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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76화 (176/357)

176화

빗속을 걷던 용주가 잡아끌던 손을 놓았다.

가로수 아래로 수지를 밀친 용주는 차분하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왜 말 안 했냐?”

“…….”

“말해봐. 기다릴 테니.”

“…….”

용주의 긴 기다림에도 수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는 얼굴들이었냐?”

한숨을 삼킨 용주가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몇 명은.”

“가족이었겠지?”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게 네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

“불가항력이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재난이었다.”

용주의 이야기에 수지가 시선을 피했다.

마치 그 말을 공감할 수 없다는 듯한 그녀의 얼굴이었다.

“……거기 가기 전날 연락이 왔었어.”

“연락?”

“응. 의료 헌터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같이 가줄 수 있냐고.”

“…….”

“거절했었어. 그리고 그게 마지막 통화였어.”

수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저격수가 있단 걸 알고 있었는데도, 지키지 못한 건 보디가드 잘못이지 않을까? 그게 정말 불가항력이었을까?”

“……진심으로 그 비유가 맞다고 생각하는 거냐?”

용주의 물음에 수지의 눈빛이 반응했다.

“우린 저격수가 누굴 노리는지 알 수 없었다. 넌 가장 유력한 타깃을 지키려 했지. 그 판단 어디에서 잘못을 찾을 수 있단 거냐?”

“…….”

검지를 편 용주가 곧바로 중지와 약지를 펼쳤다.

“표적이 된 이는 민간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넌 보디가드가 아니지.”

“…….”

“넌 팬텀을 저격수라 표현했지만, 상대는 저격수가 아니었다. 백병전을 펼치는 해적에 더 가깝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세 번째 모순이다.”

용주가 이어서 네 번째 손가락까지 펼쳤다.

“전쟁터에서 군인이 죽었다고, 의무병을 탓하진 않는다. 책임을 느낄 순 있겠지만, 그게 네 잘못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손가락을 펼친 용주는 수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한 사람이 동시에 모든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어. 네가 다른 선택을 했고, 팬텀이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면, 반대로 저기 누워 있는 이가 나였을지도 모르지.”

“…….”

“가족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잃은 건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다행?”

“네가 거기 없던 거. 네가 녀석들에게 당하지 않은 거.”

주먹을 움켜쥔 용주는 가로수를 때렸다.

어깨 위를 지난 용주의 손에 수지는 놀란 눈망울을 깜빡였다.

“이기적인 생각이란 거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선 그런 안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녀석들은 내게 남이고, 넌 아니니까.”

“…….”

“네가 거기 있었으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만약 그랬다면…….”

아랫입술을 깨문 용주가 뒤돌아섰다.

“책임을 묻고, 대가를 치를 사람은 팬텀이다. 네가 아니라.”

“…….”

“방해해서 미안하게 됐다. 가서 마지막 가는 길 지켜줘라.”

빗속을 가로지른 용주는 현충원을 빠져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 * *

“어라, 용주 씨? 혼자 돌아오셨네요?”

용주를 발견한 가영이 물었다.

비에 흠뻑 젖은 용주는 빗물을 뚝뚝 흘리며 카운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완전 쫄딱 젖으셨네요. 혹시 뭐 두고 가신 거라도 있어요? 분실물 없나 나영이한테 물어봐 드릴까요?”

둘이 지키던 카운터엔 가영 혼자 있었다.

나영은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게이트.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걸로.”

“네?”

“게이트 리스트 보여달라고 했다. 어느 등급이든 상관없어.”

“아……. 알았어요. 잠시만요.”

자판을 두드리던 가영이 화면 하나를 띄웠다.

“제일 가까운 게이트는 이거긴 하네요. D급 게이트고, 아직 정찰도 안 들어갔어요.”

“그럼 그걸로.”

“D급 게이트인데 괜찮겠어요?”

“그래. 상관없다.”

“알겠어요. 그럼 팀 H가 수주받는 걸로…….”

“아니.”

가영의 이야기를 자른 용주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녀석들이랑은 관계없다. 이건 내 일이야.”

“혹시 싸우기라도 하신 거예요?”

“마음대로 생각해.”

“음~ 싸운 거라면 화해해야죠. 왜 싸우셨는데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내 말 못 들었나?”

용주의 눈빛에 가영이 흠칫했다.

순간 용주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알겠어요. 용주 씨 마음이 그렇다면 저도 그쪽으론 더 묻지 않을게요.”

가영이 정자세를 취했다.

“근데 용주 씨, 그럼 문제가 있어요.”

“문제?”

“헌터 시험에 합격한 여러분이 받을 수 있는 미션. 제가 알기로 아직까지 ‘한 팀’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는 걸로 알거든요. 아니에요?”

“…….”

“그런 상황이란 거 아시면, 제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딱히 문제 될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응?”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에 가영이 고개를 돌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영이 카운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영아. 그게 무슨 소리야?”

“물론 이용주 헌터님께서 한 가지를 포기해 주실 때 이야기기만 말입니다.”

나란히 선 나영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헌터님 단독으로 게이트에 들어가시는 대신 서류상 기록은 팀의 이름으로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응? 왜?”

용주를 대신해 가영이 물었다.

“팀 H의 이름으로 클리어된 D급 게이트가 여럿 있습니다. 모두 엄청난 속도로 클리어된 걸로 나오죠. 팀의 이름으로 수주하되 곧장 클리어된 걸로 처리해두겠습니다.”

용주의 머릿속에 이안의 얼굴이 떠올랐다.

“D급 헌터들의 활동률이 정상 궤도로 오르면서 최근 좀 뜸해지긴 했지만, 문제 삼을 이는 없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용주가 어쩔 수 없단 듯 이야기했다.

