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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58화 (158/357)

158화

“…….”

빛을 밝힌 용주는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야에 들어찬 건 거대한 사람의 골격.

한눈에 전체를 다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적은 상반신만을 안개 위로 내놓고 있었다.

용주가 있는 지형은 직사각형을 베이스로, 하나의 면이 초승달 모양으로 부서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잊힌 영웅이 있는 곳은 바로 그 초승달의 경계면.

안개에 뒤덮인 그의 하반신은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저, 저길 보십시오!”

“엄청난 크기. 머슬의 아름다움은 없지만 위압적이군.”

적의 모습을 확인한 조와 환이 이야기했다.

적의 모습은 갑옷을 입은 해골을 베이스로 하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부서지고 깨진 갑옷의 틈으론 가슴과 갈비의 뼈가 보였다.

투구와 팔, 그리고 손은 갑옷의 보호를 받고 있지 않았다.

부서지거나 깨져서 그런 게 아니라 무장 자체를 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각 부위마다 특징되는 한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머리에 씌워진 왕관.

저걸 씌워져 있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거꾸로 뒤집힌 왕관은 그의 두개골에 박혀 있었다.

그다음으로 들어오는 물건은 그의 팔에 감긴 10개의 황금 링.

각각 5개씩 채워진 링은 족쇄처럼 그의 팔에 감겨 있었다.

마지막 물건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유독 짧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포물선을 그리며 지면을 향했다.

콰앙!!

힘이 느껴지는 강력한 일격.

처음 용주를 공격했던 일격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정말 저기가 약점이란 건가?’

공격을 피한 용주는 빛이 가리키는 곳을 베어 냈다.

그의 거대한 몸체 중 빛이 가리키는 곳은 딱 한 군데.

바로 반지였다.

용주의 칼날은 정확히 반지를 베어 냈다.

베었다는 느낌도 확실히 전해졌다.

하지만.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아무런 일도 없단 듯이 오른손을 움직인 그는 지면을 크게 싹 쓸어버리고 있었다.

“마스터!”

큰 소리로 외친 조와 환이 오른손을 저지하러 나섰다.

온몸으로 팔을 저지하는 두 드워프.

한참을 밀려나던 두 사람은 간신히 저지에 성공했다.

“크기가 전부가 아니지. 머슬이야 말로….”

중간에 사라져 버린 환의 목소리.

두 사람을 움켜쥔 잊힌 영웅은 그대로 두 사람을 내쳤다.

울이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곳에 내다 꽂힌 두 사람은 자신들이 부순 지면을 짚고 일어나고 있었다.

“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울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결연하게 나아가는 울.

“울끈불끈?”

“마신?”

천천히.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 나간 울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영웅의 흉골 아래에 도착했다.

“뭔가 대단한 걸 하려는 건가 본데?”

“보여줘! 너의 그 머슬들의 힘을!”

뭔가를 보여줄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기대감을 표하는 드워프들.

용주 역시도 그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항상 뒤에서 이상한 행동만 하던 그가 보인 이질적인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

잊힌 영웅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던 울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당당하게 팔짱을 끼는 울.

“마신 결심했다. 이제부터 마신 개종한다.”

한참 동안 무게를 잡고 있던 울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나왔다.

“너 지금 뭐라고.”

“지금 우릴 배신하겠다는 거냐, 마신?!”

“종교는 자유로운 거다. 마신 이 자 같은 사람 기다리고 있었다. 마신 언제나 강자의 편이다.”

너무도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울.

그런 울을 기습적으로 휘어잡은 영웅은 마찬가지로 그를 내던졌다.

퍼억!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울.

“정말로 실망했다. 울끈불끈!”

“죄악에 대가는 당연히 몸으로 치르겠지. 마신!”

그에게 다가간 두 드워프는 몸을 풀었다.

퍼억! 퍼억!!

메아리치는 거친 소리.

감정이 실린 소리는 그 뒤로도 잠시 동안 계속되었다.

“여긴 지옥이다.”

울이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동안에도 상황은 계속 변화했다.

