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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10화 (210/357)

210화

“눈에 띄고 싶지 않으셨다면, 조금 정돈 자신을 숨기시는 것도 생각해 보지 그러셨습니까? 금발에 실눈을 한 누나라고 어린아이들까지 알고 있던데요.”

동제가 고개를 기울였다.

“옷도 갈아입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선글라스도 벗었는데요. 완벽한 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들은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음…. 그런가요.”

나은이 옆머리를 쓸어내렸다.

“근데 그렇게까지 하셔 놓곤 정작 제 앞엔 나타나지 않으셨네요.”

“당신이 무사한 걸 알았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거라면,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 스스로의 선택이라. 그래요. 그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이긴 하겠죠.”

나은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엔 한 가지 특이점이 있었는데, 안구에 당연히 있어야 할 눈동자의 존재가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의 눈을 채우고 있는 건 흰자위뿐.

소름 끼칠 수도 있는 그녀의 눈이었지만, 동제는 침착했다.

그녀의 눈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제가 어떻게 해서 TF를 나오게 되었는지. 혹시 거기까지 알고 계시는지요.”

“아니요. 아쉽게도 거기까진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나은의 물음에 동제가 고개를 저었다.

동제라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경위를 통해 TF를 나오게 되었는지.

동제는 알지 못했다.

“동제 씨는 당구 좋아하시나요?”

“적당히 즐길 줄은 압니다.”

“두 개의 공이 부딪치면 한쪽이 밀려나게 돼 있는 법이죠. 전 홀에 빠진 8번 공이고요.”

“8번 공?”

동제가 의문을 표했다.

8번 공이 의미하는 게 분명 있을 텐데,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검은색의 8번 공은 흰색 공과 정반대되는 색상의 공이죠. 8번 공격에 실패하면 그건 곧 상대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는 셈이 되죠. 그렇기에 8번 공은 ‘선택’을 의미합니다.”

“선택….”

“저도 그리고 그 사람도 선택을 한 겁니다. 그리고 전 그 사람을 이겨 내지 못했죠.”

나은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사람이라면…. 역시 조서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TF의 눈이었던 당신이… 패배했단 말씀이십니까?”

동제의 물음에 나은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동제 씨가 절 찾을 수 있다면, TF도 충분히 절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찾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 죽은 사람. 그들은 제게 간섭하지 않고, 저 역시도 그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게 제게 채워진 족쇄입니다.”

“…….”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도,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돈 것도 다 그 사람이 원한 거죠. 그가 그렇다고 선언한 이상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나은의 이야기에 동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수녀로서 생활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한 번 더 거처를 옮기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동제가 마지막으로 파악했던 그녀의 거처로 그녀를 찾으러 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그녀가 살았던 동네 역시도 이곳이 아니었다.

덕분에 첫날 그녀를 찾으려던 시도는 완전 수포로 돌아갔었다.

“강요는 없었습니다. 둘 다 제가 원해서 그랬을 뿐. 여기라면… 몸도 마음도 세상과 동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임나은도, 눈도 아닌 테레사 수녀로 있는 동안은요.”

고개를 돌린 나은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의 따스함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당신이 제게 무슨 볼일이신가요? 이제 와서 절 찾은 이유란 게 뭔지 저도 듣고 싶은걸요.”

“태스크 포스가 변했단 건 알고 계시겠죠?”

“…그쪽 일에선 손 뗀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알고 계실 텐데요? 그가 있던 시기와 당신이 있던 시기는 겹치니까요. 게다가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그렇다고 선언한 이상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내부 사정을 모르면 그렇게 말할 순 없을 겁니다.”

“…….”

“한 가지 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면 당신이 세상과 동떨어지고 싶단 생각을 하진 않으셨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동제의 물음에 침묵이 흘렀다.

“…후훗.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말 하난 정말 잘하시네요. 그사이에 더 느신 것 같기도 하고요.”

감고 있던 그녀의 눈이 싱긋 웃어 보였다.

“사건으로 알게 된 사람 중 하나가 TF의 타깃으로 찍혔습니다. 전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인가 보죠?”

나은이 흥미를 보였다.

“…아니요. 서로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입니다.”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라. 그런 사람을 위해 왜 그렇게 움직이시는 건지요? 제가 보기에 지금 동제 씨는… 굉장히 간절해 보이는데요.”

“…‘피의 금요일’이라 불리던 사건. 기억하고 계십니까?”

동제가 깍지를 꼈다.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조용한 골목길에서 일어난 집단 살인사건. TF가 도착했을 때 현장에 있던 건 사지가 절단된 채 널려 있는 사람들의 시신과 피범벅이 된 헌터 한 명뿐이었죠. 김민찬 헌터. 제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 그 이름이었을 겁니다.”

“…….”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동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혹시 그 사건의 끝이 어떻게 맺어졌는지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기억하고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진 않네요.”

나은이 말을 아꼈다.

피의 금요일.

김민찬 헌터의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그럼 그 사건을 담당했던 TF의 핵심 인력이 누군지는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은.

조서진.

당시 떠오르던 슈퍼 루키였었다.

“…….”

