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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67화 (167/357)

167화

‘퀘스트는 클리어하긴 했는데… 이건 어째야 하지.’

뭔가 숨이 턱 막히는 그런 기분이었다.

화톳불의 회복 효과를 받아도 최대 HP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게이트를 클리어해 밖으로 나가도 상황은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회복되지 않으면, 재생의 효과로도 회복되지 않을 테지.

‘밖에 그 녀석이 있긴 한데….’

순간 게이트 밖에 있는 수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A급 의료 헌터인 그녀라면 뭔가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기대일 뿐.

게다가 그녀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 있었다.

뒤돌아선 그곳에 반쯤 뼈가 드러난 자신이 있다고 한다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기절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수지 그 녀석이니 기절하진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이 몰골을 녀석에게 보인다는 건 퀘스트 게이트에 관한 것도.

계승자에 관한 것도 빠짐없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소리.

누구에게보다 그녀에게 많은 걸 이야기하긴 했지만, 가능하다면 더 깊게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전부를 해보는 게 가장 타당할 테지.’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용주는 두 다리를 쭉 뻗었다.

포도주를 꺼냈던 그 판단이 착오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싶었다.

적이 어떤 수를 가지고 있을지 고려하지 않은 건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땅에 떨어진 것도 아니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메모리 다이얼로 어떻게 안 되려나?’

자문을 던진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메모리 다이얼의 텍스트엔 ‘사용했던 아이템’이라고 정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었다.

깨져버린 비법 와인은 엄밀히 따지면 사용한 적 없는 아이템.

그 방법으론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와인 기사밖에 없어. 그 녀석이라면 분명 뭐라도 알고 있을 거야.’

해결의 출발선을 잡은 용주는 스탯창을 열었다.

무명왕의 룬검에 필요한 스탯은 120.

일단 거기에 맞춰 스탯을 분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 올스텟 120에 도달했습니다.

▶ 대항력 30에 도달했습니다.

▶ ‘계승자의 첫 번째 시련’이 해금되었습니다.

- 시련에 대한 정보는 ‘시련’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능력치를 분배한 용주의 앞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건 또 뭐야.’

급하게 메뉴를 연 용주는 패널들을 살펴보았다.

이전에 없던 ‘시련’이란 탭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뭔가 불안한데.’

새 패널을 확인한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기대보단 불안함이 앞섰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각오를 다진 용주는 탭을 활성화했다.

▷ 가장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찢고, 씹어, 굴복시켜라.

삼키지 못하면, 삼켜질 것이다.

그런 용주를 반기는 점자 메시지.

▷ 계승자의 첫 번째 시련을 진행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추가로 충족해야 합니다.

1. 퀘스트 게이트 클리어 (0/1)

2. 카오스 게이트 내 적 저치 (0/30)

3. ‘물어뜯기’ 누적 사용횟수 (0/20)

4. HP 누적 피해 (0/100)

점자의 아래쪽에는 점자가 아닌 일반적인 글도 적혀 있었다.

시련을 마주한 용주는 턱을 괴었다.

저 점자.

분명 녀석의 메시지였다.

‘가장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라.’

용주는 의미심장한 점자 메시지를 곱씹었다.

시련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지만, 그다지 반가운 얼굴일 것 같진 않았다.

‘해금 조건과 진행 조건은 또 별개. 퀘스트 게이트도 모자라 언노운까지 조건에 달려 있어.’

진행을 위해선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 조건 중에는.

‘물어뜯기….’

그게 있었다.

“피하지 말란 거냐.”

혼잣말을 중얼거린 용주는 반발하듯 물어뜯기를 사용했다.

살육에 대한 충동과 피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다.

몇 번이나 느껴봤고, 몇 번이나 참아 넘긴 감각이었건만.

삼켜질 거란 두려움이 옆에 있었다.

* * *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영혼길을 되돌아오는 용주를 가장 먼저 발견한 조가 외쳤다.

용주의 모습에 조의 얼굴은 심하게 굳어 있었다.

“뭐… 그래.”

짧게 대답한 용주가 와인 기사를 바라보았다.

