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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60화 (160/357)

160화

“나~ 여기 이런 조각상들이 있었던가?”

대자로 뻗어 있던 와인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엔 처음 보는 세 개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두 개는 서 있었고, 하나는 등을 보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각 미남에, 환상적인 근육남. 이 두 개는 참 잘 만들었는데,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대? 쯧쯧….”

조와 환의 감상평을 내놓은 와인 기사가 울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마신, 본래 모습 숨겨야 한다. 마신 원래 모습 재앙 그 자체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사내의 목소리.

조각상과 눈이 마주친 와인 기사는 태연하게 그의 옆에 앉았다.

“나~ 그랬었구만. 그걸 몰랐네. 마신은 내 생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냄새나는 보좌관이랑 위령자는 보긴 했는데.”

“이해한다. 마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 몇 안 된다. 그렇게 냄새나는 사람들만 봐왔다니 불쌍하다.”

자연스럽게 말동무가 된 두 사람.

“냄새나서 미안하게 됐군.”

그런 두 사람 앞에 선 용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나~ 저 아래로 나가더니 위에서 뚝 떨어지고. 누가 보면 전설 속에 나오는 고씨 성을 가진 기사라도 되는 줄 알겠어.”

울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와인 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거 마신 전리품.”

그의 손엔 울이 몰래 챙겼던 진주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멍청하고 가련한 친구. 스스로 안대와 족쇄를 채운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손잡이에 목걸이를 내려놓은 와인 기사가 와인을 부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도 지키지 못하는 것도 있는 법이야. 진 전쟁이란 그런 거라고.”

낄낄거리며 웃어 보인 와인 기사가 용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무언가를 달라는 듯한 그의 눈빛.

용주는 그에게 ‘피로 쓴 자결서’를 건넸다.

“…….”

조용히 자결서를 움켜쥐는 와인 기사.

읽지도 않은 자결서를 구깃구깃 구긴 와인 기사의 손에서 한 줌 불꽃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린 자결서는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남은 건 두 왕자뿐이야. 서쪽에 있는 망령숲에 두 사람이 있어. 죽고 못 사는 사이니까 아직도 둘이 같이 있을 거야.”

벌컥벌컥 와인을 들이킨 와인 기사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댕~댕~댕~ 왕의 종이 울릴 거야. 모두의 영혼이 안식을 얻으면 울릴 거라고.”

머리로 와인병을 3번 들이받은 와인 기사는 바닥 타일을 하나 들어냈다.

숨겨진 공간에서 꺼낸 무언가를 각각에게 나누어주는 와인 기사.

네 사람에게 건넨 물건은 크기만 약간 다를 뿐 모두 동일한 물건이었다.

▷ 축복받은 묘령 가지

- 악령숲의 성수(聖樹)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볼펜. 아니, 매직에 좀 더 가깝나?’

와인 기사가 건넨 물건은 딱 그 정도 비주얼을 가진 물건이었다.

몸통은 황금색을 띠고 있었고, 심지 부분은 주황색에 좀 더 가까운 빛을 띠고 있었다.

아이템의 설명에서도 별다른 효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기서 얻을 수 있는 유효한 정보라 한다면 성수.

그러니까 성스러운 나무라는 게 저 숲 어딘가에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건…?”

“몰?라. 어디서 주웠는지도 까먹었어. 히힛! 버리고 싶으면 버려도 되고.”

조의 물음에 고개를 돌린 와인 기사는 등받이를 보며 누워 버렸다.

“마신 재앙의 흔적 남겼다. 마신 이곳에 강림했었다는 증표다.”

울의 목소리에 용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가 앉아 있는 자리엔 주황빛으로 빛나는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해서 그려 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녀석이 준 물건이라면, 분명 어딘가 쓸모가 있을 거야’

묘령 가지를 챙긴 용주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 기사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이제 2명 남았다고.

그건 즉 이 퀘스트도 끝이 보인다는 이야기.

서쪽의 망령숲과 두 명의 왕자.

그리고 왕과 왕의 보좌관.

남은 건 그 정도였다.

* * *

“나무들이 하나같이 기괴하게 생겼군요. 악령이라도 들린 것 같습니다.”

서쪽 출구로 나온 조가 이야기했다.

성당에서부터 이어진 길은 한 숲과 이어져 있었는데, 잿빛 태양은 한층 더 어두워져 있었다.

“숲이 제법 넓습니다. 왕자란 자는 어디에 있을는지….”

“숲속의 왕자. 키스로 깨워야 할지도 모른다. 마신 사양하겠다. 공주로 바꿔오면 생각해 보겠다.”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용주는 계단을 내려왔다.

환의 말마따나 어딜 가야 두 왕자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짚이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수.

그 성스러운 나무가 있는 곳에 그 두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종탑 위에서 봤을 때도 그렇게 눈에 띄는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단어를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두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거대한 나무.

다른 하나는, 빛이 머물든가 하는 식으로 겉모습이 다른 나무.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을 모두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전자에 해당하는 나무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아예 길이 없는 건 아니니. 일단 수색한단 생각으로 움직여야겠군.’

나무에 잠식된 타일에 첫발을 디디는 용주.

▶ 새로운 룰이 적용되었습니다.

▷ 해당 지역에서 타인과의 교류는 극히 제한됩니다.

- 서로를 볼 수 없습니다.

-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 물리적으로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적용된 룰을 확인한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 드워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건 세 드워프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저곳에 있던 성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회색의 안개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있었다.

‘그냥 돌아갈 순 없는 건가.’

안개를 향해 손을 뻗었던 용주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으로 약 30cm 정도 떨어진 지점.

누군가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손이었다.

‘교류가 제한됐다는 걸 보면 그 세 녀석이 사라진 건 아니야.’

