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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69화 (169/357)

169화

“모의전?”

“응! 자세한 건 다 모이면 말해주겠다고 그랬어.”

‘모의전이라….’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란 생각도 들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지만,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해보는 건 확실히 근 미래에 많은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의 전투는 헌터에게도 그렇게 익숙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네. 길드에서도 아직 딱히 방침 내려온 것도 없고. 장소랑 시간은?”

돌아온 목소리에 예나가 또 한 번 흠칫 놀랐다.

누가 들어도 용주가 대답해야 할 그 타이밍에 돌아온 목소리는 수지의 목소리였다.

“아…. 장소는 이 위층 강당이에요. 시간은 한 30분 정도 뒤면 어떨까 싶은데요.”

예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왜 네가 대신 대답하는 거냐.”

“어차피 갈 거였잖아? 안 그래?”

“…….”

퉁명스러운 용주의 물음에 돌아온 평온한 대답.

용주는 말없이 한숨을 삼켰다.

딱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반박할 것도 없었다.

“언니도 오시는 거예요?”

“응.”

“음~ 그럼 언니랑 오빠까지 딱 오는 걸로….”

예나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근데, 여기 위에 그런 강당이 있는 거냐?”

용주가 물었다.

헬스장이야 건강 관리나 재활 치료에 활용하니 그렇다고 쳐도, 그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면, 병상을 더 확보하는 게 병원으로선 이득인 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여기 아래층은 일반 병실이고, 위층은 헌터들 전용이라고 하더라고. 근데 헌터들 병실은 생각보다 파리 날릴 때가 많아서 여기 원장님이 굳이 늘리려고 하지 않았다나 봐. 차라리 복지 명분으로 다용도실로 놔뒀다고.”

“의사가 그런 말도 하는 거냐?”

용주가 황당하단 얼굴로 물었다.

“에이~ 아니지, 오빠. 설마 그랬으려고. 우리 집사가 해준 이야기야.”

“…….”

집사가 왜 그런 것까지 아느냐는 물음에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용주는 묻는 걸 포기했다.

“이야~ 정말 넓은데요? 풋살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겠어요.”

방음 처리된 문을 연 주원이 외쳤다.

가벼운 헬스장 정도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넓은 강당이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려고 모인 게 아닐 텐데, 오빠?”

“아하하핫!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예나의 핀잔을 들은 주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모의전이란 아이디어는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네. 헬스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울 순 있을지언정 다른 건 키울 수 없으니 말이네.”

강당으로 들어온 금화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안 그래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던 금화에게 이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근데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 거예요, 그 모의전이란 거?”

“그 전에 우선 이것부터 하나씩 가져가시죠.”

승우가 옆에 있던 목검 거치대를 가리켰다.

거치대에는 검의 손잡이 부분만이 전시되어 있었다.

“뭐, 쉐도우 복싱이라도 하란 거야? 이럴 거면 차라리 목도로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검 손잡이를 집은 서윤이 이야기했다.

허공에 휘둘러본 느낌은 손잡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누가 휘두르냐에 따라서 목도도 흉기가 될 수도 있거든요.”

주원을 바라본 승우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아?”

“막상 써보면 그렇진 않을걸요?”

검 손잡이를 집은 예나가 이야기했다.

손잡이의 밑동을 확인한 예나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손잡이를 바르게 돌린 예나는 손잡이를 휘둘렀다.

손잡이에 뭔가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안 된 거 같은데?”

“이걸 한번 써보시죠. 속는 셈 치고.”

승우가 거치대 아래 있던 고글 하나를 건넸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서윤은 고글을 착용했다.

“뭐야, 이건?!”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놀란 서윤의 목소리.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손잡이 윗부분엔 칼날이 생겨 있었다.

“음? 왜 그러는데요, 누나?”

주원의 물음에 서윤은 고글을 위로 올렸다.

칼날을 다시 보이지 않았다.

“어때? 아직도 아닌 거 같아, 언니?”

“재밌네. 증강 현실. 뭐, 그런 건가?”

다시 고글을 쓴 서윤이 자신의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이 손잡이는 이걸 쓰고도 손잡이일 뿐이었다.

예나의 행동을 떠올린 서윤은 손잡이 아래를 확인했다.

거기엔 조그마한 다섯 개의 다이얼이 배열되어 있었다.

‘이걸 만진 건가?’

