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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74화 (174/357)

174화

“그래서 그 A급 헌터란 사람들은 어디 있겠대? 어디 어떤 사람들인지 얼굴이나 좀 보고 싶었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린 서윤이 물었다.

게이트 주변엔 높은 고층 빌딩들이 제법 있었다.

이쪽을 관찰하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도 모른다만?”

“뭐? 너 뭐라도 들은 거 아니었어? 안수지랑 이런저런 이야기 했었잖아. 거기 그런 이야기 없었어?”

“유감스럽게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다른 이야기는 들었지.”

“다른 이야기?”

“알기 싫어도 저절로 알게 될 거다.”

앞장선 용주가 먼저 카오스 게이트로 진입했다.

눈빛을 교환한 나머지 세 사람 역시 용주를 따라 게이트에 들어섰다.

“!”

게이트에 들어선 세 사람은 놀란 발걸음을 멈췄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앞에 사람이 있었다.

용주를 제외한 또 한 사람이.

“빨리 왔네. 예정 시간보다.”

게이트 안쪽을 보고 있던 여인이 뒤돌아섰다.

용주보다 먼저 게이트 안에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수지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수지의 얼굴을 확인한 주원이 물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그녀는 대체로 어두운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말했잖아. 길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 생각은 이미 정해뒀다고.”

“길드의 방침과는 관계없다? 그럼 언니, 길드 허가 없이 여기 들어오신 거예요?”

예나의 물음에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게이트 무단 침입 아니에요? 나중에 징계받으시면 어쩌시려고요?”

비밀로 해달라 했기에 말하지 않았지만, 집사 역시도 멀리서 게이트 입구를 감시하고 있었다.

길드에 동행을 요청해 봤지만, 돌아온 건 매몰찬 거절 의사였다고 한다.

게이트 무단 침입은 충분한 징계사항.

최악의 경우 헌터직을 내려놔야 할 수도 있었다.

“나중 일은 나중 일. 괜찮아. 최악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수지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와~ 그럼 이번 임무에선 저희 의료 헌터도 있는 거네요? 그것도 A급!!”

주원이 수지의 손을 꼭 붙잡았다.

A급 의료 헌터가 함께라니.

오랫동안 E급 헌터로 활동하던 주원에게 이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뭐야? 너 어제 봤을 때도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했잖아.”

서윤이 불만을 표했다.

용주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수지를 향해 있었다.

“어제? 서윤 누나 어제도 수지 누나 봤었어요? 언제요?”

“윽…!”

주원의 물음에 서윤이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모, 몰라도 돼! 개인적인 사정이었어.”

성질을 부린 서윤이 세 사람을 지나쳤다.

“움직이기나 하자. 팬텀이고 언노운이고 그냥 보이는 족족 다 끝장내 버리자고.”

서윤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다.

“어라, 누나? 그 검. 어딘가 좀 다른 것 같네요?”

보란 듯 어깨에 걸친 서윤의 검에 주원이 물었다.

톱처럼 생긴 독특한 모양은 전과 비슷했지만, 검의 외형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아~ 이거? 큰맘 먹고 새로 장만했어. 전에 쓰던 것보다 가볍고 예리하다고.”

서윤이 능숙하게 검을 휘둘러 보였다.

“그런 검을 잘도 또 구했구려. 상당히 보기 드문 타입인데.”

“보기 드물어서 더 좋을 때도 있다고. 아무도 안 쓴다는 건, 아무도 안 사 간다는 이야기고, 그만큼 매물이 많다는 이야기라고. 그것도 성능 대비 낮은 가격으로.”

예나의 검 같은 경우는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인기 타입일 것이다.

특이하고 특수하고, 겉으로 보기에 멋지니 말이다.

아마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겠지.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이 톱날 형식의 검은 사정이 달랐다.

비인기 품목은 곧 재고.

아무리 공급이 적어도 수요가 그것보다 적으면 남게 되어 있었다.

E급 게이트 때의 수입이었다면, 그마저도 구입할 여력이 없었겠지만, 지금 주머니 사정은 그때에 비하면 훨씬 풍족했다.

“그럼 진짜 가자고. 내가 다 쓸어버릴 테니까.”

자신감을 표한 서윤이 게이트 안쪽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이번 카오스 게이트는 일종의 늪지대 같았다.

