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빠르게 결정을 내린 용주는 도주를 시도했다.
타다닥!
다리를 때리는 용주의 발소리.
다리의 초입으로 내달리던 용주의 발걸음은 급하게 멈춰 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보다 빠르게 움직인 왕의 보좌관이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도망가게 두지 않겠다는 거냐….’
막는다고 해서 막혀줄 생각은 없었다.
막는다면 뚫고 가면 그만.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점멸을 사용했다.
그런데….
‘뭐야.’
당혹스러움을 머금은 용주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심한 이질감이 들었다.
분명 점멸을 활용했는데.
대략적인 거리를 분명 가늠했을 텐데.
풍경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공간 균열로도 통과할 수 없다고?’
그것 말고는 설명되는 방법이 없었다.
작전을 바꾼 용주는 두 다리로 직접 녀석을 통과하기로 했다.
날카롭게 휘두르는 보좌관의 앞다리를 피한 용주는 속도를 높였다.
돌파는 순조롭게 보였다.
그런데….
‘이건 또….’
놈의 목 아래를 지난 용주는 그 이상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앞에 있는 안개를 뚫고 갈 수가 없었다.
‘걸어 나갈 수도 없단 거냐….’
가슴 쪽이 아닌 양쪽 날개 부근으로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앞선 두 개의 방법 모두 실패.
이 안개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 했다.
‘앞뒤로 움직이는 속도는 녀석이 한 수 위. 그럼 이건 어떨까?’
점멸을 활용해 보좌관과 거리를 벌린 용주가 다리 끝을 향해 내달렸다.
보좌관은 서둘러 날개를 펼쳤다.
‘당연히 그렇게 나오겠지.’
놈의 그림자가 자신을 통과하는 순간.
180도 급회전한 용주는 스팀팩을 사용했다.
훨씬 빠르고 기민해진 용주의 움직임.
보좌관보다 한발 앞선 용주는 다시 다리의 초입을 향해 내달렸다.
‘지금 이대로면….’
통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과 3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 정도면 보내줄 만하지도 않냐.”
급하게 뒤로 물러난 용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초만 늦게 반응했어도 사선으로 내리꽂힌 안개의 브레스에 정통으로 휩쓸렸을 것이다.
‘이 방법도 틀린 건가….’
한번 시작된 원거리 공격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저건….’
다른 방법을 간구하던 용주의 눈에 한 가지 풍경이 들어왔다.
다리 외곽에 위치한 계단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은 시도라도 해보는 게 맞겠지.’
저게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녀석을 따돌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도해 봐야 했다.
타닥!
왼쪽으로 방향을 튼 용주는 두세 칸씩 계단을 뛰어내렸다.
계단은 다리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추격해 오는 왕의 보좌관.
다리 그림자 아래로 들어선 용주는 일직선으로 이어진 길을 가로질렀다.
길 끝은 좌측으로 한 번 더 휘어있었다.
‘이건 또….’
길 끝에 도착한 용주의 걸음이 멈춰 섰다.
길의 끝은 다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기둥엔….
안개의 벽이 있었다.
‘막다른 길인 건가?’
길 끝에서 마주하게 된 게 이런 거라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휘익!!
귓가를 스치는 위협적인 바람에 반응한 용주는 급하게 사후 강직을 사용했다.
용주를 강타한 보좌관의 꼬리.
충격에 날아간 용주는 그대로 안개의 벽과 충돌했다.
“!”
그 순간.
용주는 느낄 수 있었다.
볼 수 있었다.
안개를 자연스럽게 관통한 자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 * *
콰직! 콰지지직! 콰앙!
날개 없이 추락한 용주는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추락하면서 부딪힌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몸을 일으킨 용주가 머리를 짚었다.
사후강직을 발동해 둔 덕에 낙하 데미지는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안개는 날 막기 위한 게 아니었던 건가?”
당연히 통과하지 못하는 벽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충격도, 저항도 없이 통과해 버렸다.
마치 평범한 안개처럼.
“녀석은… 따라오지 않는 건가?”
