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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94화 (194/357)

194화

“글쎄요. 왜일까요?”

한숨을 삼킨 동제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말장난하는 거냐?”

“그러고 보니 이 말씀 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이용주 헌터님의 동생분. 일단은 제가 보호 조치 해두었습니다.”

“뭐라고?! 보호 조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용주의 데시벨이 순간 크게 올라갔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한 대비였습니다. 태스크 포스가 가족에게까지 손을 대는 사례가 없지 않았으니까요.”

“예은이는… 옆에 있는 거냐?”

“아뇨. 지금은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이 해결되기까지 안전은 제가 책임지고 보장하겠습니다.”

“어떻게?”

“동생분 주변에 있는 제 모습을 의도적으로 드러낼 겁니다. 개인적인 악연이 있는 사이이니, 벌집을 쑤시려 들진 않을 겁니다.”

“개인적인 악연이라고?”

“설명하자면 깁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요. 아무튼 제가 관리하고 있는 사건의 가족이니 둘러댈 명분도 있습니다.”

동제가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 악연이란 게 지금 날 돕는 것과 관계있는 거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래?”

두 사람의 대화는 또 한 번 끊어졌다.

“책임지고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한 그 말. 두 번 물어볼 필욘 없겠지?”

“물론입니다.”

확신에 찬 동제의 대답에 용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 일엔 어떤 식으로든 절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일이 이런 식이 되어 버렸다.

“그래. 그럼 내가 일을 해결할 때까지만 좀 부탁하지. 돈이든 뭐든 나중에 다 줄 테니까.”

차동제라는 개인을 얼마만큼 아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도 역시 물음표가 찍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스크 포스와의 악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적이 아니란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A급 헌터를 앞에 두고도 할 말은 했던 녀석의 성격이라면, 한 번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

“딱히 필요한 건 없지만, 일단은 그런 걸로 해두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허튼수작 부렸다간, 손가락이건 뭐건 다 잘릴 줄 알아라.”

“명심하겠습니다.”

강렬한 용주의 협박에 동제가 웃음기 없이 대답했다.

농담 식으로라도 웃었다간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게 분명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동제가 주제를 돌려 물었다.

“녀석들이 먹잇감을 찾고 있다면 먹잇감을 물어다 주면 되겠지. 그게 아니면… 놈들의 이빨을 전부 뽑아버리든가.”

“무서운 말을 잘도 하시는군요. 뭐 전자의 경우엔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

“윤현 헌터와 팬텀에 대한 정보. 제 나름대로 입수한 정보가 생기면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태스크 포스와의 전면전은 최대한 지양해 주십시오. 이용주 헌터님께 불리해질 뿐입니다.”

“노력은 해보지. 그거면 충분하겠지?”

“네. 헌터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더 말씀드릴 필욘 없겠죠. 참. 핸드폰 말씀입니다만, 제가 링크를 하나를 보내드릴 테니, 프로그램 하나를 설치해 두시길 권고드립니다. TF의 위치 추적에 대한 일종의 안전장치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멋쩍은 듯 내뱉은 용주의 한마디.

동제는 옅은 미소를 삼켰다.

“네. 그럼 끊겠습니다. 잊지 말고 동생분께 연락 한번 해주세요.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용주는 액정을 두드렸다.

‘아니야….’

문자 메시지를 남기려던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문자보단 그래도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아! 오빠?!”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

굳어졌던 용주의 얼굴에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저녁은 잘 챙겨 먹었고?”

“응. 잘인 줄은 모르겠는데 먹긴 했어. 오빠는?”

“어디 가서 굶고 다니진 않으니 걱정 마.”

둘 사이의 흐르는 짧은 침묵.

“…괜찮지?”

“…괜찮아?”

동시에 침묵을 깬 두 사람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내가 먼저 대답할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예은이 물었다.

“좋을 대로.”

“놀라긴 했는데, 지금은 좀 진정됐어. 나 지금 엄청 고급진 호텔 방에 있어. 지하에 엄청 큰 대형 마트도 있고,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있더라, 오락실이랑 PC방도 있고, 아! 노래방도 있었어!”

