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221화 (221/357)

221화

“확실히 네 말대로 좀 많이 냄새나는 것 같네.”

서윤이 용주에게 다가왔다.

“만약 두 사건이 관계가 있다면, 답은 정해진 거 아니야?”

“신설동. 근데 거긴 언노운 나타났다는 이야기 없었어.”

수지가 목소리를 냈다.

“언노운. 게이트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발견돼. 당연한 상식.”

“이럴 땐 이상하게 머리 잘 안 돌아간단 말이야. 언노운이 나타난 곳에서 게이트 못 찾았다며. 지금까지랑 같았으면 벌써 발견했을 거 아니야? 지금까지 발견 못 했단 건 지금까지랑은 다르단 이야기 아니야?”

“…응. 그것도 그렇네.”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드가 움직이고 있다면, 러스트도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 언노운이 나타난 건 녀석의 작품일지도 모르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입을 열었다.

그리드 혼자만의 개인 행동이라고 하기엔 이번 사건의 규모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러스트? 러스트면 그….”

“도심에서 날뛰던 윤현을 데려간 녀석이다.”

“그 녀석이 언노운을 여러 군데로 흩뿌리고 있다고?”

“가능성 중 하나를 말해 본 거다. 녀석의 능력이라면 그런 게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그럼 언노운의 종류가 비정상적으로 다양한 건?”

“글쎄…. 어쩌면 열린 카오스 게이트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 그게 아니라면 게이트가 지금까지 열린 것들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것이라든가.”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쪽 세계에서 문을 열려는 자가 있다는 배신자들의 왕의 이야기.

말을 꺼낸 이 순간에 와서야 그 이야기가 겹쳐졌다.

녀석이 말한 문을 열려는 자가 팬텀이었던 건가?

녀석이 경고했던 게 지금 이 상황이란 거고?

‘한발 늦었단 건가?’

“팬텀의 위치가 특정되었고, 이 사건들이 팬텀과 관계가 있다.”

태블릿에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던 동제가 용주에게 다가왔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잘 압니다만, 지금은 길드 측에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

“길드를 믿지 않으신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해를 줄이는 게 무엇보다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동제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나은이 손을 뻗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자신이 하겠다는 제스처였다.

“동제 씨는 팬텀의 위치를 특정 짓는 건 원하셨지만, 여러분께서 팬텀과 직접 담판을 짓는 부분에 있어서는 쭉 회의적이셨어요. 길드 수뇌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신 이후로도요.”

나은이 동제를 힐끔 흘겨보았다.

“길드 수뇌부에 대한 생각을 하셨으니, 분명 거기에 대한 생각도 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나은이 용주의 대답을 기다렸다.

서윤의 핸드폰에선 아까 나왔던 송출 영상이 재방송 되고 있었다.

“…….”

용주는 조용히 동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녀석의 생각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의 컨트롤 타워가 있긴 하지만, 헌터 개개인의 상황 판단 역시도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죠.”

동제가 들고 있던 태블릿의 액정을 보였다.

CBS.

흔히 말하는 재난 문자를 보낼 수 있는 화면이 공유되어 있었다.

“그게 뭐야?”

서윤이 물었다.

“행정 안전부의 재난 문자 방송 시스템입니다.”

“아니, 그게 왜 거기 있는 건데?!”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보내는 화면을 보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포인트는 그게 아니었다.

왜 그런 게 일개 개인의 태블릿에 있느냔 말이다.

“제가 가진 위치와 인맥, 그리고 쌓아온 신뢰를 이용했다 정도로 일단 말씀드리겠습니다.”

“엄청난 이야기를 태연하게 잘도 하네.”

서윤이 허리춤을 짚었다.

이 녀석.

앞뒤 꽉꽉 막힌 샌님, 뼛속까지 공무원 그 자체 같아 보이는 주제에, 이래저래 꽤 융통성이 있단 말이지.

“과정이야 어찌 됐든 행정 안전부의 협조는 이미 구해 놨습니다. 전송할 내용만 전달하면 되는 상황이죠.”

“잠깐만. 근데 그걸로 뭐 어쩌려고? 재난 문자야 그냥 재난 문자일 뿐이잖아.”

