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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09화 (209/357)

209화

“아니. 그런 거 아닌데.”

들뜬 반응에 예은이 확 찬물을 끼얹었다.

친구들이 원하는 반응 같은 건 예은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에이~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갔지.”

“맞아. 힘세고 강력한 우리 포돌이가 있는데! 어딜!”

숟가락을 든 한 여학생이 손전등을 켜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렇지만 우리도 내년이면 성인이잖아. 혹시가 혹시 아닐까 했지. 아님 말구.”

실망에 찬 여학생이 소심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럼 역시 친오빠?”

“아니….”

“몇 살이야? 우리랑 나이 차이 별로 안 날 것 같던데.”

“그러니까 아니….”

“대기업 다니셔? 고3이라고 지금 더 챙겨 주시는 거야? 아니면 태워다 달라고 막 졸랐어?”

“그러니까 아니래도.”

쏟아지는 친구들의 질문에 예은이 손을 저었다.

정말이지.

질문을 했으면 답을 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친오빠가 아니야? 그럼?”

친구의 물음에 예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말해야 오해 없이 잘 넘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아는… 오빠?”

말을 던진 예은이 눈알을 굴렸다.

“아는 오빠?!”

“응. 아는 오빠.”

예은의 답변에 친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어떻게 알게 된 오빤데?”

“교회? 성당? 아니면 옆집 오빠?”

“아니면 카페나 독서실?”

“혹시 전설 속에나 있는 소꿉 오빠인 건 아니지?”

또 한 번 질문을 쏟아 냈다.

“아…. 우리 오빠의 지인분이라고 하면 맞을까?”

“오빠의 지인?”

“맞긴 뭘 맞아? 그걸 왜 우리한테 묻는 건데? 확 마. 맞을래?”

“그런 분이 왜 널 모셔왔다 모셔가는 거야? 공주님처럼.”

“아… 그게….”

예은이 곤란함을 표했다.

사실대로 말하긴 좀 그런데….

“아! 실은 집에 문제가 좀 생겨서 그거 고칠 때까지 다른 곳에 있기로 했거든. 학교랑 좀 멀어서 오빠가 근처에 사는 잘 아는 지인분한테 부탁했대.”

“등교야 그렇다 해도 하교까지?”

“아? 으응.”

웃는 예은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거짓말하는 게 영 익숙지가 않았다.

“흐흐.”

어딘가 음침한 미소를 지은 한 여학생이 예은의 손을 잡았다.

“그럼 예은이 너랑은 뭔가 굉장한 사이는 아니란 거네?”

“아…. 그렇지?”

앞머리로 두 눈을 가렸던 친구가 눈을 반짝였다.

“그분 성함이 어떻게 돼? 나이는? 여자 친구는 있으시데?”

“아…. 그게.”

뭔가를 말하려던 예은의 반대편 손을 누군가 확 낚아챘다.

“오빠가 있었어? 진작 말을 하지. 어디~ 우리 오라버니 사진 좀 볼까? 주변을 보아하니 우리 오라버니도 한 잘생김 하실 거 같은데.”

“맞아.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산다잖아.”

“게다가 유전자는 거짓말을 안 하지.”

끈적하게 달라붙는 친구들의 대시에 예은의 눈썹이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뭔가.

상황이 굉장히 곤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아니! 그러니까! 전화번호 좀…!”

“미안…. 지금 바쁘시대. 내일 보자.”

친구들을 애써 떼어 낸 예은이 문을 닫았다.

“재미있는 친구들이네요.”

엑셀을 밟은 동제가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친구들이긴 하죠.”

예은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시달리셨단 얼굴이네요.”

“하아~ 어찌나 괴롭히던지. 쉬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니까요. 밤새운 것보다 더 피곤해요.”

“하하. 그래도 보기 좋던데요. 다들 친해 보이고.”

“특별 조사관님한테 관심 있는 애들이 그새 생겼더라고요. 다들 얼마나 캐묻던지….”

예은이 등받이에 머릴 기댔다.

