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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92화 (192/357)

192화

‘경고, 문, 카오스 게이트. 이쪽 세계, 배후자.’

녀석이 했던 경고.

우선 그것들을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를 연다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카오스 게이트가 열린다, 라고 함은 저쪽 차원에서 이쪽 차원으로 이어지는 게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게이트가 열린다 함은 일방적인 침략.

이쪽에서 열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런 게 가능하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녀석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텐데.’

문을 열려고 한다.

그건 어쨌거나 아직까지 문이 열린 경우는 없다는 것이었다.

시도는 했으나,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뭔가가 충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이트를 연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가정한다면,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일단 그거였다.

언노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형 결정체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무기들은 그 자체로 부와 연결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이해되지 않는 게 너무 많았다.

헌터라면 이미 자기 실력에 맞는 게이트에 입장하고 있을 것이다.

헌터가 아니라면, 게이트를 연다고 해도 입장할 수 없을 테고.

‘자기 실력에 맞는 게이트….’

전자의 경우를 가정한다면, 걸리는 단어는 역시 이거였다.

보통의 헌터들이라면 그렇겠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자기 실력과 등급 사이에 괴리감이 있는 케이스가 실제로 존재했으니 말이다.

경험이 많고, 경력이 긴 헌터일수록.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헌터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겠지.

팀 H라는 확실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으니, 그런 사람들의 불만이 더욱 고조되었을 수도 있었다.

또 다른 경우라면 이런 케이스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범죄 등으로 헌터 자격을 상실한 헌터.

능력은 있지만 자격이 없는 이들이라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능성이 큰 이야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굳이 그런 방법보단, 게이트에 무단침입 게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일 테니까.

‘그럼 반대로 헌터가 아닌 자가 게이트를 연다고 한다면?’

만약 헌터가 아닌 자가 게이트를 열려고 한다면, 후보로 꼽을 수 있는 건 총기류를 갖춘 군대 정도였다.

안정화된 게이트라면 언노운을 밖에서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역시 유력한 후보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군대가 아니라면, 민간 조직? 테러 단체나 뭐 그런 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짓수는 많았지만, 역시 추론보단 공상에 가까운 것들뿐이었다.

애초에 가정 자체부터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테러 단체라….’

순간 한 장면이 떠올랐다.

폭발과 함께 터져 나오는 비명.

도망가는 사람들과 혼란.

많은 사건이 있었고,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그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혼란 혹은 복수.

기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 역시도 근거 없는 공상일 뿐이지만.

‘과연 그게 의미 있는 행동인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타고 용주는 다음 물음에 도착했다.

어찌어찌해서 게이트가 하나 열렸다고 한들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게이트야 지금도 열리고 있었고, 길드와 헌터, 국가 전력이 동원되어 성공적으로 진압해 내고 있었다.

게이트가 하나 더 열린다고 큰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리면 머지않아 위성 시스템에 감지될 거고, 전력이 투입돼 제압될 것이다.

거기서 뭔가를 하려던 자가 있다면, 역으로 제압되고, 체포되겠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 그랬었지. 그쪽 세계엔 자신이 관여할 수 없다고. 혹시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녀석이 뭘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 건지 구체적으론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분명 뭔가 있긴 하다는 소리였다.

배신자가 할 만한 배신자다운 일.

배신자.

녀석이 정말 인간이 아니고, 언노운들의 세계에 속한 자라고 한다면.

녀석이 배신할 만한 대상은 역시 하나뿐이 없었다.

언노운.

자신들이 그렇게 부르는 녀석들 말이다.

‘그쪽 세계의 문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건, 자기 세계의 문엔 관여하고 있단 말이겠지.’

그렇다고 하기엔 계승자가 되기 전후로 크게 달라졌단 걸 느끼지 못했다.

절대적인 수치까진 제시할 수 없었지만, 게이트가 더 적게 열린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S급 헌터인 이안과도 견줄 만한 힘과 기운을 풍기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수많은 사신형 언노운을 거느리는 배신자들의 왕.

그런 자가 관여하고 있는 일이라면,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이쪽에서 문이 열리면, 뭔가가 다르단 건가?’

머리를 짚은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답안지도 없고, 답도 모르는 문제를 계속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어 보려 이리저리 움직였건만.

풀린 거 없이 더 복잡하게 얽힌 느낌이었다.

‘눈에 대한 것도 신경 쓰이는데….’

머리를 짚었던 손이 눈으로 내려왔다.

녀석이 적어둔 마지막 점자.

거기엔 또 한 번 눈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강한 자의 눈….’

이 눈은 확실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아버지의 눈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강한 자의 눈이란 부분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S급 카오스 게이트에 진입하셨을 만큼 아버지는 실력자셨으니까.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어떻게?’

기억을 더듬던 용주의 머릿속에 과거의 한 장면이 스쳐 갔다.

비밀의 방에서 녀석을 만났을 때.

뚫린 심장에서 손을 뽑아낸 녀석은 알 수 없는 액체를 두 눈에 뿌렸었다.

그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두긴커녕, 다른 기억들에 묻혀 희미해졌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 무언가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이 눈이라면 지금도 충분히 활용하고 있을 텐데.’

대체 여기서 뭘 더 보란 것인가?

아무리 되물어 봐도 당장 답을 구할 순 없었다.

“…….”

생각에 잠겼던 용주의 시야가 순간 검게 물들었다.

기우뚱하며 비틀거리는 용주.

벽을 짚은 용주는 고개를 저었다.