한참 이야기를 쏟아내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학교도 지금처럼 그냥 다니면 된대. 등하교는 특별 조사관님이 태워다 주신다고 하셨고, 아! 특별 조사관님 이야기 안 했던가?”

“괜찮아. 조금 전에 통화했어.”

“아, 그래?”

“뭐, 불편한 건 없고?”

“오늘 챙긴 교과서 말곤 다 집에 있어서 그게 좀 불편하네. 집이 아닌 것도 불편하다면 불편하고. 아! 교과서랑 옷 같은 건 내일 학교 가면서 챙기기로 했어! 걱정 안 해도 돼.”

“알았어. 걱정 안 할게.”

“응! 그 특별 조사관이란 분 좋은 사람인 것 같더라. 친절하고, 배려심도 있고,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데 엄청 어른스러웠어. 오빠처럼.”

“…그래?”

“응.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잖아. 그러니까 오빠는 오빠 걱정만 해. 몸조심하고.”

“그래. 걱정하지 마. 금방 해결하고 데리러 갈 테니까.”

“응. 아, 맞다! 오빠!”

무언가가 생각난 예은이 용주를 불렀다.

“아까 수지 언니한테도 전화 왔었어.”

“안수지한테?”

“응. 오빠 걱정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그래?”

“응. 중간에 다른 언니랑 다른 오빠들도 비슷한 이야기 해줬었어.”

‘다른 언니랑 오빠?’

용주의 머릿속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그건 역시 팀 H의 녀석들일 것이다.

“다들 오빠 걱정 하고 있는 것 같더라. 혹시 연락 오면 어딘지 물어봐 달랬어.”

“그래. 그랬었구나. 오빠가 연락해 볼게. 전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오빠가 뭘 잘못했다고 미안해해. 나 들었어. 오빠가 거기 있던 사람들 대피시키고, 아기도 구해줬다고. 엄마 아빠가 그 이야기 들으셨으면, 분명 어깨 쭉 펴라고 하셨을 거야. 그러니 어깨 쭉 펴. 고개 숙이지도 말고.”

“응. 그럴게.”

“또 전화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응.”

안심하란 듯 나긋나긋 대답한 용주가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서로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던 통화는 5초 정도 그렇게 있다가 종료되었다.

‘안수지랑 그 녀석들은 같이 있는 건가?’

용주의 눈에 부재중 메시지들이 보였다.

‘정말이지… 바보들이라니까.’

왜인진 모르겠지만, 순간 감정선이 건드려졌다.

받지 않고.

듣지 않았는데도, 각 이름들이 어떤 목소리로 무슨 말을 했을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녀석들이 함께 있단 건 혹시 그 녀석도 같이 있단 건가?’

수지가 있으니 어쩌면 형만도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형만에게 볼 일이 있었다.

러스트.

팬텀의 일원인 그녀에 대해 물어야 했다.

부탁….

아니, 협박받은 것도 하나 있었다.

‘일단 해볼까?’

통화 버튼을 누른 용주는 연결을 기다렸다.

10초.

20초.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안 받잖아.’

바로 그때.

용주의 핸드폰으로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형만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애송이?”

핸드폰 너머로 형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은 조용했다.

다른 녀석들이랑 같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팬텀과 만났었다.”

“알고 있다. 아주 요란하게 한 건 해놨더군. 왜 현장을 뜬 거냐?”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사건 조사도 때려치울 만큼 중요한 일이었나 보지?”

“앞으로의 일들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그래? 그래서 일은 잘 끝났나?”

“그래.”

“그게 그 정도 가치를 하는 일이었길 바란다. 널 위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혀도 좋을 만큼.”

“…….”

형만의 이야기에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그 녀석들과 교류가 전혀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팬텀이 다시 자신을 노릴 수도 있다. A급 헌터들도 당했다. 자기 옆에 있으면 다른 녀석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도망가겠다. 그런 애송이 같은 생각이나 한 거냐?”

