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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70화 (170/357)

170화

두 사람에게 한 치수 큰 옷을 가져다준 승우는 강당 중앙에 섰다.

승우의 맞은편엔 용주와 주원. 그리고 금화가 서 있었다.

예나와 서윤. 그리고 수지는 경기장 밖에서 네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룰 설명할게요. 한 번만 말할 테니까 나중에 못 들었다고 하지 말고요. 알았지, 주원 오빠?”

심판을 자처한 예나가 이야기했다.

“그럼~ 두 귀 쫑긋 세우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왼손을 든 주원이 토끼 귀를 만들어 보였다.

“룰은 간단해요. 제한 시간은 20분! 양쪽 중 한쪽이 전부 탈락하면 종료돼요. 탈락 기준은 두 가지! 하나는 링 밖으로 나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치명상을 입는 거예요.”

“나! 나! 질문! 질문 있어!”

주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치명상의 기준은 어떻게 돼? 옷에 표시가 되는 건 알겠는데, 아니라고 막 우기면?”

“심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오빠. 그리고… 옷이 알려줄 거야. 아마 우기기 힘들걸?”

“옷이?”

예나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주원이 옷깃을 당겨보았다.

옷이 알려준다니.

뭔가 확 와닿지 않았다.

“머리는 센서가 없는 것 같다만?”

상황을 지켜보던 용주가 물었다.

상하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 부위에는 고글 말곤 다른 특별할 게 없었다.

“좋은 질문. 오빠가 쓰고 있는 그 고글이 센서야. 머리 쪽 데미지는 그게 알려줄 거야.”

‘그렇단 말이지?’

용주가 고글을 다시 한번 정돈했다.

약간의 무게감과 압박감이 있긴 했지만, 크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할게! 스킬 사용은 금지! 주원 오빠 월영식도 금지야!”

“에에~ 왜~?”

“금지라면 금지인 줄 알아. 더 질문 없지? 그럼 시작할게!”

“잠깐.”

시작을 알리려던 예나의 목소리에 서윤이 끼어들었다.

“응? 왜요, 언니?”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서 하지 그래? 심판이라면 내가 해도 되는데.”

“아니, 전 괜찮아요. 보는 것도 공부라고 하잖아요? 집사랑 오빠들이랑 아저씨랑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요.”

서윤의 권유에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직접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그럼 진짜 시작할게요! 준비~ 땅!”

시작을 알리는 예나의 목소리와 함께 용주가 뛰쳐나갔다.

B급 헌터 임승우.

이자의 실력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조커라는 가명을 사용했을 적 그가 보여줬던 실력은 일부임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런 사람과 합을 겨뤄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가늠하는 데도.

더 위를 바라보는 데도.

그리고 팬텀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데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용주 헌터. 지금부턴 저도 집사가 아니라 헌터로서 임하겠습니다.”

칼날을 부딪친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모의전이라 말했지만,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교차하는 두 사람의 칼날.

왼쪽 사선으로 빗겨 치는 용주의 칼날을 받아 낸 승우는 용주의 멱살을 잡아 집어 던졌다.

두 다리가 떠오른 순간, 용주는 승우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짧은 시간에 공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한 합을 모두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질감이 없진 않군.’

안정적으로 착지에 성공한 용주가 자신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현실감에 있어서는 목도보다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칼날이 만드는 공기의 흐름 같은 부분.

칼날이 피부와 가까운 곳을 스칠 때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다른 두 분도 눈치 보지 말고 오십시오. 개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의 합 역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먹을 쥐었다 편 승우가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엔 조금 전까지 없던 물건이 하나 들려 있었다.

“필요하다면, 절 팬텀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승우의 손에 들려 있던 물건은 다름 아닌 역병 의사 가면.

고글과 딱 맞게 제작된 가면은 이때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물건인 듯 보였다.

거리를 좁힌 용주는 다시 공격을 이어 갔다.

그 순간, 날아드는 거대한 대검.

오른쪽으로 살짝 방향을 튼 승우는 용주에게 각을 내어줬다.

용주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 각을 보지 못할 리가 만무.

탐스러운 먹이를 노릴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해야 할 때였다.

‘무는 겁니까?’

용주가 좌측으로 파고드는 게 보였다.

이 각도라면 치명상을 입는 건 자신이 아닌 용주였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용주를 벨 수 있는 검은 자신이 쥐고 있는 이거 하나가 아니었다.

승우는 알고 있었다.

이 가상의 검이 가진 치명적인 오류를.

아무것도 베지 않는다는 건 바람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는 것.

공기를 가르는 파장이 없다는 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위험이 제대로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경보 센서가 갑자기 먹통이 된 그런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미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한끗 승부인 헌터의 세계에선 치명적인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승우와 용주.

그리고 날아오는 대검이 일직선을 그리는 일촉즉발의 순간.

승우가 놓은 덫에 걸린 것처럼 보이던 용주가 왼손을 오른쪽 어깨 위로 넘겼다.

우연히 취할 동작은 아니었다.

그건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계획적인 동작이었다.

‘호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용주의 손안으로 들어온 칼자루.

대검을 움켜쥔 용주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승우의 왼쪽 옆구리엔 얼룩이 생겨 있었다.

용주는 그대로 대검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놓았다.

