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심호흡을 한 예은이 노트북을 돌려주었다.
침착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심장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태스크 포스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변질되어 지금이 된 거죠.”
자리에서 일어난 동제가 구비되어 있던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쪽엔 각종 차와 음료들이 줄 세워져 있었다.
“오래전부터 태스크 포스를 알고 계셨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역사를 거슬러 갈 정도로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특별 조사관이 되기 전까진 저도 그냥 CIA나 FBI 같은 존재 정도로만 생각했었죠.”
“그럼 태스크 포스는 왜 그렇게 변질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뭘 얻을 수 있는 건데요?”
“기본적으론 명예와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겠죠.”
“기본적이지 않은 부분으로는요?”
동제의 말에 한 지점을 콕 집어낸 예은이 물었다.
“저도 정확한 답변은 드릴 수 없습니다. 드릴 수 있는 건 제 개인적인 추측뿐이죠.”
“그거면 충분해요.”
예은의 대답에 동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스크 포스가 폭력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한 건 태스크 포스의 수장이 바뀐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 동제가 다시금 화면을 돌렸다.
화면엔 한 사람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정갈하게 수염을 기른 40대 중반의 사내.
수트 차림의 사내는 얼굴에 길고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이름은 ‘조서진’. 태스크 포스 정예 대원 출신으로, 성과 하나로 초고속 승진을 이룩한 인물입니다.”
“성과라면?”
“그야 물론 검거율이죠. 현장에 있을 적 그의 검거율은 100%. 그리고 그가 맡은 사건의 유죄율 역시 100%였습니다.”
“유죄율이 100%? 어떻게 그런…!”
“말씀드렸다시피 죄가 있어야만 유죄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는 건… 날조?”
예은의 물음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렇지만 일개 대원이 어떻게 사건 전부를 날조할 수가 있죠?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았을까요?”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수 있던 것도 그가 정의롭고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었죠. 제아무리 궤변이라 해도 그 확고한 신념이 지지를 받고, 성과로 이어지고, 세력을 구축한다면, 그게 곧 통용되는 정의이자 법이 되는 겁니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무너지는 거죠.”
“…….”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이 가능하단 건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권력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모함과 날조도 멀리 있던 이야기만은 아니죠.”
병뚜껑을 딴 동제가 목을 축였다.
“…조직 내에 일종의 신앙처럼 맹목적인 무언가가 퍼져 있단 말씀이신가요? 그게 태스크 포스를 변질시켰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예은이 물었다.
명예와 지위 외에 기본적이지 않은 부분.
방금 그건 분명 거기에 대한 답변이었다.
“태스크 포스는 헌터들의 범죄 때문에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헌터들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도 많습니다. 독이 번져 나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손깍지를 낀 동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아닌 그들에겐 무죄를 찾는 것보다 유죄를 만드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 계산이겠죠.”
“그렇…군요. 말씀 들어보니 일리가 있네요. 적절하게 비유도 해주셨고.”
핸드폰을 꼭 움켜쥔 예은이 이야기했다.
그녀의 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희 오빠는… 괜찮겠죠?”
“괜찮을 겁니다. 그런 사건들을 겪고도 여태껏 무사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 사건들? 그런 사건들이란 건 어떤 사건들이에요? 오빠 혹시 지금처럼 위험한 일들에 휘말리고 막 그랬던 거예요?”
“…….”
놀란 예은의 목소리에 동제는 순간 멈칫했다.
아무래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은 건드려 버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던 모양이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용주 헌터님께서 헌터로서 겪으신 일련의 사건들을 말씀드린 겁니다. 상위 게이트에 진입해 오셨으니 여러 위험을 겪으셨을 테니까요.”
동제의 발 빠른 대처에 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거면 다행이고요. 근데 그걸 특별 조사관님께서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특별 조사관님은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만 움직이시는 거 아니에요?”
“이용주 헌터님은 특별한 케이스니까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특별한 케이스라면… 헌터 시험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 셈이죠.”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핸드폰을 내려놓은 예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동제를 만난 건 하교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도서실에 볼 일이 좀 있었기에 남들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은 하굣길이었다.
