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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49화 (149/357)

149화

“이상한 반응. 왜? 남들이 보면 안 되는 거라도 보고 있었어?”

수지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반사적으로 한발 물러난 용주는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너… 길드에 갔던 거 아니었냐?”

“갔었어. 돌아온 거고.”

“이야기는 벌써 다 끝난 거냐?”

“응…. 자리에 있던 헌터들 의견은 수렴해 갔어. 최종 결정은 길드에서 하겠대.”

“그러냐.”

용주의 퉁명스러운 대답.

수지는 가볍게 뒷짐을 졌다.

“답답하지? 동생 걱정도 되고. 벌써 며칠이나 여기 있었잖아.”

“뭐….”

“자!”

수지가 주먹 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뭐 하자는 거냐?”

“하나 골라봐.”

“……?”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수지에 행동에 의문을 표한 용주는 오른쪽 손등을 가리켰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수지는 손바닥을 보였다.

거기에 있는 건 사파이어를 닮은 조그마한 보석.

이형 워프 장치였다.

용주는 말없이 수지를 응시했다.

용주의 눈은 입 대신 말을 묻고 있었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면 기분 전환이 좀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 헌터가 헌터에게.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 검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은 정말 끔찍했을 테니까. 맨정신으로 팔이 잘리는 경험도, 아킬레스건이 싹둑 잘려 나가는 경험도,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 가는 상황도, 순위를 매기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것들이었을 거야.”

“…….”

“길드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오면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어. 어때?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이형 워프 장치.

저게 있으면 거리에 따른 시간 제약을 거의 0으로 만들 수 있었다.

퀘스트 게이트의 시간은 이곳과 다르게 흐르니, 들어가기만 하면 거기서 며칠이 걸리든 상관없었다.

“참고로 반대쪽에 들어 있던 건?”

용주가 물었다.

수지의 왼손은 아직도 꼭 쥐여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수지는 왼손을 펼쳤다.

왼손에도 마찬가지로 이형 워프 장치가 들어 있었다.

“이럴 거면 선택지는 왜 줬던 거냐.”

“재밌잖아. 이렇게 하는 게 더.”

“뭐…. 근데 왕복권까지 책임져 주는 거냐?”

용주의 물음에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 입장에선 딱 좋은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거면 서윤이 말했던 시간에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럼….”

손을 뻗은 용주.

용주의 손이 바로 닿기 직전 수지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아직 말 안 했어. 어디 갈지.”

“생각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 돌아오는 건 뭐 저번처럼 너한테 맡기면 될 거고.”

“네가 가는 건 그렇지. 근데 내가 모르잖아.”

수지가 왼손의 이형 워프 장치를 보였다.

“…….”

용주는 그제야 수지의 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

같이 갈 생각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너도 같이 움직일 생각이냐?”

수지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떻게 보면 그게 더 당연한가.’

수지는 자신을 가족이라 말해주는 녀석이었다.

치료에 간병까지 자처한 녀석이고, 여기 있는 것도 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녀석이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그래서? 어디 가고 싶어?”

수지의 물음에 용주는 핸드폰 화면을 보였다.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장소는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잊힌 영웅들의 성’과 가장 인접한 장소였다.

* * *

포탈을 빠져나온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꽉 막혀 있던 공기는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바뀌어 있었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한 곳은 한적한 어느 해변가의 주차장.

주차되어 있는 차는 2~3대 정도가 전부였고, 지나가는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거기인가?’

시간이 멈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딱히 열리는 시간에 관한 문구는 없었으니, 아직 지도가 원하는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쪽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한발 먼저 주변을 둘러보던 수지가 오솔길을 가리켰다.

“그래.”

오솔길을 지나자 한적한 해변이 나타났다.

장사상륙작전전승공원.

그렇게 이름 붙여진 해변가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 위령탑이었다.

“위령탑이 있네.”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는 위령탑엔 군인의 모습이 함께 보였다.

푸른 하늘이 담겨 완성된 군인의 모습은 여러 생각이 들게 했다.

위령탑을 보던 용서의 시선이 우측을 향했다.

해변엔 국군과 학도병의 모습이 표현된 조각상들이 몇 개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뒤쪽으론 거대한 배 한 척이 보였다.

‘문산’이라고 쓰여 있는 거대한 배.

해변에서부터 이어진 다리는 배의 화물칸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닷바람이 좋네. 왜 여기 오고 싶어 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아.”

가벼운 묵념을 올린 수지가 문산호를 바라보았다.

“저기 들어가 볼 거야?”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기까지 왔는데도 포탈의 징후가 감지되지 않았다.

지도에 점으로 찍힌 곳까지 다가왔음은 확실했다.

이 정도였으면 풍경이 지워지고 시간이 멈췄을 만도 한데….

