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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77화 (177/357)

177화

* * *

“정말 이 게이트 맞지?”

게이트 내부로 들어온 예나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응. 틀림없어. 승우 형이 운전해 줬잖아.”

주원이 쓰고 있던 우선을 접었다.

게이트 내부엔 옅은 한기가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벌써 자리를 뜬 모양이구려.”

금화가 대검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게이트는 이미 클리어된 상태였다.

“그 녀석이 한 건 맞는 것 같은데.”

남아 있던 게이트 보스의 유해를 살피던 서윤이 이야기했다.

찢기고 뜯긴 이 상처를 용주 외에 다른 헌터가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근데 용주 오빠가 게이트 임무 수주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었어?”

예나가 의문을 표했다.

용주가 사라지고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건 아니었다.

많이 지났다고 쳐도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할 만한 시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혹시 다른 누군가랑 같이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한테 남아 있는 상처. 분명 한 사람이 남긴 거야. 그 녀석 혼자 쓰러뜨린 거라고.”

서윤이 절단면에 남은 하얀 서리에 손을 올렸다.

지난번 게이트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런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전까지 사용했던 용주의 검과 이 절상은 달랐으니까.

새 검을 손에 넣은 이는 자신만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그 녀석 성격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용주 형 아까부터 상태가 좀 이상해 보였어요. 우리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주원이 걱정스러움을 드러냈다.

“어쩌면… 일부러 우리와 거리를 두려는 걸지도 모르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금화가 무겁게 이야기했다.

“일부러?”

“자신의 존재가 우리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싶네.”

금화의 추측에 예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용주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팬텀이 처음 우릴 습격했던 건 윤현이란 개인의 복수심에 의한 것이었네.”

“윤현 그 사람이 노렸던 건 용주 오빠였었고….”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불안이…….”

“잠깐만!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그랬어야지. 그 녀석, 지난 게이트까지만 해도 우리랑 잘만 움직였잖아? 안 그래?”

“어….”

“들어보니까 그건 또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서윤의 반박에 예나도 주원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조금은 막연했던 게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금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여?”

“죽음 말이네. A급 B급 헌터들. 우리보다 더 노련하고 강한 그들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나.”

세 사람의 눈동자에 무거운 그림자가 스쳤다.

“내 기억이 맞다면, 프라이드란 작자에게 당했다고 했었지.”

아픈 기억이 떠오른 서윤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그래. 뭐… 그랬었지.”

“그 사건 이후에도 용주 군이 우리와 동행한 건 함께 있는 게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네. 길드에서 뭔가 조치를 해줄 테니까. A급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을 거니까. 안수지 양이 움직여 줄 거니까.”

“…….”

“그런데 그 안전장치가 부서져 버린 거네. 안전할 거라 생각했던 유리 바닥이 산산이 조각나 버린 거지.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던 방법이 통째로 부정당한 거네. 심지어 안수지 양까지 위험에 끌어들인 셈이 되어 버렸지.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

“이형 소나는 사전에 기습을 막을 수단은 아니네. 습격 이후에 반응하는 장치일 뿐이지. 그런데 그 대응마저 확신이 서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우리랑 선을 긋겠다고? 자기 때문에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불만 가득한 서윤의 물음에 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아니야?! 습격당한 다른 헌터들은 뭐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됐나?!”

버럭 소리를 지른 서윤이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하려고요?”

“찾아야지! 그 녀석 얼굴 보고 한 소리 해 줄 거라고!”

“어떻게 찾으려고요? 용주 형 연락도 안 되잖아요.”

“몰라! 움직이다 보면 뭐라도 있겠지!”

* * *

“프라이드! 프라이드!!”

“아~ 시끄러! 왜?”

멋대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엔비에게 프라이드가 신경질을 부렸다.

“먼저 말해두는데, 나 아무 사고도 안 쳤어. 시키는 것만 시키는 대로 딱 했다고.”

“혹시 윤현 못 봤어?”

“윤현?”

프라이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야 네가 더 잘 아는 거 아니야?”

“그게 문이 활짝 열려 있더라고. 안엔 아무도 없고.”

“뭐…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니야? 애도 아니고. 그런 거까지 일일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렇지만 그렇게 된 이후로 한 번도 생리 현상을 보인 적 없는걸.”

윤현의 모습을 떠올린 엔비가 고개를 저었다.

화장실은 물론이거니와, 뭘 먹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로비라면 네가 보고 있었을 거 아니야?”

“그게 글러트니랑 같이 움직이면서 비었던 시간이 좀 있거든. 나라고 카운터만 지키던 건 아니었으니까.”

“음~ 뭐야. 너희들도 움직이는 거였어?”

“그럼. 보스의 지시였으니까.”

“너야 그럴 수 있다지만, 글러트니까지? 그 녀석 말도 잘 안 통하는 게, 먹는 거 먹는 거 오로지 먹는 거밖에 모르잖아.”

프라이드가 근처에 있던 스낵 하나를 와지끈 깨물었다.

“그래서 같이 움직인 거지. 우리 귀여운 글러트니. 내 말은 참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그래도 밖에 데리고 나갈 수준은 아니지 않아? 눈 돌아가면 어떡하려고.”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린 프라이드가 인상을 썼다.

글러트니와 직접적으로 혈투를 벌였던 적이 있었다.

눈이 그냥 헤까닥 돌아가서는 눈에 뵈는 걸 전부 먹어 치우려고 했었지.

그 녀석.

바보에 먹보인 주제에 힘 하난 정말 끝내줬었다.

“그게 보스한테 뭔가 좋은 선물이라도 받았나 보더라고. 강아지처럼 말을 얼마나 잘 듣던지. 귀여워 죽겠어.”