심호흡을 한 동제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와 민찬이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각자의 일과 위치는 달랐지만, 부모님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을 만큼 절친한 사이였죠.”

동제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TF가 조사를 시작했을 때 전 민찬이에게 보고 들은 것만 진실되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거면 오해도 풀릴 거라고 생각했죠.”

“…….”

“이제 와선 제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말과 행동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후회할 일이겠죠.”

동제의 시선이 나은에게 향했다.

“조서진은 민찬이를 범인이라 확신했습니다. 아니…. 민찬이가 범인이 아닌 것 따윈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겠죠. 그자는 민찬이를 법정에 세웠고, 여러 상황적 증거들을 제시했습니다. 사건의 증인이 민찬이 외엔 없었기에 민찬이의 증언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침을 뚝뚝 흘리는 거구의 사내에 대한 이야기는 그대로 묵살되어 버렸죠. 반대로 TF가 제시한 증거들은 민찬이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인정되었고요.”

“…….”

“1심 판결 이후 전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단 걸 알았습니다. 모든 걸 제쳐 두고 민찬이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움직인 건 그때부터였죠. 증거를 모으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찾아냈죠. 현장에 있던 제3의 인물에 대한 단서를. 민찬이의 증언을 토대로 찾아낸, 지워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

“치열한 법정 다툼이 있었지만, 2심의 판결은 무죄. 그때 보았던 조서진의 얼굴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굴욕감, 모멸감. 서류를 구기는 그자의 얼굴에선 악의까지 느껴졌습니다.”

동제의 긴 이야기에도 나은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까.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민찬이의 상태는 어딘가 좀 이상했습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하지만 민찬인 제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 피해 다니는 것 같았죠.”

깊은 한숨을 내쉰 동제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그게 제가 기억하는 민찬이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 녀석은… 자기 집에서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죠.”

동제의 머릿속에 사건 현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인은 목 졸림으로 인한 질식사.

외부 출입의 흔적은 없었다.

“자살.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습니다. 민찬이에겐 살인자란 낙인이 찍혔고, 녀석이 쌓아 왔던 모든 것이 통째로 부정당했죠.”

동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확실한 반론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이미 무죄를 받았고, 당당했습니다. 범인은 절대 민찬이가 아니었고 녀석이 죽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습니다. 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앞에 편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죽은 민찬이에게서 온 편지였죠.”

“…편지 말입니까.”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협박당하고 있다고. 가족을 인질로 자백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저나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기에 이런 선택을 한 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녀석은… 민찬이는 자살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자살을 당한 거였죠.”

차분하게 이야기를 마친 동제가 잠시 호흡을 정리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제겐 TF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들이 관여하는 모든 사건에 관여할 힘도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제 주변에서 그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게 이기적인 제 바람입니다.”

“…그렇군요. 당신이 왜 움직이고 있는 건지 잘 들었습니다. 긴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나은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동제 씨, 당신이 뭘 바라고 절 찾아왔든지 전 당신의 기대에 부응해 드리지 못할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TF에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두 손으로 찻잔을 쥔 나은이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의 의지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당신께 드리고 싶은 부탁은 TF를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 부탁이란 거, 들어 보도록 할까요? 제가 그 부탁을 어떻게 할지는 미래의 제게 달렸겠지만요.”

동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사람들?”

“네. 전 지금 TF가 조사 중인…. 아니, 조작 중인 사건의 진범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진범을 찾아서 사건을 조작하지 못하게 하실 생각이신가 보군요.”

“네. 그들은 테러 외에도 살인까지 저지를 집단입니다. 무고한 헌터분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에도 TF는 그들에게 크게 반응하고 있지 않습니다. 헌터 길드와 태스크 포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제정신이 아니란 소리겠죠. 물론. 둘 다일 수도 있고요.”

“…….”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제가 할 일에 변함은 없습니다. 제가 찾으려는 집단의 이름은 팬텀. 제가 당신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그들의 색출입니다.”

“팬텀. 귀신이라…. 엑소시스트라도 되어 달라는 것처럼 들리네요.”

“TF와…. 아니, 조서진과 한 약속엔 위배되지 않을 겁니다.”

“확실히 애매한 접점에 걸쳐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긴 하네요. 관여하는 것도, 관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사이 어디쯤인 것처럼 보여요.”

“그럼….”

나은의 긍정적인 반응에 동제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은의 손이 한 발 더 빨랐다.

앞으로 뻗은 그녀의 손은 숫자 1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말입니까?”

“네. 당신의 부탁을 어떻게 할지는 제가 직접 당신이 돕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정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성함이….”

“용주. 이용주 헌터입니다.”

“이용주 헌터란 분을 만나 본 미래의 제게 그 결정을 양도하고 싶은데, 어떤가요? 뭐, 제가 찾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요.”

“알겠습니다. 그럼 근시일 내에 다시 뵙는 걸로 하죠.”

이야기를 마친 동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일어나시는 건가요? 먼 길 오셨을 텐데. 좀 쉬다 가시죠.”

“아닙니다. 바로 할 일이 있어서.”

“그런가요.”

동제의 고사에 나은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을이 드리우던 정원엔 옅은 어둠에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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