“나의 추악한 모습을 밝히고, 나의 속죄를 방해하는 자. 죽음으로 값을 치를지니!”

지면을 짚은 잊힌 영웅의 반지에서 한 줄기의 먹물이 흘러내렸다.

까드득!

검은 웅덩이에서 하나둘 일어나는 잊힌 자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들은 네 사람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어째 귀찮게 돌아가는데….’

갑작스러운 울의 배신이야 가벼운 코미디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잊힌 자들 중엔 고문 바퀴를 짊어지고 있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별한 지형지물도 없고,

황금률이나 점멸로 변수를 만들 수도 없는 이 좁은 지형에서 저들의 존재는 상당히 까다롭게 다가왔다.

잊힌 자들의 개개인의 전투력이 낮다 한들, 여긴 잊힌 영웅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아주 작은 변수라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쿵!!

달려드는 잊힌 자들을 상대하는 용주에게 영웅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벽에 바짝 달라붙어 공격을 회피한 용주.

영웅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공격을 이어 가고 있었다.

‘반지가 매개라고 한다면, 그것부터 처리해야 해. 그런데….’

약점이라 보이는 곳과 잊힌 자들을 처리할 방법.

두 가지는 분명 공통된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반지를 몇 번을 공격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반지는 끊어지긴커녕 흠 하나 나지 않았고, 잊힌 영웅 또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건가.’

단서를 찾을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용주는 영혼 상점을 열었다.

재빠르게 구입한 아이템을 손에 쥐는 용주.

지면을 휩쓰는 영웅의 손가락에 올라탄 용주는 반지 사이에 들고 있던 아이템을 끼워 넣었다.

해주석.

석탄처럼 검기만 했던 돌에선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지?”

잊힌 자들을 상대하던 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움직임이 변한 거 같은데.”

죽이려고 달려들던 이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정지해 버렸다.

잠시 멈춰 있던 그들은 하나둘 방향을 돌렸다.

“마스터에게 가려는 거냐?! 그렇겐 안 된다!”

용주에게 향하는 이들을 저지하고 나서는 조.

조의 공격에 잊힌 자들이 쓰러져 나갔지만, 그들 중 조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필사적인 조와 환의 저지에도 모든 잊힌 자들을 막아낼 순 없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고문 바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굴러가던 그들이 들이받은 건.

용주가 아닌 잊힌 영웅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자기 팀 우두머리를 공격하고 있어.”

고문 바퀴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든 잊힌 자들이 자신들을 불러낸 존재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상 현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휘이이익~!

반지에서 피어오른 검붉은 연기가 그의 팔과 손등에 불규칙하게 밀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까득!

까드드득!

연기 속에서 일어나는 잊힌 자들.

텅 빈 안구에 들어온 붉은빛은 어딘가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새롭게 일어난 자들이 더욱 격렬하게 영웅을 공격하고 있었다.

“후후후!”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의 귀에 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혹한 심판을 받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울은 어느샌가 벌떡 일어나 있었다.

“마신 다시 개종했다. 이것이 마신의 힘. 마신 아무래도 적의 마수에 빠졌던 모양이다. 정신을 조종하다니 아주 비겁한 녀석이다.”

팔짱을 낀 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게 사실이었다는 것처럼 말하는 뻔뻔함은 덤이었다.

“넌 이미 죽어 있다. 단지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마신의 심판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분위기란 분위기는 다 잡으며 뒤돌아선 울이 돌을 밟고 넘어졌다.

동그랗게 튀어나온 기둥에 머리를 박은 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투구를 바르게 정리한 울은 태연하게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음?”

그런 울의 눈에 한 가지 신기한 게 들어왔다.

“마신 뭔가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마신이 부딪치며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문자인 것 같다.”

울이 용주를 향해 손을 들었다.

‘문자라고?’

놓쳤을 수도 있는 무언가 찾던 용주는 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 모순.

벽에 조각된 기둥에는 분명하게 두 글자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모순?’

글자는 이 두 글자가 전부였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 생긴 모순인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조형들이 몇 개 더 있었는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용주는 다른 기둥들을 살펴보았다.