몇몇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질척거리는 지면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투에 있어 상당한 페널티로 작용했다.

이번 게이트엔 워커는 없었다.

게이트에 서식하고 있는 건 젤리형 언노운들.

팔도 다리도 얼굴도 없는 이 개체들은 고체도 액체도 아닌 물렁한 몸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푹푹 빠지는 지면에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언노운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습을 비교적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데 있었다.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은 지면처럼 위장하고 있기도 했으며,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이 언노운들의 무기는 ‘흡수’.

피를 빠는 흡혈과는 차별되는 무기였다.

이 언노운들은 몸체에 잠식된 적의 에너지를 빨아간다.

가장 먼저 빼앗기는 건 MP.

MP가 다 소진된 이후로는 빼앗기는 건 신체 에너지 자체인 ATP(Adenosine Triphosphate).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헌터는 저항할 힘을 상실하게 되고, 목숨을 잃게 된다.

“주원 오빠! 버티가 그쪽으로 몰았어!”

“오케이~!”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게나.”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고.”

수지가 합류한 팀 H의 전력은 파괴적이라 할 만했다.

첫 전투에선 지형과 언노운의 특성 파악에 미흡이 있었기에 약간의 고전을 겪긴 했지만, 그 이후의 전투에서는 적을 압살해 버렸다.

수지가 합류했다고 했지만, 수지가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건 부상자의 회복과 후위의 경계.

전투 자체는 전적으로 팀 H의 다른 헌터들에게 위임하고 있었다.

“누나는 같이 안 싸우는 거예요?”

부상을 치료받던 주원이 직접 물어보기도 했었다.

“응. 내가 여기 온 건 언노운 때문 아니니까. 그리고 임무를 수주한 건 너희. 내가 끼어들 때는 정말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있을 때.”

그리고 거기에 돌아온 수지의 대답은 이거였었다.

게이트는 상당히 긴 편에 속했다.

갈림길이 많은 것도 있었지만, 왔던 길과 또다시 이어지는 식의 미로 같은 구조가 있어 게이트 보스를 만나기까진 며칠이란 시간이 소요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게이트 보스.

압도적으로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게이트 보스는 분열과 결합을 반복하며 헌터들을 쓰러뜨리려 했지만, 헌터들은 그걸 오히려 역이용하고 있었다.

“3개 잡았어!”

“그럼 이번엔 제가 이겼네요, 누나? 전 4개 없앴는데!”

분열을 거듭할수록 게이트 보스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자르고 쪼개진 조각들은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못했다.

같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조각을 제거한 이는 용주였다.

룬검에 베인 상처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질 줄 알고?!”

붉은 눈동자를 번뜩인 서윤은 1/3 크기로 줄어든 게이트 보스를 향해 돌진했다.

“블러디 러쉬!”

분열하며 날아오는 신체 조각들을 유린하는 서윤의 검.

적들을 베고 찢을 때마다 한 획씩 붉어지던 서윤의 톱날은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질척거리는 대지를 밟은 서윤은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긴장하지 마. 할 수 있어.’

서윤에게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 중 일부가 그녀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블러디 레인.”

응집된 아지랑이를 잡아 찢는 서윤.

“이건….”

“피?”

아지랑이가 찢어 흩어지자 내릴 리 없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빗방울은 아니었다.

대지를 적시고 있는 건 장미처럼 빨간 핏방울.

얇고 가느다란 핏방울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저기 게이트 보스를 보게!”

순간 감지된 변화에 금화가 게이트 보스를 가리켰다.

빗방울에 노출된 언노운의 상처 부위가 옅은 붉은빛을 띠며 빛나고 있었다.

“죽어 버려! 이 개자식아!”

최고점에 도착한 서윤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서윤이 그린 검의 궤도를 타고 폭발하는 피의 물결.

해일처럼 솟구친 피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게이트 보스를 덮쳤다.

마구잡이로 덮치는 게 아니었다.

피의 파도가 향하는 건 조금 전 붉게 빛났던 상처 부위들.

정확하게 상처 면에 직격한 공격에 게이트 보스가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쳤다.

검을 고쳐 잡은 서윤은 칼끝이 등 뒤를 향하게 했다.