“실제로 다시 노리고 왔으니 완전히 잘못된 가정은 아니라고 보이는데.”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단 생각은 안 해본 모양이지?”

“이기적이라고?”

“그 녀석들. 그 일들을 겪고도 쭉 네 곁을 지켰던 녀석들이다. 규칙을 어겨 가면서까지 널 지키려 했던 녀석이다. 그 녀석들의 마음과 의지를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본 적 있는 거냐?”

“…….”

“당연히 없겠지. 그래서 네가 애송이인 거다. 조금은 성장한 줄 알았더니만, 완전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군.”

형만의 이야기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전부 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이기적인 애송이가 나한텐 무슨 볼일이냐?”

침묵을 깬 형만이 물었다.

“…네게 뭔갈 전해 달라고 그러더군.”

“나한테? 누가 말이냐?”

“팬텀.”

“팬텀이 나한테?”

“그래. 윤현은 아니었다. 네게 이걸 전해 달라고 한 건 그 자리에 나타난 또 한 명의 팬텀. 러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녀석이었다.”

“색욕…. 녀석이 날 정확히 지목했다고?”

“그래. 비밀의 방이란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으니 다른 사람일 린 없을 거다.”

“…그렇단 말이지? 그거 재밌군. 그래서 넌 적인 녀석의 부탁을 곧이곧대로 들어주기로 했다? 웃기는군. 아주 코미디가 따로 없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인질이 잡혀 있었다.”

“인질이라고? 그런 이야기는 못 들은 거 같은데.”

“이안처럼 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똑같은 모습을 한 잿빛 도시엔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지.”

“잿빛 세상…이라고?”

“그래.”

용주의 대답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전달해 달란 물건이란 건?”

“검은색 편지 봉투. 절대 열어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군.”

“편지 봉투라…. 그래. 그럼 20분 뒤에 받으러 가도록 하지.”

* * *

20분 뒤.

일렁거리는 포탈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포탈을 빠져나온 용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어느 건물의 야외 테라스.

1.5층 테라스 아래론 잘 가꾸어진 마당이 보였다.

“거기 있어 봐라. 안이 더러워지는 건 사양이니.”

불만을 표한 형만이 창문을 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사람 몰골은 아니군그래, 애송이.”

어디선가 우비 하나를 꺼내 온 형만이 우비를 던졌다.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우비는 용주에게도 꽤 큰 사이즈였다.

“신발은 벗고 들어와라.”

멈칫하며 신발을 벗은 용주는 양말도 같이 벗어 놨다.

그렇게 큰 차이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뭐, 신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그가 깔아놓은 발수건으로 간단하게 발을 닦은 용주는 안으로 들어왔다.

방 크기에 비해 가구가 상당히 적은 실내는 휑하단 느낌이 들었다.

“일단은 거기 아무 데나 대충 앉아라.”

먼저 소파에 앉은 형만이 반대편을 가리켰다.

용주는 앉지 않고 그냥 형만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이게 건네 달라는 물건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용주가 편지 봉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편지 봉투와 용주를 번갈아 본 형만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가져갔다.

“그래. 용케 여긴 피를 안 묻혀 왔군. 완전 피떡이 돼 있을 줄 알았더니.”

“뭐… 그걸 주운 건 녀석들이 퇴장한 다음이었으니까.”

용주가 대충 얼버무렸다.

저걸 입수한 이후 겪은 사건만 해도 퀘스트 게이트도 있었고, 시련도 있었다.

저게 평범하게 주머니에 있었다면, 피로 범벅이 되긴커녕 읽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건 놈들의 피냐?”

봉투를 뜯은 형만이 용주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상처는?”

“문제없다. 다 회복했으니.”

“의료 헌터의 도움 없이 그 시간만에 회복했다라. 어떤 상처였는진 몰라도, 너만 시간이 다르게 흐른 것 같군그래.”

“…….”

그의 한마디에 용주는 순간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알고 한 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시간이 자신만 다르게 흐른 건 어디까지나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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