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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89화 (189/357)

189화

“너는….”

용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전개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찢고, 씹어, 굴복시켜라.”

“그 말이라면 이미 들었어.”

걸음을 옮긴 용주가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한 걸음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S급 헌터였던 이안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뭔가 달랐다.

녀석은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기보다는….

언노운을 앞에 두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삼키지 못하면, 삼켜질 것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미 들었다고.”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두 차원의 경계면에 선 용주는 차원 너머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큭!”

그 순간, 용주의 몸을 덮친 엄청난 충격.

‘뭐야, 이건….’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그런 고통이었다.

당장이라도 의식이 날아갈 것만 같은 살인적인 수준의 통증이었다.

용주조차도 주저앉게 만드는….

상상할 수 있는 규격을 넘어선 재앙이었다.

“충분히 벼려내지 못한 검은 망치와 모루를 견딜 수 없는 법.”

검지를 세운 그가 허공을 훅 밀었다.

“돌아가라.”

순간적으로 가슴을 꿰뚫는 엄청난 힘.

압축되어 전달되는 힘에 날아간 용주는 카오스 게이트를 뒹굴었다.

세 번의 물수제비를 뛴 다음에야 간신히 속도를 줄인 용주는 지면을 길게 긁어 냈다.

몸과 정신이 붕괴되는 것 같은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있었다.

“맨날 자기 할 말만 일방적으로 해놓고, 모처럼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자리에서 일어난 용주가 그를 바라보았다.

“난 너한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말이야.”

입가를 닦아낸 용주는 다시 한번 그에게 다가갔다.

“네가 이곳에서 마주해야 할 건 내가 아니다.”

“그럼 그 잘난 얼굴은 왜 들이민 거지?”

“네가 마주해야 할 걸 풀어놓기 위함이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쥐고 있던 오른손을 펼쳤다.

그의 손안에 떠 있는 건 흡사 사람의 심장.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용주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심장에선 갑작스럽게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피는 녀석의 손을 타고 흘렀고, 층층이 쌓인 계단을 하나하나 타고 내려왔다.

용주의 발아래 웅덩이지기 시작한 핏빛.

무언가에 이끌리듯 용주는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저건… 나?’

웅덩이 아래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

피의 웅덩이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친 용주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보고 있는 자신의 얼굴은 자신과 전혀 달랐다.

즐거운 듯 짓고 있는 미소.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광기.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걸 찢어발기고 싶다는 살육에 대한 충동과 갈증이었다.

‘저게 나라고?’

용주가 순간 얼굴을 짚었다.

그런데.

웅덩이 아래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자신은 얼굴을 짚지 않았다.

‘아니야….’

용주의 심장이 순간 크게 요동쳤다.

저건 자신이 아니었다.

저기 있는 건 자신의 얼굴을 한 다른 존재.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던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웅덩이에 비치지 않았다.

푸아악!!

솟구치는 피의 물결.

웅덩이에서 물러난 용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추적추적 떨어지는 핏방울 사이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웅덩이 아래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그 소름 끼치는 미소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가각…!”

사람의 소리가 아닌.

그 무언가의 소리를 내면서.

“네 심장은 내게 있다.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검은 내게 필요 없다.”

배신자들의 왕이 왕좌에 앉자 부서졌던 공간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서지고 흩어졌던 파편들이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돌아갔고, 일렁이던 두 차원의 경계는 서서히 벽으로 막혀 갔다.

“네 것이 아닌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너의 모습을.”

그의 목소리를 끝으로 차원은 완전히 봉합되었다.

‘내 것이 아닌 눈…이라고?’

그의 말을 곱씹은 용주는 전투태세를 취했다.

물어보고 싶은 걸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지만, 지금 뭘 해야 하는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카… 카각…!”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또 하나의 자신.

그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린 피는 날카로운 손톱이 되었다.

‘할퀴기….’

틀림없었다.

저건 분명 자신의 스킬로 만든 피의 결정이었다.

‘겉모습만 같은 게 아니란 건가?’

