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기침 소리?’
용주가 창가에 바짝 붙었다.
스산한 바람에 섞여 온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모는 아니야.’
전기톱을 사용하던 그 녀석은 아니었다.
지금 다가오는 소리엔 전기톱 소리가 섞여 있지 않았다.
“콜록!”
창밖을 곁눈질하는 용주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흐릿해졌다 선명해지는 사람의 실루엣.
여성의 체형을 갖진 녀석의 얼굴은 말 그대로 동그라미였다.
네모와 마찬가지로 눈코입은 없었고, 머리카락도 없었다.
우주복의 헬멧을 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선명해진 여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콜록!”
들려오는 기침 소리.
소리의 진원지는 분명 그녀였다.
‘다리가… 없잖아?’
여인의 모습을 확인한 용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쇠톱을 들고 있는 그녀는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선명해졌던 여인의 모습이 또 한 번 흐릿해졌다.
이윽고 다시 선명해지는 그녀의 모습.
둘 사이에는 나무와 바위 같은 지형지물들이 있었건만.
그녀는 그걸 직선으로 모두 관통한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지형지물을 그냥 뛰어넘는 건가?’
네모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다.
미끄러지듯 부스팅을 받아도 녀석은 무언가를 관통하진 못했으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동력원을 힐끔 바라본 용주가 출입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인은 확실하게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저 속도면 늦어도 20초 뒤면 여기 도착할 게 분명했다.
“콜록!”
벽을 뚫고 나타난 여인이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다섯 개의 태엽 중 첫 번째 태엽이 완전히 감겨 있었고, 발자국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진입에 맞춰 점멸로 밖으로 나간 용주는 여인이 다가왔던 방향으로 살금살금 이동했다.
그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미 한 번 확인했던 쪽을 다시 확인할 가능성이 가장 낮지 않을까 하는 추론에서였다.
창 너머로 여인이 관짝을 열어 보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둘 중 하나만을 확인했으니 저기 숨었다면, 걸렸을 확률은 50%.
친절하게 다시 관뚜껑을 닫은 그녀는 지하실 쪽으로 내려갔다.
흐려졌다 선명해지며 위치를 바꾸던 모습과 달리 지하실로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할 땐 반드시 고개를 숙인다. 능력을 무한정으로 사용할 순 없다. 일단은 그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 건가?’
‘동그라미’라고 이름 붙인 그녀의 행동에서 얻은 정보는 대략 그 정도였다.
지하실에서 다시 나온 그녀는 집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유유히 사라졌다.
‘태엽 하나 감을 때마다 돌아오려는 건 아니겠지?’
창틀을 뛰어넘은 용주는 다시 동력원에 붙었다.
그리고 가볍게 던졌던 그 플래그가 회수되는 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40%.
두 번째 태엽이 감기자 아까와는 다른 선율이 흘러나왔다.
공백이 채워진 멜로디는 조금 더 풍성해졌지만, 동시에 전기톱 소리도 함께 찾아왔다.
60.
80.
다른 두 개의 태엽이 돌아가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태엽이 돌아간 뒤에 나타나던 녀석들이 50%가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불규칙적으로 방문하곤 했다.
그중 한 번은 네모가 동력원을 걷어차는 모습이 보였다.
동력원에선 피아노 건반을 내려친 듯한 굉음이 들렸었고, 그 뒤에 확인해 본 동력원의 수치는 10%나 감소해 있었다.
놀라긴 했지만, 용주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했다.
덕분에 아직까지 들킨 횟수는 0.
이제 하나의 태엽만 더 감으면 다섯 개의 동력원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었다.
‘거의 다 됐어.’
가동률이 97%를 가리키던 그때.
용주의 등골을 타고 불길함이 흘러내렸다.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
그리고 전기톱이 돌아가는 소리.
겹치지 않고 따로 움직이던 두 소리가 동시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일단 마무리를…!’