그가 뭘 하려는 건진 알았지만, 거기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재난 문자야 벌써 수십 통은 받은 것 같은데 말이다.

“재난 문자의 광범위한 전달력을 이용하면, 길드를 거치지 않고도 서울 전역에 있는 헌터분들께 직접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정보가 차단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죠.”

“근데….”

“물론, 헌터분들에게만 가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자를 보고 대피하지 않을 사람은 헌터뿐일 겁니다.”

“음…. 확실히 그것도 그렇네.”

고개를 끄덕인 서윤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A급 게이트. 그렇게 수정하면 어떨까 싶은데.”

용주가 카오스 게이트에 대한 문구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렇게만 바꿔도 헌터의 범위를 확 좁힐 수 있을 거다. 불필요한 희생도, 불필요한 혼란도 줄일 수 있겠지.”

“그 말씀은….”

“너 좋을 대로 하란 거다. 나도 내가 좋을 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네. 그럼 수정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작아졌던 동제의 목소리에 다시금 힘이 실렸다.

“마음대로 해라.”

윤현, 엔비, 러스트, 그리드, 프라이드.

거기에 아직까지 조우하지 못한 팬텀의 일원이 더 있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언노운들은 물론이고, 어쩌면 녀석들이 보스라고 부르는 인물까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일에 모든 헌터를 끌어들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최소 그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고 있는 헌터.

그게 용주가 생각한 이 버스터 콜의 최소 자격이었다.

“이야기가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나은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이제 그쪽으로 이동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래야지.”

“차로 이동하실 건가요? 아니면….”

나은이 수지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형 워프 장치. 2개밖에 안 남았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걸 정확히 캐치한 수지가 이야기했다.

지난번 TF와의 접촉 때 대량으로 이형 워프 장치를 사용했었다.

지금 남은 건 2개.

나은과 동제를 제외한다 쳐도 3명이 이동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여분이 있다면, 그렇게 할 의향은 있으신가요?”

“여분?”

수지의 물음에 나은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수녀복 안에 숨어 있던 목걸이엔 자그마한 보석들이 나란히 줄 서 있었다.

“그건….”

“여러분께서 사용하시는 것과 같은 종류의 물건입니다. 크기는 좀 다르지만요.”

나은이 두 개의 보석을 목걸이에서 풀어 냈다.

“두 개?”

“여러분께 도움을 드리는 건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습니다. 과거의 전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 학살을 보고도, 이 혼란을 보고도 테레사 수녀로 있는다면 전 아이들을 마주할 면목이 없습니다.”

나은이 자신의 목에 손을 올렸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면 충분합니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제게 맡겨두도록 하는 걸로.”

동제의 부탁이라면 이미 들어주었다.

눈으로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지켰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서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버렸다.

여기서부터의 행동과 판단은 온전히 자신이 결정한 일.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족쇄들과는 관계없었다.

* * *

“부자연스러운걸.”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거리.

굳은 얼굴의 이안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도시 전체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무도, 표지판도, 건물도, 신호등도 온통 회색이었다.

“그렇게 숨겨 두고 싶은 건 저 아래 있는 건가?”

굳은 얼굴의 이안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하로 통하는 신설동역의 입구에서 기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반인 중에도 감이 좋은 사람은 불길하다, 다가가고 싶지 않다 정도는 느낄 만큼 음산하고 끈적한 기운이었다.

“카오스 게이트의 사건의 지평선. 그렇게 봐야 하는 건가?”

한번 넘어가면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경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고등급의 카오스 게이트 역시 사건의 지평선이라 불리는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마나를 가지지 못한 인간이 발을 들이면 그걸로 끝.

끔찍한 차원 압력에 눌리고 찢긴 인간은 단순한 고깃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이 형태는….”

이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안조차도 이런 형태의 경계를 본 적이 없었다.

원의 형태를 가지는 게 보통의 사건의 지평선이건만.

이곳의 경계는 그것보다 훨씬 확장되어 2차원의 면이 아닌 3차원의 공간을 삼키고 있었다.

사건의 지평선 주변을 감싸는 에고스피어.

그렇게 보는 게 더 타당할지도 몰랐다.