옆구리 근처를 지난 서윤의 검.

서윤은 칼날에 남은 붉은빛을 일점에 집중시켰다.

응집된 붉은빛을 폭발시킨 서윤은 피를 흩뿌리며 로켓처럼 날아갔다.

게이트 보스 위로 떨어지는 서윤.

날카로운 톱날을 언노운의 몸에 박아 넣은 서윤은 그대로 놈을 반으로 찢었다.

꿀렁거리며 요동치던 게이트 보스는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졌고, 게이트는 클리어됐다.

“우와~! 누나! 방금 그거 뭐였어요?”

입이 떡 벌어진 주원이 한걸음에 달려갔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서윤은 힘껏 주먹을 쥐어 올렸다.

“주원 오빠 월영식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네. 뭔가 좀 더 세밀하게 정밀 타격 하는 것 같았었는데.”

버티를 끌어안은 예나가 이야기했다.

위력의 우위를 말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두 스킬 다 굉장한 위력을 지닌 것들임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마치 머리가 여럿 달린 뱀을 보는 것 같았네. 히드라 말일세.”

한마디 감상평을 더한 금화가 대검을 등에 이었다.

주원의 월영식이 일직선상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내는 것과 달리, 서윤이 터뜨린 일격은 시작이 같을 뿐 각자가 노리는 곳은 한 방향이 아니었다.

“봤지? 이게 나야. 이게 내가 새롭게 얻은 기술이라고!”

자신을 향한 놀라움의 시선에 서윤이 통쾌하게 외쳤다.

“새롭게 익혀요?! 언제요?! 어떻게요?!”

“비밀이야. 안 알려줄 거라고.”

“에이~ 그게 뭐예요. 치사해요, 누나.”

“치사하다고 해도 소용없어. 안 알려줄 거라고.”

매달리는 주원을 서윤이 가볍게 떼어 냈다.

서윤은 수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승 대접 같은 건 기대하지 말라고. 절대로 싫으니까.’

서윤은 금세 시선을 뗐다.

모의전에서 처참하게 깨지고 나서 수지에게 전했던 쪽지.

거기엔 굴욕적인 말들이 적혀 있었다.

라이벌.

따돌려야 할 경쟁자에게 청하는 도움의 메시지.

아무런 보상도 없는 그 제안을 수지가 들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수지는 그 제안에 조용히 응해주었다.

“그럼 아까 내린 피의 비도 언니가 내리게 한 거예요?”

“그래, 맞아. 블러디 레인. 피가 묻은 적의 상처 부위는 이후 공격에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지. 겸사겸사 피를 보는 이 눈에도 더 잘 띄니까 노리기도 쉽지.”

서윤이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붉은빛을 띠던 그녀의 눈동자는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봤지? 어땠어?”

서윤의 시선이 용주를 향했다.

“하나는 검의 능력, 다른 하나는 스킬. 그렇게 보이던데.”

서윤의 활약에 선수를 빼앗긴 용주가 대답했다.

이쪽도 테스트해 보고 싶은 스킬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윤의 깜짝 일격은 용주조차도 놀라게 했다.

“그런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뭐 하긴 그게 너답기도 하네. 맞아. 정확히 봤어.”

“검의 능력?! 누나, 그거 그냥 평범한 검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 나름 능력도 있는 특별한 검이라고. 단순히 외형이나 강도, 예리도만 업그레이드된 게 아니라고.”

주원의 물음에 서윤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용주라면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블러디 레인은 MP를 투자한 스킬.

핏빛 물결의 사출에 관련된 것들은 검의 능력이었다.

영창을 외치는 부분에서 대놓고 차이가 났으니, 금방 눈치챘겠지.

“그나저나 팬텀은 감감무소식이구려. 다행히 말이네.”

이형 소나를 회수하는 용주를 지켜보던 금화가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진 않을까 전투 중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었는데, 팬텀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안 나타나는 것도 그거 나름대로 성가시네. 저 이형 소나인가 뭐시긴가 하는 것도 계속 가지고 다녀야 하고. 계속 뒤가 찝찝하니 구리기도 하고.”

서윤의 목소리를 뒤로한 용주는 수지에게 다가갔다.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수지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뭐지?’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물음을 던진 용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지의 눈동자가 완전히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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