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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99화 (199/357)

199화

* * *

도어락을 연 형만은 집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용주를 비롯한 녀석들은 이미 자리를 뜬 모양이었다.

언제나 같은 적막감 속에 형만은 스위치를 올렸다.

실내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우비는 깔끔하게 세탁되어 테라스에 걸려 있었고, 쓰레기통도 비워져 있었다.

걸음을 옮긴 형만은 테이블 위의 쪽지를 집어 들었다.

나갈 때만 해도 없던 쪽지였다.

[눈과 접촉할 거다.]

쪽지에 적혀 있는 건 저 한 문장이 다였다.

“애송이다운 발상이군.”

혼잣말을 중얼거린 형만은 쪽지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위층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

2층으로 올라온 형만은 텅 빈 복도를 걸었다.

하나, 둘.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지난 형만은 손잡이를 잡았다.

안쪽은 침실이었다.

킹사이즈 침대엔 두 개의 베개가 놓여 있었다.

“후….”

침대 끝에 걸터앉은 형만은 주인 없는 화장대를 바라보았다.

이 익숙한 침묵이.

이 익숙한 고요함이 오늘따라 더 무겁고 괴롭게 느껴졌다.

“조금은 빛이 바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린 형만은 화장대로 다가갔다.

여기 앉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쉽게 흔들리다니, 나도 아직 애송이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형만이 피식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한심했다.

그 상황에서 놓치기나 하고.

녀석을 잡았다면, 이시우 녀석 말처럼 팬텀에 대한 꼬리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

오른 어깨를 움직인 형만이 순간 움찔했다.

자연스럽게 또 오른손을 움직이려 하고 말았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이것 역시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왼손을 움직인 형만은 화장대 위에 세워져 있던 액자를 집어 들었다.

액자엔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깨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깨고 싶지 않았던 걸까?”

형만은 아까 마음속으로 했던 말을 입으로 옮겼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 속엔 아까 만났던 러스트와 똑같은 얼굴을 한 여인이 있었다.

아니, 당연히 그 반대가 맞겠지.

“한송이…. 나는….”

고개를 저은 형만이 액자를 내려놓았다.

물어도 대답해 줄 이는 없었다.

생각을 해야 하는 것도.

정리를 해야 하는 것도.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도 전부 자신.

자리에서 일어난 형만은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 * *

“송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계단.

위아래의 구분이 모호한 기억의 공간에 선 러스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불청객이 난입하기 직전 그의 입에서 나왔던 마지막 말이었다.

입 모양을 봤을 뿐 소리가 정확하게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애송이?”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전에도 자신을 그렇게 불렀었으니까.

“그 사람은 분명 날 알고 있었어.”

그 사람을 만나자마자 뭔가가 떠오를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애송이라고 불렀을 때 뭔가 느껴졌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떠오를지도 몰랐는데….

“그 사람 집이라면 뭔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보고 있던 난 누구였는지. 왜 그렇게 슬프고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던 건지.”

혼잣말을 중얼거린 러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말로 뭔가를 들을 수 없어도, 눈으로 뭔가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완전히 날이 밝아 버렸네요.”

헌터 지부의 로비.

켜져 있는 TV에선 아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용주 형한텐 아직 연락 없는 거죠?”

“응.”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태스크 포스도 역시 마나를 사용하는 능력자들인가요?”

“전부 다는 아니야. 상위 헌터를 제압하는 데에는 그만한 능력이 필요하지만, 하위 헌터를 제압하는 데에는 특별한 도구랑 머릿수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특별한 도구? 뭐, 테이저건 같은 거요?”

“응. 얼추 비슷할 거야. 이형 결정체가 들어갔단 것 정도 빼면.”

“헌터 도구랑 비슷한 거네요, 그럼.”

“응.”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옆을 바라보았다.

금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타난다면 어느 쪽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오?”

“말단. 확률 90%.”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 못 들어본 것 같소만.”

“마나.”

“마나?”