서윤은 가장 처음 잡히는 다이얼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던 그곳엔 칼날이 생겨 있었다.

‘호오?’

거기서 한 칸을 더 돌리자 칼날의 길이가 변화했다.

정해져 있는 순서대로 변하는 칼날의 모습은 마치 게임 속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 같았다.

길이를 조정한 서윤은 다른 다이얼들도 만져보았다.

칼날의 길이,

칼날의 굵기.

칼날의 모양.

검첨의 모양.

검의 무게.

다섯 개의 다이얼은 각각 다른 기능들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뭔데요? 뭔데요? 저도 볼래요!”

호기심이 달려간 주원이 고글을 썼다.

“와~ 저게 뭐야?”

그런 주원의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의 칼날.

서윤의 것은 예나 것보다 훨씬 크고 과격해 보였다.

“완전 게임 같잖아?! 예나는 이게 뭔지 알고 있었던 거야?”

고글을 이마에 걸친 주원이 물었다.

“당연하지. 그거, 우리 집에 있던 거니까.”

“오~.”

감탄을 표현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론 굉장하단 생각도 들었다.

잘사는 집 아가씨는 이렇게 평범한 부분부터 다른가 보다.

“근데 이거 종류가 너무 한정적인 거 아니야? 내가 애용하는 스타일은 여기 없는 모양인데.”

모든 다이얼을 다 돌려본 서윤이 불만을 토했다.

제법 여러 가지 커스터마이징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검과 같은 건 없었다.

“언니 무기는 특이하니까. 지금은 봐주라. 목도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면 다양하잖아. 내 검도 이걸론 구현 못 한다고.”

“하긴 뭐….”

서윤이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근데 예나야. 검을 만드는 것까진 좋은데 그 뒤론? 칼날이 보인다고 해도 결국 보이는 것뿐이잖아.”

다이얼을 이리저리 마구 만지던 주원이 물었다.

다이얼을 마구잡이로 돌려서 주원의 칼날은 두껍고, 뭉뚝한 소시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원 오빠라면, 말로 하는 것보단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게 빠르겠지?”

승우를 곁눈질한 예나가 눈썹을 들썩였다.

“응?”

손잡이를 살피던 주원은 본능적으로 손잡이를 바짝 당겼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가드.

승우의 공격을 막아선 주원은 발끝으로 지면을 긁으며 멈춰 섰다.

놀란 주원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 힘과 감각.

그건 분명 칼날이 부딪칠 때 전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예나야 근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아무리 병원이라지만, 이거 진짜 베일 것 같은데? 여기서 유혈 사태라도 나면 잔소리 정도론 안 끝날 거 같은데….”

놀란 주원이 이야기했다.

가벼운 게임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거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살벌하지 않은가.

“괜찮아. 오빠. 그럴 거였으면 가져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예나가 검을 휘둘렀다.

칼날은 예나의 팔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놀란 주원은 두 눈을 깜빡였다.

예나가 자기 팔에 칼을 휘두른 게 첫 번째 놀람이었고,

칼날이 예나의 팔을 쑤욱 통과한 게 두 번째 놀람이었다.

예나의 팔은 베이지 않았다.

“뭐야? 그냥 쑥 통과해 버렸잖아?! 그렇지만 아까 승우 형이랑 부딪쳤을 땐 분명…!”

“맞아. 아깐 그랬었지. 용주 오빠라면 대충 이해했지?”

고개를 돌린 예나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가상의 칼날은 가상의 칼날과만 물리적 충돌을 일으킨다. 대충 그런 거겠지.”

상황을 지켜보던 용주가 손잡이를 하나 쥐었다.

확실히 그런 대전제가 깔려 있다면, 부담 없이 빈틈을 파고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상의 위험에서도 자유롭고 말이다.

“빙고. 용주 오빠 정답.”

“그럼 검을 세팅하시는 동안 간단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만들었던 칼날을 초기화한 승우가 이야기했다.

“생각해 본 건 일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러분끼리 하는 모의전, 다른 하나는 여러분이 팀이 되는 모의전.”

“전자는 일대일, 후자는 일대다의 싸움이란 이야긴데, 맞소?”

금호의 물음에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혼자 하는 역할을 아무에게나 맡길 생각은 없습니다. 모의전이라지만, 이건 여러분의 기량 향상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팬텀과 마주해야 한다면, 인간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해 보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인간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죠.”

