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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06화 (206/357)

206화

‘눈의 스킬을 어떻게든 해야 해…!’

그리드를 타깃에서 배제한 용주가 수호에게 모든 공격을 집중했다.

수지는 의료 헌터.

스킬만 사용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을 거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에게 스킬을 돌려줘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소링 블레이드!”

‘아웃레이지 스내치.’

피하지 않은 두 개의 스킬이 정면에서 격돌했다.

수호의 칼날은 용주의 복부를 길게 찢어 놓았고.

미끄러지는 수호를 정면에서 찍어 누른 용주는 그대로 수호를 지면에 처박았다.

피 폭발을 뚫고 나오는 수호.

“흐흐. 흐흐흐”

추격하는 용주의 뒤를 잡은 그리드는 데스 사이드를 휘둘렀다.

하늘거리는 날개를 관통하는 데스 사이드.

용주의 등을 후벼 판 칼날엔 붉은 피가 짙게 묻어 나왔다.

‘큭…!’

순간적으로 그리드의 움직임을 놓쳤던 용주는 반격 대신 돌진을 택했다.

“멈춰.”

수호와 격돌하는 용주의 입에서 무심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단 것 따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하! 벌레 녀석,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멈추라고 했다. 네 그 스킬.”

수호를 향한 용주의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수호를 잡아 정보를 얻는다.

지금 용주의 머릿속에 그런 건 없었다.

지금 용주의 머릿속에 있는 건 수호의 스킬을 부숴야 한다는 생각뿐.

수호를 죽여서라도.

이걸 멈춰야만 했다.

“앙? 멈추고 싶으면 힘으로 부숴 보시지.”

“…….”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직감한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녀석의 말처럼 힘으로 부숴 버리는 수밖에.

‘광폭화!’

룬검을 내던진 용주에게서 폭발적으로 마나가 터져 나왔다.

끓어오르는 피의 증기.

용주의 몸을 감싼 핏방울은 새로운 형상이 되었고, 용주의 입가에 퍼져 나간 부패는 용주의 얼굴을 잠식해 갔다.

“뭐야…. 이건….”

놀란 수호를 강타하는 커다란 힘.

“큭!”

아파트 창을 깨고 날아간 수호는 이어지는 후속타에 건물 벽면에 처박혔다.

고통에 일그러진 눈동자에 비치는 건 사람이 아닌 무언가의 모습이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벽과 창.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붉게 물든 야수 한 마리가 떨어졌다.

끓어오르는 피 폭발.

폭발 속에서 빠져나온 원 오브 아이는 곧장 따라 나온 붉은 야수에 의해 또 한 번 내동댕이쳐졌다.

“저게 뭐야…?”

갑작스러운 폭발에 놀란 서윤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뭔가가 눈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괴수의 모습에 서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까 용주의 팔이 이상하게 변형되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뒤로 관을 지고 있는 팬텀 녀석이 따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렇다는 건… 저게 이용주…?’

모든 상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게….

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저 괴물이 이용주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스킬.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그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불안감을 대체 뭐란 말인가?

왜 자신은 지금 이토록 떨고 있단 말인가?

“카각…!”

용주의 팔을 붙잡은 수호가 용주를 내던졌다.

수호의 손등을 타곤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날카롭게 들어오는 용주의 할퀴기를 맨손으로 받아 낸 결과였다.

공중을 찬 용주는 폭발적으로 내리꽂혔다.

공격을 막아선 원 오브 아이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마나를 둘러 신체를 강화한 건가?’

형태가 바뀐 것까지는 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마나로 육체 강화하는 방식도 세상에 없던 능력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기분 나쁜 기운은 대체 뭐야?’

용주에게서 느껴졌던 기운은 분명 헌터의 그것이었다.

그것도 형편없을 정도로 보잘것없이 작은 기운.

하지만 지금 용주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건 마치….

언노운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칵…! 카각!”

