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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78화 (178/357)

178화

“찢어 뭉개라. 쿠단!”

높이 뛰어오른 윤현이 검을 휘둘렀다.

날뛰는 인간 얼굴의 소.

쿠단의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은 용주는 쿠단의 배를 갈랐다.

검은 불길을 잠식해 나가는 하얀 서리.

“죽어!!”

불길 속에 흩어지는 쿠단을 뚫고 들어온 윤현은 용주를 내리쳤다.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불과 얼음.

“집어삼켜라. 츠치노코!”

돌아가기 시작하는 차륜.

팽팽한 평행선을 그리는 힘의 대결 속에서 세 마리의 뱀이 용주를 덮쳤다.

“느껴지나? 나의 이 뜨거운 분노가!”

“글쎄….”

불길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점멸을 사용해 불길을 뚫고 나간 용주는 허리를 비틀었다.

“잊었나 보지? 나의 절대 방어를.”

용주의 칼날을 막아서는 불의 족제비.

윤현의 방어 스킬인 카마이타치였다.

“절대였던가?”

왼손을 휘두른 용주는 불길 속으로 손을 욱여넣었다.

“너 이 자식……!”

윤현의 어깨를 할퀴며 지나가는 붉은 손톱.

발작에 가까운 경련을 일으킨 윤현의 몸에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에 날아간 용주는 자동차 범퍼 위에 착지했다.

2단 점프를 활용해 제동을 한 번 걸었기에 날아간 거리는 그렇게 멀진 않았다.

“무로 되돌려라.”

왼손을 뻗은 윤현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용주를 두었다.

윤현의 가슴 중앙에서부터 뻗어 나간 불길은 기름을 부은 듯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

내지르는 윤현의 칼날.

칼날에서 치솟은 거대한 불길은 머리가 여덟 달린 뱀의 형상이 되었다.

‘불이냐 얼음이냐. 어디 한번 붙어 볼까?’

범퍼 위에서 뛰어내린 용주는 검을 고쳐잡았다.

지면을 향한 룬검의 검첨.

룬검에 박힌 룬 문자들은 선명한 푸른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보좌관의 맹습!’

짙은 한기를 뿜어 낸 용주는 검을 지면에 박아넣었다.

한기 속에서 비상하는 본 드래곤.

안개와 서리를 흩뿌리며 날아간 왕의 보좌관은 야마타노오로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삽시간에 주변을 잠식한 짙은 안개.

윤현이 일으키는 무차별 폭발을 뚫고 달린 용주는 그의 목소리를 표적 삼았다.

‘오히려 잘됐어.’

녀석의 등장에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설마 이 타이밍에.

카오스 게이트도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공격을 가해 올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기회란 생각도 들었다.

녀석은 혼자.

다른 녀석들의 존재는 감지되지 않았다.

녀석 혼자라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날 싸움 같지만, 당장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녀석을 끝장내는 건 녀석에게 얻을 수 있는 걸 전부 얻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시작한 일이니,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야겠지.

‘어떻게 해서라도 전부 불게 만들겠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생각만으로도 너무도 무섭고 섬뜩한 말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서윤은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단 걸 용주는 알고 있었다.

녀석의 목숨을 빼앗으면.

팬텀의 타깃이 온전히 자신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복수심이든, 위기감이든, 기타 다른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타깃이 확실시된다는 건 다른 곳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이야기.

손에 사람의 피를 묻히는 이는.

자신 하나면 충분하리라.

‘아웃레이지 스내치!’

지면을 차고 오른 용주가 점멸을 활용해 한 번 더 도약했다.

거꾸로 뒤집힌 세상을 내려다보는 용주의 시야.

방울방울 피어오른 핏방울은 용주의 팔을 잠식해 나갔다.

인간의 것이 아닌 자신의 팔을 바라본 용주는 두 발로 허공을 힘껏 찼다.

2단 점프를 응용한 하강 도약.

“!”

안개 속을 강하하던 용주의 시야가 순간 핑하고 흔들렸다.

‘하필…!’

