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용주 오빠. 아무래도 그사이에 또 새로운 스킬을 익힌 모양이네.”
예나가 놀란 눈망울을 깜빡였다.
용주의 왼팔.
방금 제대로 본 게 맞는다면, 그건 인간의 팔이라기보다는 맹수나 괴수의 팔처럼 보였었다.
스킬의 위력은 상당…. 아니, 굉장했다.
눈의 스킬을 정면에서 보란 듯이 깨부숴 버렸다.
“아무리 스킬을 적중시키기 위함이라곤 하지만, 위험해 보이네. 여러 가지 의미로.”
그것과는 별개로, 조금은 보기 괴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가 터지고, 고인 저 현장에 더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용주의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들었다.
“…….”
용주의 변화에 서윤은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리는 모른다고 하는데, 몸은 저게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용주의 저 모습을 본 적이 있기라도 했던 걸까?
아주 가까운 곳에서 위협을 당하기라도 했던 걸까?
“괜찮은가?”
리더를 감시하고 있던 금화가 물었다.
“어…? 아,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아.”
고개를 저은 서윤이 다시 용주의 손을 바라보았다.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핏방울은 용주의 손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벌레들 주제에…. 벌레들 주제에!!”
이를 악문 수호가 안대에 손을 올렸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런 굴욕은 평생 처음이었다.
이딴 벌레들을 상대로 고전하다니.
고작 이딴 형편없는 마나를 가진 녀석들에게 이런 상처를 입다니.
이래서야 전대 눈과 비교당할 뿐이지 않겠는가?
“장난은 끝이야. 즉결 심판. 전부 죽여 버리겠어.”
수호의 분노에 하늘에 떠 있던 눈들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원 오브 아이(One of eye)!”
사방을 감시하던 눈동자들이 전부 수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수호의 머리 위로 진홍색의 빛기둥이 떨어졌다.
“…….”
빛기둥을 노려보던 용주는 미간을 좁혔다.
녀석의 등 뒤에 뭔가 생겨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갑옷처럼 보였다.
미완성 된 갑옷의 부분부분.
그의 양쪽 어깨에서부터 형태를 잡기 시작한 그것은 그의 양쪽 팔을 타고 뻗어 나갔다.
손 부위는 칼날의 형태로 구축되었다.
다리, 허리, 머리의 형태는 구축되지 않았다.
대신.
머리 위쪽으로 눈이 하나 나타났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눈동자에선 묘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설마 너희 같은 벌레 녀석들에게 이것까지 선보이게 될 줄이야. 영광으로 생각해….”
수호에게 순간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되었다.
‘…뭐지?’
이건 필히 헌터의 기운이었다.
B급. 잘 쳐줘 봤자 그 정도였다.
숫자는 하나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형 워프 장치로 오는 지원군이 더 있던 건가?’
녀석은 말 그대로 갑자기 나타났다.
분노에 지배당해서 놓쳤다든가, 정신을 딴 대 팔아서 감지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무슨 꿍꿍이인진 몰라도, 날 너무 얕봤어. 보기 좋게 깨부숴 주지.’
타깃을 변경한 수호는 산기슭을 따라 미끄러졌다.
“저 녀석…?”
“도망가는 거야?”
서윤과 예나의 목소리를 뒤로한 용주는 곧장 녀석이 뒤를 쫓았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행동 변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수호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비탈길을 따라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갔다.
그가 달린 길엔 모든 것이 베어져 있었다.
제법 연식이 오래된 나무조차 나이테를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대체….’
검을 집어넣은 용주는 네발로 땅을 짚었다.
비버가 만든 댐처럼 쌓인 나무를 타고 오른 용주는 속도를 유지한 채 도약했다.
중간에 잠깐 나온 산책로를 밟은 용주의 눈에 두 명의 등산객의 모습이 비쳤다.
“뭐, 뭐야?”
“사람…?”
용주를 발견하기 전부터 이미 놀라 있던 그들이 눈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힐끔 바라본 용주는 계속 아래쪽을 향했다.
저 녀석.
맹렬한 기세로 도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슬슬 포기하지 그러냐?’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도심가로 내려온 수호는 추격을 계속했다.
