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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61화 (161/357)

161화

‘불이라고?’

울의 조언에 용주는 다시금 적을 올려다보았다.

울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두 가지 독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힌 집합체’라는 저 녀석의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나무.

같은 공격에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다면, 이쪽의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독 그 자체를 줄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테스트해 볼까?’

용주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불을 이용할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은 현재 2가지.

폭발 화살과 폭발 수정이었다.

우선 폭발 화살을 손에 쥔 용주는 다시 한번 거리를 좁혔다.

노리는 건 아까 만들었던 상처가 있는 얼굴.

쾅!

폭발을 일으킨 용주는 열기 속에서 상태를 지켜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까와는 달라진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상처에 대한 적의 반응.

무미건조하던 전과 달리 지금의 잊힌 집합체는 격렬하게 고통을 표현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독에 대한 부분이었다.

폭발로 상처가 벌어졌기에 진액과 가스 두 가지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어야 장성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스도 진액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폭발에 휩쓸려 그대로 사라져 버린 건가?’

결괏값을 확인한 용주는 폭발 수정을 꺼냈다.

자석에 이끌리듯 검 손잡이에 찰싹 달라붙는 폭발 수정.

다른 얼굴을 베어 내는 칼날을 타곤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쪽의 폭발은 폭발 화살과 달리 시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신경 쓸 게 하나 줄었다는 이야기.

용주가 일으키는 폭발은 잊힌 집합체의 얼굴을 하나하나 잠식해 갔다.

▶ ‘잊힌 집합체’를 쓰러뜨렸습니다.

▷ 150 소울을 획득했습니다.

▷ ‘친위대의 증표’를 획득했습니다.

- 왕자들의 호위를 맡던 황실 친위대의 증표입니다.

▷ ‘길 안내자의 조각상’을 획득했습니다.

- 후드를 눌러 쓴 어느 여인의 조각입니다.

- 기록된 위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꼬옥! 꾸꿔어어억…!”

기괴한 소리를 내며 비틀린 잊힌 집합체가 끝내 쓰러졌다.

어깨처럼 축 늘어뜨린 가지부터 재가 되어 스러지는 잊힌 집합체.

<마스터! 쓰러뜨리셨군요!>

<보이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스터의 머슬들이 만드는 하모니를.>

<마신 생각한 그대로다. 칭찬한다. 팁은 주머니에 살짝 넣어주길 바란다. >

집합체가 사라지자 바닥에 세 줄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마지막에 쓴 울의 글은 다른 두 글을 가로로 횡단하고 있었다.

용주는 조금 전 얻은 두 가지 아이템을 확인했다.

친위대의 증표는 옷에 다는 휘장의 형태를 가진 아이템이었는데, 그것 외에 다른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길 안내자의 조각상 역시 설명에 적힌 그대로.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를 가진 하얀 조각상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특이점이 있노라 하면….

머리가 180도 돌아가 있다는 것 정도.

조각상을 고쳐 잡은 용주는 몸통이 전방을 향하게 했다.

끔찍하게 돌아갔던 머리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 조각상이 어딜 가리키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그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괴하게 변했지만 그들의 정체는 왕자들을 지키던 친위대였다.

그런 그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에 대한 정보는 딱 하나뿐이지 않은가?

* * *

“쿠오오옥…!”

강렬한 폭발 속에 스러지는 잊힌 집합체.

가로막던 적을 해치운 용주는 별도의 행동 대신 기다림을 택했다.

앞쪽은 깎아내리는 암벽이었다.

층층이 쌓인 암벽은 마치 생일 케이크를 보는 것 같았는데, 한 층의 높이는 대략 4~5m 정도로 보였다.

과거에 있었을 리프트의 잔해가 있긴 했지만 잔해는 잔해일 뿐이었다.

줄엔 일부러 끊은 듯 예리한 절단선이 남아 있었다.

‘회복이 안 되는 부분은 확실히 영 신경 쓰이는군.’

