하나를 붙잡은 윤현은 불길을 흘려보냈다.
서로에게 작렬하는 크로스어택.
윤현을 꿰뚫은 세 개의 촉수는 더욱 깊숙이 상처를 후벼 팠고.
촉수를 타고 용주에게까지 도달한 불길은 용주의 몸을 불태웠다.
“가가각…!”
면전에서 입을 벌린 용주의 곁으로 붉은 입자들이 모여들었다.
“함께 폭사하자는 거냐? 큭. 그것도 나쁘지 않지.”
윤현이 응축되고 있던 힘의 중심으로 손을 뻗었다.
윤현의 손을 덮고 있던 단단한 갑피가 갈라지며 뜯겨 나갔고, 그 속에서 검은 화염이 화산처럼 흘러내렸다.
“물론 쓰러지는 건 너 하나겠지만.”
미완성된 페이탈 붐을 밀어낸 윤현은 용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강대한 폭발.
용주의 입안에서부터 시작된 폭발에 피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고, 일대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폭발에 날아간 윤현은 오른손으로 지면을 쓸며 속도를 줄였다.
심하게 훼손된 갑피는 불길 속에서 빠르게 원래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폭발에 무사한 건 윤현만이 아니었다.
그만한 폭발이었음에도 용주의 상태는 양호했다.
폭발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은 건 분명했다.
코의 일부와 왼쪽 귀가 사라졌고, 녀석을 덮고 있던 갑피의 훼손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눈은 전혀 죽어 있지 않았다.
“심연에서 기어 올라와라. 오오무카데.”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대지.
지진이 일어난 듯한 진동 속에 윤현이 딛고 있던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위로 머리를 드러내는 거대한 지네.
속도를 높이는 지네에 몸을 싣고 있는 윤현은 거대한 몸덩이로 용주를 그대로 밀어 버렸다.
“하하하핫!”
호탕한 미소를 머금는 윤현.
그의 질주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어떠냐? 이제 느껴지나? 너와 나의 힘의 차이가! 이게 바로 힘을 지배한다는 거다!”
잠깐의 기쁨을 만끽한 윤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뒤가 뚝 끊겨 있었다.
반듯하게 잘려 나간 나머지 몸통은 머리를 따라오지 못한 채 저 뒤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잘려 나갔어. 예리한 무언가에.’
대체 뭐에?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윤현은 곧장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신발 밑창에 밟힌 바퀴벌레마냥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용주에게서 꼬리가 자라나 있었다.
전갈의 꼬리처럼 기다랗게 자라난 꼬리의 끝은 침이 아닌 칼날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점점 더 벌레에 가까워지는군. 안 그래?”
지네의 머리 위에서 뛰어오른 윤현이 칼날을 쓸어 올렸다.
“벌레를 확실하게 끝장내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불로 태워서 형태조차 남기지 않는 거야.”
공중에서 일어나는 연속 폭발.
폭발에 폭발을 딛고 고도를 높인 윤현은 가장 높은 곳에서 용주를 내려다보았다.
“산을 삼키고 불을 토해라. 오타케마루!”
창공을 가득 채우는 검은 불꽃.
“그 눈으로 똑똑히 봐라. 사상 최강의 그리고 최악의 오니를.”
밤처럼 어둡지만, 태양처럼 뜨거운 불의 구체는 윤현의 손짓을 따라 지면으로 떨어졌다.
“…….”
금방이라도 온몸이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열기.
흡사 태양이 이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살육의 갈증에 더해 생존의 갈증이 느껴져, 목과 혀가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
물… 피….
이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이 마시고 싶었다.
‘녀석이 내 힘을 따라온 거라면, 나도 한 걸음 더 나갈 수밖에 없어.’
충동을 삼켜 낸 용주가 네 개의 촉수를 지면에 박아 넣었다.
‘녀석이 끝이 아니야. 녀석은 시작일 뿐.’
블러드러스트.
스킬의 발동과 함께 용주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용주의 몸을 뒤덮던 형상은 더욱 날카롭고 기괴하게 변이했고, 용주의 입가로 모여들던 붉은 입자에 검은 입자가 더해졌다.