나영이 제시한 타협점은 최선이었다.

100%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D급 게이트라. 뭔가 오랜만에 온 것 같은 기분이네.’

게이트에 진입한 용주는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불과 얼마 전 일임에도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눈가를 쓸어내린 용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룬검을 감도는 한기가 젖은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팬텀….’

합동영결식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었다.

수지에게 했던 말들도 그중 하나였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번엔 화살이 다른 쪽으로 향했지만, 다음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윤현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헌터들의 정보망을 알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 다시 활시위를 조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녀석과 다시 붙으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프라이드에게 밀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킬이 생기고.

새로운 아이템을 얻고.

레벨과 능력치가 더 올라갔지만, 지금 당장 녀석과 재회한다 했을 때 결과가 바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프라이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윤현.

다시 마주친 녀석의 힘은 분명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팬텀이 된 윤현의 힘은 헌터 시험 때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치, 계승자가 되기 전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정도의 차이였다.

‘십중팔구 패배 이후 이를 갈며 힘을 키우고 있겠지.’

프라이드의 검에 꿰뚫리던 서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은 그걸 막지 못했고, 그녀를 구해 주지도 못했다.

자신과 함께 있으면 녀석들이 또 그런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음번엔 정말로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현충원에서 봤던 관에 있는 이가 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그 모습이.

치가 떨릴 만큼 두려웠다.

잃고 싶지 않았다.

거기 있는 녀석들 중 단 한 사람도.

▷ 계승자의 첫 번째 시련을 진행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추가로 충족해야 합니다.

1. 퀘스트 게이트 클리어 (0/1)

2. 카오스 게이트 내 적 저치 (9/30)

3. ‘물어뜯기’ 누적 사용횟수 (2/20)

4. HP 누적 피해 (27/100)

시련탭을 활성화한 용주는 목록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시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큰 변화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조건 중 카오스 게이트에 대한 부분. 언노운에 대한 기준은 없어.’

용주가 아무 게이트나 상관없다고 했던 이유였다.

C.D.E.

어느 언노운이든 똑같이 카운팅될 거란 이야기였다.

‘다른 것들도 의식하고 있어야 해.’

지난 게이트에서 사용한 물어뜯기는 단 한 번에 불과했다.

D급 게이트니만큼 HP 손실도 C급만 하진 못하겠지.

의식해서 사용하고, 의식해서 맞아가며 최대한 많은 횟수를 채워야 했다.

‘최소 3개는 클리어하는 거야. 여기서.’

칼날을 비튼 용주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혼자가 됐다는 건 여기 있는 언노운 전부를 혼자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니, 상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마구 날뛸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웃레이지 스내치!’

첫 시작부터 30이란 HP를 지불한 용주는 언노운의 머리를 붙잡았다.

여기 있는 언노운은 이족 보행 형태의 언노운이었다.

이족 보행형 중에서도 용주에겐 상당히 익숙한 녀석이었다.

형만의 제안을 받았던 용주가 처음으로 쓰러뜨렸던 D급 개체이자.

비밀의 방이 있던 그 게이트에 존재하던 언노운.

퇴화한 시각과 팔을 가지고 있던 바로 그 녀석들 말이다.

4족 보행에서 이어진 아웃레이지 스내치는 말 그대로 완벽한 기습.

짓눌리고 폭발하는 피의 연쇄는 언노운의 단단한 머리를 분쇄시켰고, 터져 나간 언노운의 피와 살점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조금 전 일격에 사망한 언노운은 하나가 아니었다.

스킬에 직격당한 놈이 하나.

그리고 뒤늦게 스킬로 달려들던 녀석이 또 하나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시체 뜯어먹기.’

네발로 땅을 디딘 용주는 남아 있는 언노운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소모되었던 HP가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쿵! 쿵쿵쿵쿵!

빠르게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에 용주는 몸을 일으켰다.

‘셋인가?’

시야에 들어오기도 전에 적의 숫자를 가늠한 용주는 룬검을 뽑아 들었다.

‘혹한의 파도.’

이름 없는 왕이 그랬던 것처럼 칼끝을 수직으로 뻗는 용주.

지면을 타고 뻗어 나가기 시작한 두 줄기의 얼음은 다가오던 언노운들의 발목을 삽시간에 얼려 버렸다.

‘혹한의 쐐기!’

이어지는 두 번째 능력.

지면에서 솟구친 날카로운 가시들은 언노운의 상체를 꿰뚫었다.

“꾸오오!”

유일하게 얼음의 습격을 받지 않은 언노운은 용주를 들이받았다.

‘물어뜯기.’

일부러 공격을 하용한 용주는 놈의 목덜미를 물었다.

‘물어뜯기!’

심호흡 끝에 사용한 두 번째 누적.

뿌리째 뜯겨 나간 언노운의 머리가 용주의 손과 이빨 사이에서 꿀렁거렸다.

반쯤 씹던 머리를 뱉은 용주는 고정해 둔 나머지 두 녀석 역시 먹어 치웠다.

“…….”

순식간에 근처에 있던 언노운 전부를 정리한 용주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한 마리도 벅찬 상대였었다.

아득바득 기고, 뼈가 으스러질 만큼 견뎌야 간신히 쓰러뜨렸던 상대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같은 개체를 상대하니 그 차이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다음이야. 쉴 시간 따위 없어.’

용주는 곧장 MP 회복 포션을 들이켰다.

전투를 끝낸 HP는 다시 100.

‘가시지 않는 식욕’까지 발동되어 있었다.

프라이드, 고대의 재앙과 펼쳤던 삼파전.

흡혈과 회복이 따라가지 못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차고도 넘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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