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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84화 (184/357)

184화

찹!찹!찹!찹!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소리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뭐랄까.

흠뻑 젖은 맨발로 바위 위를 걷는 소리랄까?

‘전에 봤던 두 녀석은 확실히 아니군.’

발소리는 이전 두 녀석과 달랐다.

전기톱 소리.

기침 소리로 대표되는 두 녀석의 특징도 나타나지 않으니 확실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까아악!”

날아오르는 까마귀 아래로 하나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점액에 둘러싸인 두 발로 뛰어온 세 번째 존재.

녀석의 한쪽 팔은 사람의 것과 유사했다.

손가락이 세 개이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해도 좋았다.

하지만 다른 한쪽 팔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반대편 팔은 칼날처럼 기이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네모에 동그라미…. 다음은 세모인 거냐.’

용주가 녀석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농담 삼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녀석의 얼굴은 세모.

피라미드처럼 입체적인 삼각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 뭐 하는 거지?’

동력원까지 달려온 세모는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하나를 그리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해봤자 대략 3~5초 정도.

그림을 그린 세모는 자리를 옮겨 또다시 그림을 그렸고, 그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캬악!”

마지막 획을 그린 세모는 특유의 소리를 냈다.

이윽고 멀어지는 세모.

녀석이 충분히 멀어지기를 기다리던 용주는 살금살금 동력원으로 다가갔다.

‘이건….’

자세를 낮춘 용주는 바닥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삼각형 두 개가 겹쳐져 만들어진 육망성이 녀석의 그림 전부였다.

‘다른 건….’

용주는 의식적으로 육망성을 피해 걸었다.

뭔진 몰라도 밟으면 그다지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캬악!”

용주의 오른쪽 어깨를 타고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흩날리는 핏방울 속에 용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순간 튀어나온 녀석은 분명 세모였다.

생김새와 소리까지 완벽하게 녀석과 일치했다.

‘어째서?’

녀석이 튀어나온 사실 자체로 문제 삼고 있진 않았다.

녀석이 남긴 표식이니 어떤 식으로든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 생각했으니.

용주가 지금 문제 삼고 있는 건 이 표식이 발동한 이유였다.

밟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했었다.

길목이 넓지 않았기에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분명 밟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되면….’

원인 규명을 잠시 미뤄둔 용주는 곧장 반격에 나섰다.

이렇게 된 거 피해를 입혀서 무력화시켜 둘 생각이었다.

할퀴기를 사용해 녀석의 칼날을 받아 낸 용주는 점멸로 이어 갔다.

등 뒤에서 나타난 용주의 물어뜯기.

“까아악!”

녀석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은 용주의 눈동자가 소리에 반응했다.

찹!찹!찹!찹!

아까 들었던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녀석은 분명 여기 있는데 말이다.

“…….”

이상함을 감지한 용주는 녀석을 차며 멀어졌다.

“캬악!”

용주를 쫓아오는 세모의 울음소리.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 세모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마치 움직일 수 없다는 듯이.

‘혹시 그런 건가.’

녀석의 발밑을 관찰하던 용주에게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녀석이 움직인 범위는 바닥에 그려져 있는 육망성을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나마 육망성 밖으로 나왔다고 했던 부분도 각 꼭짓점을 잇는 원을 그렸을 때 그 안에 한정되어 있는 범위였다.

녀석은 저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게 작동된 원인도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선을 밟지 않은 건 확실했지만, 저 영역 안을 밟지 않았다고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저기 뛰어오고 있는 녀석을 A.

여기 있는 녀석을 B라고 가정했을 때.

A와 B는 동일 개체가 아니었다.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자.’

뭐가 됐든 여기 더 있는 건 현명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토템이란 걸 찾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뛰면 흔적이 남는다.

발자국도 그렇고, 까마귀도 그랬다.

‘그건 테스트 안 해봤잖아.’

점멸을 활용해 자리를 옮긴 용주는 네 발로 땅을 짚었다.

속도를 조금 높인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발자국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거라면 쓸 만하겠어.’

