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 * *
“용주 형네는 어떻게 되고 있대?”
물지게에 물을 가득 실어 온 주원이 물었다.
“응. 이야기 잘 풀렸다나 봐.”
“그래? 그럼 찾는 것도 시간문제겠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 뒤의 일은 또 별개겠지만….”
예나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금화의 공방이 있는 곳은 예나가 생각했던 곳보다도 훨씬 산골이었다.
와이파이나 인터넷은 없고, 전파도 간신히 잡혔다.
핸드폰 배터리는 조금만 사용해도 아이스크림마냥 살살 녹아내렸다.
전기는 들어왔지만, 흔히 생각하는 가정집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빛이라고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전구 몇 개가 전부.
공방 내부는 그나마 전구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곳 외에는 정말 띄엄띄엄 하나씩 있었다.
화장실은 건물 밖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옛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금화의 공방으론 시냇물이 관통하고 있었다.
깨끗한 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끓여 마시는 게 좋다고 금화가 그랬었다.
부잣집 아가씨라 할 수 있는 예나에겐 모든 게 낯선 풍경이었다.
“오빤 아무렇지도 않나 봐?”
“응? 뭐가?”
아궁이에 불을 지핀 주원이 솥 가득 물을 채웠다.
“이런 산골 공방 말이야. 벌써 자기 집처럼 편안해진 것 같은데.”
“아~ 그거? 내가 검술을 익히던 곳도 이런 산골이었거든. 아마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을걸? 그리고 여긴 먹을 거랑 전기도 있잖아. 수련이라고 산에 혼자 던져졌을 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니까.”
주원이 어깨를 쭉 폈다.
죽은 나무 뒤져서 애벌레 찾아 먹고, 흙 파고 나뭇잎을 덮고 자는 생활에 비하면, 이 정도면 호텔이었다.
“음… 오빠가 사용하는 검술이란 거, 나도 배울 수 있는 걸까?”
예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무심결에 나온 말이었어.”
“예나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예나에게 다가온 주원이 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예나는 조심스럽게 주원의 눈치를 살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예나의 표정에도 주원은 한결같았다.
“오빠는 내가 어떤 거 같아?”
“예나는 멋지지. 똑똑하고. 어른스럽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내 실력 말이야. 헌터로서.”
“자신을 가져도 될 만큼 강하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 어려운 헌터 시험을 통과했을 리 없잖아. 안 그래?”
“응. 근데 있잖아.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들었어. 과연 내가 혼자 힘으로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예나가 양쪽 무릎을 바짝 당겼다.
“용주 오빠, 주원 오빠, 고구마 아저씨, 서윤 언니, 각자가 엄청 강하고, 다들 시험을 통과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그냥 단순히 팀을 잘 만나서, 잘 묻어간 건 아닐까? 혼자 힘으로 과연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실력에 자신이라면 있었다.
분명 그랬었다.
하지만 팬텀과 조우하면서, TF와 조우하면서.
더 강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자신감이 사라져 버렸다.
용주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팬텀을 상대로도, TF의 눈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거나 위축되는 것 없는 실력이었다.
주원 역시도 남들과는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주원이 사용하는 월영식은 눈을 상대로도 제 위력을 발휘했고, 처음 조우했던 팬텀에게 결정타를 날렸던 이 역시 주원이었다.
금화는 어떤 상황에도 침착하고, 냉철함을 잃지 않는 강점이 있었고.
서윤은 어떤 적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는 패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 자신은?
자신은 그런 네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걸까?
“예나라면 분명 통과할 수 있었을 거야.”
주원이 예나에 머리에 손을 올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예나는 나보다 똑똑하니까. 상황 판단도 잘하고, 분석력도 좋고, 크고 멋진 버티도 함께 있고 말이야.”
“…….”
“헌터 시험 때 기억나? 예나랑 나랑 처음 한 팀이 됐을 때.”
“그 좀비 나오던 거기 말하는 거지?”
“응. 거기서 엄~청 큰 녀석 만났던 거 기억해? 눈알 여러 개 달린.”
“기억이야 하고 있는데.”
“그 녀석한테 한 방 먹여준 게 누굴까? 용주 형? 아닐걸? 그럼 나인가? 아마 그것도 아닐걸?”
“…….”
“팬텀이랑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래. 워커로 크게 한 방 먹여준 게 누구였을까? 등짝에 칼을 꽂아 준 건?”
주원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나는 강해. 그리고 더 강해질 거야. 내가 보장할게.”
방긋 웃어 보인 주원이 엄지손가락을 보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창이던 그때.
어둠을 뚫고 차 한 대가 도착했다.
“집사 왔나 보네.”
고개를 돌린 예나가 서둘러 눈가를 닦아 냈다.
하마터면 울 뻔했다.
“승우 형!”
차에서 내린 승우를 향해 주원이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응?”
한 명만 타고 있을 차의 조수석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형만이었다.
* * *
“여기가….”
그림자에서 나온 러스트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당이 딸린 제법 큰 사이즈의 단독 주택의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엔비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녀의 PC를 살펴본 러스트였다.
카오스 게이트에 대한 정보와 헌터들의 데이터.
엔비는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생년월일과 주소 같은 형만의 개인정보 중 일부 역시도 거기서 입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만의 일정에 대한 부분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형만은 어떤 임무도 수주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야. 혹시 몰라.’
단순히 형만이 자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형만 혼자 있는 거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보스는 자신이 형만과 조우했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헌터 길드 데이터망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형만과 단둘만이라면.
