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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87화 (187/357)

187화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네모의 왼쪽 옆구리를 파고든 용주가 녀석을 베며 지나갔다.

네모의 전기톱은 아직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톱날이 멈춰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위험이 줄어들어 있긴 했지만, 과열이 끝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까아악!”

까마귀들의 비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데미지로 무력화시키는 건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데.’

룬검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이 그 정도였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마름모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웃레이지 스내치를 이용하면 그보다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 역시도 많은 시간을 벌어주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난다고 더 좋은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물러나려고 한다면, 충분히 물러날 수 있긴 했다.

어쩌면 게이트 내 어딘가에 룰렛처럼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었다.

속전속결로 일을 끝내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쉽게 끝내 주진 않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력원은 어떻게 된 거지?’

용주가 동력원을 곁눈질했다.

룰렛이 돌아가던 와중에 날아가 버렸었다.

겉으로 보기에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실패의 페널티였던 ‘동력 정지’ 상태가 된 건지 어떤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만약 동력 정지 상태가 돼서 24시간 동안 동력을 공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면,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고 때를 기다릴 텐데 말이다.

‘확인해 봐야겠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두른 네모의 전기톱을 피한 용주는 근처에 있던 석상 사이로 파고들었다.

톱날을 피해 요리조리 이동하는 용주.

네모와 똑 닮은 석상의 머리를 밟고 도약한 용주는 공중을 밟고 또 한 번 뛰어올랐다.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사원에 오른 용주는 동력원에 다가갔다.

▷현재 가동률 : 22%

공격을 받아 가동률이 줄어들긴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동력 정지 상태엔 들어가지 않은 모양인데.’

용주는 구석으로 날아간 태엽을 바라보았다.

태엽의 설명엔 분명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잘못된 부분에서 멈추거나, 룰렛이 원점으로 돌아오면,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며, ‘동력 정지’ 상태가 된다고.

그렇게 치면 방금 그 상황은 여기 해당하진 않긴 했다.

잘못된 부분에서 멈추지도 않았고, 룰렛이 원점으로 돌아오지도 못했으니까.

‘룰렛은?’

재빠르게 움직인 용주는 구석으로 날아간 룰렛의 상태를 확인했다.

▷ 태엽 룰렛.

- 동력원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대 1회)

다른 설명은 전과 동일했다.

변한 건 사용할 수 있는 횟수뿐.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아직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다.

‘문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냐는 건데….’

계단을 오르는 네모와 시야의 사각으로 자꾸만 이동하는 마름모.

둘만 해도 충분히 까다로운 상황이었건만.

찹!찹!찹!

그다지 반갑지 않은 발소리는 결국 나타나고야 말았다.

세모만이 아니었다.

“콜록! 콜록!”

쇠톱을 휘두른 동그라미가 요란하게 기침을 하고 있었다.

나무로 된 난간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말이다.

‘결국 다 모여 버린 거냐….’

최악의 흐름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3시. 6시, 9시. 12시.

사방에서 용주를 노리는 존재들.

‘일단은… 이 상황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해.’

완전히 포위당한 용주는 발광 크리스털을 꺼내 들었다.

남은 사용 횟수는 한 번.

스위치를 올린 용주는 질주해 오는 네모의 얼굴에 빛을 비추었다.

부아아앙!!

시각과 청각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멈추지 않는 네모의 돌진.

황소처럼 돌진해 오는 녀석을 마주한 용주는 점멸로 놈을 뚫고 나갔다.

눈먼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용주를 대신해 덮쳐진 건 다름 아닌 세모.

찹찹거리는 발소리를 찍으며 한 땀 한 땀 계단을 뛰어 올라온 녀석은 네모의 돌진에 휩쓸려 가버렸다.

“콜록!”

그러는 사이 난간을 넘어온 동그라미가 본격적으로 용주를 공격하고 나섰다.