정문 앞에는 검은색 벤츠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린 이가 바로 동제였다.
동제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누구시냐는 예은의 물음에 돌아온 것은 이용주 헌터의 동생 맞냐는 물음.
오빠에게 일이 생겼단 이야기에 예은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내의 차에 올라탔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이고, 어리석은 행동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럼 앞으론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전 어떻게 해야 하는 거고요.”
침묵을 깬 예은이 물었다.
“태스크 포스는 사건 관계자들의 신변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쪽이 가진 눈으로도 아마 추격이 힘든 상황인 거겠죠.”
“눈이요?”
“설명하자면 깁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요. 다만, 진범을 잡을 수 있다면, 태스크 포스도 더 이상 일을 벌이진 않을 겁니다. 전 우선 그렇게 풀어가 볼까 합니다.”
가방을 연 동제가 카드 한 장과 명함 한 장을 꺼내놓았다.
“동생분께선 지금처럼 학업에 열중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처럼요? 그렇지만….”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당분간의 생활은 이곳에서 해주셔야 할 것 같으니까요.”
동제가 방의 카드키를 반대쪽으로 밀었다.
“여기서요?”
“네. 아무래도 그편이 안전할 테니까요. 필요한 물건은 지하에 있는 상가를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결제는 그 키로 하시면 되고요.”
“카드를요? 그렇지만….”
“당연히 제공해야 할 편의입니다. 사양하실 필요도, 부담가지실 필요도 없습니다.”
이어서 동제가 명함을 건넸다.
“한 가지 더. 당분간의 등하교는 저와 함께 해주셔야겠습니다.”
“특별 조사관님이랑요?”
“네. 제가 관여하고 있단 걸 알면 태스크 포스도 함부로 동생분을 어떻게 하진 않을 겁니다. 일이 귀찮아질 거란 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거기 있으니 말이죠.”
* * *
방을 나선 동제는 차에 올랐다.
‘범죄자를 변호해 줄 생각은 없어.’
태스크 포스가 움직였다고 모든 상황에 이렇게 대처해 왔던 건 아니었다.
이용주 헌터와 특별한 친분이 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감정적인 교류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얼굴만 아는 사이라는 게 딱 적절한 표현이었다.
‘단지….’
그럼에도 동제는 움직였다.
이용주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예 모르거나.
범죄 소명에 대한 의심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아마 이러진 않았을 거다.
다만, 사건의 전후 과정을 파악해 온 자신으로선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할 수도, 두고 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너였어도 분명 이렇게 했겠지?’
페달을 밟은 동제가 속도를 올렸다.
‘네가 있었다면, 분명 이런 부탁을 했겠지? 응? 민찬아.’
태스크 포스가 추격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추격하지 못한 것인가.
지금으로선 거기까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도움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했다.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을 청할 인물이라 하면….
역시 그 자뿐이겠지.
태스크 포스의 눈.
아니, 과거의 눈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테지.
도움을 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추적은 어떻게 잘돼가나?”
방금 막 돌아온 사내를 맞이한 중년의 남성이 물었다.
정갈하게 수염을 기른 사내의 얼굴은 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
조서진.
태스크 포스의 수장인 바로 그 사내였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부근 외에 가택 인근과 주 활동지인 헌터 지부, 그리고 병원까지 수색해 봤지만, 기운을 감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사내가 대답했다.
사내의 안대 중앙엔 태스크 포스를 상징하는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정수호.
‘눈’이라는 이명으로 통용되는 태스크 포스의 간부였다.
“그래? 혹시 탐지해 내기엔 너무 작고 미약한 기운이라 그런 건?”
“물론, 탐지해 본 적 없는 작은 기운이지만, 그럴 일은 없습니다. 광범위 탐지엔 잡히지 않을지언정 제 정밀 탐지를 피해 갈 순 없을 겁니다. 조직의 눈인 절 너무 가볍게 보시는 거 아니신지요?”
“그렇다고 하기엔, 제법 큰 규모의 힘을 사용한 자도 수색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서진의 조리돌림에 수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고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레이더를 피해 가는 스텔스 기술처럼 말입니다.”
“스텔스라. 그거 흥미롭군그래.”
