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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11화 (211/357)

211화

* * *

“아무리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이것밖에 안 됐었나?”

회전의자에 몸을 기댄 서진이 이야기했다.

그의 앞에는 수호가 있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삼자의 난입을 포함한 여러 변수. 그걸 감안하더라도 실망인데. 선대 눈이었다면 분명 임무를 완수했을 거다. 압도적인 힘과 질서 앞에 잔재주는 잔재주에 불과하니까.”

“…….”

수호의 침묵에 서진이 턱을 괴었다.

“듣자 하니 녀석을 눈앞에 두고 그냥 물러났다던데, 왜지?”

“더 잡고 싶은 녀석이 생겨서 말입니다. 거기서 사냥이 끝나면 녀석을 쫓을 명분이 사라질 거라 판단했습니다.”

“더 잡고 싶은 녀석이라면… 난입했다는 녀석들 중 하나인가?”

“네.”

“그런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임무를 그르쳤단 건가? 태스크 포스의 눈이라는 자가?”

서진의 말 한마디에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릅뜬 그의 눈빛은 차갑디차가웠다.

“잡기 쉬운 먹잇감과 잡기 어려운 먹잇감. 이왕 잡을 거면 더 어려운 먹이를 잡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당한 굴욕감 때문인가? 이그노얼 나이트메어. 명색이 헌터 사냥꾼이 그 꼴을 당하고 돌아왔으니.”

담배를 꺼낸 서진이 불을 붙였다.

“…….”

“그 침묵은 긍정의 침묵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서진이 짙은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수호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는 건 아직 이 일에서 손을 뗄 생각이 없다는 건가? 그렇게 흉한 꼴을 보이고도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겠다고?”

“사건은 제가 책임지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반드시.”

수호가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담배를 문 서진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타들어 가는 담배는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후~ 그래. 좋다. 한 번 더 믿어보도록 하지. 이 이상 날 실망시키지 말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보이겠습니다.”

뒷걸음으로 물러난 수호가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보고를 마친 수호는 복도를 걸었다.

“쿠스쿠스.”

그런 그의 귓가를 스치는 특이한 웃음소리.

소리에 반응하지 않은 수호는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망할 꼬맹이.”

앞을 스쳐 가는 수호에게 발끈한 사내가 수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TF의 마크가 새겨진 제복을 입은 그는 독특한 디자인의 단안경을 끼고 있었다.

“임무에 실패했다지요. 오~ 이런. 태스크 포스의 눈이라는 자가 실패 따위나 하고 오다니. 정말 창피하기 그지없군요. 저라면 치욕스러워서 하수구에 머리를 박겠어요, 신입.”

그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서 있던 사내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같은 제복을 입은 그 역시도 단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앞선 사내와는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그딴 이야기나 하자고 여기 죽치고 있던 거냐? 하! 어지간히 할 짓도 없나 보군.”

수호가 자신을 붙잡은 손을 쳐냈다.

지한과 지훈.

쌍쌍들이 세트로 붙어 있는 이 두 녀석은 태스크 포스 내에서도 제법 위치가 있는 녀석들이었다.

자신이 ‘눈’이라 불리는 것처럼 이 녀석들 또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TF의 쌍성.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이름은 TF가 공인한 자리이지만, 이 녀석들의 이름은 ‘자칭’이란 것이었다.

“쿠스쿠스. 예민한 거 보니. 기다린 보람이 있구만.”

“국장님도 참 성급하시지. 신입 따위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과분한 자리와 기대를 주시니 실망하시는 거 아니야? 기대를 하면 실망하게 되는 법인데.”

수호의 앞을 가로막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거냐? 그럼 슬슬 꺼져 주지 그러냐.”

수호가 안대에 손을 올렸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말버릇하곤. 선배님들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이게 다 국장님 탓이에요. 자리가 사람을 망친 거라고요.”

“선대 눈이 계셨으면, 얼마나 한탄을 하실까 몰라? 자기 후임이 고작 폐급 하나 정리 못하는 폐급인 걸 알면 말이야.”

“그러게나 말이에요.”

“…….”

두 사람의 어깨를 친 수호는 가던 길을 계속했다.

이 두 사람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물어뜯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망할 꼬맹이! 아직 선배님들 말씀 안 끝났어!”

