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왕자 ???를 쓰러뜨렸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1,000 소울을 획득했습니다.
▷ ‘메모리 다이얼’을 획득했습니다.
- 사용했던 아이템 중 3가지 아이템의 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 같은 이름의 아이템은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융합된 칠흑 투구’를 획득했습니다.
- 투구에 깃든 4종류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 ‘이름 없는 왕자의 사슬검’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 대규모 귀환의 분말
- 자신을 포함한 지역 내 아군 전부를 화톳불로 이동시킵니다.
- 화톳불로 인한 회복이 완료된 상태로 도착합니다.
위령의 잔을 꺼낸 용주는 왕자들의 빛을 담았다.
아이템을 강탈당하는 초유의 사태에 적잖게 당황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잘 넘어간 모양이었다.
‘조건은 이제 충족됐으니 돌아가서 종을 치는 일만 남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방금 건물 전체가 흔들린 것 같았었다.
‘저건 또….’
천장을 비롯한 방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던 나무뿌리가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진의 강도는 점점 더 커져 갔다.
왠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망설일 필욘 없겠지.’
대규모 귀환의 분말을 꺼낸 용주는 아이템을 사용했다.
퍼져 나가는 하얀 분말.
왕자의 재가 그랬던 것처럼 용주를 감싼 재는 풍경으로부터 용주를 완벽하게 분리했다.
자욱했던 안개가 사라지자 타닥거리는 화톳불 소리가 들렸다.
진동은 더 이상 감지되지 않았다.
“마스터! 역시 그건 적대적인 현상이 아니었던 거군요!”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한발 늦게 나타난 세 드워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철그럭! 철그럭!
위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용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왕좌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던 와인 기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성수는 죽고, 병들었지. 과거의 아름다움은 사라졌고, 죽음만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
계단을 내려오던 와인 기사가 목소리를 냈다.
취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발걸음은 절제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썩 나쁘지 않네. 저게 마지막 개화란 건가.”
서쪽을 바라보는 와인 기사.
그의 시선을 쫓은 용주는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건….’
2단 점프를 활용해 위쪽으로 뛰어오른 용주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은 온통 보랏빛이었다.
하늘까지 닿던 빛의 기둥은 빠르게 힘을 잃으며 사라지고 있었고, 숲은 핵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증발해 버렸다.
“안에서 쓸 거면 밖에서 까고 들어가야 해. 쓰레기는 숲에 대한 예절이 아니거든. 아니면 생명 없는 망자든가.”
와인 한 모금을 들이킨 와인 기사가 키득거리며 웃어 보였다.
주어도 없고, 문장 구성도 이상했지만, 용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쭉 의문이었었다.
영혼 상점에서 구입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게 먹통이었는데, 폭발 수정만이 효과를 발휘했던 이유가.
방금 그 말이 거기에 대한 정답이라면, 그 차이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사고뭉치 왕자 놈들. 서로 죽고 못 살 기세더만, 진짜 죽어서도 함께네.”
화톳불 앞에 선 와인 기사가 털썩 주저앉았다.
“종을 치고 싶다고 했지?”
다가오는 용주를 바라본 와인 기사가 물었다.
“그래.”
“왕을 영접할 수 있는 이는 딱 한 명뿐이야. 그리고 딱 한 번뿐이지. 한번 들어가면 못 살아 나올 수도 있어.”
“상관없다. 두 번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 그럼 더 물을 필욘 없겠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와인 기사는 종탑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향했다.
용주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 * *
종탑을 오른 와인 기사가 사방에 와인을 뿌렸다.
그가 뿌린 와인은 마치 붓글씨를 연상케 했는데, 그 의미는 용주로선 알 수 없었다.
“나~ 잔을 들어주겠어?”
혼자만의 의식을 끝마친 와인 기사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위령의 잔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옅은 빛을 띠기 시작한 와인들.
위령의 잔에서 솟아오른 영혼들은 첨탑을 에워싸며 돌기 시작했다.
“뭐, 뭔가 시작됐습니다! 마스터!”
“낯설지만, 적대적인 느낌은 아니군요.”