달리는 속도엔 미치지 못했지만, 걷는 거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게다가 자세를 이만큼 낮췄다는 건 그만큼 눈에 띌 확률 또한 줄어들었단 뜻.

소모값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딱히 없었다.

* * *

속도를 유지한 용주는 까마귀 앞을 지났다.

까마귀는 자신을 보고 있을 뿐 날아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어디 있는 거야?’

잠시 멈춘 용주가 손목을 풀었다.

투자한 노력에 비해 성과는 전혀 없었다.

토템.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물건은 물론.

뭔가 특별해 보이는 물건 또한 발견하지 못했다.

‘이건 아닐 테고.’

고개를 든 용주가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담장과 담장 사이.

초록색의 얇은 선들이 막아서고 있는 이질적인 공간이 있었다.

▷ ‘어둠그늘 숲’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우선 다섯 개의 동력원에 모두 동력을 공급해야 합니다.

▷ 현재 작동된 동력원 (1/5)

용주가 선들에 다가가자 경고성 문구가 하나 나타났다.

아무래도 찾으려던 것 말고 다른 걸 먼저 찾아 버린 모양이었다.

‘출구라….’

빙글빙글 돌리던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점멸을 사용했다.

혹시나 했던 시도는 역시나.

선은 물론이고, 담벼락 너머로도 이동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성과라면 성과네.’

고개를 돌린 용주는 저 앞에 보이는 이층집을 바라보았다.

2층 야외 테라스라 할 수 있는 공간에 또 다른 동력원이 있는 게 보였다.

‘저것도 성과고.’

우선 저 동력원부터 돌리기로 한 용주는 건물로 다가갔다.

창을 타고 넘은 용주는 계단을 올랐다.

멀쩡한 입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

입구에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선 썩 좋은 위치는 아니긴 하네.’

동력원에 붙은 용주는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세 개의 면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이쪽에서 적을 발견하기도 쉽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플러스보단 마이너스가 많은 부분이었다.

‘수상할 정도로 조용한데?’

꾸준히 태엽을 감던 용주가 생각했다.

50%가 넘는 진행도를 쌓는 동안 손님이 찾아온 횟수는 딱 1번이었다.

찾아온 손님은 세모.

찹찹거리는 특유의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녀석은 부랴부랴 2층으로 올라왔다.

녀석의 진입 타이밍을 기다리던 용주는 타이밍에 맞춰 앞에 보이는 벽을 통과했다.

공중을 밟아 소리를 줄였기에 착지하는 데 소리는 나지 않았고, 용주가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생각한 세모는 주변을 살펴보다 그대로 돌아갔었다.

‘세모는 다른 두 녀석보다 탐지력이 떨어지는 건가?’

그게 아니면 활동 범위가 그만큼 넓다는 방증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용주에겐 그나마 희소식이었다.

이 속도라면 별문제 없이….

“……!”

태엽을 감던 용주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순간 튄 피가 동력원에 흩뿌려졌다.

태엽을 놓은 용주의 손이 옆구리를 짚었다.

옆구리를 관통한 날카로운 장검은 붉은 피를 머금고 있었다.

‘이건… 또….’

칼날을 움켜쥔 용주가 몸 밖으로 칼날을 밀어냈다.

칼날의 각도에서 날아온 방향을 가늠한 용주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마주친 적 없던 4번째 녀석이 거기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녀석.

흡사 슬랜더맨을 연상케 하는 녀석의 얼굴은 마름모 모양을 하고 있었다.

들고 있는 세 자루의 장검으로 저글링을 하고 있는 마름모.

눈살을 찌푸린 용주에게 두 번째 칼날이 날아들었다.

방금 뽑아낸 칼날을 휘두른 용주는 날아오는 칼날을 맞받아쳤다.

서로 부딪친 두 자루의 칼날은 동시에 깨져 사라져 버렸다.

‘완전히 한 방 먹었는데, 이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에서 기습을 당했단 것도 그중 하나였지만, 가장 치명적이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저 녀석이 저기까지 접근하는 동안 까마귀가 단 한 마리도 날아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점멸로 벽을 통과한 용주는 1층으로 떨어졌다.

창문을 타고 날아드는 3번째 칼날.