왕의 보좌관이 따라올 기미는 감지되지 않았다.
‘보좌관의 영혼 안개’ 효과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영혼 안개의 효과가 사라졌어도 잃어버린 HP 최대치가 돌아오진 않았다.
그사이에 잃어버린 HP 최대치는 총 3.
최대 HP는 지금 97이었다.
“되돌릴 방법은 있는 거겠지….”
확신보단 소망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임의로 올릴 수도 없고.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인 만큼 반드시 되돌려 받아야만 했다.
“그건 그렇고, 여긴…? 분명 기둥 안쪽으로 추락했는데….”
어지럼이 가시길 기다린 용주는 다시금 주변을 살펴보았다.
벽 곳곳에 놓인 횃불들과 양초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두운 실내는 아무리 봐도 다리 안쪽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보단….
거대한 지하 감옥 같았다.
“다른 공간과 이어져 있기라도 했단 건가?”
용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추락했는지 몰라도 다시 위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단순 높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서진 대들보 위쪽은 돌로 막혀있었다.
“하아…. 생각해 보면 그 방법도 있었잖아.”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용주는 영혼 상점의 리스트를 떠올렸다.
‘귀환의 분말’이란 아이템이라면 그 상황에서 유용했을지도 모르는데.
다급했던 상황에 완전 잊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사용할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수색을 이어 가고 싶었다.
여기에 클리어를 위한 타깃이 있을 수도 있었고.
특별한 무언가가 더 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은 움직이자.”
걸음을 옮긴 용주는 어둡고 눅눅한 통로를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는 쥐들은 앙상한 갈비뼈를 그대로 드러낸 채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 * *
‘어째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은데….’
계단 앞에 선 용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찾은 건 오직 내려가는 길뿐이었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내려가고 있긴 했지만, 이 끝이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똑같은 층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쿵! 쿠구궁!
용주가 마지막 계단을 내려간 그때.
위쪽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던 종류의 소리였다.
‘뭔가가 굴러오는 것 같은… 그런 소리 같은데.’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불규칙하게 통통 튀는 소리도 있었다.
자리에 멈춰선 용주는 방금 내려온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보이는 하나의 실루엣.
“!”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고문 바퀴였다.
고문 바퀴는 그대로 계단을 굴러떨어졌다.
고문 바퀴는 총 3개.
서로 부딪친 고문 바퀴는 이내 옆으로 넘어졌다.
“꺼어어….”
기괴하게 비틀린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고문 바퀴들.
모습을 드러낸 잊힌 자들은 고문 바퀴를 짊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도 나타나는 거냐….’
평범한 물건이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녀석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고문 바퀴를 짊어진 잊힌 자들은 다시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를 올리는 세 개의 고문 바퀴.
바퀴의 테두리엔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나 있었다.
오른쪽으로 몸을 던진 용주는 첫 번째 바퀴를 흘려보냈다.
곧장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바퀴의 공격.
‘황금률.’
평행선을 그리며 달려오던 두 개의 바퀴는 동시에 허공을 향해 발사되었다.
자력에 의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솟구침의 원인은 용주가 만들어 낸 속도 방지턱.
점멸을 활용해 공중으로 위치를 옮긴 용주는 왼쪽에 있던 잊힌 자를 꿰뚫었다.
콰지직!
토스된 동전처럼 땅에 떨어진 고문 바퀴.
비스듬하게 기운 채 회전하던 고문 바퀴는 이내 지면에 바르게 누웠다.
용주는 검을 뽑아냈다.
가슴이 꿰뚫린 잊힌 자는 고문 바퀴와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남은 건 둘….’
조금 전 내려온 계단 쪽으로 내달린 용주는 계단을 타고 올랐다.
맹렬한 추격을 이어 오던 두 개의 고문 바퀴는 서로 교차하며 멈춰 섰다.
고문 바퀴를 짊어진 채 계단을 기어오르는 두 명의 잊힌 자.
‘굴러서 오르지는 못하는 거냐.’