수호의 멱살을 움켜쥔 지한이 수호를 벽으로 밀쳤다.

“1절만 하지 그러냐? 슬슬 짜증 나는데.”

“오~ 그러지 말고 우리 이야기 좀 들어봐요. 우리가 여기 있던 건 꼭 당신을 헐뜯기 위함만은 아니니까요.”

지훈이 수호의 구겨진 옷 주름을 툭툭 털며 폈다.

“누가 뭐래도 우린 당신의 선배들이에요. 아무리 부족하고 밉상인 후배라도 보듬어 주고, 품어 주는 게 선배의 미덕 아니겠어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당신이 실패한 그 임무. 특별히 저희가 대신 처리해 줄까 하는데. 어떤가요? 가서 국장님께 말하려고 그러는데. TF의 쌍성이 나서면 해결 못할 사건이 없다고요.”

어깨를 맞댄 두 사람이 동시에 홀스터를 열었다.

수호를 겨눈 두 자루의 권총.

코어가 되는 푸른 핵은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쌍성처럼.

지훈의 이야기가 끝난 그때.

쾅! 하는 큰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건 내 먹잇감이다.”

복도 벽을 친 수호가 분노를 표했다.

“쿠스쿠스~ 아이고 무서워라.”

“당신은 이미 한 번 실패한 임무입니다. 이미 당신의 역량으론 처리할 수 없단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죠. 능력 밖의 일을 고집으로 잡고 있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고 양도하시죠. 저희 쌍성이 신속 정확하게….”

“내 먹잇감이라고 했다. 이미 끝난 이야기다.”

“오~ 그거 설마. 국장님이랑 이야기가 끝났다고 하는 건가요? 세상에. 그렇게 추하게 실패하고 고집까지 부렸어요? 근데 그걸 국장님이 허락해 주셨다고요? 오, 세상에. 국장님은 대처 어디까지 어리광을 받아 주실 생각이신 걸까요?”

“…….”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수호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쿠스쿠스. 저 망할 꼬맹이의 저런 표정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하네. 미간이 꿈틀거리는 거까지 볼 수 있었다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말이야.”

권총을 집어넣은 지한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 그렇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렸는걸요. 신입이 처리 못한 일을 우리가 처리해서 국장님의 사랑과 인정을 한 몸에 받고 싶었는데요.”

같은 동작으로 권총을 넣은 지훈이 유감을 표했다.

단기적인 목표는 이뤘지만, 장기적인 목표에선 차질이 생겨 버렸다.

“쿠스쿠스. 차질은 무슨. 아무 문제 없어.”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요?”

“다른 사건이랑 엮어서 처리하면 그만인 거 아니겠어? 그럼 망할 꼬맹이랑은 상관없는 다른 사건이 되는 거라고.”

“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역시 머리가 비상하다니까요.”

“쿠스쿠스. 이 정도야 보통이지. 이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동시에 단안경을 만진 두 사람이 팔등을 부딪쳤다.

* * *

“보스~ 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아마 제 마음속을 열어보시면 까맣게 타 있을 거라고요.”

글러트니가 있는 지하 감옥.

아무도 없는 허공을 보며 이야기한 엔비가 몸을 배배 꼬았다.

자리에는 그녀 외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보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우웩…. 콧소리 뭐야? 소름 끼쳐. 혼자 지랄할 거면 저 멀리 떨어져서 하라고.”

조금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프라이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손엔 잔뜩 분 인간의 살점이 한 뭉텅이 들려 있었는데, 살점에선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프라이드의 앞엔 글러트니가 앉아 있었다.

강아지풀을 바라보는 고양이처럼 글러트니의 머리는 고깃덩이를 따라 움직였다.

“지금 뭐라고 했니, 귀염둥이 프라이드?”

“아무것도.”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눈총에 프라이드가 시선을 피했다.

“글러트니.”

볼에 바람을 넣은 엔비가 글러트니를 불렀다.

“먹어도 돼?”

“그래. 먹어도 돼.”

엔비의 말이 떨어지자 글러트니의 입에서 대량의 침이 흘러내렸다.

“잘 먹겠습니다!”

순식간에 프라이드를 덮치는 글러트니.