갑작스럽게 찾아온 강렬한 두통.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찾아온 스팀팩의 극심한 부작용 속에서 용주는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

이 공격을 헛되이 할 순 없었다.

투쾅! 쿠구구궁!

강렬한 충격에 터지고 깨진 보도블록이 사방으로 빗발쳤다.

들끓는 피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갈라진 대지를 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지진으로 갈라진 땅에서 용암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칫…!’

피로 엉망이 된 인도와 도로.

난자하는 핏빛 속에서 고통스러운 듯 찡그리고 있던 용주의 표정이 좀 더 구겨졌다.

정타로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을 붙잡지 못한 손은 그대로 바닥을 내리쳐 버렸다.

“으윽! 그으으아악!!”

폭발에 날아갔던 윤현이 괴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가슴을 부여잡은 그의 표정에선 극심한 괴로움이 느껴졌다.

“죽인다! 이용주! 죽인다!!”

폭발과 함께 지면을 날려 버린 윤현이 거칠게 용주를 밀어붙였다.

윤현의 칼날이 지날 때마다 불꽃이 튀었고, 용주가 놓친 단 한 순간이 곧장 큰 부상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어.’

용주는 또 한 번 스팀팩을 사용했다.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나쁜 선택지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타이밍이 참 안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까 2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아웃레이지 스내치를 적중시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폭발성 담즙.’

다시금 바로 잡힌 시야.

스킬을 발동한 용주의 팔등에 비정상적인 수포가 일어났다.

수포는 순식간에 팽창하며 부풀어 올랐고, 물이 가득 찬 수포는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윤현의 칼날을 용주는 손등으로 막아섰다.

그 순간 뿜어져 나오는 담즙.

“이건 또 뭐야?”

피가 아닌 정체불명의 액체를 뒤집어쓴 윤현의 안광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시야가.

좁고 어두워져 있었다.

‘좋아.’

윤현에게 깜짝 담즙을 선물해 준 용주는 곧장 반격을 이어 갔다.

방금 그 상황에서 용주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였었다.

그대로 일격을 허용한다.

사후 강직을 사용한다.

폭발성 담즙을 사용한다.

용주가 세 가지 중 마지막 선택지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는 사후 강직이 불길을 막아서는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후 강직보다 반격으로 전환하는데 용이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비겁한 새끼! 비열하고 교활한 쓰레기 새끼!”

갑작스러운 시야 감퇴에 윤현이 온갖 비속어를 내뱉었다.

뒤바뀐 공수 속에 빈틈을 비집은 용주의 칼날.

불타오르는 윤현의 가슴에 차가운 서릿발이 지나갔다.

“내놔! 힘을! 더 강한 힘을 내놓으라고!!”

악에 받친 외침을 토해 낸 윤현.

용주의 손톱에 옆구리를 꿰뚫린 윤현이 용주의 왼손을 내리찍었다.

“!”

산산조각 흩어지는 붉은 결정들.

사방으로 튀는 손톱의 잔해들 사이로 용주는 볼 수 있었다.

윤현에게서 흘러내린 검은 불길이 액체처럼 주변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심연에서 기어 올라와라. 오오무카데!”

웅덩이진 불길을 속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지네.

거대한 검은 몸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폭발이 일었고.

웅덩이졌던 화염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큭…!’

화염에 삼켜진 용주의 시야가 지면에서 빠르게 멀어져 갔다.

온몸을 불사르는 짙은 화염.

끔찍한 고통 속에 이를 악문 용주는 점멸로 화염을 빠져나갔다.

한 모금이라도 호흡을 머금었다면.

기도가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다.

“죽인다. 이용주. 반드시!”

자신의 몸을 불사른 윤현이 화염을 폭발시켰다.

흐려졌던 그의 시야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윤현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화상으로 얼룩진 저 녀석의 몸뚱이가 쓰러질 것만 같았다.

“찾았다.”

그 순간, 물결치는 윤현의 그림자.

여인의 목소리에 반응한 윤현의 시선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너는…!”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자와 눈이 마주친 윤현.