녀석의 톱날을 막아설 때마다 초록색의 토사물이 튀었는데, 소량만으로도 상당히 역한 냄새가 났다.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발광 크리스털로 당장의 포위망은 벗어나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었다.

마름모야 준비해둔 탄환을 다 쓰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겠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에 일정 시간 꾸준히 데미지를 누적할 수 있다고 하면…?”

용주가 절대 영도에 직격당했던 마름모의 상태를 떠올렸다.

회복 속도가 상당히 빠르긴 하지만,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놈의 움직임은 둔해졌었고, 삐걱거렸었다.

그건, 다시 말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적인 데미지를 입으면 더욱 쉽게 무력화될지도 모른단 이야기.

HP가 50 이하로 내려가면 무력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51로 회복되는 순간 다시 50 이하로 HP를 떨어뜨리면 또다시 무력화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놈들이 회복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방법이 있을까?’

눈앞에서 희미해지는 동그라미의 모습.

폭발성 담즙을 사용한 용주는 놈의 줄톱을 막아섰다.

팍! 하며 터진 종양에선 고름이 튀었고, 고개를 숙였던 동그라미는 어지러운 듯 주춤거렸다.

‘그런 방법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과 스킬들.

동원할 수 있는 수단들에 대해 간구하던 용주는 몇 가지 스킬들을 나열했다.

만약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충분히 시도해 봄직한 루틴이 있었다.

영혼 안개.

아직까지 사용해 본 적 없는 이 스킬의 위력이 미지수이긴 하지만, 사전 준비를 해놓는다면, 피니셔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관건은 그럼 사전 준비를 어떻게 하냐인가?’

상점과 인벤토리를 동시에 연 용주는 소모했던 마나를 전부 회복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놈들에게 표식을 남기는 것.’

왼손을 움켜쥔 용주의 손목에 붉은 성흔이 나타났다.

성흔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바람을 타고 일렁거리고 있었다.

고통의 낙인.

자신이 받는 데미지를 상대방에게 전이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와 동시에 해야 할 건….’

이어서 사용한 할퀴기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

우왕좌왕하고 있는 동그라미를 노린 용주의 일격은 정확히 놈의 목과 가슴을 할퀴었다.

상처를 타고 동그라미에게로 흘러 들어간 불길은 또 다른 성흔이 되었다.

‘하나는 됐고….’

곧장 방향을 돌린 용주는 난간을 뛰어넘었다.

최대한 길게 사용한 점멸.

이제 막 시야를 회복한 듯 보이는 네모를 덮친 용주는 그의 어깨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길고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고통에 비틀거리는 네모의 어깨엔 선명한 성흔이 나타나 있었다.

‘마름모는 몰라도, 세모까진 확실히 해놔야 해.’

기세를 이어 간 용주는 세모를 공격했다.

검으로 세모의 가드를 유도하고, 그 틈에 성흔을 남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캬악!”

“!”

용주의 예상을 깬 일이 일어났다.

당연히 첫 타를 가드할 줄 알았던 녀석이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녀석이 대신 막아선 건 용주의 2타.

검 대신 손톱을 막아선 녀석은 세 손가락으로 용주를 할퀴었다.

역으로 찢긴 용주의 가슴을 타곤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흐름이 끊기자 존재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용주의 목덜미를 붙잡은 네모는 그대로 용주를 집어 던졌다.

‘큭…!’

순간적으로 가해진 충격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시동 걸린 전기톱이 맹렬한 기세로 자신을 추격해 오고 있었다.

하늘을 밟고 멈춰 선 용주는 찰나의 순간에 전황을 분석했다.

동그라미는 아직 시야에 제약이 있는 듯했다.

네모는 돌진해 오고 있었고, 세모는 바닥에 표식을 그려 넣고 있었다.

‘마름모 녀석은 어디로 숨은 거지?’

녀석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용주는 일단 당장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중요한 건 저 세 명이었으니까.

90도로 방향을 튼 용주는 점멸을 활용해 한 번 더 거리를 벌렸다.