빠르게 뒤로 물러난 프라이드는 들고 있던 살점을 버렸다.

긴 혀로 살점을 휘어 감은 글러트니는 한입에 살점을 삼켜 버렸다.

“뭐 하는 거야?! 진짜로 물릴 뻔했잖아!”

“인과응보야. 자업자득이라고.”

“칫…! 순 자기 멋대로라니까.”

프라이드가 미간을 구겼다.

“근데 직접 보니까 어때? 우리 글러트니, 확실히 전보다 말 더 잘 듣지?”

주제를 돌린 엔비가 물었다.

게걸스럽게 살점을 씹어 먹은 글러트니는 창살 사이로 삐져나온 살점들을 보고 있었다.

“잘 듣긴 개뿔. 내가 보기엔 똑같은 것 같구만.”

“그건~ 네가 우리 글러트니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야. 우리 귀염둥이 아가한테 관심 좀 가져 달라고.”

“귀염둥인 개뿔. 그리고 순서로 치면 이 녀석이 나보다 먼저잖아. 얘가 아가면 난 뭐 신생아야?”

“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도 제대로 못 쓰고, 엄청 헤매긴 했었지. 갓난아기처럼. 그땐 꽤 귀여웠었는데.”

“귀엽긴 개뿔.”

프라이드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글러트니. 혼잣말했었어.”

그런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음?”

고개를 젖힌 프라이드의 눈에 러스트의 모습이 비쳤다.

어두침침한 옷을 걸친 러스트는 거기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넌 또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거냐? 무슨 그림자야?”

뚱한 얼굴의 프라이드가 불만을 표했다.

정말이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기 빼곤 다 비정상인 놈들투성이란 말이다.

“프라이드보다 먼저.”

“하아~? 있으면 있다고 말이라도 좀 하라고. 심장마비 걸리면 책임질 거야?”

“혼잣말했었어. 글러트니.”

프라이드의 물음을 흘려넘긴 러스트가 주제를 원상태로 돌렸다.

“혼잣말을 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또 배고파’, ‘고기가 먹고 싶어.’, ‘배가 비었어.’ 뭐, 이딴 말이나 했겠지. 맞지?”

“으응. 아니. 아니야.”

“아니라고?”

“응. ‘…를 먹고 싶어.’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으면 분명 그렇게 말했어.”

“하아~?”

프라이드가 황당함을 표했다.

“너 내 말 안 듣고 있었지? 아까 내가 한 말이랑 똑같잖아.”

“으응. 아니야. 달라. 고기 아니었어. 발음이 부정확해서 정확한 단어는 못 들었는데, 사람 이름 같았어.”

“사람 이름이라고?”

프라이드가 의문을 표한 그때.

공간의 균열이 벌어졌다.

“보스~ 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아마 제 마음속을 열어보시면 까맣게 타 있을 거라고요.”

포탈에서 걸어 나오는 보스를 맞이한 엔비가 아까 연습했던 대사를 그대로 반복했다.

“보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신데요.”

보스의 얼굴을 살피던 엔비가 물었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어딘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인 건 넷이 다 인가?”

안경을 고쳐 쓴 보스가 네 사람을 쭉 훑었다.

“슬로스랑 라스는 집에 없고요. 그리드는 오라고 말해뒀는데… 조금 늦네요.”

“윤현은?”

“아…. 따로 말씀 없으시길래. 방에 혼자 뒀어요. 물론, 문단속은 철저히 해뒀고요.”

“그래? 엔비. 가서 두 녀석을 데려와 주겠나? 두 사람과 나눠야 할 대화들이 좀 있는데.”

“네! 그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 엔비가 참방거리며 자리를 떴다.

걸음을 옮긴 보스는 글러트니에게 다가갔다.

보스의 등장에 글러트니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엔비가 사라진 곳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글러트니.”

보스의 부름에 글러트니의 몸이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특별히 무게를 잡거나 공포심을 조성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글러트니, 아무 잘못 안 했다. 글러트니. 말 잘 들었다.”

“몸 상태는 좀 어떠냐?”

“글러트니. 아픈 데 없다. 글러트니 건강하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글러트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보스는 러스트를 바라보았다.

“…….”

점점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에 러스트는 불안감을 애써 잠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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