하루 종일 들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이거 의도치 않게 제가 공부에 방해를 해버린 셈이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조사관님이 뭘 죄송해요! 사과하지 마세요!”

깜짝 놀란 예은이 고개를 저었다.

동제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잘생겼다…?’

예은이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동제를 바라보았다.

이성으로서 동제를 바라본 적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랬다.

외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순 없지만, 객관적이라 통용되는 미남의 기준에서 보면 동제는 분명 미남형에 들어갔다.

젠틀하고, 능력도 있고, 매너도 좋았다.

친구들의 그런 반응이 딱히 이상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있잖아요. 조사관님 학창 시절에 인기 좀 있으셨죠?”

“글쎄요. 그렇게 많진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에이~ 거짓말.”

“제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벌써 제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셨잖아요.”

“제가 외부인이고, 사회인이라 색안경이 씌워져서 그런 걸 겁니다. 신비로움은 호감으로 작용하기도 하거든요.”

“음….”

예은이 동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 보이시는데, 뭔가 어른스러운 말만 골라 하시네요.”

“그렇게 보이나요? 그렇다면 사회와 지위에 절 맞춘 결과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뭐, 꼭 그렇지만도 않고요.”

“그것도 엄청 어른스러운 말인 거 아시죠?”

“하하. 그런가요?”

“그렇다고요.”

문제집을 꺼낸 예은이 책장을 넘겼다.

오늘 풀어 보려고 기껏 가져온 건데, 결국 한 장도 건드리지 못했다.

“15번 문제. 문제가 좀 잘못된 것 같네요.”

신호등에서 잠시 멈춘 동제가 이야기했다.

“15번이요?”

놀란 예은이 뒤로 넘겨 놨던 페이지를 확인했다.

이산확률변수 X, Y가 제시된 확률변수의 평균을 묻는 문제였다.

답지로 넘긴 예은은 정답의 풀이를 확인했다.

이 문제는.

오류가 있어 전원 정답 처리 됐던 문제라고 한다.

“진짜네. 특별 조사관님, 이거 지금 눈으로만 보고 푸신 거예요?”

“손등에 손글씨로 대충 적어 봤습니다.”

“손글씨…?”

예은이 운전대를 잡은 동제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특별 조사관님!”

동제의 등받이에 바짝 붙었다.

“괜찮으시면 혹시 저 공부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시간 나실 때 잠깐만요! 네?”

예은의 눈이 반짝였다.

뭔가 굉장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 *

노을이 드리운 어느 수녀원.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수녀원 마당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문을 지난 검은색 벤츠 하나가 멈춰서는 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서 내린 이는 동제였다.

수녀원의 철문 앞에 선 동제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손질된 정원엔 비둘기가 조각된 분수가 하나 있었고, 아름다운 조형의 은색 종이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와~ 아저씨 키 완전 크다.”

“어디서 왔어요?”

“아저씨 뭐 찾는 거 있어요?”

철문을 밀고 들어온 동제에게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소심하게 다른 친구 뒤에 숨어 있는 아이도 있었다.

“찾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찾고 있는 사람이요?”

“어린애요? 아니면 어른이요?”

“오빠는 왜 어른인데 존댓말 써요? 네?”

동제의 한마디에 아이들의 입이 쉼 없이 움직였다.

“혹시 이렇게 생긴 수녀님 알고 있나요?”

자상한 미소를 보인 동제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사진 속엔 금발 머리를 한 여인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음…. 잘 모르겠는데.”

“저 알아요! 저! 테레사 수녀님!”

손을 번쩍 든 아이가 폴짝폴짝 뛰었다.

“테레사 수녀님?”

“아~! 진짜네. 진짜 닮았어.”

“선글라스 쓰고 있어서 다른 사람인 줄 알았네. 머리도 묶고 있고.”

“대박! 아저씨, 저 그 사진 주면 안 돼요? 테레사 언니 놀리는 데 쓰고 싶은데.”

옹기종기 모여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손님이 있을 거란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은데요.”

그때.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아이들의 목소리 사이로 섞여들었다.

