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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01화 (201/357)

201화

“저거 때문에?”

수지가 자신을 보고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승우나 다른 누군가의 눈은 아니었다.

수지가 보고 있는 건 하늘에 떠 있는 기묘한 눈.

역시 원인이랄 건 저거밖에 없었다.

“같은 생각입니다. 눈의 스킬이 아무래도 저희 스킬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사! 괜찮아?!”

급하게 달려온 예나가 놀란 눈을 깜빡였다.

예나의 손엔 다시 인형의 모습으로 돌아간 버티가 안겨 있었다.

“깊진 않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승우가 손목을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미끄러지듯 흘러나온 지팡이를 쥔 승우는 능숙한 솜씨로 지팡이를 빙글 돌려 잡았다.

일방적으로 스킬이 봉쇄된 지금 열세인 건 이쪽이었다.

‘스킬을 무력화 시키는 스킬인가?’

같은 시각.

같은 정보를 얻은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예나, 서윤, 수지.

세 사람의 스킬이 무력화된 걸 확인했으니, 확실하다 해도 무방했다.

‘대 헌터용 안티 스킬.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다니.’

예나나 서윤의 스킬은 그렇다 치더라도.

녀석의 스킬은 A급 헌터인 수지의 스킬까지 무력화시켜 버렸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가 상당하단 방증이었다.

게다가 승우를 상처 입힌 건 특별한 도구가 아니었다.

자신의 스킬은 유지하면서, 상대의 스킬은 봉인한다.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런데….’

용주의 시선이 좌우로 움직였다.

룬검이 만들었던 서리.

그리고 아까 뿌려 놨던 인스네어의 잔재가 아직 이곳엔 남아 있었다.

버티가 힘을 잃고 인형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내 스킬은 혹시 저 녀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가?’

용주는 곧장 머릿속을 스친 가설을 확인해 보았다.

손등과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고, 결정화된 붉은 손톱이 번뜩였다.

할퀴기의 발동에는 이상이 없었다.

‘역시 그런가.’

가설은 사실이었다.

녀석의 스킬에 자신은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마나가 이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자신이 가진 헌터로서의 마나는 여전히 E급.

자신의 스킬들은 거기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폭발적으로 뛰쳐나간 용주는 수호와의 거리를 좁혔다.

“훗! 그래. 언제 움직이나 했다, 벌레 녀석.”

정확하게 반응한 수호가 용주의 룬검을 막아섰다.

룬검을 막아선 건 수호의 팔등.

칼날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은 결코 사람의 살을 베는 감각이 아니었다.

“우리 집 개도 너보단 잘 보이겠다. 앙? 그렇게 코딱지만 한 마나도 마나라고!”

노골적인 수호의 비웃음.

왼손을 치켜든 용주는 기습적으로 손톱을 휘둘렀다.

“흥! 뭐야? 클로라도 끼고 있던 모양이지?”

맨손으로 용주의 공격을 맞받아친 수호가 씨익 웃어 보였다.

용주의 손톱은 수호의 오른 어깨를 정확히 할퀴었지만, 입고 있던 옷이 찢겼을 뿐 제대로 된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글쎄. 어떨까?”

용주의 손등을 타고 순간 불길이 일어났다.

“……!”

타고 오른 불길에 수호의 표정에 순간 변화가 생겼다.

놀란 듯 거리를 벌리는 수호.

찢긴 웃옷 사이론 선명한 성흔이 보였다.

‘불길을 일으키는 클로?’

수호가 오른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잔불은 꺼졌지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화상을 입거나 한 것과는 다른 무언가였는데, 뭐라 정의하긴 상당히 애매했다.

“별 시답잖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곧장 따라붙는 용주의 공격을 막아선 수호.

“하지만 그래 봤자지!”

짧은 공방을 주고받은 수호는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기울인 오른발을 쳐올렸다.

사선으로 쭉 뻗어 나간 다리는 머리를 지나 하늘을 가리켰다.

유연성과 스피드.

거기에 힘이란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기습이었지만, 수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사라졌어?’

분명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녀석의 기운이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앞에서 사라졌다.

