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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73화 (173/357)

173화

“완전 다 엉망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스파클라를 건네받은 서윤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계획대로 풀린 게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네가 여기 오면, 슈웅~ 콰광! 하고 다 쏴버릴 생각이었는데. 내가 다 망쳤어.”

“그러냐? 네가 다 망쳐줘서 오히려 다행이네.”

용주의 대답에 서윤의 볼이 부풀었다.

불만 가득한 그녀의 시선을 용주는 피하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웬 폭죽인 거냐? 딱히 축하할 만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또 하나의 스파클라에 불을 붙인 용주가 물었다.

“왜? 그런 일 아니면 쏘지 말란 법이라도 있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다만….”

“내 마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불꽃을 바라본 서윤이 중얼거렸다.

이 말.

자신의 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했다.

“있잖아. 불꽃놀이 하면 넌 뭐가 떠올라?”

“글쎄…. 놀이공원? 바닷가? 축제? 뭐, 그 정도이려나.”

“난 말이야. 우리 아빠가 떠올라.”

“아빠?”

“응.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처음 고백할 때 불꽃놀이 이벤트를 준비했었다고 하더라고.”

서윤이 부끄러운 듯 뺨을 긁적였다.

“우리 엄만 나랑 달라서 인기쟁이셨대. 성격도 좋고, 센스도 좋고. 학창 시절부터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줄 서서 운동장 한 바퀴였다고 하더라고.”

“…….”

“아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대. 첫눈에 반했는데 경쟁자들이 너무 많은 거야. 주변 사람들이 막 그랬대.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

서윤이 스파클라를 흔들어 보였다.

“그때 아빠가 뭐 했는지 알아? 글쎄 백주대낮에 엄마 오는 거 기다리고 있다가 폭죽을 마구마구 쐈다는 거야. 웃기지 않아?”

“그 딸에 그 아버지네.”

“하핫! 나도 언제부턴가 그 생각 해.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닮았으면, 내 이 나쁜 버릇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랬다면 네 장점도 같이 사라지지 않았겠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너희 어머니였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 아니야. 지금 여기서 불꽃을 보고 있는 일도 없었겠지.”

“…그것도 그렇네.”

용주의 이야기에 서윤이 얼굴을 붉혔다.

딱히 따뜻한 눈빛이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꺼졌다.”

꺼져 버린 불꽃에 서윤이 아쉬움을 표했다.

서윤의 표정을 보던 용주는 무심하게 비닐봉지를 챙겼다.

“벌써 끝내려고? 불꽃 아직 더 있는데.”

“여기서 쓸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거 하나 정도잖아.”

용주가 남은 스파클라를 흔들어 보였다.

서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용주가 하려는 말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었다.

“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가자. 여기서 쏠 순 없으니까.”

“뭐?”

서윤이 놀란 눈망울을 깜빡였다.

“딴 데 가자고. 뭐, 어디서 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든 일단 여기보단 낫겠지.”

“그렇지만 우리… 여기 있으라는 명령 받았잖아! 아직….”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안 걸리면 그만 아니겠냐.”

“…….”

“괜찮아.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길드건 팬텀이건 너한테 피해 가게 하진 않을 거다.”

뒤돌아선 용주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용주를 바라보던 서윤은 재빨리 따라붙었다.

서윤의 손엔 급하게 챙긴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뭐야~? 말은 그렇게 하고, 실은 너도 하고 싶던 거 아니야?”

뒷짐을 진 서윤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고.”

거기에 돌아온 무심한 용주의 한마디.

“그럼 진짜로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네가 날 생각해서 쏘는 거라고.”

“그러시든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서윤은 용기 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엉망진창인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잘됐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 * *

“여기면 대충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강가와 인접한 공원에 도착한 용주가 이야기했다.

시원시원하게 뚫린 자전거 길에는 가로등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근데 폭죽 만져 보긴 한 거야?”

“어디 사는 누구랑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은데.”

설명서를 확인한 용주는 적힌 대로 폭죽을 설치했다.

“방금 봤어? 불꽃놀이 하려나 봐.”

