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191화 (191/357)

191화

“카각…!”

“가각…!”

서로를 향한 짙은 살기.

두 사람을 감싼 기류가 서로 부딪치며 팽팽한 전선을 만들었다.

‘이 한 방으로 판세가 갈린다.’

맹수처럼 자신을 삼키려는 충동과 갈증.

가장 가깝고 깊은 곳에 똬리를 튼 또 하나의 괴수와의 싸움을 병행하던 용주가 모든 힘을 집중했다.

그 순간.

엄청난 세기의 힘과 바람이 용주를 덮쳤다.

서로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두 개의 구체.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끊어진 듯 맹렬하게 날아가는 피의 구체는 마치 혜성과 같았다.

응축된 힘에 공기가 찢겼고, 피부에 닿는 바람에서도 그 힘이 느껴졌다.

구체가 지난 자리엔 붉은 피의 꼬리가 남아 있었다.

충돌하는 두 개의 구체.

두 힘의 충돌이 만들어 낸 쇼크웨이브가 게이트 내부를 흔들었다.

고드름과 함께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렸고, 깨져 나간 대지가 거칠게 흩뿌려졌다.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은 무게추는 일진일퇴를 계속했다.

그러던 그때.

“카각…!”

팽팽하던 무게추가 한순간 기울었다.

다른 한쪽을 집어삼키는 붉은 구체.

균형이 깨진 전선은 눈 깜짝할 새에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폭발하는 피의 구체.

맹렬한 기세로 솟구쳐 오른 피의 기둥은 천장을 때렸고, 시야 속에 비치던 모든 것이 붉게 물들었다.

폭발에 잠긴 시야는….

폭발에 삼켜진 쪽은….

또 하나의 용주였다.

‘아직이야.’

잦아들기 시작한 폭발의 위력.

‘아직 안 끝났어.’

지면을 박차고 나간 용주도 속도를 높였다.

끌어모았던 마나의 잔재가 입 주변에 남아 있는 게 느껴졌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용주는 마나를 집중시켰다.

입 밖이 아닌 안쪽으로 모여드는 마나.

용주의 눈엔 보이지 않았지만, 용주에겐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부패한 입안에 형상화되어 가는 새로운 이빨들.

붉게 일렁거리던 잔재들이 굳어진 자리엔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들이 자라나 있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용주 역시도 그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건 녀석이 보여주지 않았던 힘의 형태.

이거라면.

이 상황의 종지부를 찍기에 가장 적합한 무기가 아닐까 싶었다.

“카…가…각!”

전신을 강타한 충격에 허우적거리고 있던 또 한 명의 용주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넝마가 된 몸 곳곳에선 피가 물처럼 흘렀고, 기괴하게 뒤틀린 다리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지 몇 번이나 이상한 곳을 짚었다.

상체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고 있는 오른손은 버거운 듯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부패했던 입가와 얼굴은 반쯤 망가져 원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카각!!”

그 순간, 그를 덮친 또 하나의 괴수.

쫙 벌어진 입은 인간이 벌릴 수 있는 규격을 벗어나 있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이빨은 상어의 것처럼 날카로웠으며, 이빨 사이사이 불규칙적으로 검고 붉은 아지랑이들이 피어올랐다.

또 하나의 용주는 거기 대항하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렸지만, 이미 판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하마의 싸움처럼 일순간 결정되는 승패.

용주의 악력에 뜯겨 나간 살점들 사이로 이빨들의 모습이 보였다.

“!”

녀석의 눈과 눈을 마주친 용주에게 또 한 번 낯선 감각이 타고 흘렀다.

터질 것 같던 심장이 고요했다.

뛰는 속도가 5초에 1번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순간, 놈의 손톱이 자신의 눈을 할퀴는 모습이 보였다.

반응하려 했지만, 반응하지 못했다.

놈의 속도는 그대로인데, 자신의 속도만 느려진 그런 느낌이었다.

‘녀석이… 뭔가 한 건가? 그런데 내 눈은 어떻게 녀석을 보고 있는 거지?’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의아함.

그 순간, 잠잠했던 심장이 다시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칵…!”

마지막 힘을 끌어모은 녀석의 오른손이 용주의 두 눈을 할퀴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찾아온 어둠.

망가진 시야에 아랑곳하지 않은 용주는 놈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렸다.