소름 끼치는 이 소리.

녀석은 계속 저런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마치 언어를 잊어버린 것처럼.

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기괴함은 수호에게 어떤 감각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폴링 소울.”

뒤엉킨 두 사람 위로 떨어지는 데스 사이드.

그리드의 공격은 용주의 어깨에 그대로 직격했다.

‘심연…. 흐흐흐. 설마 안쪽에 이런 괴물이 웅크리고 있을 줄이야.’

그리드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규격 외엔 역시 그만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용주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쓰러뜨려야 할 대상마저 잃어버린 건 아닌 모양이지만, 폭주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고통에 찬 저 울부짖음이 그를 방증해 주고 있었다.

‘즉흥적이었지만, 완벽한 설계였어.’

자신을 놓아 버린 원인이라면 역시 그거일 것이다.

태영을 이용해 수지를 공격한 바로 그것.

‘그렇지만 심연은 왜 날 바라봐 주지 않는 거지?’

만족감과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녀석의 폭주의 타깃이 눈에게 고정되었느냐는 점이었다.

용주는 자신의 공격에도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반격만을 보인 용주는 계속해서 수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상한 부분이었다.

치명타를 날린 건 태영.

그리고 그 태영에게 관여하고 있는 게 자신이란 삼단 논법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용주의 타깃은 태영이나 자신이 아니었다.

* * *

“누나! 어서 치료를…!”

부러진 검을 움켜쥔 주원이 태영을 막아섰다.

움직일 때마다 찢어진 상처가 벌어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수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의식이 몽롱해지는 게 느껴졌다.

들려오는 소리들 역시도 물에 잠긴 듯 먹먹했다.

‘용주….’

수지의 눈동자에 버려진 용주의 검이 보였다.

순간 마지막에 봤던 용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피에 삼켜진 것처럼 보였었다.

기괴한 소리를 냈고, 기괴하게 움직였고, 기괴하게 네발로 땅을 짚었었다.

그리고 그때 느낄 수 있었다.

형만의 집에서 용주에게 손을 올렸을 때 느꼈었던 그 느낌을.

‘삼켜진 게 아니야.’

용주의 모습.

용주의 기운.

모든 게 낯설고 기괴했지만, 그건 분명 용주였다.

모습이 변한 직후 용주는 오직 수호만을 공격했었다.

용주가 정말 이성을 잃고 폭주한 거라면, 그랬을 확률이 높지 않겠지.

‘스킬을 돌려주려고….’

용주는 악을 쓰며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수호의 스킬을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수호를 날려 버린 것도 그 연장선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숴 깨뜨리는 게 최선.

스킬 범위 안에서 자신을 꺼내려는 게 차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스킬만 쓸 수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던 수지의 앞에 그림자가 떨어졌다.

그림자의 주인은.

승우였다.

“…….”

착지에 성공한 승우는 곧장 수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승우의 낯빛은 상당히 어두웠다.

“이주원 헌터!”

주원의 이름을 외친 승우는 자신의 지팡이를 던졌다.

안쪽에 칼날이 숨어 있는 바로 그 지팡이였다.

“힘들겠지만, 잠시만 버텨주세요.”

전투 중 승우의 지팡이를 받아 낸 주원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믿어달라는 주원의 사인.

수지를 받들어 든 승우는 용주가 뚫어 놓은 구멍과는 반대 방향으로 힘껏 달렸다.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길어 봐야 몇 분.

자신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이는… 그녀 자신뿐이었다.

* * *

“카가…. 카가각!”

단지에서 멀어진 용주는 불과 몇 분 만에 산언저리까지 이동했다.

집어 삼켜질 것만 같은 충동과 갈증.

스킬로 정립되고 나서도 그것들은 여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건 전보단 그 정도가 조금 덜하다는 것.

한번 경험해 봐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조금은 이 충동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것보다 더 크고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다른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을 죽여서라도.

