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적인지, 적이 아닌지 한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같은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뒷모습을 보던 용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선명한 발소리를 남기며 걸어가는 용주.
이곳까지 오며 발소리를 죽였던 것과는 상반되는 발걸음이었다.
까득…!
일순간 끊어진 소리.
뒤돌아선 그자와 눈이 마주친 용주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눈앞에 있는 건 해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꾸워어어~!!”
용주를 발견한 그자는 곧장 행동에 나섰다.
뾰족하게 갈린 돌조각을 휘두르는 스켈레톤.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고, 훈련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살짝만 건드려도 바로 쓰러질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대화할 의지는 없는 거냐?”
가볍게 공격을 흘려보낸 용주가 물었다.
첫 번째 기사와는 의사소통이 가능했었다.
그렇기에 해본 시도였는데….
아무래도 그럴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하는 수 없지.’
스켈레톤의 뒤를 잡은 용주는 그의 등을 꿰뚫었다.
“구웨에엑….”
힘없이 쓰러지는 스켈레톤.
쓰러진 그는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 ‘잊힌 자’를 쓰러뜨렸습니다.
- 10 소울을 획득했습니다.
‘거기 적혀 있던 ‘잊힌 자’란 건 이런 자들을 지칭하는 단어인가 보군.’
영혼 상점에 등록된 몇몇 아이템들에 그런 이름이 있었었다.
분명 이런 자가 더 있다는 소리겠지.
“…….”
한쪽 무릎을 지면에 내려놓은 용주는 그가 필사적으로 깎고 있던 비석 앞에 섰다.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거냐?”
처절함이 느껴졌던 그자의 모습이 어쩐지 기억에 남았다.
“후우….”
작은 한숨을 삼킨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적지를 향해 다시금 걸음을 옮기는 용주.
문 없는 성당의 입구를 통과한 용주의 눈동자에 비치는 건 원형의 실내에 층층이 타오르고 있는 수많은 촛불들이었다.
실내로 들어선 용주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건물의 내부는 지금까지 봤던 다른 곳에 비하면 훼손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성당의 중심에는 화톳불의 터 같은 게 하나 있었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난 계단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1층 높이 정도 되는 블록을 뛰어내린 용주는 화톳불로 다가갔다.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특별한 이상을 감지할 만한 소리는 없었다.
▷ ‘생명의 화로’에 불을 붙이시겠습니까?
- ‘귀환의 분말’의 귀환 장소가 이곳으로 설정됩니다.
용주가 화톳불에 도착하자 한 가지 메시지가 나타났다.
용주의 선택은 YES.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불길 속에선 검 한 자루가 만들어져 갔다.
형태나 모양.
검에 남은 상처까지.
아까 처음 화톳불에서 봤던 것과 완벽하게 동일한 물건이었다.
▷ ‘생명의 화로’를 이용하시겠습니까?
이어서 나온 메시지.
용주의 이번 선택은 NO였다.
딱히 회복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냐가 관건인데….”
선택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어딜 선택하든 순서의 차이만 있을 테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근거가 있는 판단을 하고 싶었다.
‘단서가 될 만한 건 없는 건가?’
용주의 시선이 보다 높은 곳을 향했다.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돌을 조각해 만든 의자 같은 게 하나 보였다.
예사롭지 않은 크기와 예사롭지 않은 모양.
얼핏 봐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그런 의자였다.
계단을 오른 용주는 아래에서 봤던 의자 앞에 섰다.
“…….”
그런 용주의 눈동자에 비치는 건 동글동글한 작은 갑옷.
텅 빈 채 방치된 갑옷은 아니었다.
오래된 해골이 들어 있는 갑옷도 아니었다.
의자엔 가로로 누운 기사가 하나 있었다.
‘아래에서 봤을 땐 분명 없었는데….’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원리인진 몰라도 각도 때문은 아니었다.
‘이 녀석이 이 자리의 주인인가?’