승우의 입에서 나온 ‘팬텀’이란 두 단어에 모두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후자의 경우 여러분의 스파링 상대는 일단 제가 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죠.”

“B급 헌터가 스파링 상대라. 그거 재미있구려.”

누가 보더라도 가장 큰 손잡이를 고른 금화가 검을 휘둘러보았다.

무게를 최대로 올려도 여전히 가벼운 느낌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최선의 세팅값인 것 같았다.

“아! 저도! 승우 형이랑 모의전 해보고 싶어요!”

주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쪽으로 쏠리는 모양새네.”

예나의 시선이 용주를 향했다.

두 개의 고글을 집은 수지는 그중 하나를 용주에게 씌워주고 있었다.

반강제로 말이다.

“잠깐!”

그때.

단호하게 외친 서윤이 수지에게 다가갔다.

“B급 헌터 좋지. 너네 집사님이라면 분명 검증된 실력자일 테고. 근데….”

수지 앞에 멈춰 선 서윤이 그녀가 씌운 고글을 확 낚아챘다.

그녀의 눈망울은 오로지 수지를 향하고 있었다.

“여기 더 위도 있잖아. A급 헌터. 모처럼의 기회이니 난 이쪽이랑 스파링해 보고 싶은데.”

“수지 언니랑? 그렇지만 수지 언니는 의료 헌터인데….”

예나가 곤란한 듯 이야기했다.

도전적인 저 표정과 말투.

분명 진심이었다.

“의료 헌터도 헌터잖아. 안 그래?”

“…그래. 알았어. 딱히 끼어들 생각은 없었는데, 원한다면 상대해 줄게.”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고글을 착용했다.

“오케이. 혹시 더 끼어들 사람 있어?”

서윤이 다른 사람들을 쭉 훑어보며 물었다.

문자 그대로만 보면 가능성을 열어둔 이야기였지만, 비언어적인 표현까지 포함해서 보면 이건 끼어들지 말라는 협박에 더 가까웠다.

“없나 보네. 그럼 너랑 나 일대일이야.”

“그래. 그럼 그러지, 뭐.”

투지를 불태우는 서윤과 그와 달리 수지의 반응은 차분했다.

“다들 갈아입었지?”

준비해온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예나가 물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승우가 준비해 온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응! 엄청 편해! 가볍기도 하고. 이것도 일부러 준비해 준 거야?”

주원이 대답했다.

“응. 집사가 필요할 것 같다면서 준비해 왔어.”

“필요할 것 같아서? 아~ 하긴 이 옷이 입고 있던 것보단 편하긴 하니까.”

“아니. 그런 거 말고.”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응? 그럼?”

“이 옷, 평범한 트레이닝복 같아도 사릴 특별한 장치가 하나 돼 있거든.”

“특별한 장치?”

주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잘 봐봐.”

예나가 칼끝으로 손목 소매 부분을 살짝 베어 냈다.

“어? 어라?”

고글을 쓰고 있던 주원이 두 눈을 비볐다.

예나의 팔에 핏자국 같은 얼룩이 생겨 있었다.

‘아깐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지만 저 얼룩 방금 생긴 거야. 그럼 베이기라도 했단 거야? 그렇지만 디지털 칼날 외엔 안 든다고 했는데? 아니! 그보다 지금은 지혈을…!’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 주원이 고글을 벗었다.

“어라?”

그리고 그런 주원의 눈앞에 펼쳐진 건.

아무런 얼룩도 묻지 않은 예나의 트레이닝복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아까는….”

“말했잖아, 오빠. 이 트레이닝복에 특별한 장치가 있다고. 오빠가 본 게 그 장치야. 서바이벌 조끼 같은 걸 생각하면 좀 비슷하려나?”

“음…. 안 보이는 페인트탄 같은 거란 말이지?

“응! 그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야.”

고개를 끄덕인 예나가 다른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혹시 작거나 불편하거나 한 건?”

“가슴 부분이 좀 끼는 것 같은데, 한 사이즈 큰 건?”

시선이 마주친 수지가 이야기했다.

“나, 나도 좀 그런 것 같은데?! 원래 치수보다 좀 작게 나왔나 봐!”

질세라 끼어든 서윤이 아랫단을 살짝 잡아당겼다.

딱히 작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작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자존심이 상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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