잿빛이었던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제 머슬들에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다 잘 끝났다고.”

“따스한 햇살 또한 마신의 은총. 다들 내게 감사하도록. 복채 잊지 말아라.”

두 사람을 지나친 용주는 와인 기사에게 다가갔다.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고 있던 와인 기사는 와인병을 내려놓았다.

“바보 녀석. 네가 만든 맛없는 술 같은 거 내가 기대할까 보냐? 그냥 대놓고 오지 말라고 하지 그러냐? 기껏 마지막까지 부탁 들어줬더니만, 보답이란 게 이거야?”

용주와 마주한 와인 기사가 턱을 괴었다.

아무래도 전해달라는 이야기는 안 해줘도 될 것 같았다.

“히히~ 냄새 더 지독해졌네. 검만 받으면 됐지, 왜 보좌관 냄새까지 받아서 왔어?”

실없이 웃음을 터뜨린 와인 기사가 손을 쉬쉬 저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네게 할 말이 있었다.”

“나~ 할 말? 왜? 냄새 제거제라면 주지 않았던가? 아껴 먹는 것도 정도지. 너무 아끼면 똥 된다고.”

“…그래. 분명 받았었지.”

“나~ 설마 벌컥벌컥 마시고 또 당한 거야?”

“아니.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렸다.”

“나~ 그렇게 멋진 술을 맛도 못 보다니. 세상 반은 잃어버렸잖아? 안됐구만, 안됐어.”

와인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랬었지. 네가 가지고 있는 게 하나 남았다고. 그 말은 여기 다른 어딘가에 그게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거냐?”

와인 기사가 했던 말을 떠올린 용주가 물었다.

“나~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자리에서 일어난 와인 기사가 종탑 바닥을 하나씩 두드리기 시작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예를 들면… 이런 곳이라든가?”

타일을 두드리던 와인 기사가 바닥 타일 중 하나를 들어냈다.

돌과 돌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엔 와인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나~ 럭키하네. 가져가. 냄새나니까 더 다가오진 말고.”

와인 기사의 손을 떠난 와인이 용주에게 날아왔다.

와인을 받은 용주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의 비법 와인.

거기서 잃어버린 것과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었다.

‘됐어….’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걸로 잃어버린 최대 HP와 겉모습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너한테 있는 건 하나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 나한테 있는 건 그거 하나뿐이었어. 이건 어쩌다 우연히 주운 거지. 주운 건 내 게 아니라고.”

“그런 걸 네 멋대로 주고 그래도 되는 거냐?”

농담조로 물은 용주가 어깨를 들썩였다.

“몰?라! 뭐 어때? 본 사람도 없고, 따질 사람도 없는데. 병에 뭐 이름이라도 써 놓은 거 아니잖아? 마셔. 마셔.”

피식 웃어 보인 용주는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나~ 잠깐! 잠깐! 혼자 마시지 말라고. 나도 병 남았으니까.”

급하게 자리로 달려간 와인 기사가 내려놓았던 와인병을 집었다.

“너희도 이리 와. 내가 한턱 쏠 테니까.”

세 드워프를 바라본 와인 기사가 손짓했다.

“한턱. 마신 랭킹 들었을 때 가장 듣기 좋은 말 탑10에 올라 있는 단어다. 오늘부터 우린 형제다.”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울.

“나~ 형제 좋지. 좋아. 좋아.”

근처의 다른 타일을 뜯어낸 와인 기사는 거기서 철로 된 잔 세 개를 꺼냈다.

와인 기사는 세 드워프에게 잔을 나누어주었다.

하나씩 채워지는 잔들.

“……?”

와인 기사가 마지막 조의 잔을 채우려던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탱! 태래래랭….

동시에 떨어진 세 개의 잔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나~ 이건 좀 상처인데.”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전 절대 그런 의도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저은 조의 눈에 자신의 손이 보였다.

반투명해진 손은 떨어진 잔을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된 모양이군. 나의 머슬들의 힘이 빠져나가고 있어.”

조에게 다가온 환이 이야기했다.