저 녀석, 아까부터 계속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추격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눈치챈 거지?’
간단하게만 생각해 보면, 뒤따라오는 녀석이 뭔가 신호를 줬을 수도 있었다.
그게 가장 그럴듯한 추론이기도 했고.
‘도망치는 솜씨 하나는 일품인 벌레군.’
날다시피 인파 위를 가로지른 수호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녀석이 움직이는 동선이 아까부터 상당히 특이하단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땅이 아닌 하늘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을 나는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아파트 1층 벽을 밟은 수호는 그대로 2층까지 뛰어올랐다.
그리고.
형상화된 갑주가 칼날을 사선으로 세웠다.
댕강 잘려 나가는 2층 보안창.
거실과 주방을 가로지른 수호는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의 창을 뚫고 나갔다.
반대편 건물로 도약한 수호는 이번엔 4층까지 수직으로 달렸다.
또 하나의 가정집을 관통하는 수호.
창이 아닌 벽면을 난도질한 수호는 난폭하게 건물을 찢어 놓았다.
“잡았다! 이 미꾸라지 녀석!”
건물을 찢고 나오는 수호의 시야로 날카롭게 다듬어진 수십 개의 작살이 보였다.
금색으로 코팅된 작살들은 사방에서 자신을 덮쳐 오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나오리란 걸 알고 있었단 듯이.
‘이 녀석…!’
양손을 앞쪽으로 교차시킨 수호가 모든 공격을 받아 냈다.
갑옷에 부딪힌 작살들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앙!!
아스팔트를 부수며 지면에 착지한 수호는 어깨를 풀었다.
저 앞에 쫓던 녀석이 있었다.
이그노얼 나이트메어의 범위 안쪽으로 들어온 녀석은 더 이상 날 수 없는 듯 보였다.
“도망은 다 친 거냐, 거미 녀석?”
수호가 얼굴에 붙은 가느다란 실을 떼어 냈다.
자신의 등장과 함께 이런 게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접착력을 잃어 버린 거미줄처럼.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지만, 다 끝났어. 너부터 처리해 주마.”
수호는 곧장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꺼내 든 사내는 수호의 공격을 맞받아쳤지만, 공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실력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왼손으로 땅을 짚은 수호는 원심력을 실은 발로 사내를 공격했고, 왼쪽 옆구리를 가격당한 사내는 피를 흩뿌리며 화단에 처박혔다.
“이건….”
한발 늦게 산에서 내려온 용주는 수호가 남긴 흔적들을 쫓았다.
근처에 다른 헌터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눈이 움직인 건 저 녀석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대체 누구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상황에 녀석이 이 정도로 모든 걸 제쳐 두고 추적할 만한 인물이라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
코너를 돈 용주의 앞에 한창 진행 중인 전투의 현장이 보였다.
상황은 압도적인 것처럼 보였다.
잘려 나간 가로수의 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벽에 처박혔던 피투성이의 헌터가 다시금 수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저 녀석은… 한태영…?”
눈과 대치 중인 헌터의 모습을 확인한 용주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두 눈은 분명 저게 녀석이라 말하고 있었다.
진각성을 했다고도 했으니, 이 기운이 녀석의 것이라 해도 딱히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녀석이 여기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녀석은 분명 팬텀에게 납치당했다고 그랬는데.
‘러스트 녀석…. 뭔가 꿍꿍이속이 있던 건가?’
형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런 추측이 가능했다.
형만과의 협상이 실패해 뭔가 다른 카드를 꺼낸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반대로 협상이 잘 풀려 태영을 풀어준 것일 수도 있었다.
형만에게 눈과 접촉한다고 했으니, 거기에 기초해 지금 상황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 역시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렇게 풀려났다면, 녀석이 여기 있을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어느 쪽이 됐든. 일단 녀석부터….’
수호에게 망설임은 없었고, 태영의 스킬은 봉인된 듯 보였다.
전투는 압도적.
이대로 두면, 끝이 좋지 못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피어싱 블레이드!”
작렬하는 수호의 스킬.
