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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57화 (157/357)

157화

“들린다. 불길한 소리. 마신은 느낄 수 있다.”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울이 이야기했다.

“정말 뭐가 들리는 거야?”

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자기 귀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용주도 마찬가지였다.

잊힌 자는 열심히 나팔을 불고 있었지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내 귀엔 안 들리는 뭔가 특별한 주파수의 음이라도 나는 건가?’

울의 이야기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온다. 온다. 온다!”

들키지 않을 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울.

뭔가가 온다는 그의 말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

바로 그때.

용주의 귀에 아주 희미한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1초가 될까 말까 한 한순간 만에 사라져 버린 소리.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들렸던 1음절의 소리는 용주에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설마…. 그렇지만 방금 그건….’

스스로의 추론에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한번 확인해 볼 근거로는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용주는 지금까지 저들이 나팔을 불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저들의 시선.

저들의 행동.

그 모든 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불고 있던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불려고 했지만, 불 수 없었다.

그게 지금 용주가 내린 결론이었다.

철그럭!

내성 쪽을 올려다보던 잊힌 자들은 다시 내려갈 채비를 시작했다.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조가 물었다.

검을 움켜쥐는 용주의 행동은 전투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래.”

“마스터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저의 이 힘으로. 환상적인 머슬들로 해결하겠습니다.”

“내가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신의 힘. 천하제일이다.”

“…소라 고동으로 만든 나팔은 온전하게 회수해야 한다.”

세 드워프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 해 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신의 가호가 내려졌도다!”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울이 외쳤다.

폴짝 뛰어 구유에 들어간 울.

두 손을 높이 든 울을 발견한 잊힌 자들은 곧장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잊힌 자들.

“너흰 강해졌다! 돌격해!”

울의 외침과 동시에 뛰쳐나간 조와 환은 잊힌 자들과의 교전을 시작했다.

“원한은 없습니다!”

오른편으로 돌아 나간 조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잊힌 자와 부딪쳤다.

조가 사용하는 무기는 두 주먹.

잊힌 자가 휘두르는 칼날을 피하는 조의 동작은 마치 권투 선수를 연상케 했다.

빠악!!

왼발을 앞으로 찔러넣은 조는 잊힌 자의 턱을 올려 쳤다.

정통으로 들어간 어퍼컷.

단 일격에 아래턱이 부서진 잊힌 자는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편히 잠드십시오!”

입을 맞춘 손등을 들어 올리는 조.

바닥에 꼬꾸라진 잊힌 자는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마른 게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한 번의 돌진으로 두 명의 잊힌 자를 날려 버린 환이 그 중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들어간 마운팅.

“근육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 보십시오. 이 근육을. 머슬들의 화려한 예술을!”

그의 근육 꺾기가 들어갈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진동했다.

갑옷은 환의 공격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까드드득!

고문이나 다름없는 끔찍한 연속 동작을 맞고 사라지는 잊힌 자.

한발 늦게 합류한 잊힌 자는 무방비 상태인 환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캉!

그와 동시에 허공을 회전하는 칼날.

낡고 부식된 검은 환의 몸에 닿자마자 부러져 버렸다.

“허릿심이야말로 힘의 꽃. 만병을 이겨낼 건강의 코어!”

두 다리로 잊힌 자의 허리를 휘어 감은 환은 팔짱을 끼었다.

허릿심만으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는 환.

무지막지한 그의 허벅지 힘에 훼손되기 시작한 갑옷은 이내 깡통처럼 찌그러졌다.

구유 안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울은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네 명의 잊힌 자들 중 남은 자는 하나.

나팔을 가지고 있던 그 역시 부상을 입고 주저앉아 있었다.

“왜 그러지?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잔뜩 무게를 잡은 울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는 울.

“이해한다. 마신을 눈앞에 뒀으니 그러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충분히 느꼈겠지? 힘의 차이를. 이게 바로 너와 나의 눈높이.”

목에 걸린 나팔을 회수한 을은 최대한 멋진 포즈를 잡았다.

그가 그린 구도 속에서 사라지는 잊힌 자.

전투는 용주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끝이 났다.

“마신의 힘, 잘 봤겠지. 감명 깊게 봤다면 팁 정도는 줘도 괜찮다.”

울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그래. 감명 깊은 전투였다.”

나팔을 건네받은 용주가 대답했다.

세 사람의 전투력.

아니…. 적어도 두 사람의 전투력은 잊힌 자들을 상회하는 수준.

복싱과 레슬링.

두 가지 스포츠가 생각나는 그들의 전투는 확실히 독특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스터. 그 나팔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 않았습니까?”

조가 물었다.

“나팔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과거형의 서술이군요. 지금은 다르단 말씀이십니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소리가 들렸었다. 가늘고 희미했지만, 그건 지금껏 듣지 못했던 종류의 소리였지.”

“그런 소리가 있었단 말씀이십니까?”

조와 환이 전혀 모른단 반응을 보였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 소리를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후후후! 이런이런. 마신, 말하지 않았었던가. 불길한 소리 들었다고.”

두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울이 서둘러 포즈를 잡았다.

숨을 들이마신 용주는 나팔을 들었다.

호롱~호롱~♬

물결치듯 퍼져 나가는 소리.