용주가 도착한 곳은 네모를 본뜬 석상의 머리 위.

박수가 절로 나오는 관성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방향을 돌린 네모는 곧장 용주에게로 돌진해 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좁은 곳이라면….’

여기라면 녀석의 움직임에 제동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콰앙!!

그런 용주의 생각은 불과 몇 초 만에 부서지고 말았다.

석상 지대로 돌진해 온 네모는 온몸으로 석상을 부수며 직진해 오고 있었다.

‘자기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란 거냐.’

처음부터 여기 있던 거니까.

녀석이 비껴가던 바위나 나무 벽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이것도 훼손하지 않을 거라.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렇게 되면….’

바로 옆 석상을 뛰어넘은 용주는 검을 집어넣었다.

네발로 석상을 뛰어넘기 시작한 용주.

녀석과 맞서기보다 멀어지기를 택한 용주는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위이잉!!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레이스.

한발 먼저 석상 지대를 빠져나온 용주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네발로 뛰는 용주의 모습은 흡사 한 마리의 야수.

‘스팀팩!’

기어를 하나 더 올린 용주는 네모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세모와의 거리.

“키약!”

작동된 표식에선 세모의 분신이 튀어나왔지만, 한발 늦은 뒤였다.

용주는 이미 녀석의 공격 사거리를 벗어나 있었다.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용주는 맹독의 손톱을 또 하나 만들어 냈다.

왼손과 오른손에 모두 자라난 야수의 손톱.

왼손으로 지면을 긁은 용주는 측면에서 세모를 덮쳤다.

오른손을 가드해 내는 세모.

하지만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용주의 왼손은 세모의 복부를 꿰뚫었고, 타오르는 불길은 세 번째 성흔을 남겼다.

위이잉!!

곧바로 따라붙는 전기톱 소리.

마침맞게 돌아온 점멸의 쿨타임을 활용한 용주는 세모를 관통했다.

“캬악! 아악악!”

끔찍하게 일그러지는 소리들.

비명과 전기톱 소리에 살과 피가 튀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오른 어깨부터 왼쪽 골반까지.

단 일격에 찢긴 세모는 털썩 쓰러져 버렸다.

‘아니야.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고.’

용주는 쓰러진 세모를 둘러업었다.

쓰러져줘야 하긴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아니었다.

녀석이 쓰러져 줘야 하는 건 저 위.

동그라미가 있는 동력원이었다.

휘익!

그 순간, 허벅지를 타고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

‘큭!’

쥐 죽은 듯 숨어 있던 마름모의 장검이 오른쪽 허벅지를 깔끔하게 관통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오나 했더니….’

이를 악문 용주는 허벅지를 관통한 장검을 뽑아냈다.

‘그래도 이걸로 네 발째. 어서 충전하러 가버리라고.’

불의의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다.

다음 단계는 세 녀석을 최대한 붙여놓는 것.

동그라미가 헤매고 있고.

세모가 무력화되어 있으며,

네모의 톱이 과열되어 있고,

마름모의 칼날이 소진돼 있는 지금.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과연 있을까?

스팀팩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고통을 상쇄시킨 용주는 사원을 향해 달렸다.

예상치 못한 짐이 생기는 바람에 2단 점프는 힘들었다.

정직하게 계단을 타고 오르려는 용주.

그런 용주의 눈에 한 가지 특이점이 들어왔다.

‘저 녀석이 왜….’

동력원 근처에 있는 건 동그라미만이 아니었다.

사라졌여야 할 녀석이….

아니, 사라졌던 녀석이 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름모.

저글링을 하는 녀석의 손에는 네 자루의 장검이 들려 있었다.

‘설마… 녀석이 충전을 위해 돌아가는 장소가 여기였다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용주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

네 녀석 모두를 손안에 둘 기회.

동시에 날아든 두 자루의 장검이 용주의 어깨에 꽂혔지만, 용주는 멈추지 않았다.

이 기회를 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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