“후훗, 이것도 다 마신의 능력.”
영혼들의 군무에 세 드워프들의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댕~ 댕~ 댕~.
울려 퍼지는 종소리.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았지만, 종은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코앞에서 이렇게 거대한 종이 울리는데도 전혀 시끄럽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종소리는 잔잔했고, 평온했다.
첨탑을 돌던 영혼들은 일제히 한 지점으로 향했다.
새롭게 생겨나는 영혼의 길.
길은 왕의 보좌관이 지키고 있던 바로 그 안개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 선물이야. 가져가.”
▷ ‘친우의 잔’을 획득했습니다.
-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황금잔입니다.
- 부서지거나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와인 기사로부터 또 다른 잔을 건네받은 용주.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잔을 살피던 용주가 입을 열었다.
“나~ 아마 영양가 없을걸.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길을 여는 법을 아는 건지, 이걸 왜 내가 가지고 있는 건지. 그런 건 나도 모르니까.”
“넌 영웅이라 불리지 않았던 거냐?”
“…….”
용주의 물음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재미없는 질문이네. 난 나야. 영웅이네 뭐네 하는 이상한 이름이 아니라고.”
침묵을 깬 와인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영웅은 그 녀석들이나 하라고 해. 난 이거 한 병이면 충분하니까.”
와인 기사가 와인병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냐.”
더 이상 깊게 묻지 않기로 한 용주는 세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셋 다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어라. 다녀올 테니.”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마스터!”
“제 머슬들과 함께 건투를 빌고 있겠습니다.”
“정말 돌아오는 거냐? 마스터?”
팔짱을 낀 울의 물음이 용주의 귓가에 울렸다.
그가 어떤 의도로 저런 질문을 던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퀘스트가 클리어되는 시점에서 포탈은 열릴 것이다.
저 안개 속에서 포탈이 열린다고 하면.
그리고 거기서 그냥 게이트를 나간다고 하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될 거란 이야기였다.
‘석조 삼형제 소환서’는 회수 불가능한 소모성 아이템.
녀석들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었다.
“돌아올 때 멜론맛 아이스크림 부탁한다. 마신의 가호 값이다.”
대답을 망설이는 용주를 향해 울이 검지를 세워 보였다.
“…그래. 혹시나 발견하면 챙겨다 주지.”
짧은 대답을 마친 용주는 영혼의 길에 발을 올렸다.
점점 멀어지는 첨탑.
스산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강풍이 되어 날아갔다.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낸 왕의 보좌관.
영혼의 길을 크게 한 바퀴 선회한 왕의 보좌관은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들어오라고 말하는 거냐.’
안개에 손을 올린 용주는 성문을 밀 듯 안개를 밀었다.
▷ 다음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귀환의 분말
눈앞에 펼쳐진 건 온통 안개뿐인 세상.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위아래 어디를 봐도 온통 안개만이 가득했다.
고개를 든 용주는 왕의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먼저 공격할 의사가 없는지 녀석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보좌관의 영혼 안개에선 아직까지 자유로운가 본데.’
HP의 최대치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왕이 있는 곳에서만 제거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왕이 있는 곳은 필히 이곳일 것이다.
그런데.
‘왕이란 자는 어디 있는 거지?’
이곳에 있는 건 녀석과 자신 둘뿐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가 더 필요한 건가?’
주변을 살피던 용주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안개 정중앙에 놓인 작은 물건.
‘저건…?’
왕의 보좌관을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용주는 중앙으로 다가갔다.
안개로 된 바닥에 두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깊이 박힌 룬검.
다른 하나는 어딘가 낯이 익은 잔이었다.
용주는 조금 전 와인 기사에게서 받은 잔을 꺼냈다.
‘그 녀석,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검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잔은 미묘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잔을 내려놓는 용주.
맞닿은 두 개의 잔은 서로의 홈에 완벽하게 끼워 맞춰졌다.
두 잔이 한자리에 모이자 잔에서 안개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안개를 마주한 용주는 뒤로 물러났다.
이 안개, 다른 것들과는 달랐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오한이 느껴졌다.