피어오르던 붉은 아지랑이에도 검은색이 섞였고, 새롭게 자라난 갑피의 일부 역시도 검은색을 함께 머금고 있었다.
“카…가…각…!”
갈증에 당장이라도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죽이고 싶다.
찢고, 씹고, 마시고 싶다.
이 허기를, 이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
머릿속이 그런 생각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용주의 의식은 완전히 잠식되지 않았다.
‘삼켜질까 보냐….’
용주를 지탱하고 있는 건 오로지 의지.
용주의 입가에 모여든 입자들은 완전한 구의 형태를 갖추었다.
확산하는 파동.
두 구체의 충돌에 일대에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전동킥보드, 간판, 건물의 잔해. 심지어는 온전했던 건물까지.
두 구체의 크기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힘은 크기에 비례하지 않았다.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호수처럼 화염이 범람하며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고, 응집력을 잃어버린 불꽃들이 유성우가 되어 쏟아졌다.
“아니!”
화산처럼 폭발하는 검은 화염.
오타케마루를 관통한 구체는 그대로 윤현에게 작렬했다.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지듯,
검게 물들었던 하늘에선 피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
네발로 땅을 딛고 있는 용주의 꼬리는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꼬리를 움직인 용주는 머리맡으로 꼬리를 가져왔다.
칼날처럼 예리한 꼬리에는 넝마가 된 윤현이 꽂혀 있었다.
“커…허억…!”
가슴 중앙을 관통당하고도 윤현의 숨은 붙어 있었다.
“아직….”
마지막 힘을 쥐어짠 윤현이 검을 휘둘렀다.
용주의 이빨에 씹힌 윤현의 검은 그대로 산산이 조각났다.
“흐… 흐흐흐. 흐하하핫!”
실성한 듯 웃음을 터뜨리는 윤현.
그의 몸을 덮고 있던 갑피는 대부분 파괴되어 원래 모습에 더 가까워져 있었고.
선명하게 빛나던 그의 안광은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네가 이겼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윤현이 용주의 꼬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자신의 몸을 찢었다.
용주의 꼬리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까지 찢어 낸 윤현은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
순간, 윤현의 아래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짐승처럼 반응한 용주는 뒤로 크게 물러났다.
저런 걸 본 적이 있었다.
러스트.
녀석이 나타났을 때였지.
“잠깐의 승리를 만끽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흩어졌던 윤현의 칼날이 그림자에 삼켜졌다.
옅은 미소를 띤 윤현은 편하게 고개를 내려놓았다.
보스가 지시한 일은 모두 마쳤다.
녀석을 직접 처리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이행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곧 알게 될 거….”
부자연스럽게 끊어진 윤현의 목소리.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용주가 미간을 구겼다.
칼날처럼 쇄도한 그림자는 윤현의 가슴을 뚫고 나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슴 정중앙을 기준으로 도려내듯이 뚫고 나와 있었다.
“러, 러스트님?”
윤현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너한텐 말 안 했는데, 실은 따로 이야기 들은 게 있어.”
그림자를 타고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이야기? 보스에게 말입니까?”
“응. 이번 실험으로 알게 됐댔어. 불순물은 필요 없다고.”
“불순물…?”
“응. 필요한 건 순수한 힘의 결정. 힘을 머금은 네 이형 리액터뿐이랬어.”
“이형 리액터뿐이라고요? 그게 무슨….”
“과유불급. 이번처럼 너무 많은 문이 한꺼번에 열리는 건 원하지 않는대. 필요한 건 열쇠 하나를 빚을 재료. 정제가 끝난 네 리액터가 최적일 거라고 했어.”
“보스는… 일이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겁니까?”
“응. 그래도 마지막 불꽃은 멋지게 태웠잖아. 안 그래?”
“…….”
윤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의식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림자가 아닌.
죽음에 잠겨 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아, 참. 보스가 이 말 전해 주래. 최고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게 해준 네게 감사를 표한다고.”
“…….”
일대를 잠식했던 그림자가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