진짜 범죄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수지를 살리고 싶다는 그 일념 때문일 수도.

폭풍이 더 큰 폭풍에 삼켜진 그런 것처럼.

‘거의 다 부쉈어…!’

수호의 원 오브 아이는 여기저기가 너덜거렸다.

눈도 거의 감아 실눈을 뜨고 있었고, 그를 따라다니는 하늘의 눈들도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한 방이면…. 큰 한 방이면 돼.’

용주의 등을 뚫고 네 개의 돌기가 자라났다.

달팽이 눈처럼 자라난 돌기는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나갔고, 불과 몇 초 만에 상어의 꼬리처럼 날카롭게 자라났다.

잊힌 영웅들의 성 지하 미궁에서 만났던 이름 없는 영웅과도 흡사한 그런 모습이었다.

“카각!”

‘혈기구축’으로 신체를 변이시킨 용주는 기습적으로 그리드를 붙잡았다.

“흐흐. 이건 또 새로운….”

즐거운 듯 보이는 그리드를 내던진 용주는 입을 쩍 벌렸다.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핏줄기는 용주의 입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의 원으로 응집된 힘.

페이탈 붐을 쏟아낸 용주의 다리가 뒤쪽으로 크게 밀려났다.

“……!”

“한마디로 이건… 카오스.”

수호와 그리드.

두 사람 사이로 떨어진 페이탈 붐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속으로 그리드의 가면이 날아가 부서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하늘을 지키고 있던 수십 개의 눈들이 원 오브 아이와 함께 사라지는 게 보였다.

‘됐어…!’

페이탈 붐의 폭발이 끝나기도 전에 용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그 녀석이니 걱정할 거 없다.

스스로에게 애써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 두 눈으로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

아니.

확인해야만 했다.

‘빨리…. 더 빨리…!’

전속력으로 건물을 관통한 용주는 수지가 있던 장소에 착지했다.

태영은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늘어져 있었고.

주원은 왼쪽 무릎을 땅에 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수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엄청난 양의 혈흔이 어딘가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저쪽인가.’

상황 파악을 끝낸 용주는 수지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용주의 시야에 수지의 모습이 보였다.

승우와 함께 있는 수지는 반듯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승우는….

심폐 소생을 하고 있었다.

“카각…!”

선명한 손톱자국을 새기며 멈춰 선 용주에게서 붉은 기운이 사라져 갔다.

광폭화 상태에서 벗어났음에도 용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지의 목에 있는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

수지에게 다가간 용주는 조용히 그녀의 경동맥에 손을 올렸다.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따뜻했지만, 그녀의 호흡은 느껴지지 않았다.

수지는 그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듯이.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듯이.

‘어째서….’

믿고 싶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이게 다 지독한 악몽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젠장…!’

늦었다.

그렇게 구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구해 주고 싶었는데, 구해내지 못했다.

‘다 내 탓이야….’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수지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다.

수지에게 태영을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시작하자마자 광폭화를 꺼내 들었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녀석들을 정리했더라면….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녀석들을 수지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힘이 있으면 뭐 해. 지키고 싶은 사람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바르르 떨리는 손을 움켜쥔 용주가 지면을 내리쳤다.

한심했다.

지킬 힘도.

지킬 의지도.

지킬 기회도 있었는데….

지키지 못했다.

구해 주지 못했다.

이래서야….

이래서야 그때보다 더 한심하지 않은가.

“이용주 헌터도, 안수지 헌터도 전부 최선을 다했습니다….”

참담한 얼굴의 승우가 심폐 소생을 멈췄다.

“10초만 빨랐어도… 좋았을 텐데요.”

“……!”

10초.

시간을 언급하는 승우의 이야기에 용주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늦었지만.

너무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지금은 그게 말이 됐다.

왜냐하면.

수지를 살릴 수 있는….

아니.

수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딱 하나의 방법이 지금 떠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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