같이 있지만, 동시에 격리된 특이한 경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를 붙잡은 용주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였다.

세 녀석 중 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반응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30초가 다 되도록 돌아오는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못 본 건지, 아니면 다른 쪽에 전달 자체가 안 된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 지금으로선 알 순 없었다.

다만, 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겼음은 확실했다.

‘사고만 안 쳤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전투력 자체에선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울의 전투력이 미지수이긴 하지만, 위험 감지와 도주에는 탁월한 녀석이니 벌집을 들쑤시는 일은 하지 않겠지.

다만, 앞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미지수이기에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은 움직이는 수밖에 없나…. 음?’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눈에 한 가지 이상이 보였다.

‘이건….’

땅에 그려지고 있는 주황색 그림.

은은한 빛을 내는 저 그림은 아까 울이 그렸던 자신의 캐릭터였다.

‘그래. 그래서 그 타이밍에 그걸 줬던 건가. 울 녀석 제법이잖아.’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울 녀석, 평소 행실이 그래서 그렇지, 한 번씩 정말 예리할 때가 있었다.

이 정도면 평소에 바보 연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 다들 여기 있나? 답장은 아까 와인 기사에게 받은 걸 사용하면 된다. >

묘령 가지를 꺼낸 용주가 글자를 적었다.

울이 그린 그림 바로 옆이었다.

< 마신 세계에 간섭하다니. 역시 마스터. 인정한다.>

가장 먼저 달린 답글은 누가 봐도 울이 쓴 글이었다.

< 조. 여기 있습니다. 모두 사라져서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이런 용도의 물건이었군요.>

< 제 아름다운 머슬들이 세 사람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모두 흩어진 느낌입니다. >

이어서 달리는 조와 환의 메시지.

< 제약이 생겼지만, 우리가 할 일엔 변함없다. 일단 앞에 있는 길을 따라가는 걸로 하겠다. 100m마다 메시지를 남길 테니, 확인 바란다.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

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린 용주는 수색을 개시했다.

숲은 고대 어느 문명이 잠든 잔해 같았다.

문명의 흔적들은 부서진 채 나무뿌리와 넝쿨들에 잠식되어 있었다.

식물들의 빛깔은 유독 더 어두웠다.

마치 그림자가 여기저기 뻗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용주는 점점 더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100m.

200m.

300m….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400m.

500m.

수많은 잔해를 지나고, 수많은 나무와 풀들을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바스락!

그러던 용주의 발걸음이 멈춘 건 600m 지점을 눈앞에 둔 시점.

타일 정중앙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찾으려던 성수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보통의 나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잊힌 자…인가?’

나무엔 뼈의 형태가 보였다.

얼굴과 어깨.

몸통의 일부 정도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잊힌 자들의 모습이 분명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나무에 잠식된 것처럼 생겼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형태에 복수의 개체가 밀집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

나무에 보이는 해골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여섯… 아니, 일곱인가.’

육안으로 보이는 해골만 일곱 개.

처음 마주하는 형태의 등장에 용주는 재빨리 글자를 남겼다.

< 물러나 대기해라. 내 쪽에서 먼저 손을 써볼 테니. >

바스락!

바람 없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콰앙!

순식간에 지면을 강타한 충돌이 타일을 깨부쉈다.

‘위력 면에서만 보면 고문 바퀴 타입의 녀석들보다도 몇 수는 위인가?’

왼쪽으로 빠르게 파고드는 용주.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들을 침착하게 피해 가던 용주는 왼손을 움켜쥐었다.

‘대신 기동력은 떨어지다 못해 전무하고.’

점멸을 활용해 공중에서 나타난 용주는 그 속도 그대로 사선으로 떨어졌다.

빛이 머물고 있는 녀석의 얼굴 하나를 내리찍는 용주.

미간을 꿰뚫은 용주는 경사면을 타고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이 녀석….’

공격이 정확히 적중했음에도 용주의 표정을 좋지 못했다.

녀석을 꿰뚫는 순간 끈적한 놈의 진액 같은 게 터져 나왔다.

진액이 튄 곳은 오른손 전체와 얼굴 일부.

진액에 덮인 피부 부위에 극심한 가려움증이 몰려왔다.

감지한 이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간 코에 비릿한 아몬드향이 스치고 지나갔다.

찌릿 하는 통증과 함께 좁고 어두워진 시야.

헤일처럼 밀려온 어지럼증에 용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 ‘잊힌 집합체의 독가스’에 노출되었습니다.

- 어지럼증을 느낍니다.

- 시야가 감퇴되었습니다.

▶ ‘잊힌 집합체의 발진독’에 감염되었습니다.

- 피부 발진과 수포가 생기며, 지속적으로 HP가 감소합니다.

- 수포가 터진 상처로 인해 감염에 더욱 취약해집니다.

놈의 얼굴을 걷어찬 용주는 뒤로 한 바퀴 돌며 착지했다.

‘독. 게다가 두 개씩이나.’

벌써 발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깨알만 한 크기의 빨간 수포들이 울긋불긋 올라온 게 보였다.

시야도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있지 않았다.

마치 까만 선글라스를 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이 정도인가….’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은 불의의 일격이었단 걸 감안해도 데미지가 적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독 저항 스킬을 가지고 있긴 했다.

두 가지 다 시간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공격을 이어 가야 했다.

무호흡 스킬을 이용하면 독가스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한쪽.

독의 중첩은 필연적으로 보였다.

‘소모전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눈에 한 글자의 빛이 보였다.

< 나무는 불에 약하다. 마신 공략집 373페이지에 실릴 예정이다. >

완성된 한 줄기 문장.

단순하고 상식적인 1차원적 조언은 누가 봐도 울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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