동일하게 조형된 기둥은 총 다섯 개.

‘모순’이라고 적혀 있는 기둥은 네 번째에 해당하는 기둥이었다.

▷ 1,000번의 공격을 막아주는 반지가 있다고 한다.

▷ 10번의 공격을 막아주는 10개의 팔찌가 있다고 한다.

▷ 1번만 공격을 받아도 죽는 저주받은 왕관이 있다고 한다.

▷ 모순.

▷ 창과 방패를 모두 가진 자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래. 그런 거였나.’

각각의 기둥에 적힌 다섯 개의 글자를 확인한 용주는 영웅을 바라보았다.

반지. 팔찌. 왕관.

세 가지 모두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과 일치했다.

유일한 약점으로 표시된 반지를 공격했지만 소용이 없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개미처럼 달려드는 잊힌 자들의 공격에도 그는 철옹성과 같았다.

‘왕관엔 약점이 표시되지 않아. 모순. 창과 방패의 대결에선 방패가 이겼다고 봐야겠지.’

창과 방패의 대결은 일단은 그렇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있었다.

반지와 팔찌.

그가 가진 2개의 방패 중 오직 반지에만 불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지의 효과가 선 적용되고, 팔찌의 효과는 그 뒤에 적용된다. 그런 원리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반지만 약점이라 표시되는 건 가장 먼저 저걸 파괴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단 거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건 반지였다.

‘1,000번이라….’

문제는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선 무려 1,000번에 달하는 공격을 적중시켜야 한다는 것.

가만히 있는 허수아비를 치는 것도 1,000번이면 쉬운 일이 아닌데, 저런 적을 상대로 1,000번을 때리라는 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총 몇 번이 차감되었는지는 정확히 셀 수 없었지만, 1,000번까진 아직 까마득히 멀었겠지.

‘어차피 쳐야 한다면, 해주석의 효과가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더 깎아내야 해.’

그렇게 생각한 용주는 검을 움켜쥐었다.

‘아니, 잠깐만.’

그런 용주의 머릿속에 스친 한 가지 생각.

‘만약 크고 작은 공격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한 번의 공격으로 동일하게 카운팅한다고 한다면….’

근거 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이 가정이 맞는다고 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카운팅을 줄여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한번 시도해 볼까?’

밑져야 본전이란 말을 떠올린 용주는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장난감 보석함 한 손에 꼭 들어오는 작은 상자.

미믹을 쓰러뜨리고 얻은 ‘미믹어처’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은 용주는 영혼 상점에서 한 가지를 추가로 구입했다.

2단 점프.

보조 스킬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이 책정된 스킬이었다.

“너흰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세 드워프에게 짧은 명령을 내린 용주는 영웅과의 거리를 좁혔다.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여는 잊힌 영웅.

그가 뱉어낸 하얀 숨결은 황사 바람처럼 퍼져 나갔다.

‘이런 것도 쓸 수 있었던 거냐?’

밀려오는 하얀 숨결을 마주한 용주는 호흡을 멈춘 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독인지.

아니면 왕의 보좌관처럼 특수한 무언가를 사용하는 건지는 몰라도, 저기 닿으면 좋을 게 없으리란 것만은 확실했다.

공중을 밟고 한 번 더 도약하는 용주.

그가 뱉은 하얀 숨결의 뒤편은 아무 일도 없단 듯 그대로였다.

‘가스처럼 남아 있는 형태는 아니군. 한정된 시간, 한정된 영역에만 효과를 입히고 그 뒤론 바로 사라져 버리는 건가.’

착지와 동시에 거리를 좁힌 용주는 미믹어처의 뚜껑을 열었다.

딱!딱!딱!딱!

날카로운 이빨을 부딪치는 미믹어처.

영웅의 손가락 사이로 몸을 집어넣은 용주는 미믹어처에게 씹을 것을 선물로 주었다.

땅!땅!땅!땅!!

엄청난 속도로 반지를 씹기 시작한 미믹어처.

미믹어처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점점 더 가속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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