할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스킬 역시도 사용할 수 있단 뜻이었다.

물어뜯기나 사후 강직.

더 나아가서는 아웃레이지 스내치나 영혼 안개까지도 사용할지도 모르는 일.

당장 검을 차고 있진 않았지만, 만약 인벤토리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검을 꺼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얻은 아이템을 역으로 이용당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불쾌한 골짜기도 이 정도로 불쾌하진 않겠는데.’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용주가 미간을 좁혔다.

네발로 땅을 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

거리를 유지한 채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용주에게 상당히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카각!”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는 녀석을 보며 용주 역시도 붉은 손톱을 만들어 냈다.

4족 보행.

그 스킬의 효과를 받고 있는 녀석의 속도는 용주가 낼 수 있는 딱 그 정도 속도였다.

맞부딪치는 손톱과 손톱.

힘 싸움에 살짝 뒤로 밀린 용주가 룬검을 휘둘렀다.

짐승과 같은 반응 속도로 재빠르게 물러나는 또 한 명의 용주.

공중을 밟고 도약한 녀석은 다시 한번 손톱을 휘둘렀다.

칼날을 따라 튀는 날카로운 얼음들.

룬검과 대치 중인 녀석의 손톱은 아까보다 길고 날카롭게 자라나 있었다.

‘중첩해서 사용할 수도 있는 거냐?’

벌어지는 두 사람의 간격.

치고받는 교전을 이어 가던 용주의 눈에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놈의 왼손이 보였다.

‘점멸?!’

사고와 동시에 반응한 용주는 몸을 사선으로 틀었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붉은 손톱.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드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던 용주였지만, 일은 생각처럼 흘러가 주지 않았다.

가드를 위해 올린 칼날에 닿는 건 손톱이 아닌 손등.

놈의 손등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폭발성 담즙…!’

생각하는 순간 종양에서 고름이 터져 나왔다.

순간 탁 하고 어두워진 시야.

‘젠장.’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날카로운 통증이 용주의 어깨를 할퀴었다.

“큭…!”

무너진 가드를 뚫고 용주를 짓누르는 힘.

어둑해진 시야 너머로 놈의 입술이 부패해 가는 게 보였다.

물어뜯기.

직감적으로 놈이 하려는 걸 눈치챈 용주는 점멸로 자리를 벗어났다.

“카각…! 가가가각!”

또다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웃고 있는 놈의 입술에서 혀가 날름거리는 게 보였다.

자신의 피를 핥는 놈의 모습.

‘네가 먹일 수 있으면 나도 먹일 수 있단 걸 알아야지.’

녀석이 남기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용주는 팔등으로 놈의 공격을 막아섰다.

역으로 흩뿌려지는 고름.

폭발성 담즙을 되돌려 준 용주는 공격으로 이어 가려 했다.

하지만.

촤악!!

흩뿌려지는 건 녀석이 아닌 용주의 피였다.

“큭…!”

놈의 복부에 검을 욱여넣은 용주는 그대로 놈을 집어 던졌다.

네발로 땅을 짚은 녀석은 피를 흘리면서도 우적우적 뭔가를 씹고 있었다.

붉은 피가 떨어지는 고깃덩이.

용주의 시선이 자신의 왼손을 향했다.

팔등에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보통 생각하는 강아지나 고양이한테 물린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다.

살점째 떨어져 나간 상처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었다.

‘젠장….’

순간 굉장히 역하고 더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역병에 감염됐을 때보다 100배는 더 구역질이 났다.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자신의 살점을 먹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참기 힘들 만큼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인스네어.’

초록 가스 지대를 흩뿌린 용주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혹한의 파도.’

빛을 발하는 룬검.

세 갈래로 갈라진 얼음의 파도는 땅을 기며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칵!”

시야의 사각에서 파고든 일격에 꽁꽁 얼어붙는 놈의 발목.

‘혹한의 쐐기.’

지면에서 솟구친 날카로운 가시들은 순식간에 놈을 꿰뚫었다.

툭! 투두둑!