폭발 화살을 던져 한 마리를 끝장낸 용주는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회전력을 잃어버린 잊힌 자는 용주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 * *
길은 더욱더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몇 번 정도 마주쳤던 잊힌 자들도 언제부턴가 소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너를 돈 용주는 정면을 주시했다.
아치형의 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건.
타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불의 기둥들과 거꾸로 뒤집힌 채 진자운동을 하고 있는 거대한 도끼들이었다.
< 돌발 퀘스트 - ‘잊힌 미궁’ >
▷ ‘잊힌 미궁’을 빠져나가십시오.
‘돌발 퀘스트라….’
문 앞에 선 용주는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들어왔던 것과 마찬가지의 형태를 가진 출구가 반대편에 보였다.
‘침입자나, 탈옥수를 막기 위한 일종의 장치… 정도로 봐주면 되는 거냐.’
십자로 교차하는 불기둥들은 규칙적으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닿으면 아마 곱게 끝나진 않겠지.
위협적인 소리를 만들어 내는 도끼들도 마찬가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
자리에 멈춰 선 용주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용주가 하고 있는 거라곤 그저 지켜보는 것뿐.
‘규칙성은 확실한가 본데.’
무한정 반복되는 현상을 관찰하던 용주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3… 2… 1.’
마음속 타이머에 정확히 반응해 솟구치는 불기둥.
‘3… 2…1.’
또 한 번의 타이머가 지나가자 불기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규칙성이 있는 건 불기둥만이 아니었다.
좌우로 왕복하는 도끼들은 가속도 없이 일정한 운동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두 가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단 건데….’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고민하던 용주는 몇몇 지점을 눈여겨보았다.
마음속 타이머에 맞춰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려보는 용주.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용주는 첫발을 뗐다.
‘앞으로 두 블록, 왼쪽으로 한 블록.’
용주가 원하던 위치에 도착하자마자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불길이 일어나는 와중 갑작스럽게 바닥에 엎드리는 용주.
날카로운 소리를 불러온 도끼는 아슬아슬하게 용주를 빗겨 가고 있었다.
‘앞으로 세 블록, 그리고 오른쪽 대각선으로 한 블록.’
몸을 일으킨 용주는 그다음 예정지로 달렸다.
이번에도 정확하게 올라오는 불기둥.
뒤로 물러난 용주는 두 개의 불기둥이 교차하는 꼭짓점에 바짝 붙었다.
1초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지나간 두 개의 도끼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다음은….’
머릿속에 그려둔 길을 따라 용주는 계속해서 트랩을 헤쳐 나갔다.
점멸을 활용해 불기둥을 통과한 용주는 도끼날에 올라탔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불길들.
도끼에서 뛰어내린 용주는 원하던 위치에 착지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마른침을 삼킨 용주는 야구선수처럼 도루했다.
거침없는 용주의 슬라이딩 위론 불길에 휩싸인 도끼 하나가 지나고 있었다.
“후우….”
마지막 도루에 성공한 용주가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그림이 있었지만, 그걸 현실로 실현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울방울 맺힌 땀방울을 닦아낸 용주는 출구라 여겨졌던 문 앞에 섰다.
문 반대편에서 용주를 기다리고 있는 건 어둠이었다.
출구라 여겨지는 곳엔 그나마 희미한 빛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중간이 되는 부분엔 횃불도, 양초도 없었다.
‘하나가 끝이 아닌가 본데.’
돌발 퀘스트는 아직 클리어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저 앞도 마찬가지로 미궁의 연속이란 것.
어둠 속에선 특정한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용주가 들어본 적 있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
불기둥이 솟구치기를 기다린 용주는 화염을 빛 삼아 안쪽을 관찰했다.
그 순간 나타난 고문 바퀴.
순간적으로 마주친 텅 빈 안구는 섬뜩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용주는 관찰을 계속했다.
어둠 속을 구르는 고문 바퀴는 하나가 아니었다.
짧은 순간 목격한 것만 해도 열 개 남짓.
그마저도 출구가 가까운 곳엔 빛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