담배에 불을 붙인 서진이 연기를 뿜어냈다.
“책임지고 범죄자들을 반드시 찾아내 보이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경례를 올린 수호가 퇴장했다.
담뱃재를 털어낸 서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세상에 존재하는 헌터는 두 종류뿐이지. 범죄자인 자와 범죄자가 될 자. 너희가 어느 쪽이든 무슨 수를 쓰든 결과는 같아.’
담뱃불을 비벼 끈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굴러가 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언제나처럼 승자는 자신일 테니까.
* * *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시련을 치렀던 다크 포탈.
그리고 퀘스트 게이트를 연속해서 빠져나온 용주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아직 한밤중.
죽은 것처럼 뻗어 버렸던 시간을 생각하면 며칠이 지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이쪽의 시간은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다음 퀘스트는….’
용주는 우선 섬마음 등대 지도를 확인했다.
장소는 인천의 팔미도 인근.
퀘스트의 입장 제한이나 타이머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당장에 급하게 처리할 필욘 없단 건가?’
용주는 창을 닫았다.
그럴 리야 있겠냐만은 어쩌면 일부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녀석이 했던 경고가 그만큼 심각하단 방증일 수도….
‘의도든 아니든 나로선 나쁠 건 없지.’
퀘스트의 우선 순위는 당분간 뒤로 미뤄놔도 좋다.
그런 판단이 선 용주는 그다음 일들을 생각했다.
‘어찌 됐든 그 녀석을 한번 만나긴 해야 하지.’
인벤토리를 연 용주의 눈에 검은색 편지 봉투 하나가 보였다.
러스트.
스스로를 그렇게 밝힌 팬텀의 일원이 형만에게 전해 달라 부탁했던 물건이었다.
이형 워프 장치까지 제공한 걸로 미루어 볼 때. 무조건 빠른 시간.
그러니 최소 오늘 안에는 무조건 전달해 달라는 무언의 사인이 있었다 해도 무방할 테지.
용주는 분리해 뒀던 핸드폰의 배터리를 끼웠다.
현충원을 나오면서부터 꺼뒀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엔 부재중 메시지가 여러 개 찍혀 있었다.
그중 90%는 서윤의 번호.
남은 10% 중엔 주원의 번호도 예나의 번호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가 하나 더 있었다.
이쪽에서 발신한 기록이 있는 번호.
저건 분명 특별 조사관인 차동제의 번호였다.
‘녀석이 왜….’
의아함 속에 용주는 발신 버튼을 눌렀다.
귓가를 울리는 신호음.
“전화 받았습니다. 특별 조사관 차동제입니다. 이용주 헌터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동제의 목소리.
“그래. 무슨 일이지? 네 쪽에서 부재중 전화를 남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태스크 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거두절미하고 튀어나온 한마디에 용주의 낯빛이 굳어졌다.
“그래. 그럴 만도 하겠지. 윤현이 그 난리를 피워 줬으니까.”
“태스크 포스는 이용주 헌터님의 신변을 구속하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 신변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인 조사라면 당연….
“네. 단순히 참고인 조사 따위나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이용주 헌터님께 테러의 책임을 물려고 하고 있습니다.”
“책임이라고?”
“진실을 진실되게 말하면 오해가 풀리리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현재의 태스크 포스는 사건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헌터와 범죄. 한번 손안에 들어온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겁니다. 피해자가 피의자가 될 수도, 증인이 범인이 될 수도, 원수가 공범이 될 수도 있죠.”
“…그걸 말해주려고 연락한 거냐?”
“네. 이용주 헌터님의 상황과 판단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그 자리에서 피하신 건 다행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대로 체포되서 태스크 포스로 넘겨졌다면, 물밑에서 조용히 일이 진행됐을 겁니다.”
한 호흡을 삼킨 동제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태스크 포스엔 ‘눈’이라 불리는 자가 있습니다. 헌터의 기운을 탐지하는 데 특화된 인물이죠. 지금도 계속 이용주 헌터님을 수색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냐?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닐 텐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주가 툭 내뱉듯 이야기했다.
용주의 물음을 뒤따른 건 대답이 아닌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