오른쪽으로 쓰러진 또 한 명의 용주를 씹고 찢는 손톱과 이빨.

우적우적 이어지는 끔찍한 소리 속에 또 한 명의 용주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 ‘계승자의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 대항력이 15 상승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했습니다.

▶ 최대 MP가 50 증가했습니다.

▶ 대항력의 ‘동질화’ 능력이 발현되었습니다.

- 카오스 게이트 내 차원 압력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 대항력에 비례해 대항할 수 있는 차원 압력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갈증 (Lv. Max)

- 패시브

- HP가 낮아질수록 스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 광폭화 (Lv. 1)

- MP 소모량 : 20

- 광폭화 상태에 빠져듭니다.

- 효과를 유지하는 동안 강렬한 갈증과 충동을 느낍니다.

- 모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 계승자가 입히는 피해에 비례해 HP를 회복합니다.

- 아웃레이지 스내치의 소모값이 삭제됩니다.

- 언어를 구사할 수 없게 됩니다.

▷ 혈기구축.

- 광폭화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원하는 신체 부위를 변이시키거나 강화할 수 있습니다.

▶ 페이탈 붐.

- 광폭화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피와 마나를 응축시켜 사출합니다.

▶ 블러드러스트

- 광폭화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피에 대한 갈증과 욕망을 한층 더 고조시킵니다.

- 광폭화 상태에서 사용하는 스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 지속적으로 HP를 소모합니다.

“커헉…!”

마지막 한 점까지 녀석을 먹어 치운 용주가 심한 헛구역질을 했다.

따뜻하면서 역겨운 감각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단 걸 알기에 구역감은 몇 배나 더 심하게 밀려왔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용주의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

안개가 낀 듯 뿌연 시야.

끓어오르던 갈증과 충동이 서서히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몸을 감싸고 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게 느껴졌고, 입가에 머물던 부패가 서서히 밀려가는 게 느껴졌다.

흐릿하던 안개가 걷히자 가장 먼저 붉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일대의 얼음을 모두 잠식한 짙은 핏빛.

피를 흠뻑 뒤집어쓴 자신의 옷 역시도 그와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아까 그건… 뭐였지?’

용주가 심장을 짚었다.

심장이 느리게 뛰는 감각.

그리고 자신의 눈을 할퀸 녀석의 모습.

마치 몇 초 전에 봤던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 같았다.

그게 뭔지 설명할 방법은 없었지만, 그건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어찌 됐든, 끝나긴 한 모양인데.’

두 눈의 상태를 확인한 용주는 눈앞에 일렁이는 문자들을 확인했다.

대항력, 능력치, MP 최대치.

거기에 많은 스킬들이 한꺼번에 발현되어 있었다.

‘스킬은 아니야….’

가장 눈에 띄는 건 ‘광폭화’라는 스킬이었지만, 용주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따로 있었다.

발현된 스킬들 중에 그런 효과를 가진 스킬은 없었다.

마치, 전에 광폭화를 경험했던 것처럼.

의문을 뒤로한 용주는 스킬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의문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것 외에도 여러 정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 용주의 시선이 멈춘 곳은 동질화.

대항력에 새롭게 발현된 효과는 카오스 게이트를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의 차원 압력….’

전혀 모르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건 카오스 게이트와 지구의 다른 환경에 기인한 차이라고 알고 있었다.

군인이 아닌 헌터가 게이트 토벌에 나서게 된 이유는 첫 번째로 도구의 문제.

대부분의 전자 기기와 군용 물품들이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여기 적힌 차원 압력.

마나를 가지지 못한 일반인들은 카오스 게이트 안에서 얼마 버틸 수 없다.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심한 압력에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망가진다.

구멍이란 구멍에선 피가 쏟아지며, 결국 끔찍한 고통 속에 최후를 맞이한다.

그렇기에 헌터가 있는 것이다.

마나를 가진 인간은 게이트의 차원 압력에 짓눌리지 않는다.

그 정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이미 충분히 버텨 내고 있었을 텐데….’

거기까지의 지식과 대조해 봤을 때, 저 ‘동질화’라는 효과에는 물음표가 찍혔다.

굳이 필요한 효과인지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항력에 비례해 대항할 수 있는 차원 압력의 정도가 달라진다라….’

차원 압력의 정도.