오른손과 얼굴 일대에서 지속적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빨갛게 올라왔던 수포 중 일부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근처에 화톳불이라도 있으면 이용하면 딱 좋을 시간이건만.

그런 배려는 없었다.

< 마스터! 분부대로 왼쪽으로 크게 돌아봤지만 올라갈 수 있는 루트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바로 그때.

용주가 그려 놓은 원 옆에 조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석상이 가리키는 직선 코스를 여는 동안 다른 루트에 대한 수색을 명령했었는데, 아무래도 꽝인 모양이다.

<오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슬의 힘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마신 생각에도 없다. 차원문을 열면 되긴 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 지금은 힘들 것 같다. >

시간을 좀 더 들여 받아낸 다른 답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루트를 차단해 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기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나. 그런데….’

말은 쉬웠다.

평범한 암벽등반 정도였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암벽은 조금 특별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절벽을 매끈하게 다듬어 둔 것 같았다.

검은 대리석과 같은 절벽엔 손으로 짚을 곳도 발을 올릴 곳도 없었다.

‘황금률로 루트를 만들면 다른 녀석들도 이용할 수 있는 건가?’

자신이 만든 게 다른 녀석들에게도 보인다면.

혹은 보이진 않아도 실체가 공유된다고 한다면 점자보도블록처럼 안내해 주는 게 가능할 것이다.

‘일단 해보자.’

안 되는 것에 대해선 잠시 생각을 보류한 용주는 황금률을 사용했다.

선이 그리는 것은 아까 봤던 스켈레톤 그리폰.

석조 삼형제가 알고 있는 외형이었으니, 보이지 않더라도 설명하기 유용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런데.

“!”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스케치를 마친 선이 갈기갈기 찢긴 것이다.

형태를 잃어버린 선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뭐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에 용주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시도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

마치 뭔가에 방해를 받고 있는 듯 그림은 완성되지 못했다.

‘뭔가가 있긴 한 모양인데….’

심증은 있었지만,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당장 확실한 건 이 방법으론 올라갈 수 없다는 것.

저길 올라가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타닥!

짧은 도움닫기 끝에 뛰어오른 용주는 공중에서 한 번 더 도약했다.

움켜쥔 왼손을 당기는 용주.

점멸로 부족한 높이를 보완하면 충분히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

하지만 용주를 기다리고 있던 건 현실과 생각 사이의 괴리감뿐이었다.

공간 균열은 발동되지 않았다.

‘황금률에 공간 균열까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브레이크 없이 암벽에 들이받은 용주는 어깨를 짚었다.

잊힌 집합체를 쓰러뜨렸을 때까지만 해도 점멸을 활용할 수 있었다.

특별히 추가된 금지 룰도 없었다.

그런데도….

‘스팀팩에 사후 강직까지 먹통. 사용되는 게 확인된 건 영혼 상점에서 산 스킬들 정도인가.’

2단 점프만으론 부족했다.

저길 올라가려면 뭔가가 더 있어야 했다.

‘영혼 상점 목록 중에 속도나 높이에 관여할 수 있을 만한 거라면….’

하나 있긴 했다.

‘사족 보행’이란 이름이 붙은 보조 스킬이.

‘뭐, 어쩔 수 없지.’

검을 집어넣은 용주는 해당 스킬을 구입했다.

네발로 움직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붉은 갈기로 변신했을 때 네발로 움직여 본 적이 있긴 했으니까.

타다닥!

네발로 좀 더 긴 거리를 도움닫기 한 용주는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확연하게 체감되는 속도와 높이.

2단 점프를 활용한 용주는 첫 번째 암벽에 올라설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라면….’

첫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용주는 2번째 3번째 암벽 역시 뛰어올랐다.

크게 자괴감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보는 사람이 더 있는 게 아니기도 하거니와.

시체 뜯어먹기 같은 스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다른 녀석들한테 한마디 말이라도 해놨어야 했는데.’