“그러니까 이용주 녀석 마나가 형편없이 작아서란 말이지? 녀석들이 녀석을 엄청 쉽게 보고 있다고.”

대화에 끼어든 서윤이 허리춤을 짚었다.

“말을 할 거면 쭉 풀어서 하면 좋잖아. 떠먹여 주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응.”

“저쪽이 방심해 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긴 한데, 눈이 안 나타나면 말짱 도루묵인 거 아니야? 정말 네 예상대로 나타나 줄까?”

“눈. 단순한 옵저버 아니야. 전투 능력 뛰어나. 아… 예전 눈은 그랬어.”

“그러니까 지금 눈은 확신할 순 없단 거네.”

“응. 확률 90%.”

“90? 뭐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높게 책정한 건데?”

서윤이 황당하단 듯 물었다.

확실히 확신은 아니긴 한데, 50 : 50도 많이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이번에 눈과 접촉하지 못하더라도 말단으론 안 된다는 걸 알면 위쪽이 움직일 거다.

이용주 녀석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감.”

“뭐?! 감?”

“응. 새로운 눈. 전에 있던 눈보다 뛰어나단 걸 증명하고 싶어 할 것 같아. 인정받고 싶어 할 것 같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수지는 이형 워프 장치를 만지작거렸다.

‘나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진다.’

용주가 했던 말을 떠올린 수지는 워프 장치를 움켜쥐었다.

불안하고 떨렸지만, 괜찮았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으니까.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 * *

도당산 헬기장.

펜스가 끝나는 곳에 있는 봉우리는 이 산의 정상이기도 했다.

정상엔 용주 혼자였다.

등산객은 없었다.

‘눈이라기에 얼마나 예리할까 했더니, 생각보다 느리잖아.’

이곳으로 오기 전 자주 돌아다닐 법한 경로를 한 바퀴 쭉 돌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별한 무언가는 감지하지 못한 용주였다.

‘아니, 충분히 빠른 건가?’

고개를 든 용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세 대의 헬기가 나란히 움직이고 있었다.

세 방향으로 흩어졌던 헬기는 다시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두두두두!!

바람에 나부끼는 흙먼지.

헬기장 상공에 멈춰 선 세 대의 헬기에서 강하용 로프들이 흩뿌려졌다.

일사불란 강하하는 특수 부대원들.

2열로 도열한 그들은 용주에게 총구를 겨눴다.

헬기와 조끼엔 TF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는 알파. 예상 지점에서 타깃을 발견했다.”

숫자는 대략 20명 남짓.

리더로 보이는 인물은 누군가와 교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전혀 당황한 기색 없군. 우리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나?”

“뭐, 대충은.”

“그렇다면 길게 이야기할 필욘 없겠군. 저항하지 말고, 투항해라. 공정한 수사와 권리를 약속하겠다.”

“공정한 수사와 보장된 권리. 그거 좋네.”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 그럼 우선 무기를 이쪽으로 던져라.”

주머니에 넣고 있던 오른손을 뺀 용주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눈은 같이 안 온 거냐?”

세 대의 헬기를 흘겨본 용주가 물었다.

헌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이는 눈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헌터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노코멘트. 질문을 하는 건 우리다.”

“…그래?”

용주의 왼손 손바닥 안에 초록빛이 모여들었다.

“그럼 너희 전부를 쓰러뜨리고 더 윗사람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순식간에 일대를 잠식하는 초록 가스.

“쓸데없는 잔재주를.”

정체불명의 연막에 TF 대원들은 특수고글의 버튼을 눌렀다.

“저항하겠다면, 제압하겠다.”

사라졌던 적의 모습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검을 뽑아 든 녀석은 지면에 검을 박아넣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의문을 삼킨 리더는 대기 명령을 내렸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사격할 생각이었다.

“……!”

그 순간, 불어오는 날카로운 한기.

바닥과 공기를 타고 전해진 한기는 보호구를 뚫고 심장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저… 저게 뭐야?!”

“괴물! 괴물이다!!”