“부럽다. 나도 여자친구 있으면 저런 이벤트 해줄 자신 있는데.”

“퍽이나 그러겠다. 클럽 갔다 들켜서 차인 주제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서윤은 무심한 척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 소리들이 듣기 좋았다.

“그럼 붙인다.”

용주는 먼저 분수 폭죽에 불을 붙였다.

물처럼 쏟아지는 불꽃은 불꽃놀이의 시작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다음으로 터진 건 강변을 따라 설치된 단발 폭죽들.

수도 그렇고 화력도 그렇고.

그렇게 화려하다고 할 만한 불꽃은 아니었지만, 서윤은 그걸 행복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불꽃은 한순간이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엄마가 그날 봤던 불꽃도 이런 거였을까?’

비닐봉지에 손을 넣은 서윤은 삼각김밥을 꺼냈다.

달달한 것도 좋지만, 녀석이 사준 걸 다 맛있게 먹으려면 순서를 지켜야겠지.

‘아니, 낮이었으니까 더 멋없었을 거야. 응. 분명 그럴 거라고.’

핸드폰을 꺼낸 서윤은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처음부터 누를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서윤이었다.

불꽃놀이의 대미를 장식한 건 10발짜리 연발 폭죽 5개였다.

근처를 지나던 자전거들은 멈춘 채 같이 불꽃을 즐기고 있었다.

“좋아해. 진짜로.”

홍조를 띤 서윤이 목소리를 냈다.

폭죽 소리와 겹친 서윤의 목소리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불꽃을 등진 채 하려고 했던 말이었다.

당당하고, 뻔뻔하게.

아빠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거리라면 분명 녀석에겐 닿지 못했을 거다.

실패라고 하면 이것도 실패겠지.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더없이 행복했으니까.

* * *

“다 모이셨군요. 그럼 길드에서 내려온 지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던 동제가 입을 열었다.

동제가 있는 곳은 이전에 특별 조사를 진행했던 방과 같은 방이었다.

앞에 있는 멤버도 그때와 동일.

꼰대 헌터란 이명을 갖진 오성덕 헌터가 제외되었을 뿐이었다.

“그래. 어디 말씀해 보게나. 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갔길래 1주일 넘게 시간이 지체된 건지.”

금화가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그때 이후로 시간은 한참을 지나 있었다.

“여러분께선 지금처럼 임무를 계속해 주시면 됩니다. 절차대로 수주하시고, 그대로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다라고?”

서윤이 따지듯 물었다.

“팬텀에 대한 건 어떻게 됐는데? 그게 중요한 거 아니야?”

“당분간 여러분의 등록 절차에 맞춰 외부에 별도의 팀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팀?”

“네. 지금 이야기가 된 바로는. A급 헌터 7명. 그 정도 전력을 배치한다고 합니다.”

“A급 헌터 일곱? 뭔가 엄청나긴 한데 왜 하필 일곱이야?”

“엔비. 프라이드….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팬텀의 가명에 대한 부분 때문입니다. 7개의 대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면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전력을 두어야 하니까요.”

“음~ 그래? 그럼 뭐야? 우리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동안 밖에서 입구라도 지켜주겠단 거야?”

“그렇게 대놓고 있진 못하겠죠. 적들의 눈과 귀가 어디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럼 뭐 어쩌겠다고.”

“이걸 받아주시겠습니까?”

동제가 가지고 온 서류 가방을 열어 보였다.

가방의 안쪽엔 유리로 된 원형 통이 하나 들어 있었다.

“이게 뭔데?”

통을 꺼낸 서윤이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유리 안에는 동그란 구체 하나와 그 주위를 도는 세 개의 타원이 교차되어 있었다.

마치 원자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도처럼.

“길드에서 새롭게 테스트를 진행 중인 물건입니다. 이형 소나(sonar). 일단은 그렇게 부르기로 한 물건이죠.”

“이형 소나?”

“네. 이형 소나의 기능은 공간의 균열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이 소나는 공명하는 다른 소나들에게 알림을 주죠.”