“나~ 뭐야? 다 사라지는 거야? 햇살에 사라지는 건 그 녀석이랑 이슬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신조차 거를 수 없는 절대 운명. 감히 마신의 한턱을 빼앗아 가다니. 아주 고얀 놈이다.”

팔짱을 낀 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단 듯.

세 드워프는 예상외로 침착했다.

“이렇게 되리라고 알고 있었던 거냐?”

용주가 물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느끼고 있단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군요.”

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련은?”

“마계와 현계. 마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마신. 그렇기에 마신이다.”

용주의 물음에 울이 대답했다.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대답이었지만, 그의 다음 한마디가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었다.

“그렇지만 마신. 여기 더 있고 싶기도 하다. 저쪽의 기억. 나지 않는다. 새까만 어둠. 아무것도 없는 공허다. 그래서 조금 무섭다.”

“…….”

울의 한마디에 다른 두 드워프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운명을 고를 수 있다면, 너흰 어떻게 할 거냐? 돌아갈 거냐? 아니면 여기 남을 거냐?”

작은 한숨을 내쉰 용주가 와인병을 내려놓았다.

“운명을….”

“고른다?”

“그래.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는 고를 수 없다. 그리고 어느 걸 골라도 나와는 여기서 이별이다.”

‘멈춘 시간의 모래시계’를 꺼낸 용주가 네 사람에게 보였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면, 용주도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 선택지가 있었다.

고를 수 있다면 녀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바보 같은 저 세 녀석에게 그사이에 정이라도 들었는지도 모르지.

“뭘 고르든 마스터와 이별이라니?! 어째서입니까?!”

“맞습니다. 후자의 선택지는 저희와 함께인 것 아닙니까?”

조와 환이 물었다.

“마스터 다른 곳으로 떠난다. 우린 따라가지 못한다. 그게 마신의 정답. 마신의 예지력.”

거기에 돌아온 울의 대답.

용주보다도 먼저 대답을 끝낸 울은 잔뜩 무게를 잡고 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마스터?”

조의 물음에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한 번씩 훅 치고 들어오는 울의 추리는 용주조차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멈춘 시간의 모래시계는 분명 아이템의 지속시간을 연장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한번 지속된 아이템은 해당 게이트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어느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이 셋과는 여기서 이별이었다.

“마신. 여기 남는 선택지를 고를 거다. 지금 여기서 사라지면, 형제도, 마스터도 전부 잊게 될 것만 같다.”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을 보던 울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신 아직 한턱 못 받았다. 억울해서라도 이대론 못 사라진다.”

반투명해진 몸은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며, 깜빡거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떻지?”

“마신의 결정이 그렇다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전부 잊을 것 같다는 그 말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요.”

“뭉치면 근육, 흩어지면 지방. 함께이기에 형제. 저도 여기 남고 싶습니다.”

이어서 돌아온 두 사람의 대답.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멈춘 시간의 모래시계를 사용했다.

대상으로 지목된 아이템은 석조 삼형제 소환서.

뒤집히고 또 뒤집히기를 반복한 모래시계에선 마침내 모래가 흘러내렸다.

역할을 다한 모래시계는 먼지가 되어 흩어졌고, 깜빡거리던 세 드워프의 모습은 점차 선명해졌다.

“운명이 멈췄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울이 투구를 벗었다.

“한턱. 아직 유효하다. 특별히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울이 와인 기사에게 투구를 내밀었다.

“나~ 그거 영광이네.”

와인병을 흔들어 보인 와인 기사는 울의 투구에 와인을 가득 채워주었다.

이어서 채워지는 두 개의 잔.

“크흠! 마신이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다.”

“한마디는 무슨. 그럴 시간 있으면 마셔. 마시라고. 히히힛!”

분위기를 잡으려던 울의 투구를 친 와인 기사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혀로만 느끼면 그건 일류. 온몸으로 느끼면 그것이 바로 마신”

와인으로 샤워를 한 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투구를 비웠다.

들려오는 세 사람의 웃음소리.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용주는 와인을 입에 가져갔다.

앙상하게 드러났던 뼈는 서서히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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