속도로 변한 힘에 날아가는 칼자루.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날아가는 검을 공중에서 낚아챈 금화가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좀비와 수라의 합작, 즉흥적인 연계라기엔 완성도가 높군요.’

좌우에서 동시에 들어오는 두 사람의 공격에 승우가 웃음을 삼켰다.

이 둘의 실력은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높게 잡은 기대치를 감안하더라도 이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화의 움직임을 곁눈질하던 승우는 다소 의문이 들었었다.

하나뿐인 대검을 투척하는 것도 그렇고.

투척 이후 동선도 그답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모든 퍼즐이 맞춰진 지금 생각해 보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가 한 모든 행동은 용주가 자신이 한 일에 맞춰 줄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

적인 자신의 눈을 완벽하게 속일 한 수였다.

“방금 그건 좀 놀랐는걸요.”

두 사람의 협공에 밀려난 승우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맹렬한 협공에서 승우가 입은 상처는 경미한 수준.

오히려 용주와 금화 역시 비슷한 얼룩이 생겨 있는 상태였다.

“검이 가진 맹점을 알고 있었다 한들, 그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누가 보면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줄 알겠습니다.”

“놀랄 필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난 단지 주어진 단서를 최대한 활용했을 뿐이니까.”

“그거 재밌군요. 어디 한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이용주 헌터의 판단 근거를. 분명 여기 있는 다른 분들께서도 궁금해하실 겁니다.”

승우가 예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용주 입장에선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행동엔 근거가 있었지만, 그걸 굳이 말로 설명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거 재밌겠네.”

“나도 들어보고 싶어. 집사랑만 할 땐 이런 공부 못 해 봤으니까.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들어볼 것 같기도 하고.”

링 밖에 있는 눈들은 그걸 원하는 듯 보였다.

“저도요! 저도 듣고 싶어요!”

링 안에도 그런 눈이 하나 있었고 말이다.

“듣는다고 딱히 도움이 되진 않을 텐데. 그렇게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고 배울 만한 그런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도 듣고 싶어요! 꼭이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건 네 생각이잖아. 꼭 특별해야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고.”

“…….”

다만, 원한다면, 들려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말했다시피 그렇게 특별한 노하우나 숨길 만한 비법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내가 근거로 삼은 건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금화가 남긴 소리.”

“소리요?”

주원이 물었다.

“그래. 발소리와 트레이닝복이 쓸리는 소리, 그리고 칼자루가 내는 소리. 뭐, 그런 것들이지.”

“에? 잠깐! 잠깐만요!”

용주의 대답에 주원이 놀라 외쳤다.

“발소리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건… 그게 맞아요?”

거리상으로 보면 용주보단 자신이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발소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소리들은 근거라 할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칼자루가 내는 소리.

그런 소리가 있었나 싶었다.

“둘째는, 전투 도중 보인 비정상적인 움직임.”

주원의 물음을 대충 흘려보낸 용주가 할 말을 계속했다.

“거기서 그런 동선을 취할 필요가 없는데 그걸 보인다는 건 뭔가 수를 숨겨두고 있을 확률이 높지. 셋째는….”

입을 다문 용주가 승우를 가리켰다.

용주의 손은 정확히 그의 눈동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핫! 이거 한 방 먹었는데요. 그건 저도 생각 못 했는데.”

용주의 의도를 파악한 승우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에? 한 방 먹다뇨? 용주 형 방금 뭐 말한 건데요?”

주원이 물었다.

“백미러입니다. 이주원 헌터.”

“백미러요?”

주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설명을 들었는데, 의문이 더 늘어 버렸다.

“이용주 헌터는 제 눈동자를 백미러 삼은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제 눈동자의 움직임에서 정보를 얻은 거죠.”

“아~ 그렇구…. 음….”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려던 주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멈췄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그게 맞는 건가 싶었다.

대련을 할 때 상대의 눈동자 보는 건 분명 맞는 판단이었지만, 뚫어져라 그것만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찰나의 순간.

그것도 실전이나 다름없는 그 순간에 그걸 해냈다는 건 무조건 특별하단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용주 형.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엄청 특별한 것들인 거 같은데요.”

주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동감이야. 그런 걸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아니면 누구 놀리는 거야? 돌고래도 울고 가겠다고.”

서윤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전투 경험이라면 제법 자신 있고, 감도 제법 좋은 편이라 자부하지만, 조금 전 그 상황에 그런 정보를 얻으라면 답지를 알고 있어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리에 관한 부분은 더더욱.

‘뛰어나다. 발달했다. 그 정도 단어로 평가해도 될 수준의 감각인지 모르겠군요, 이용주 헌터. 그 정도라면 육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요.’

승우가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지금까지 마주했던 B급 헌터들과 비교해 봐도 용주의 감각은 천부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신체적인 감각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순간순간 보이는 전투에 있어서의 감각은 천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다 한들 조금 전 용주가 말한 걸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보통의 헌터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일 테지.

“멋지군요. 그럼 다시 대련을 재개하겠습니다.”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인 승우가 용주와 금화 사이로 치고 들어왔다.

동물 같은 반응 속도로 반응하는 두 사람.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훌륭한 반응 속도였지만, 두 사람의 반응에는 차이가 있었다.

용주의 검은 적을 베기 위해.

그에 반해 금화의 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승우가 왼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

순간적으로 번지는 얼룩.

예상치 못한 일격에 용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승우의 검의 길이가….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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