바로 옆에 있던 나무 테이블을 뒤엎은 용주는 칼날을 막아 냈다.

‘저 녀석 움직임이 이상한데.’

창밖으로 보이는 마름모의 움직임은 상당히 특이했다.

더 빠른 길이 있음에도 이용하지 않았고, 뛰지도 않았다.

‘까마귀가 날지 않은 건… 혹시 저것 때문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이 선택하는 동선엔 까마귀가 앉아 있지 않았다.

“캬악!”

의도적으로 육망성을 밟은 용주는 세모의 공격을 피해 물러났다.

창문을 지나 출입문으로 날아온 칼날은 세모의 분신을 꿰뚫고 있었다.

‘녀석이 들고 있던 장검은 제로. 이제 어떻게 나올 거지?’

용주는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들고 있던 모든 검을 사용한 마름모는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렸다.

‘없어졌잖아?’

혹시 동그라미와 유사한 능력이진 않을까 하고 주의를 기울인 용주였지만, 그 뒤로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진 않았다.

아마 모든 공격 횟수를 사용하면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충전을 위해서건 뭐건 말이다.

‘오히려 제일 까다로운 녀석일지도 모르겠어.’

다른 세 녀석과 달리 마름모는 원거리에서 공격을 해왔다.

까마귀를 교묘하게 피해 다녔고, 특별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가장 잔잔했지만, 가장 지능적인 녀석이 바로 마름모였다.

‘저게 발동했으니 그 녀석이 오겠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용주는 조금 더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타난 세모.

찹찹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2층으로 올라갔던 세모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입구에 다시 육망성을 그린 세모가 떠나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뭔가를 발견한 듯 두리번거리는 녀석의 시선.

상처를 짚은 용주는 순간 한 가지를 놓쳤단 걸 깨달았다.

발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핏자국은 남아 있었다.

단서를 잡은 녀석은 이쪽으로 곧장 뛰어오고 있었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 했지.’

점멸을 사용한 용주는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했지만, 당장 혼선을 줄 순 있을 거다.

“캬아!!”

바위 뒤를 덮친 세모가 핏자국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녀석.

주머니에 손을 넣은 용주는 발광 크리스털을 손에 쥐었다.

이번만큼은 운이 좋았는지.

녀석 이쪽으로 정확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용주는 녀석이 조금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3.

2.

1.

딸깍!

크리스털의 스위치를 올린 세모의 얼굴에 빛을 비추었다.

“캬악!”

코앞에서 들이닥친 강렬한 빛에 두 눈을….

아니, 얼굴을 가린 세모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딱히 내키진 않지만, 한 입만 실례하지.’

허우적거리는 녀석을 뒤에서 덮친 용주가 녀석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물어뜯기의 효과로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

충동과 갈증을 억누른 용주는 녀석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일부러 몇 개의 발자국을 남긴 용주는 네발로 땅을 짚었다.

용주가 향한 곳은 동력원이 있던 바로 그 건물.

2단 점프를 활용해 2층 테라스까지 도약한 용주는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찹찹!

찹찹찹!

분주하게 주변을 서성이던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드디어 갔네.’

숨을 죽이고 있던 용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혹시 동력원을 망가뜨리러 올라오진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숨을 필요는 없었던 건가?’

물론, 그런 일에 대비하고 있긴 했었다.

‘위령자의 싹 난 지팡이’를 활용해 구석이 쌓여 있던 동그란 나무통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으니까.

‘뭐, 안 망가뜨렸으면 그걸로 됐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남은 걸 마저 돌려야….

‘음?’

걸음을 옮기던 용주가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조금 전 음악 소리에 섞여 뭔가 다른 소리가 들렸었다.

뭐랄까.

모닥불이 타는 소리라고나 할까?

‘잘못 들은 건가?’

눈을 감은 용주는 조금 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는.

분명 있었다.

‘이 근처인데….’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용주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발견한 소리의 진원지.

통들이 만든 가장 구석진 자리에 무언가 있었다.

세 개의 손가락을 쫙 펼치고 있는 손뼈.

세 개의 받침에 고정된 손뼈는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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