역병 의사 가면을 쓰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를 윤현은 알고 있었다.

러스트.

칙칙하고 묵묵한.

어딘가 음습한 느낌을 풍기는 녀석이었다.

‘팬텀?!’

놀란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체격이나 목소리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프라이드는 아니었다.

저기 있는 건 여자.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등장은 아마 녀석이 쓰는 스킬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안 좋은데….’

윤현 하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2 : 1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

녀석이 프라이드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거 놔!”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눈에 한 가지 장면이 들어왔다.

자신의 그림자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윤현의 모습.

발버둥 치는 윤현의 모습은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생존자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았다.

“엔비 부탁이야. 데려오랬어.”

“엔비건 뭐건 다 필요 없어! 난 내 복수만 이루면 그만이라고! 내 복수는 여기 있어!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라고!!”

“그래. 동감이야. 네 복수건 뭐건 나도 상관없으니까.”

“뭐라고?!”

확연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의 온도 차.

“그렇다면, 힘으로 벗어나 주겠어! 내 복수를 방해하겠다면, 너도 가만두지 않겠다! 찢어 뭉개라. 쿠단!”

분노를 폭발시킨 윤현은 러스트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것까지 엔비한테 다 말할게. 조금 혼날지도.”

윤현의 공격은 러스트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움직임이 봉쇄당한 쿠단은 윤현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에 삼켜졌다.

“놔! 놓으란 말이야! 나는 여기서 끝내야 할 일이…!”

자신을 삼키는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윤현은 전력으로 날뛰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머리까지 완전히 빨려 들어간 윤현의 모습은 이제 거기 없었다.

“네가 이용주인가 보네?”

윤현을 제압한 러스트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팬텀…. 이번에도 윤현을 회수해 가려고 온 거냐?”

지금 상황을 빠르게 분석한 용주가 물었다.

“러스트. 내 이름.”

“그래. 러스트. 이번에도 윤현을 회수해 가려고 온 거냐?”

“응. 엔비가 찾아 달랬거든.”

‘엔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전에 프라이드에게 심부름을 시켰단 사람의 이름이었지, 분명.

“그 녀석으로 뭘 할 속셈이냐?”

“글쎄…. 그건 보스만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보스라고?”

“응. 보스. 팬텀을 만든 사람.”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러스트가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건 검은색 편지 봉투였다.

“박형만이라는 헌터. 알아?”

“박형만? 그건 왜 묻는 거지?”

“당연히 알겠지? 비밀의 방. 같이 갔었잖아.”

“!”

러스트의 한마디에 용주의 눈빛이 반응했다.

“이거 그 사람한테 전해줘. 중간에 열어보진 말고.”

러스트가 발밑에 편지 봉투를 내려놓았다.

윤현을 삼켰던 것과 달리 봉투는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이야. 너랑 나만 알고 있는 비밀.”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들어줄 거야. 왜냐하면….”

러스트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잿빛 물결.

땅과 하늘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간 물결은 용주가 보는 세상을 온통 잿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뭐야, 저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둥글게 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은 의식을 잃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박제된 곤충 표본처럼.

“환상이라고 생각했지? 널 속이기 위한 속임수라고.”

“…….”

“그럼 확인해 볼까? 진짜인지 가짜인지.”

한 청년의 다리를 타고 오른 그림자가 청년의 목을 감쌌다.

힘을 받기 시작한 목은 조금씩 꺾이고 있었다.

나선 안 될 끔찍한 소리를 내며.

“그만!”

순간 극도의 섬뜩함을 느낀 용주가 외쳤다.

저 사람.

분명 아까 같이 사진 찍어달라고 다가오던 그 사람이었다.

“들어줄 거지?”

러스트의 물음에 용주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기 있는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할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현명하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줄게. 전부 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러스트가 편지 봉투 위에 또 하나를 내려놓았다.

“선물이야. 편지 잘 부탁할게.”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회색 물결이 역으로 러스트에게 밀려 들어왔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

마지막으로 사라진 러스트의 모습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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