E급에서부터 시작해 C급 게이트까지 가봤지만, 그 정도라는 걸 피부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C급 게이트는 그 이전 게이트들과 확실히 차별점이 있긴 했지만, 그건 여기서 말한 차이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의문을 뒤로한 용주는 룬검을 챙겼다.

HP는 가득 차 있었지만, 피로감이 엄청났다.

모래주머니를 찬 듯 온몸이 무거웠고,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린 용주의 눈에 게이트의 한 면이 깨져 나가는 게 보였다.

데자뷔.

아까 봤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또 다른 차원엔 배신자들의 왕이 왕좌에 앉아 있었다.

“내 기대가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감은 눈으로 용주를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오른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에서 역동하던 심장은 형태를 잃고 사라졌다.

“기분이 어떤지 묻고 싶구나.”

“상쾌하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겹다만.”

신경질이 섞인 말투로 대답한 용주가 사내를 흘겨보았다.

“역겹다라. 그래. 충분히 그럴 만하지. 하나 그만한 가치는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널 삼켰던 자를 보란 듯이 찢고, 씹었지 않느냐?”

“그래. 그래서 더 역겹단 거다. 아쉽게도 난 그런 변태적인 취향은 없어서 말이야.”

양 뺨을 닦아 낸 용주가 침을 뱉었다.

입안에 아직도 그 구역질 나는 맛과 감촉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번엔 왜 나타난 거냐? 볼일이라면 끝났을 텐데?”

“네게 한 가지 경고할 게 남았기 때문이다.”

“경고라고?”

용주의 눈빛이 변했다.

“너희 세계에 문을 열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

“문?”

엄중한 그의 목소리에 용주가 되물었다.

“그래. 그쪽 세계의 문은 내가 관여할 수 없다. 문이 열리는 날은 곧 너희 세계에 지옥이 도래하는 날일 것이다.”

“관여? 지금은 네가 뭔가에 관여하고 있단 것처럼 들리는데.”

“배신자가 할 만한 배신자다운 짓이지.”

가볍게 어깨를 들썩인 사내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문이란 건… 카오스 게이트를 말하는 거냐?”

녀석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린 용주가 물었다.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

문을 카오스 게이트라 생각하면 맞아떨어지는 퍼즐이 있었다.

전자는 우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의미했다.

문제는 후자.

이 가정이 맞는다면 그게 의미하는 건 역시 하나뿐이었다.

이쪽 세계란 바로 왜곡된 차원의 반대편.

즉, 언노운들의 세계였다.

“너희가 그걸 그렇게 부른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역시 넌 인간이 아닌 거냐?”

“…배신자는 배신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그럼 그 모습은 뭐냐?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보이는데?”

“인간처럼…. 그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인간의 관점이자, 시점이지. 네가 날 인간으로 본다면, 난 인간일 것이고,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또 그러한 것이겠지.”

“별 시답잖은 말장난을….”

용주가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건 그렇고, 너 아까 이 눈에 대해 뭐라 했었지. 무슨 의미에서 한 말이냐.”

눈빛을 세운 용주가 물었다.

지금이라면 어쩌면,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네 것이 아닌 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눈으로 봐서 알아챌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용주의 앞에 섰다.

“문이 열리기 전에 배후를 찾아내 처단해라. 꿇릴 수 없다면, 죽여라.”

용주의 물음에 돌아온 건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답변.

“어이. 내 말….”

“남들에겐 없는 시간, 남들에겐 없는 기억, 남들에겐 없는 힘, 네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라.”

사내가 갑작스럽게 오른손을 뻗었다.

용주의 미간 사이에 멈춰선 손.

투명한 야구공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사내의 손 모양은 눈알을 뽑으려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그걸로 마지막.

파편처럼 깨져 나간 사내의 모습은 일순간 용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앞에 남은 건 차가운 카오스 게이트의 벽.

그리고.

<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는 강한 자의 눈까지도. >

세로로 쓰여 있는 점자였다.

“칫…! 또 저 할 말만 하고….”

점자의 내용을 해석한 용주가 불만을 표했다.

균열이 생긴 오른편엔 포탈이 보였다.

이곳으로 통했던 것과 마찬가지인 다크 포탈이었다.

마지막 획에서 손을 뗀 용주는 생각에 잠겼다.

짧은 대화였지만, 상당히 많은 정보가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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