마지막 암벽을 뛰어넘은 용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보이진 않았지만 녀석들 다 저기 있을 게 분명했다.

시험만 해본다는 게 무심코 다 올라와 버렸다.

‘이 상태라면 저 녀석들을 더 데려가는 건 무리겠어.’

한 층을 내려간 용주는 묘령 가지를 쥐었다.

네 발로 땅을 짚으니 마치 고양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대기. 일을 처리하고 다시 오겠다.>

암벽을 칠판 삼아 커다란 글자를 남긴 용주는 다시 위로 뛰어올랐다.

회복이 금지된 상황에서 생긴 원인 모를 제약들.

앞에서 벌어질 일이 제법 까다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 * *

조각상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용주.

‘점점 짙어지고 있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한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어느 순간에선가부터 풍경에 보랏빛이 섞여 있었다.

‘혹시 이게 원인인 건가?’

어디서 온 현상이고, 어떤 의미를 가진 현상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게 스킬이나 아이템이 먹통이 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입에서 암벽까진 적어도 이런 현상이 없었으니까.

< 돌발 퀘스트 - ‘소리 없는 위령자’ >

▷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성수에 도달해야 합니다.

▷ 정해진 루트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점을 보는 눈’을 보유한 경우 해당 퀘스트 동안 적의 시야가 시각적으로 표시됩니다.

▷ 발각될 경우 퀘스트는 실패하며, 일대의 모든 잊힌 자의 표적이 됩니다.

성벽의 잔해를 넘어서는 용주의 앞에 퀘스트창이 나타났다.

‘잠입인가.’

전혀 낯선 종류의 퀘스트는 아니었다.

다만, 걱정되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퀘스트창이 나타나고부터 바닥에 선이 보였다.

주황색에 가까운 황금색 선엔 일정한 방향으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퀘스트에서 말한 정해진 루트인 모양이었다.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좋겠어.’

성벽의 잔해에 몸을 숨긴 용주는 충분한 시간을 들였다.

빛은 저 앞 코너로 이어져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딱 거기까지.

첫 직선 구간에 엄폐할 구조물들은 제법 있는 편이었다.

‘잊힌 자는 없는 모양인데.’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 본 뒤에야 움직이는 용주.

빛이 가리키는 코너에 바짝 붙은 용주는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 아니, 둘인가.’

과거 어느 건물의 터였을 잔해.

그 속에 몸을 숨긴 용주는 시야의 사각에서 코너를 주시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한 가지 특이점이 보였다.

사선으로 퍼져 나가는 두 개의 붉은빛.

희미했던 빛은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코너 끝에서 멈춰 선 발소리.

숨을 죽인 용주는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일정 부분 교집합을 가지고 있던 빛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다시 처음 형태로 돌아갔다.

마치 누군가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저게 적이 보는 시야라는 건가?’

그 자리에 멈춰선 용주는 녀석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했다.

놈들의 왕복 주기는 정확히 2분 38초.

어째서인진 몰라도 이 코너를 돌진 않았다.

‘다음 루트에 잊힌 자는 저 둘뿐이긴 한데….’

문제는 다음 루트가 완벽한 일직선 길이라는 점이었다.

몸을 숨길 만한 엄폐물이 없는, 말 그대로의 길 말이다.

‘녀석들이 다른 곳을 볼 때 출발해도 최소 한 번은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잠시 고민하던 용주는 영혼 상점을 열었다.

‘그렇게 해볼까?’

마지막 남은 보조 스킬을 익히는 용주.

땅굴 파기를 익힌 용주는 땅을 파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

직접 한 땀 한 땀 파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불과 서너 번 긁는 것만으로 몸이 땅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기묘한 경험을 한 용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건 또 뭐야.’

거기서 마주한 한 가지 이상.

자신이 땅굴을 팔 때 거기 있었던 돌조각이 하늘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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