“귀엽긴 개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프라이드가 턱을 괴었다.

“아무튼 난 몰라. 난 언제 다음 사냥을 나갈지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음~ 그래? 그러고 보니 소감을 안 물어봤네. 어땠어? 마음엔 좀 들었어? A급 헌터랑 붙어본 거.”

“아주 하이했었지. 살아 있다는 게 팍팍 느껴질 정도로.”

“다친 곳은?”

“누구랑 달리 난 아주 영하거든.”

“어머, 그래? 그거 좋겠네. 제일 많이 다친 것도 그 영함 때문이려나?”

“…….”

엔비의 미소에 프라이드가 시선을 피했다.

프라이드의 뺨과 쇄골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 * *

‘어둠 그늘 숲…. 이제 남은 건 퀘스트 게이트뿐이야.’

용주가 걸음을 서둘렀다.

대구 달서구.

거기가 다음 퀘스트가 가리키고 있는 곳이었다.

KTX를 타고 대구까지 가면 그 뒤론 버스로 이동하면 됐다.

“저, 저게 뭐야?”

“히익! 피…! 완전 피범벅이잖아?!”

용주를 발견한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들이 들려왔다.

“영화라도 찍는 건가? 아니면 몰래카메라?”

“정말? 완전 쩌는데?”

“#나 혼자 할로윈. 이거면 될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피해 가는 사람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피 칠갑을 한 상태.

언노운의 피와 자신의 피가 뒤섞인 모습은 말이 필요 없었다.

꽤 오랜만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인파 속에 묻힌 용주는 사거리 신호를 기다렸다.

용주를 중심으로 작은 무인도가 생겨 있었는데, 용기 내 핸드폰을 들고 오던 사람이 도망간 이후론 안전거리를 넘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수군거리는 인파 속에 바뀐 신호.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눈동자들에 시선을 주고 있던 용주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콰앙!!

근방에 있던 건물 창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빗발쳤고, 폭발의 잔해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꺄아아악!!”

“폭발이야! 도망쳐!!”

“미친! 이거 실제 상황인 거지?”

“테러?! 우리나라에서?!”

“으아악!!!”

갑작스러운 폭발에 거대한 혼란이 일었다.

용주가 나타났을 때 핸드폰을 들이밀었던 이들조차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빴다.

‘검은 불꽃?’

연속해서 이어지는 폭발.

폭발의 근원지를 올려다본 용주의 머릿속에 한 녀석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검은 불꽃을 사용했던 바로 그 녀석의….

‘스팀팩!’

급하게 방향을 튼 용주는 거리를 질주했다.

노란 모자에 노란 가방.

저 앞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늦겠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 풍경 속에 떨어지는 잔해가 보였다.

이대로는 늦는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낀 용주는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으아앙~.”

울고 있는 아이를 덮친 용주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용주의 등 뒤로 떨어지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사후 강직으로 충격을 버텨 낸 용주는 아이를 똑바로 세웠다.

“형 눈 똑바로 봐.”

용주가 아이의 양어깨를 꽉 붙들었다.

공포에 질린 아이의 눈동자에선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뛰어! 할 수 있지?”

용주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가방을 떠밀어 준 용주는 폭발의 진원지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불길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다.

“크하하핫! 영웅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누가 보면 진짜 영웅이라도 된 줄 알겠어.”

기괴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목소리.

“윤현….”

불꽃처럼 타오르는 안광을 마주한 용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저 녀석.

마지막에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사람처럼은 볼 수 없는, 까맣게 타버린 모습 말이다.

“아니. 네발로 뛰는 걸 보니 그냥 개인가? 개새끼.”

폭발을 일으키며 뛰어내린 윤현이 지면에 착지했다.

검은 불길에 둘러싸인 그는 자력으로 공중을 날고 있었었다.

“개는 너한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 넓은 땅덩이에서 날 찾은 걸 보니.”

“네가 어디 숨든 난 알 수 있다. 나의 이 증오가, 타오르는 나의 이 분노가 말해주고 있으니까. 더럽고 추악한 네놈에게 복수를 이루라고.”

일렁거리던 검은 불길이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벌레 새끼들이 아직도 꼬여 있군. 불쾌하게시리.”

왼손을 치켜든 윤현이 또 한 번 폭발을 일으켰다.

창문 너머를 찍고 있던 일부 사람들은 뒤늦게 패닉에 빠지고 있었다.

“가면은 이제 집어치우기로 한 거냐?”

용주가 물었다.

윤현의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질문이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내 얼굴을 봐. 이 흉측한 얼굴 어디에 가면이 필요하단 거냐?”

윤현이 자신의 얼굴을 긁어내렸다.

“원래 모습으론 돌아갈 수 없나 보지?”

“다 네놈 때문이다. 내가 모든 걸 잃어버린 건 다 네놈 때문이라고!!”

윤현의 시선을 빼앗는 데 성공한 용주는 조금 더 시간을 벌기로 했다.

“팬텀이 테러 조직인 줄은 몰랐는데?”

“녀석들 몇이 뒈지든 말든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 그것까지도 다 네 탓이다. 이용주. 다 네가 말려들게 한 거고. 다 네가 죽인 거야.”

“미쳐도 곱게 미치긴 글렀나 보군.”

“미쳐? 내가? 하! 웃기지 마! 난 정당한 복수를 이루려는 것뿐이야. 지극히 합리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이며,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그래?”

“너만은 절대 용서 못 한다. 이용주.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인간도 뭣도 아닌 괴물로.”

“널 그렇게 만든 건 너다. 내가 아니라.”

“닥쳐!!”

오른발을 구른 윤현의 몸에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윤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전보다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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