부자연스럽게 증발해 버린 녀석의 기운은 지금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어깨를 횡단하는 소름 끼치는 철의 감촉이 느껴졌다.

철이 지난 자리엔 서리가 앉은 듯 한기가 더해졌고, 얼어 버린 신경이 무뎌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뭐였지?’

기습을 당한 수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그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놈이 움직였다면, 놓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긴 했지만, 자신은 녀석의 기척을 완전히 놓쳤었다.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벌레 녀석…. 대체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거냐?”

팔등을 타고 흩뿌려지는 서리.

불과 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주를 마주한 수호가 물었다.

“글쎄. 그거야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싶은데.”

“너 이 자식….!”

담담하게 내뱉은 용주의 한 마디에 수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방금 그거.

100% 비꼬는 거였다.

벌레 주제에.

용주의 손톱을 팔꿈치로 막아선 수호는 일자로 편 손을 내리찍었다.

단두대처럼 떨어진 손날은 용주의 팔 안쪽을 베어 냈고, 상처를 따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수호는 기세를 몰아 공격을 이어 가려 했다.

룬검을 잡고, 그대로 칼날을 타고 올라가 녀석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런데.

‘……?!’

알 수 없는 통증이 순간 수호의 신경을 자극했다.

통증을 느낀 곳은 왼쪽 팔 안쪽.

공격을 받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통증 부위를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감각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건 필히 피.

그렇다는 건 녀석이 자신을 베어냈다는 뜻이었다.

언리시 블레이딩 (Unleash blading).

스킬로 강화된 자신의 몸을 말이다.

‘말도 안 돼.’

게다가 거긴 자신이 상처를 입혔을 거라 예상되는 부위였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히 똑같은 곳에 상처를 입힌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방금 봤어?”

놀란 서윤이 물었다.

서윤의 발밑엔 조금 전 깨어났던 TF 대원이 다시 기절해 있었다.

“응. 나도 똑똑히 봤어. 용주 오빤 아무래도 스킬을 쓸 수 있는 모양인데?”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저 녀석만? 스킬이 사람 차별하진 않을 거 아니야?”

자신 이외의 모든 것.

스킬 적용 대상이 그렇게 되는 게 너무 당연한 상황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용주는 보란 듯이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녀석의 반응을 보아하니, 일부러 예외로 둔 것 같진 않았다.

용주의 스킬은 녀석이 예상하지 못한 현상.

왜인진 모르지만, 용주는 녀석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한 거 같은데요?”

승우가 주원과 나란히 섰다.

“아무리 상대가 상대더라도, 대항할 수단이 있다는 거. 그렇지 않나요, 이주원 헌터?”

주원과 시선을 마주친 승우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봉인된 건 스킬뿐.

그것만으로 완전히 무장 해제당한 건 아니었다.

“내 영역 안에서 벌레가 스킬을 사용하며 날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맹렬한 기세로 돌진한 수호가 용주를 들이받았다.

날아가는 용주와 그를 따라붙는 수호.

공중을 찬 용주는 속도에 급제동을 걸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 벽에 수직으로 붙어 있는 것 같은 용주의 모습.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간신히 시야를 바로잡은 용주를 덮친 수호는 날카롭게 세운 다섯 손톱으로 용주의 가슴을 올려 쳤다.

“피어싱 블레이드(Piercing blade)!”

순간 용주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바람.

다섯 개의 칼날이 동시에 몸을 꿰뚫는 통증에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한발 늦게 따라온 힘의 파동이 상처 부위에 강하게 부딪쳤다.

포탄처럼 날아가는 용주.

“쿨럭!”

용주에게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한 수호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까랑 똑같았다.

가슴엔 손가락으로 후벼 판 것 같은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가 입힌 피해를 되돌려주는 스킬인 건가. 이거 완전 저주 인형이 따로 없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린 수호가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콰앙!

지면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그딴 거에 당해줄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 날파리?”

모래 먼지를 뚫고 지팡이가 날아들었다.

둘의 충돌에 강한 바람이 일었고, 주변을 잠식했던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당연히 아니죠.”

가볍게 뒤로 물러난 승우는 그 반동 그대로 백플립을 선보였다.