“공간의 균열?”

“이형 워프 장치를 위험 감지 신호로 삼겠다는 거군.”

용주가 서윤의 물음을 치고 들어왔다.

“바로 그겁니다.”

서류 가방을 닫은 동제는 노트북의 방향을 돌렸다.

화면에는 대략적인 시뮬레이션에 대한 것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여러분께서 하실 일은 수주하신 게이트 입구에 이걸 두시는 것뿐입니다. 팬텀이 정말 이형 워프 장치를 사용한다면, 우리 쪽에서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은 일의 사후 처리에 중점을 두겠단 이야긴가?”

이형 소나를 45도 기울인 용주가 물었다.

“사후 처리?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형?”

“한마디로 우릴 미끼로 쓰겠단 이야기지. 그 녀석이 했던 말처럼.”

용주의 대답에 주원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여러분께서 위험을 부담하셔야 한단 점.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거기에 관해 충분히 어필했지만, 길드는 지금 이 방침이 최선이라 판단했습니다.”

동제가 노트북 화면을 덮었다.

“이 장치. 범위는 얼마나 되지?”

“현재 알려진 바로는 반경 500m 내외 정도입니다.”

“그 반경엔 카오스 게이트 내부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아니요.”

동제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그렇다는 건 안쪽에 열린 균열은 감지하지 못한단 건가?”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지?”

“현재 연구된 이형 워프 장치는 카오스 게이트와의 직접적 연결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팬텀이 같은 장치를 이용한다면, 마찬가지일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이형 소나를 굴리던 용주가 장치를 바르게 세워놓았다.

“여기서 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한 가지 더요?”

“네. 당분간 여러분의 임무 수주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당장 내일까지 게이트 임무 하나를 진행하셔야 합니다.”

“뭐?! 그건 또 개똥 같은 소리야?”

동제의 이야기에 서윤이 버럭 외쳤다.

이런 이야기 금시초문이었다.

“길드의 명령입니다. 동원령이라 받아들이셔도 무방합니다. 인력을 투자한 만큼 이번 기회에 꼬리를 확실하게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만약 싫다고 그러면?”

반발심이 앞선 서윤이 삐딱하니 테이블을 짚었다.

“E급으로 강등. 그리고 항후 10년간 헌터 자격 정지입니다.”

“…뭐?!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길드의 명령입니다. 그것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뭐라고?!”

뛰쳐나가려는 서윤을 예나가 간신히 붙들었다.

“저 오빠한테 해코지 해봤자야, 언니. 지난번에 저 오빠가 A급 헌터 아저씨 쫓아내는 거 봤잖아. 저 오빠, 우리랑 싸우자고 온 거 아니라고.”

“…….”

“특별 조사관이라고 해도, 길드에 속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네. 상부의 결정에 항의를 해줬다는 부분에서 오히려 옷을 벗을 각오였다고 봐도 좋을 걸세.”

“칫!”

금화의 이야기에 서윤이 어쩔 수 없단 듯 자리에 앉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트북을 챙긴 동제가 지갑에서 명함 몇 장을 꺼냈다.

“혹여나 말씀하시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동제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용주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안수지.

통화 종료를 알리는 화면에는 하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 *

“정말이지. 이렇게 짜증 나는 임무는 또 오랜만이네.”

카오스 게이트 앞에 선 서윤이 짜증을 부렸다.

“처음은 아닌가 보네, 누나.”

“그래. 뭐, 짜증 났던 적이야 종종 있었으니까.”

C급 헌터였던 차병규의 얼굴을 떠올린 서윤이 근처에 굴러다니던 깡통을 걷어찼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관두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언니 성격에 확 관둬 버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진 않았네.”

금화의 말을 예나가 이어받았다.

예나는 버티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때 기분 같아선 확 그만둬 버리고 싶기도 했는데, 그럼 나만 도망가는 것 같잖아.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엄청 싫다고.”

서윤의 시선이 용주를 향했다.

카오스 게이트 앞에 멈춰 선 용주는 가지고 있던 이형 소나를 게이트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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