용주는 무리해서라도 태엽을 마무리 지었다.
여기서 수치가 감소하는 건 사양이었다.
♪
동력이 100을 가리키자 푸른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돌아가는 다섯 개의 태엽.
평화로운 음악 소리는 현재 상황과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동그라미의 위치를 특정하는 게 애매한데….’
전기톱 소리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침 소리만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략적인 방향 정도는 특정할 수 있었지만, 특정된 그 방향이란 게 애석하게도 문과 창문 사이 모서리 부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방 안에 놓인 두 개의 관을 힐끔 바라본 용주는 지하실로 살금살금 내려갔다.
지하실의 구조는 대충 파악해 뒀었다.
4번째 습격이 있던 직후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지하실엔 ‘의식의 갈고리’가 십자 모양으로 총 4개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상자가 하나.
위에 배치된 것과 같은 생김새를 가진 관이 총 6개 배치되어 있었다.
관의 숫자가 더 늘어났다 한들 뒷일은 예측할 수 없었다.
여기 내려올지 말지.
어느 관을 열어볼지 말지.
선택권이 있는 건 저쪽이었으니까.
관들을 지나친 용주는 거대한 상자 앞에 멈춰 섰다.
자물쇠가 채워진 상자는 굳게 잠겨 있었다.
‘잘돼야 할 텐데.’
그렇기에 용주가 선택한 선택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자물쇠가 걸려 있단 건 평소엔 열지 않는단 소리.
여기라면 절대 열어 보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안쪽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몰라도 흔들었을 때 꽉 찬 느낌은 아니었다.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 정도는 아마 충분할 거다.
점멸을 사용한 용주는 상자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텁텁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고, 흩뿌려진 먼지에 당장이라도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무호흡을 사용한 용주는 아예 숨을 멈춰 버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네모가 위쪽에 도착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위쪽을 서성이던 발소리는 이내 계단을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콜록! 콜록!”
그와 동시에 나타난 콜록거림.
보이진 않았지만, 동그라미 녀석이 위에서 아래로 한 번에 이동한 게 분명했다.
끼이익!
계단을 내려온 네모가 관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녀석이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충돌이 일어나거나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위잉!
위협적으로 전기톱 소리를 낸 네모는 다시금 계단을 올라갔다.
‘간 건가?’
잔뜩 웅크리고 있던 용주가 고개를 들었다.
동그라미의 동선을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신중에 신중을 기한 용주는 조금 더 시간을 들였다.
끼익! 툭!
그 순간 들리는 둔탁한 소리.
바로 옆에서 들린 소리는 동그라미가 아직 여기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점멸을 사용한 용주는 상자 밖으로 빠져나왔다.
동그라미가 능력을 쓰며 퇴장해 준 덕분에 아무도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가볍게 어깨를 푼 용주는 오른손을 확인했다.
상자 안쪽에 들어갔을 때 잡혔던 물건이었다.
커다란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이라곤 이거 하나가 전부였다.
어지간한 질소 포장, 과대 포장 정도는 귀여울 정도의 포장이었다.
‘크리스털로 된 손전등…인가?’
겉모습을 보고 바로 떠오른 건 역시 손전등이었다.
몸통 부분에는 스위치의 형태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 발광 크리스털
- 빛을 만드는 크리스털이 장식된 조형입니다.
- 얼굴에 빛을 적중시키면 상대방의 시각과 청각을 잠시 동안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 남은 사용 횟수 (3/3)
‘그 녀석들 눈도 귀도 없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거겠지?’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용주는 크리스털을 주머니에 넣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나름 유용한 아이템을 손에 넣었단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여기서 나온 아이템인데 녀석들한테 효과가 없진 않겠지.
아이템의 텍스트상으로만 보면 얼굴에만 비추면 된단 것 같고.
‘그런데 아까 그 툭 하는 소리는 뭐였지?’
자리를 옮긴 용주는 동그라미가 마지막에 열었던 관을 확인했다.