무릎을 펴고 일어난 동제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일자로 늘어선 나무복도를 타고 두 수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제법 통통한 체형에 연륜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윤기 나는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사람이었다.

“무례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동제가 사진을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드디어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짧은 대화를 나눈 두 수녀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했다.

통통한 수녀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금발의 수녀는 동제에게 다가왔다.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금발의 수녀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수녀님, 계단 조심해요!”

“수녀님, 이 오빠 누구예요?”

“이 형아가 누나 찾는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수녀에게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남녀 불문하고 궁금해 죽겠다는 아이들이었다.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시죠. 안내하겠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치사해요!”

“맞아요. 저희도 듣고 싶은데, 들으면 안 돼요?”

수녀의 한마디에 아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착한 아이들은 수녀님 말 잘 듣는 거지요?”

“그럼 저 나쁜 아이 할래요!”

“그럼 나쁜 아이는 오늘 간식 없어도 되는 거죠? 오늘은 수제 딸기 파이였는데, 아쉽게 됐네요. 남는 건 착한 아이한테 더 줘야겠네요. 누가 착한 아이일까?”

“저요!”

“저두요!!”

“저도… 그냥 착한 아이 할게요.”

수녀는 아이들의 불만을 능숙하게 진정시켰다.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는 동제를 안내했다.

게스트 룸으로 안내한 테레사는 방문을 닫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는 따스한 베이지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편한 자리에 앉으시죠.”

수녀의 안내에 동제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활기차서 보기 좋네요. 서로 사이도 좋아 보이고.”

“밝은 아이들이죠. 다들 힘들고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헐뜯지 않고, 보듬어 줄 줄 아는 아이들이라 저도 좋아합니다.”

쿠키와 전병들을 내온 수녀가 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절 찾아오셨다고요?”

동제와 마주 앉은 수녀가 물었다.

“테라사 수녀…. 지금은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계신 모양이군요.”

동제가 차 한 모금을 머금었다.

“…….”

“제 목소리, 혹시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임나은 씨. 아니, 이렇게 불러드리는 게 익숙하려나요? TF의 눈.”

동제의 이야기에 침묵이 흘렀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침묵을 깬 나은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이름 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들이었다.

“그쪽이 누구신지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차동제 씨. 종종 교류도 있던 사이이지 않습니까?”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기억할 뿐인데, 영광일 게 뭐 있나요.”

나은이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아름답고 인자한 그녀의 모습은 동제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용케도 절 찾으셨네요. 나름 굉장히 조용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서를 종합하고 분석하는 게 제 전문 분야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꼭 그렇게 조용히만 살고 계신 것도 아닌 모양이던데요.”

핸드폰을 꺼낸 동제가 화면을 보였다.

화면엔 어느 자그마한 지역 신문의 기사가 하나 스크랩되어 있었는데, 보석털이 무장 강도 3명을 혼자 제압한 시민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엔 사진이 하나 실려 있었는데, CCTV 속 여인의 뒷모습은 나은과 닮아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동제의 이 행동은 말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동제는 알고 있었다.

지팡이도 짚지 않은 그녀가 이곳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단순히 기억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앞을 볼 수 있는 자였다.

심안.

그녀에겐 그게 있었으니까.

“설마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찾아오셨다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장난이 좀 지나치신 것 같은데요.”

“이 기사를 스크랩 한 건 당신이 사망했단 소문이 돌고 얼마 있지 않아서입니다. 보석상의 위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죠. 주변을 수소문해서 당신에 대한 정보를 모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더군요.”

“그런가요? 그것참 이상하네요. 눈에 띌 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요.”

“실종된 고양이 찾기, 신호 무시 차에 치일 뻔한 아이 구조. 보이스 피싱범과 각종 좀도둑 검거…. 더 말씀드려 볼까요?”

“그런 거라면 꼭 제가 아니어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고목 나무를 수직으로 뛰어 올라가는 사람은 보통 없죠. 아이를 구하려고 차를 반파시키는 사람도 보통 없고요.”

“아…. 보통은 그렇지 않나 보군요?”

“네. 절대로요.”

동제가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이 사람의 ‘보통’은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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