나팔에서 나오는 소리는 흔히 생각하는 나팔 소리와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소리였다.

“소리가! 소리가 들립니다!”

조가 놀라 외쳤다.

아까 그자들이 몇 번이나 불었을 때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었는데, 마법처럼 소리가 나고 있었다.

“저기 뭔가 온다. 나의 자랑스러운 머슬들이 말해주고 있다.”

평범함을 거부한 동작의 환이 한 곳을 가리켰다.

후욱! 후욱!

내성을 올려다보던 용주의 눈동자에 들어온 한 무리의 그리폰.

왕의 보좌관과 마찬가지로 뼈로만 이루어진 그리폰들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편대 비행을 펼치던 그리폰들은 차례로 내려앉았다.

횃대를 기준으로 가지런하게 정렬한 그리폰들은 훈련을 받았다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모든 그리폰들에겐 낡고 해진 안장이 채워져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착지한 그리폰들을 살피던 조가 이야기했다.

“불지 않은 게 아니라. 불지 못한 거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불지 않은 게 아니라, 불지 못한 거다?”

“그래. 나팔의 기능은 그대로지만, 녀석들이 그 능력을 상실해 버렸던 거지.”

성대를 톡톡 두드려 보인 용주는 그리폰에 올라탔다.

비행을 시작하는 그리폰.

정해진 루트만을 왕복하듯 왔던 동선과 정확히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날아간 그리폰은 내성 안으로 용주를 안내했다.

* * *

뒤늦게 날아온 세 사람과 합류한 용주는 계단을 타고 안으로 내려갔다.

내성의 중심부는 거대한 정원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말라 버린 분수를 중심으로 뻗은 네 갈래의 길 끝에는 쇠창살로 된 철문들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오래된 유적지의 정원 같아 보일 수도 있었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바닥 전체에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단 점이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정원의 모습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마신에게 어울리는 신선의 정원이다.”

안개 위에 자리를 깔고 누운 울이 이야기했다.

정확히 타일만 밟는 두 드워프와 달리, 그는 딱히 경계하고 있는 느낌이 없었다.

“특이한 정원이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군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정도 문이라면 문이라고 할 것도 아닙니다.”

분수를 살피는 용주에게 두 사람이 목소리를 냈다.

용주는 말없이 계속 분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서서히 무너져 갔다.

질서도, 규율도, 이성도,

더는 버틸 길이 없다.

끝은 그토록 증오하던 금과 부 속에서 맞이하려 한다.

그게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지옥이겠지.

용주에게만 보이는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

“응? 공중부양. 정말로 신선이 된 것 같은 이 느낌은…. 우오오오오~!!”

용주가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울의 처절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빠르게 멀어지는 그의 목소리.

“울끈불끈!”

“마신!!”

안개에 누워 있던 그는 안개가 걷히며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내려가자.”

울의 비명을 근거 삼아 대략적인 높이를 가늠한 용주가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사후강직의 힘을 빌어 낙하 데미지를 최소화한 용주.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전무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이곳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정도 높이였으면, 바닥이 안 보였을 리가 없는데….’

상식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스으윽~!!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크고 선명한 소리.

쿵!!

용주를 덮친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일대를 울리고 있었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뭔가 위험한 게 있다고 나의 머슬들이 말해주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

한발 늦게 합류한 두 사람이 외쳤다.

“아~ 그래.”

온몸으로 충격을 받아낸 용주는 뺨을 닦아 냈다.

사후 강직의 효과가 득이 됨과 동시에 독이 된 순간이었다.

덕분에 데미지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그것 때문에 피하지 못했다.

‘날 공격한 건 잊힌 영웅 중 하나겠지.’

시각을 포기한 전투.

용주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페널티가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충분히 이어갈 수 있는 전투였다.

하지만 다른 세 드워프는 사정이 달랐다.

소리를 따라오고 있는 그들의 발소리는 자신감이 없었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잊힌 영웅의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머지 두 녀석은 위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건데.’

판단 미스를 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서가 있었음에도 초보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순 없었다.

‘아주 자그마한 빛이라도 있다면….’

잊힌 미궁에서는 규칙적으로 피어오르는 불기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었다.

하지만 여긴 그런 것조차 없었다.

‘잠깐만…. 불기둥?’

순간 용주의 머릿속에 찌릿하고 전기가 흘렀다.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남아 있는 아이템 목록을 확인했다.

용주가 생각했던 물건은 거기 있었다.

‘그래…. 이거라면.’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는 용주.

아이템을 쥔 용주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템의 효과를 발동한 용주는 손안에 빛을 떨어뜨렸다.

휘이잉~!

그 순간 솟구쳐 오르는 밝은 빛.

빛은 기둥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태양의 기둥.

열없이 빛만을 발산하는 아이템이었다.

“마신 가라사대. 빛이 있어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밝은 빛에 눈을 감고 있던 울이 이야기했다.

빛을 향해 두 손을 든 울.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마치 저 빛을 만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등을 기대고 싶은 건 알지만, 이제 그만해도 된다. 마신이 빛을 두었으니 이제 안심….”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는 울.

자기 뒤에 있던 게 용주나 다른 두 사람인 줄 알았던 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거기 있는 건.

엄청나게 거대한 사람의 손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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