관 안쪽에 예리한 무언가가 남긴 상처가 있었다.
‘열자마자 줄톱을 찔러 넣었던 건가?’
보진 못했지만 정황상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만약 저기 숨어 있었다면, 억 하는 순간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확인한 녀석은 둘. 다른 녀석들은 개입해 오지 않았어.’
동력원이 있는 1층으로 돌아온 용주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동그라미의 동선을 예측하는 데 생각보다 큰 어려움이 있었다.
발견하지 못한 두 녀석 중 그보다 더 까다로운 녀석이 있을지도 몰랐다.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라도 만들어 놓는 게 훗날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리라.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이라면….’
인벤토리 목록을 살피던 용주가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경고하는 두개골.
커다란 까마귀의 두개골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아이템은 지난 게이트에서 얻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 아이템의 효과는 무작위 좌표에 침입자를 알리는 까마귀를 배치하는 것.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는 힘든 효과였지만,
지금 상황엔 맞춤 제작을 했다 해도 믿을 만큼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까아악! 까악!!”
용주가 두개골을 사용하자 해골의 눈구덩이에서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튀어나왔다.
날아오르기 시작한 까마귀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모든 까마귀들이 날아간 경고하는 두개골은 바스러지며 사라져 버렸다.
용주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틀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내 움직임엔 날아가지 않는 건가?’
코앞까지 왔음에도 까마귀는 반응하지 않았다.
방향을 튼 용주는 이번엔 조금 속도를 높였다.
발자국이 생길 정도의 속도였다.
그러자.
“까아악!”
묵묵부답이었던 까마귀가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아무래도 사용자라고 반응하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알아냈으니 됐어. 주의만 하면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야.’
창틀을 넘은 용주는 주변 변화에 주의를 기울였다.
용주를 기준으로 11시와 3시 방향에 까마귀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일단 2명은 저쪽에 있는 모양이네.’
시간 차를 두고 몇 마리의 까마귀가 더 날아올랐다.
대략적인 녀석들의 진행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였다.
‘일단 녀석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움직여 보자.’
코너를 돈 용주는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동력원을 찾아야 했다.
층층이 쌓인 나무상자를 지난 용주는 주변을 살폈다.
날아오르는 까마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엔 없는 건가?’
앉아 있는 까마귀들의 상태를 확인한 용주는 동력원으로 다가갔다.
일단 20%까지는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력원에 붙은 용주는 첫 번째 태엽을 붙잡았다.
쾅!!
힘을 준 순간 일어난 폭발.
‘뭐야?!’
강렬한 폭발에 놀란 용주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HP에 타격은 없었지만, 방금 그걸로 인근에 있던 까마귀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 ‘주술’의 저주를 받고 있는 동력원입니다.
▷ 주술의 영향을 받는 동력원은 불규칙적으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 폭발이 일어난 동력원은 동력을 크게 상실합니다.
▷ 해당 동력원에 정상적으로 동력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술’의 동력인 ‘토템’을 파괴해야 합니다.
‘이런 것도 있는 거였냐?’
친절한 듯, 불친절하게 나타난 메시지에 용주가 미간을 좁혔다.
주술을 걸고 있는 토템이란 걸 파괴하지 않는 이상 이 동력원에 동력을 주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토템이란 건 내가 알아서 찾으란 거고?’
토템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여기서 통용되는 이미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물건을 이 넓은 땅에서 찾으라니.
무슨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으라는 것도 아니고….
‘태평하게 불만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고개를 저은 용주는 나무상자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누군진 몰라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정도 소리였으니 반응하는 게 당연하겠지.
‘이렇게 된 거. 어디 어떻게 생긴 놈인지라도 보자고.’
전화위복.
이왕 엎질러진 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용주는 숨을 죽였다.
어차피 마주쳐야 할 녀석이라면.
미리 정보를 얻어놔서 손해 볼 건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