“확실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형태야. 길드의 감시망이 감지해 내지 못한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가는걸.”

길드가 자랑하는 첨단 시스템조차도 정확한 게이트의 위치를 특정해 내지 못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직접 내려가 봐야겠어.”

허공을 휘젓는 이안의 손을 따라 공간이 찢기며 구겨졌다.

망가진 차원은 점점 더 비틀리며 응축되었고, 이내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검을 움켜쥔 이안은 서서히 경계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끔찍하군.”

스산한 기운에 잠긴 신설동역.

공간의 경계를 넘자마자 이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코를 찢는 피 냄새와 여기저기 찢겨 굴러다니는 사람들의 신체였다.

뒤엉켜 있는 시신들의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안쪽에서 위를 향하는 것도 있었고, 반대로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것도 있었다.

“차원 압력에 찢겨 버린 건가.”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건 그나마 양반.

신발 밑창에 눌려 터진 벌레처럼 터져 버린 인간의 유해는 생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안쪽을 바라보았을 때.

이런 참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생사의 경계가 갈려 버렸다.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 들어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반적인 카오스 게이트라면, 경계를 넘어서면서 공간 자체도 완전히 바뀌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의 풍경은 여전히 지하철 입구였다.

고개만 돌리면,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였다.

반면 이곳의 빛은 카오스 게이트에 머무는 빛과 유사했다.

지금 시야를 밝혀 주는 건 전기에 의한 광원이 아니었다.

“게이트는 더 안쪽인가?”

계단을 모두 내려온 이안의 앞에 펼쳐진 것은 더 참혹한 현장이었다.

조금 전 계단에서 본 것은 빙산의 일각.

안내 데스크의 창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바닥과 벽, 천장 할 것 없이 사람의 피와 내장이 뒤엉켜 있었다.

개찰구를 뛰어넘은 이안은 좀 더 깊숙이 들어섰다.

그 순간, 꿈틀거리는 고깃덩이들.

시체 더미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건 사마귀와 거미의 모습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아라크네형 언노운이었다.

날카롭게 발달한 녀석의 앞다리는 명검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전부가 차원 압력에 찢겨 죽은 건 아닌 모양이지.”

강하하는 녀석에 맞서 이안이 검을 휘둘렀다.

이안의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차원이 물결쳤다.

“캬아아악~!!”

이안의 검과 부딪친 언노운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조금 전까지 붙어 있던 팔은 사라지고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팔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살점이 터지며 피가 쏟아졌고, 조각난 신체와 내장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치 녀석이라는 세계 자체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B급의 일반 개체 정도 되는 건가? 겁이 없는 건지, 용맹한 건지 몰라도 물러설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

모습을 드러낸 아라크네형 언노운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몰려드는 녀석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수십.

아니, 백여 마리는 거뜬히 넘는 규모였다.

“미안하지만 내가 좀 바쁘거든. 그러니 길을 좀 비켜 줘야겠어.”

이안을 중심으로 일대의 풍경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피와 내장이 가득한 지하철의 풍경을 잠식해 나가는 또 다른 차원.

황량한 사막에 끌려 들어온 언노운들의 머리 위로 작열하는 태양 빛이 쏟아졌다.

“캬악!”

“캬아악~!!”

뜨거운 열기에 공간이 휘어 보였고, 모래에 파묻힌 언노운들의 다리에서 고기 굽는 소리가 지글거렸다.

“1초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난 분명 경고했어.”

이안의 경고가 있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언노운 들은 더욱 거세게 발버둥 쳤고,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키익….”

그들의 발버둥은 오래가지 못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들의 더욱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하반신이 완전히 잠식된 언노운들은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작고 고운 모래 입자에 바닥은 없었다.

아래로 빨려 들어갈수록 확실해지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작렬하는 태양과 끓는 표면이 이곳에서 가장 따뜻한 온도였다는 것이다.

맨틀을 뚫고 핵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한층 한층 아래로 끌려갈수록 열기는 더욱 살인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게 말했잖아. 1초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무심하게 걸음을 옮기는 이안의 곁으로 풍경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살아 있는 언노운은 없었다.

단 한 마리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