질문과 동시에 NO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기사가 똑바로 앉는다고 가정했을 때.
등받이에 기댄 기사의 다리는 땅에 닿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
팔받침에 머리와 다리가 들어가는 사이즈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적인가?’
용주는 기사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적이라면 지금이 가장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왕을 찾는 거라면…. 딸꾹! 너무 늦었어.”
용주가 결정을 내리려던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기사는 비몽사몽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의 손에는 반쯤 남은 와인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기사에게서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드는 첫 느낌을 그대로 말하자면….
평범한 취객처럼 보였다.
‘일단은… 대화는 통하는 상대인 건가?’
잊힌 자보단 처음 만났던 기사와 비슷한 부류인 모양이었다.
말이 통한다고 해서 결과가 좋을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너는?”
“나? 음… 누구더라? 몰라. 잊어버렸어.”
세상 떠나가라 거하게 트림을 한 기사가 들고 있던 와인병을 바라보았다.
“그냥 와인 기사라고 불러. 와인 기사아아~.”
투구에 세로로 뚫린 시야 구멍으로 와인을 들이붓는 와인 기사.
반은 마시고, 반은 흘렸건만, 와인병엔 와인이 아직도 반이나 차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냐?”
“보면 몰라? 술 마시고 퍼 자고 있었지.”
“…….”
기사가 입을 열 때마다 진한 포도주 향기가 났다.
설마 퀘스트 게이트에서 취객을 상대하게 될 줄이야….
“그전에는 뭘 하고 있었지?”
“술 마시고 퍼 자기 전엔…. 음. 술 마시고 퍼 자고 있었지.”
“그거 말고 다른 건…?”
“음…. 잠깐만 나~~.”
특유의 추임새를 넣은 와인 기사가 길게 시간을 끌었다.
“몰?라. 전부 잊어버렸어.”
이상한 곳에 악센트를 붙인 와인 기사가 다시 가로로 누워 버렸다.
“그럼 네가 앉아 있는 그 자리는 원래 누구 자리인 거냐?”
“나~ 여기 말이야? 몰?라. 엄청 크고 게으른 고주망태 자리였나 본데. 딸꾹!”
“…….”
처음 일어나며 그는 ‘왕’이란 자를 지칭했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의 본질은 그 왕이란 자에 대한 이야기를 캐내는 것이었다.
“왕이란 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거기가 그 왕의 자리인 거겠지?”
“왕? 왕왕왕? 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내가 그랬던가?”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심으로 말이다.
용주는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대자로 뻗은 그는 비슷한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 상태면 유용한 정보를 얻기는 그른 것 같은데.’
한숨을 삼킨 용주는 우측에 놓인 출구를 바라보았다.
‘아니, 차라리 이 상태라 더 다행인 걸지도….’
이 와인 기사란 자는 적어도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만취한 이 상태라면 적어도 오히려 분노나 증오와는 거리가 있겠지.
“거기로 가려고?”
용주가 걸음을 옮긴 그때.
와인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뭐 문제라도?”
“아~ 몰라. 그래도 말이야…. 딸꾹! 왕의 보좌관은 피해 가는 게 좋아.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는…. 딸꾹! 불멸의 존재니까.”
“왕의 보좌관이라고?”
용주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원하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대로 곯아떨어진 와인 기사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이쪽으로 가려고 했을 때 반응했어.’
용주는 다시 한번 성당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일단 시작은 여기로 하기로 한 용주였다.
성당 밖으로 나선 용주는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다리가 있었다.
어디로 이어지는 다리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다리의 중간 이후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다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용주는 폐허가 된 첨탑을 내려다보았다.
다리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그곳엔 네 명의 ‘잊힌 자’들이 있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그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
한창 기도를 올리던 네 명의 잊힌 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기 시작한 이들.
그들의 기이한 움직임에 용주는 시선을 집중했다.
그곳에는.
주먹만 한 쥐가 한 마리 있었다.
평범하게 크기만 한 쥐는 아니었다.