무언가를 발견한 대원들이 무차별 사격을 시작했다.

“누가 발포를 허가한다고 그랬나?!”

분노를 담아 권위적으로 외쳤지만, 통제가 돌아오진 않았다.

혼란은 진화되긴커녕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다.

“너 이 자식! 내 명령이 들리지 않는 거냐?!”

개머리판으로 부하 하나의 머리를 후려친 리더가 멱살을 쥐었다.

고글 아래로 보이는 눈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녀석이 보고 있는 건 자신의 뒤쪽.

하늘이었다.

“저기… 저기!! 으아악!!”

비명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헬기가 만든 그림자는 아니었다.

조금 전 지나간 건 새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저건….’

다급하게 헬기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뼈로 된 용?’

심장에서 먼 곳에서부터 감각이 둔해지는 게 느껴졌다.

전신에 하얀 서리가 내려 있었고,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 조난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타깃은 E급 헌터였다.

마나가 있다 한들 이런 규모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그럴 텐데….

‘대 헌터용 장비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고?’

맨몸으로 직격당했다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겨우 움직인 리더는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당황하지 마라! 침착하게 제압한다!”

조정간을 단발로 돌린 리더가 탄을 투망으로 돌렸다.

단 1mm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조준 사격….

이었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뭐야, 이거. 안 눌리잖아?’

탄이 발사되지 않았다.

서리가 내려앉은 방아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기에 잠식당해 먹통이 된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원! 사격 중지하고, 검을 뽑아라!”

리더의 명령에 대원들은 허벅지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들었다.

흔히 ‘쿠크리’, 아니면 ‘구르카’로 알고 있는 칼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검이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목적으로 설계된 도구는 아니었다.

탄도 검도 모두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설계된 도구.

무딘 검에 상처를 입으면, 마비독이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그런 구조였다.

사살 명령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게 최선이리라.

“뽑기는 개뿔.”

“으억!”

바로 그때.

낯선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대원 중 하나가 풀썩 쓰러지는 게 보였다.

리더의 시선은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했다.

그곳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낯선 인물이 부하의 면상을 시원하게 후려갈기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반격에 나서기 위해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분홍 머리의 여인은 그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 냈다.

“칼이라니 위험하잖아.”

다리를 걸어 대원을 넘어뜨린 여인은 대원의 팔을 꺾었다.

그 상태로 안면부터 바닥에 처박힌 대원은 뒤통수를 내리찍힘으로써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방해꾼? 아군이 있던 건가?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저 녀석도 한패다! 제압한다!”

리더는 빠른 판단을 내렸지만, 명령은 공허하게 퍼져 나갈 뿐이었다.

통제를 벗어난 대원들이 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대체….’

사방에서 튀어나온 적들과.

“누나 그러다 진짜 사람 잡겠는데요.”

역날 검을 휘두른 주원이 이야기했다.

이해는 하겠는데 서윤의 방식은 상당히 폭력적이고 과격했다.

“괜찮아. 안 죽을 만큼 힘 조절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 괜찮대도!”

“아…! 네!”

서윤의 기세에 눌린 주원이 검 손잡이 끝으로 적의 가슴팍을 때렸다.

“컥!”

타격을 받은 대원은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보호복은 충격을 완화해줬을 뿐, 막아 주진 못했다.

“곰! 곰이다! 곰!”

“으아악!”

버티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 그림자 뒤로 숨어든 승우는 두 대원의 후두부를 정확히 가격했다.

“악의는 없다네.”

휘두른 단검을 겨드랑이 사이에 낀 금화는 칼날을 비틀어 부러뜨렸다.

“말도 안 돼….”

패닉에 빠진 대원의 목을 휘어잡은 금화는 그를 기절시켰다.

“미안. 잠깐만 자고 있어 줘.”

나긋나긋 속삭이는 목소리.

수지의 손에 닿은 대원 하나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드르렁드르렁 태평하게 들려오는 코골이.

수지의 손에는 형광빛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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