사방으로 흩뿌려진 붉은 피.

단번에 얼음 쐐기를 베어 내는 녀석의 머리 위로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짙은 한기를 흩뿌리는 왕의 보좌관.

보좌관의 맹습 속에서도 완전히 얼어붙지 않은 녀석은 꾸역꾸역 발목을 붙잡은 얼음을 깨뜨렸다.

그 순간, 하늘에 나타난 작은 그림자.

공중을 밟고 한 번 더 뛰어오른 용주는 놈을 내려다보았다.

방울방울 피어오른 핏방울은 괴수의 팔이 되어 있었다.

‘아웃레이지 스내치!’

작렬하는 일격.

놈의 얼굴을 붙잡은 용주는 그대로 놈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솟구친 피가 두 사람을 덮쳤고, 용암처럼 분출된 피가 사방에 요동쳤다.

“…….”

마지막 한 방울의 폭발이 끝날 때까지 놈을 붙잡고 있던 용주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구역감이 잦아들자 묘한 공포심이 느껴졌다.

뻗어 있는 녀석은 영락없는 자신이었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놔야겠지.’

검을 고쳐 잡은 용주가 놈의 목에 칼을 겨눴다.

망설일 것 없이 단번이 끝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카각!”

감고 있던 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핏방울.

불길함을 감지한 용주는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

칼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살과 뼈를 뚫는 감각이 아니었다.

칼날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은 흡사 갑옷을 베는 느낌.

용수철처럼 몸을 접은 녀석은 폭발적으로 용주를 올려 찼다.

양발에 가슴을 적중당한 용주는 공중으로 날아갔고, 천장에 처박히고서야 땅에 떨어졌다.

‘나랑 상대했던 녀석들이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

용주의 뒷목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넝마가 된 녀석이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좀비처럼.

“가… 가가각!”

네 발로 땅을 디딘 녀석의 부패가 점점 커져 갔다.

입술에서 귓불까지 이어지는 짙은 부패.

떨어져 나간 살점 아래론 피하 조직과 이빨이 드러났다.

그로태스크한 저 모습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물어뜯기의 중첩.

놈의 눈동자에 깃들던 살기와 충동은 한층 더 짙어졌고, 녀석이 뿜어내는 기운도 한층 더 강렬해졌다.

방울방울 피어오르던 핏방울은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아웃레이지 스내치.

용주는 그 정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핏방울은 팔 하나에서 그치지 않았다.

두 팔과 두 다리.

심지어는 몸통의 일부까지도 핏방울이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혹시….’

순간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물어뜯기의 부패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3번.

어쩌면 4번째의 중첩일지도 몰랐다.

아웃레이지 스내치와 공간 균열.

두 가지 스킬을 입수한 정확한 경로를 자신은 알고 있지 못했다.

짚이는 구석은 있었지만, 두 눈으로 당시에 직접 목격했던 것은 아니었다.

두 스킬이 발현된 것은 자신의 의식이 끊겼던 그때.

프라이드, 고대의 재앙과의 삼파전 도중이었다.

당시 자신은 열세였다.

심리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할 수 있는 전부를 동원한다며 자신을 몰아붙였었다.

‘저게 혹시… 그때의 내 모습…인가?’

그렇게 가정하면 많은 것이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다.

아웃레이지 스내치는 저 상태로 발현된 스킬.

공간 균열이 수중에 들어온 건 저 상태로 녀석을 찢어발겼기 때문이리란 가정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는 건, 고대의 재앙과 프라이드가 봤을 자신의 모습이 바로 저기 있단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장 위험한 적…. 확실히 이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녀석은 없겠지.’

팔꿈치와 무릎, 손등을 타고 일렁거리는 붉은 아지랑이.

형태를 갖춘 녀석을 마주한 용주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야수나 맹수를 눈앞에 둔 것과도 달랐다.

그렇다고 형만이나 이안을 앞에 둔 것과도 달랐다.

가장 비슷한 건, 배신자들의 왕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것.

흡사 언노운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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