살점은 대부분 썩어 문드러져 갈비뼈가 밖으로 보이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쥐였다.
조그마한 쥐구멍에 들어가 버린 쥐.
쥐구멍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잊힌 자들은 다시 그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처리해야겠지.’
검을 움켜쥔 용주가 계단에 발을 올렸다.
“!”
이상이 생긴 건 바로 그 순간.
멀쩡하게만 보였던 계단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갑작스럽게 아래로 추락한 용주.
혼란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잊힌 자들은 용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 ‘잊힌 자’를 쓰러뜨렸습니다.
- 40 소울을 획득했습니다.
머리가 넷으로 늘었지만, 잊힌 자들의 전투력은 처음 만났던 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돌조각 대신 칼을 들고 있었단 것 정도.
재가 되어 버린 그들을 등진 용주는 자신이 떨어진 곳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그 정도로 부서질 것처럼 생기진 않았었는데….’
계단은 마치 포탄이라도 맞은 것 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 걷거나 뛰어 올라가는 건 이제 불가능.
점멸을 사용해도 닿을까 말까 한 아슬아슬한 높이였다.
‘뭐, 당장 돌아갈 건 아니었으니까.’
첨탑을 지난 용주는 다리의 초입에 들어섰다.
다리는 수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저 안에 뭔가 있는 건가?’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한 안개는 마치 커다란 장벽 같았다.
생명의 화로에 앉았을 때 봤던 안개가 규모가 커지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용주.
휘이익~!!
갑작스럽게 내리꽂힌 바람에 용주가 직격당한 건 안개와의 거리가 불과 100m 남은 지점이었다.
놀란 용주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하늘엔 한 마리의 드래곤이 있었다.
크기는 3차 시험에서 마주했던 드래곤 형태의 이안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보였지만,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뼈로 된 용이라고?’
비늘도 살점도 없는 용은 골격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용을 구성하고 있는 건 뼈와 안개.
용이 지나는 하늘엔 안개의 길이 나고 있었다.
‘왕의 보좌관….’
순간적으로 아까 와인 기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다리를 크게 한 바퀴 우회한 왕의 보좌관은 위협적으로 용주의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내리깔리는 짙은 안개.
다리에 내려앉은 왕의 보좌관은 용주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소리는 없었지만, 이빨의 떨림은 그가 자신을 결코 곱게 보고 있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화락!
두 날개를 활짝 펼친 왕의 보좌관.
바람을 타고 뻗어 나간 안개는 용주의 몸을 휘어 감았다.
‘뭐야….’
안개가 몸을 관통하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코끝을 스쳤다.
부패한 동물의 사체에서 나는 끔찍한 냄새 같았다.
▷ ‘보좌관의 영혼 안개’ 효과가 느껴집니다.
▷ 안개는 적들의 생명력을 흡수하며, 그 생명력을 주인에게 전달합니다.
▷ 최대 HP가 1 감소했습니다.
▷ 1의 HP를 흡수당했습니다.
그와 함께 나타난 하나의 메시지.
‘미친….’
메시지를 확인한 용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HP가 닳고 흡수되는 것까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지만, 최대 HP가 감소됐다고 쓰여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메시지에 용주는 곧장 HP를 확인했다.
98/99
표시되어 있는 HP의 최댓값은 100이 아니었다.
‘진짜잖아….’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HP의 최대치가 변했던 적은 없었다.
다른 스탯이 올라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도 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HP의 최대치는 99.
그게 현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여러 개 있었다.
녀석을 쓰러뜨리면 잃어버린 HP의 최대치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까 들었던 와인 기사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보통의 방법으론 쓰러뜨릴 수 없는 불멸의 존재.
녀석을 쓰러뜨릴 방법을 그자에게 들어야만 했다.
‘일단은… 물러나자.’
더 이상의 HP의 최대치를 잃을 순 없었다.
만약 영구적으로 잃은 거라면 더더욱 빼앗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