순간, 의식과 함께 눈꺼풀이 뚝 떨어졌었다.

무슨 빈혈이라도 온 것처럼.

‘피로감이 상당하단 건 알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란 건가?’

의식과 잠 사이의 경계처럼.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의식이 뚝 끊어졌었다.

간신히 붙들긴 했지만, 이게 몸이 보내는 경고임은 분명했다.

‘한숨만… 자도 되는 걸까?’

벽에 등을 기댄 용주가 스르륵 미끄러졌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현실과 달랐다.

이곳에 있는 건 이제 자기 자신뿐이었다.

‘단 몇 초라도 그래도 된다면… 잠깐 눈만….’

스르륵 감기는 용주의 눈.

고개를 떨군 용주의 호흡이 점점 느려졌다.

녀석이 말한 ‘남들에겐 없는 시간’.

거기엔 지금, 현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욕심인 줄은 알지만, 그걸 조금만 사치스럽게 사용하려 한다.

* * *

띵동! 띵동!

정적을 깨는 초인종 소리.

몇 번의 행동을 반복한 사내는 시계를 확인했다.

“여기는 델타. 임무 구역 반응 없음. 진입하겠다.”

“허가한다.”

돌아온 무전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사내는 능숙하게 도어락을 해제했다.

현관에 두 사람을 남겨둔 채 두 사내가 실내로 진입했다.

불은 전부 꺼져 있었고, 알 수 없는 적막감이 머물렀다.

어깨에 달린 플래시를 켜는 두 사람.

현관의 신발들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입구에서 가까운 곳부터 하나하나 조사하는 두 사람.

은밀하고 신속하면서 절제되어 있는 두 사람의 움직임에서 두 사람이 잘 훈련되어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방들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닫혀 있던 방문을 열었다.

잘 정돈된 침대가 보였고, 말끔하게 정리된 책상과 책장이 보였다.

“여기는 델타, 타깃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불이 꺼져 있는 실내를 살핀 사내가 다시 보고를 올렸다.

“가족의 신변은 확보했나?”

“확보에 실패했다. 임무 구역 내 확인되지 않았다.”

“…….”

“귀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싱크대엔 물기가 없었고, 밖에 걸린 교복과 책가방도 확인되지 않았다.”

“수신했다.”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 대기하면 되나?”

“철수를 명한다.”

“롸져 댓.”

통신을 종료한 사내는 그제야 경계 태세를 풀었다.

거실로 나온 사내의 플래시에 가족사진이 비쳤다.

부모와 두 아이가 함께 찍혀 있는 단란한 가족의 한때가.

* * *

“특별 조사관님이라고 하셨죠?”

깔끔하게 정돈된 호텔 내부.

교복 차림의 예은이 물었다.

맞은편 자리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양복 차림의 남성은 특별 조사관인 차동제였다.

“네. 그렇습니다.”

“정말이에요? 아까 하셨던 이야기들이요.”

“믿으셨기에 동행하신 거 아니었나요?”

“그건 그렇긴 한데요, 말도 안 되잖아요. 오빠가 테러 사건과 연관됐다니….”

“태스크 포스가 움직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가택 수색도 지금쯤 이뤄졌을 겁니다.”

“가택 수색? 그렇지만 저희 오빤 공격받은 거뿐이라면서요?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거 아니에요?”

“같은 생각입니다. 현장에서 제가 직접 뛰어 얻은 정보고, 목격자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어린아이의 눈과 귀는 대체적으로 진실을 가리키죠.”

“그럼 왜….”

“태스크 포스는 저희 특별 조사관과는 뿌리 자체가 다릅니다. 그들이 신뢰하는 건 제가 전달한 정보가 아니죠. 그들이 추구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고요.”

“…….”

“태스크 포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입니다. 거칠고, 때론 정의롭지 못한 방법도 동원하죠. 가택 수색의 목적엔 아마 동생분의 신변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겁니다.”

“저를요…?”

“네. 동생분을 이용하면 정보를 얻기에도, 함정을 파기에도 용이할 테니까요.”

동제의 대답에 예은의 낯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완전 범죄자 취급이네요. 저희 오빤 잘못한 거 없는데, 저희 오빠가 잘못된 일을 했을 리가 없는데….”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도망가서 오빠가 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닐까요?”

예은이 심란한 목소리로 물었다.

생각이 짧았던 건 아니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로 당당했다면, 이렇게 숨을 이유는 없지 않았겠는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합니다. 태스크 포스가 상대가 아니었다면, 저도 이렇게 움직이진 않았을 겁니다.”

노트북을 꺼낸 동제가 파일 몇 개를 띄웠다.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동제의 부탁에 예은은 노트북을 확인했다.

화면엔 사건 번호처럼 보이는 넘버링과 판결의 결과가 도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유죄… 유죄… 유죄… 유죄….”

판결 내용 어딜 봐도 무죄란 단어는 없었다.

스크롤을 내리던 예은은 충격을 받은 듯 동제를 바라보았다.

마우스가 멈춘 곳엔 ‘사살’이란 단어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게 세상은 모르는 태스크 포스의 이면입니다. 법원은 책임을 묻지 않고, 언론은 침묵하거나 그들을 정의롭게 포장하죠. 다른 한쪽을 잡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이용주 헌터님께 덮어씌우려고 할 겁니다. 그들의 정보망으로 신원이 특정된 이는 이용주 헌터님뿐이니까요.”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어린 동생분껜 가혹한 이야기지만, 세상엔 때론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빛나는 동제의 눈동자.

동제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갔다.

이젠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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