이번에도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을지도.
지난번에 다 못 나눈 이야기들도 어쩌면 이번에는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조심히.’
정원을 지난 러스트는 그림자를 타고 테라스로 올라섰다.
‘여긴 잘 안 잠그니까 열려 있을….’
테라스 창을 열던 러스트의 움직임이 순간 굳어졌다.
‘방금 그건… 내 생각인가?’
너무나 당연하게 떠올랐던 그 생각은 이상한 것이었다.
문이 안 잠겨 있을 거라니.
대체 뭘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쪽 테라스로 온 것부터 이상했다.
자신은 어떻게 여기 테라스가 있단 걸 알고 있던 걸까?
여긴 분명 처음 와보는 장소일 텐데.
‘뭔가…. 역시 여기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마른침을 삼킨 러스트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소파와 책상.
그리고 TV와 화분.
불 꺼진 거실을 둘러보던 러스트는 또 한 번 멈칫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스위치를 켤 뻔했다.
‘1층엔 아무도 없어.’
계단을 오른 러스트는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 늘어선 방들을 지나친 러스트는 한 문 앞에 멈춰 섰다.
왜인진 모르지만, 이 문에 이끌렸다.
‘안에… 있으려나?’
마른침을 삼킨 러스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불 꺼진 방에 인기척은 없었다.
‘없네.’
방문을 닫은 러스트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왜 앉았는지는 자신도 잘 몰랐다.
그냥 앉고 싶었다.
‘청소는 말끔하게 되어 있지만, 사용한 진 좀 된 걸까?’
사람의 손이 닿으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사용감이란 게 있었다.
손때라든가, 사람 냄새라든가 하는 거 말이다.
하지만 여기 그런 건 없었다.
새것은 아니지만, 세월에 지워진 그런 느낌이었다.
‘편안해.’
이불을 더듬거린 러스트가 뒤로 벌러덩 누웠다.
자신의 침대보다.
홈이라 부르는 그곳의 어떤 곳보다 지금 이 자리가 안락하게 느껴졌다.
‘그냥 이대로 여기 있고 싶어.’
다 잊어버려도 된다면,
다 잊어버릴 수 있다면, 그냥 이대로 여기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몸을 일으킨 러스트는 화장대로 다가갔다.
말이 화장대지 화장품 같은 건 놓여 있지 않았다.
‘액자…?’
거울 아랜 작은 액자가 엎어져 있었다.
‘왜 엎어 놓은 거지? 사진은 보려고 있는 거….’
엎어둔 액자를 일으킨 러스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진 속엔 세 사람이 있었다.
형만과 앳돼 보이는 소년.
그리고 그 두 사람과 행복한 듯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건… 나?”
심장이 점점 크게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저기 있는 건 자신이었다.
“그 사람이 보고 있던 나는 그럼 이 사람이란 이야긴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아니,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성의 얼굴을 쓸어내린 러스트가 조심스럽게 액자 뒤를 열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사진을 보고 싶었다.
“이건….”
사진을 따라 한 장의 쪽지가 딸려 나왔다.
반듯하게 접힌 쪽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개봉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보고 싶은 두 사람을 추억하며.]
쪽지를 연 러스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문장이었다.
쪽지엔 장문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먼저 떠난 두 사람을 추모하는 한 사람의 고독한 독백.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문장 문장마다 서린 진한 슬픔은 이 사람이 그 두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한송이. 박건우
평생 잊지 못할 두 이름을 여기 내 가슴에 묻는다.
사랑하고, 사랑한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다음 생엔 내가 아닌 더 나은 남자.
더 나은 아버지를 만나길 바란다.]
“……?”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은 러스트는 왼손을 뺨에 가져갔다.
자신은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흑…. 흑흑.”
자신이 울고 있단 걸 인지하자 깊은 흐느낌이 올라왔다.
‘나 왜 울고 있는 거지?’
몰랐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 같았다.
“한송이.”
한참을 울고 있던 러스트의 입에서 하나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송이.
그날 밤 형만이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말을 자신은 ‘애송이’의 송이라고 해석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때 그가 말하려고 했던 건 한송이.
여기 적혀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이름이었다.
“기억났어. 내 이름.”
안개처럼 뿌옇게 끼어 있던 장막이 눈물에 씻겨 한 꺼풀 걷히는 기분이었다.
지워졌던 이름들이 떠올랐고, 뿌옇게 번져 있던 얼굴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기억이 돌아온 건 극히 일부였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 눈물을 흘릴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너도… 이 세상에 없는 거야?”
러스트가 앳돼 보이는 소년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슬프다는 말로는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슬펐다.
“난 죽었어. 그럼 난 누구야?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죽음의 순간 자체는 아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추모글이 말해 주고 있었다.
자신은 죽었다고.
그렇다면 자신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단순한 기억 상실? 혹시 내가 기억을 잃은 채로 실종되거나 한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 러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형만이 거기서 그런 태도를 보일 리가 없었다.
오히려 울며, 기뻐했겠지.
“적어도 그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난 죽은 거일 거야. 그럼 난… 움직이는 시체인 거야?”
처음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차가운 제단 같은 곳에 누워 있었다.
마치 제물로 바쳐진 사람이나.
관속에 누운 사람처럼.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다리에 힘이 풀린 러스트가 털썩 주저앉았다.
형만을 보고 싶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죽었지만, 죽어 있지 않은 존재.
살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존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질적인 존재인 자신이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