그런 승우의 머리맡을 지나는 붉은 검기.

초승달을 그린 검기는 승우를 지나 수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윽…!”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수호에게 그대로 직격했다.

‘이건 또 뭐야?!’

수호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지금 이 공격.

전혀 보지 못했다.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게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날아온 방향과 느껴지는 기운들을 생각하면, 이용주 녀석은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가?’

가능성을 따져보면 역시 A급 헌터의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이상했다.

대체 어떻게.

녀석들은 분명 이그노얼 나이트메어의 효과 범위 안에 있는데.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이나. 내 힘을 부정하는 놈이 있다고?’

자신을 밀어내는 힘에 손을 올린 수호는 있는 힘껏 검기를 찢었다.

검기에 직격당한 수호의 복부엔 얇고 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상대가 상대더라도, 대항할 수단이 있다….’

역날검을 뽑아 들었던 주원은 가볍게 검을 털었다.

스킬 봉인.

확실히 그건 헌터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대 헌터용 능력 중에 그보다 뛰어난 능력을 찾는 것도 쉽지 않겠지.

보통의 헌터들에게라면 그 공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보통의 헌터들에게 한해서였다.

자신이 사용하는 검술은 마나에 기초하고 있지 않았다.

승우가 말한 대항할 수단이란 바로 자신.

보통의 영역을 그렇게 규명한다면, 자신은 분명 보통 밖에 있는 헌터였다.

게다가.

‘스킬이 봉인되었다 한들 헌터가 모든 힘을 상실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형?’

승우가 보여준 속도, 점프력, 파괴력.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런 움직임은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승우는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 주었다.

그걸 보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눈의 능력은 자신에게 어떠한 페널티도 줄 수 없단 사실을.

“벌레들 주제에…!”

주원과 승우.

두 사람의 공격을 받아낸 수호가 엑스자로 교차시켰던 두 팔을 펼쳤다.

칼날 같은 바람이 두 사람을 날려 보냈고, 바람에 베인 두 사람의 상처를 타곤 피가 흘렀다.

“월영식 – 자(紫).”

날아가는 반동 속에서 검을 당긴 주원은 칼날을 내질렀다.

일점을 향해 휘감기는 세 개의 보랏빛 물결.

주원의 일격은 수호의 양 옆구리와 오른 어깨를 동시에 베며 지나갔다.

“벌레면 벌레답게 잘근잘근 짓밟히란 말이야!”

지면을 깊게 후벼 판 수호가 사선으로 튀어 올랐다.

방금 그걸로 한 가지를 특정할 수 있었다.

둘 중 자신의 영향을 벗어나 있는 건 왼쪽에 있는 녀석.

훨씬 작고 볼품없는 마나를 가진 녀석 쪽이었다.

어떻게란 물음엔 여전히 물음표가 찍혀 있었지만, 아무튼 주의해야 할 쪽을 특정할 수 있었던 건 확실한 성과였다.

“블레이드 스톰!!”

몸을 비틀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수호.

그가 만든 바람은 폭풍이 되었고, 회오리가 된 바람은 시야 속에서 수호의 모습을 지워 버렸다.

“물러나.”

점멸로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용주는 폭풍을 마주했다.

지면을 향해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태풍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다.

태풍의 눈은 없었고, 대신 날카로운 송곳 같은 바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웃레이지 스내치!’

피어오른 핏방울이 용주의 왼손을 감쌌다.

“!”

용주의 변화에 승우와 주원의 동공이 동시에 반응했다.

속도를 높인 용주는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람에 살이 찢겼고, 공기 중에 피 냄새가 섞였지만, 용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폭풍을 관통했다.

그리고.

“……!”

태풍의 중심에 있던 수호를 손에 쥐었다.

역방향으로 태풍을 뚫고 나온 용주는 수호를 그대로 처박았다.

작렬하는 아웃레이지 스내치.

“커헉!”

철을 때리는 소리 속에 수호는 전력을 다해 용주의 손아귀를 뿌리쳤다.

튀어 오르는 힘에 내동댕이쳐진 수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헬기장엔 피 웅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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