휘익!
수직으로 내려앉은 왕의 보좌관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순간, 퍼져 나가는 짙은 한기.
파도처럼 얼어붙은 한기는 소용돌이치며 얼어붙어 있었다.
“위령자인가. 나의 친우의 잔을 가지고 있구나.”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의 기사.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강림한 기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와 무릎. 벨트에 해골이 장식된 갑주를 입고 있는 그는 긴 망토를 흩날리고 있었다.
“묻겠다, 위령자. 내 친우는 안식을 얻었는가?”
룬검을 뽑아 든 기사가 칼끝으로 용주를 겨눴다.
타오르는 푸른 안광.
이름 없는 왕의 눈에 깃든 감정은 타오르는 분노나 증오와는 조금 색채가 달랐다.
“아니. 유감스럽게도 네 친우는 안식을 얻지 못했다.”
용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점을 보는 눈’을 손에 넣었을 때.
와인 기사에게서도 빛을 보았다.
원한다면.
만약 그를 제거하고 얻었을 경험치나, 소울, 기타 아이템을 생각했다면, 그를 제거하는 선택지도 가능한 선택이었단 소리였다.
“그런가? 하긴 그게 녀석답긴 하지. 쓸쓸했겠군. 그 오랜 시간 동안 위령자가 나타나길 홀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 ‘이름 없는 왕’의 분노가 감소했습니다.
▷ ‘이름 없는 왕’의 능력치가 30% 감소했습니다.
▷ ‘이름 없는 왕’의 방어력이 20% 감소했습니다.
검을 거두는 왕의 모습과 함께 메시지가 일렁거렸다.
“나의 기사들. 나의 아들들에게 안식을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위령자.”
왕이 자세를 낮춘 보좌관을 쓰다듬었다.
“감사할 것 없다. 다른 누굴 위해 한 일이 아니니까.”
“그런가? 그럼 다음은 내 영혼도 거두어 갈 생각이겠지?”
“…….”
용주의 침묵에 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계의 태양을 본 적 있나, 위령자?”
“그래. 있긴 하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나? 이 세계의 태양은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지.”
“…….”
인지하고 있긴 했었다.
이곳에 오고도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해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그런 세계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요소였다.
“멈춰 버린 세계, 영원히 이어지는 하루, 그게 내가 나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단 하나의 방법이었다.”
고삐를 잡은 왕이 단번에 보좌관에 올라탔다.
“허나, 이제 그 일을 끝낼 때가 된 것 같구나. 자! 위령자여! 오너라! 너의 역할을 다해라!”
소리 없이 울부짖는 보좌관의 포효.
몰아치는 강대한 바람을 따라 짙은 안개가 흩날렸다.
코를 찌르는 악취.
▷ ‘보좌관의 영혼 안개’ 효과가 느껴집니다.
몸을 휘감는 이 안개는 용주가 이미 경험해 본 적 있는 것이었다.
단걸음에 뛰어오른 보좌관은 용주를 덮쳤다.
끝까지 거리를 재던 용주의 점멸은 보좌관은 팔을 관통했고, 허공을 차며 뛰어오른 용주는 그대로 왕을 노렸다.
왕에겐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어떤 걸 의미하는 건지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과연 내 기사들을 쓰러뜨린 자답게 재밌는 재주를 부리는구나. 하나.”
두 다리로 보좌관을 딛고 서 있던 왕의 룬검이 용주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그가 휘두르는 룬검에선 한기가 느껴졌고, 황금 보검의 칼날에 서리가 튀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정당한 계단을 밟지 않은 자에겐 대가가 따를 뿐이다.”
왕과 검을 마주하는 한순간.
용주를 휘어 감은 안개가 몇 배는 더 짙어졌다.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최대 HP.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낀 용주는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보좌관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본데.’
착지에 성공한 용주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불과 십 초 남짓한 시간 동안 HP 최대치가 무려 20%나 날아갔다.
용주의 눈동자에 자신의 오른손이 보였다.
검을 움켜쥐고 있는 다섯 손가락 중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해당하는 면적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