가로수에 처박힌 태영은 차 보닛 위를 굴렀다.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태영을 수호는 또 한 번 날려 버렸다.
마찬가지로 일어서는 태영.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수호는 눈썹을 기울였다.
저 녀석.
역시 이상했다.
“벌레 너…. 혹시 인형이냐?”
일어나는 태영의 모습은 마리오네트 인형을 연상케 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취해야 할 관절 동작들이 녀석에겐 보이지 않았다.
실인지 거미줄인지 모를 녀석의 능력은 분명 봉쇄된 게 분명하건만.
녀석 자체가 실 가닥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진짜 귀찮게 구는 벌레들이군.”
뒤로 돌아선 수호는 맹렬하게 달려드는 야수의 손톱을 막아섰다.
수호의 힘에 튕겨 오른 용주는 하늘을 차며 수직으로 떨어졌다.
변칙적인 공격에 물러난 수호는 지면을 길게 베어 냈다.
“괜찮은 거냐?”
태영에게 등을 보인 용주가 물었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팬텀에게 잡혀갔다고 들었는데.”
“…….”
“러스트는? 박형만은 어떻게 된 거냐? 무슨 일이 있었지?”
계속된 용주의 물음에도 태영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
검을 휘둘러왔다.
“너…!”
갑작스러운 태영의 공격에 반응한 용주가 왼손으로 지면을 긁었다.
태영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던 용주는 룬검을 바짝 당겼다.
사선을 그린 참격을 막아 낸 룬검에선 서리가 튀었다.
용주의 눈에 그제야 태영의 얼굴이 들어왔다.
녀석은 분명 태영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낯선 이질감이 느껴졌다.
침착하지만, 여유 있던….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태영과 지금 앞에 있는 태영은 조금 달랐다.
그의 얼굴엔 생기가 없었고, 눈동자는 탁하게 변해 있었다.
자신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의 얼굴에선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분석하고 사고하며 움직이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앞에 있는 건 그저 축 늘어진 채 검을 휘두르는 마리오네트.
태영의 모습을 흉내만 낸 다른 무언가였다.
“자기들끼리 싸우잖아?”
갑작스럽게 시작된 두 사람의 전투에 수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두 사람이 한 패일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니, 한쪽이 일방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건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이는 태영이었다.
용주는 그저 공격에 맞춰 가드하고 있을 뿐, 제대로 된 반격을 하고 있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은 잠시 미뤄두기로 한 수호는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용주에게 달려든 수호는 룬검에 들이받았다.
이번에 충돌한 것은 몸이 아닌 원 오브 아이.
갑옷과 연결된 칼날에선 거친 마찰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벌레 주제에 꽤 좋은 검을 가지고 있군그래.”
각도를 튼 수호가 한 번 더 룬검을 내리쳤다.
원 오브 아이의 칼날을 막고도 검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녀석 정도의 마나를 가진 헌터가 구할 수 있는 검이라면 부러져도 진작 부러졌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왜?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모양이지, 앙?”
하늘 높이 뛰어오른 태영은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그에 반응해 멀어진 두 사람은 다시 태영에게로 달려들었다.
같은 동작이었지만, 둘의 의도는 전혀 달랐다.
수호의 움직임은 태영을 베기 위해서.
용주의 움직임은 태영이 베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태영의 뒷덜미를 붙잡은 용주는 그를 뒤쪽으로 패대기쳤다.
간발의 차로 태영을 던져 버린 용주는 수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저 녀석은 널 베려고 하고, 넌 저 녀석을 지키려 하고.”
룬검을 붙잡은 수호가 칼날을 타고 올랐다.
손가락이 룬문자를 지날 때마다 서리가 튀었고,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진동했지만, 수호는 멈추지 않았다.
“하! 벌레들의 관계는 참 이해하기 어렵단 말이야.”
용주의 손을 붙잡은 수호는 용주를 내던졌다.
“…….”
기괴한 동작으로 일어난 태영은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용주의 날갯죽지를 내려찍는 태영의 검.
그런 태영에게 돌아온 건 살을 찢는 감각이 아닌, 훨씬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히는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