아무래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음….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이거 진짜 배일까?”

120이라는 숫자가 적힌 문산호를 올려다본 수지가 물었다.

겉으로 보기엔 배 같기는 한데, 화물칸 입구에 위치한 유리문을 보니, 그냥 건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면 어떻고, 건물이면 어떤데.”

“하긴 그것도 그렇네.”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요금 데스크가 보였다.

티켓 발매기에 적힌 기본 관람료는 3,000원.

헌터는 감면 대상으로 들어가 있어 그 절반이면 됐다.

“깔끔하네. 안내도도 잘 되어 있고.”

관람 동선을 따라 걷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전시관 가득 기록되어 있는 잊힌 작전에 대한 이야기.

두 사람은 어느덧 2층에 도착해 있었다.

“영상관이란 것도 있네.”

한발 먼저 움직인 수지.

그녀를 따라 걷던 용주는 순간적으로 덮친 이질감에 멈춰 섰다.

수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자리에 서서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냐하면.

재생되고 있던 스크린이 같은 화면에서 정지해 있었으니까.

‘여기인 건가.’

깔리기 시작한 하얀 안개는 먼 곳에서부터 풍경을 지워 나갔다.

포탈은 화면과 겹쳐 있었다.

“조금만 더 보고 있어라. 금방 다녀올 테니까.”

스크린에 다가간 용주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네 선의를 이용한 것 같아 미안하다. 그래도 덕분에 기분은 좀 나아진 것 같다. 고맙다.”

몇 시간 뒤.

아니, 어쩌면 며칠 뒤에 볼지도 모르지만, 그걸 알고 있는 건 용주 자신뿐이었다.

다음번에 수지를 만날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능청을 떨면 그만.

함께 왔으니, 돌아가는 것도 함께여야겠지.

* * *

타닥… 타닥….

퀘스트 게이트로 진입한 용주의 귀에 가장 먼저 들린 소리는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용주의 시선이 머무는 곳엔 작은 화톳불이 하나 타고 있었는데, 화톳불의 중심에는 검이 하나 꽂혀 있었다.

시선을 옮긴 용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안개에 둘러싸인 외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새로운 룰이 적용되었습니다.

▷ 이번 퀘스트 동안 HP와 MP의 회복은 오로지 화톳불 근처에서만 가능합니다.

- 효과가 제한된 스킬 : 재생, 물어뜯기, 시체 뜯어먹기.

- 금지된 아이템 : MP 회복 포션

그러는 용주의 앞에 한 가지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렇게 유쾌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페널티가 꽤 까다로운데.’

가지고 있던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페널티 정도는 경험해 봤었다.

하지만 이건 그것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용주에게 회복은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였으니까.

게다가 MP의 회복까지 제약이 걸려 있었다.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마나까지 없다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안개 쪽으로 다가갔다.

안개의 형태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완벽한 원의 장벽을 그리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안개가 절대 아니란 소리였다.

▷ ‘생명의 화로’를 나가시겠습니까?

안개의 벽에 가까이 다가서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용주의 선택은 YES.

증발하듯 사라진 안개 너머론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검은 대지에 놓인 수많은 비석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묘지들에선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었단 느낌이 여실히 느껴졌다.

‘아무것도 안 적혀 있어.’

주변에 있는 다른 비석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누가 언제 죽었는지.

그런 게 적혀 있는 비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뒤쪽은 산맥에 가로막혀 있고. 길이라면 역시 저곳뿐인가?’

부서지고 깨진 타일을 밟은 용주는 부서진 분수 앞에 섰다.

물은 마른지가 언제인지 알 수 없었고, 분수 중앙에 있던 조각도 이미 산산이 조각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이건….’

메마른 분수를 살피던 용주의 눈에 한 가지 물건이 들어왔다.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금색의 유리병이 그것이었다.

▷ 위령의 잔

- 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한 잔.

- 기력이 다한 영혼을 담을 수 있다.

- 현재 위령 중인 영혼 : 0

‘퀘스트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가 본데.’

위령의 잔을 집어 든 용주는 병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엄청난 특이점이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크기는 대략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정도.

무게도 해봤자 캔 음료 하나 정도밖에 안 됐다.

“이런 게 있으면 아까 그 화톳불 옆에 놔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발견 못 하고 지나쳤으면 어떡하려고.”

3차 시험 당시 다이어리의 존재조차 몰랐던 주원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볼 생각은 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퀘스트가 불친절한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크게 불만일 것도 아니었다.

방금 그것 역시도 별 의미 없는 작은 투정.

딱히 누가 들어줄 것을 기대하며 한 말은 아니었다.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게 솟은 절벽 사이를 통과하자 뻥 뚫린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려다보이는 산맥들에 푸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지는 하나같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기괴하게 비틀린 나무들엔 잎이 하나도 없었다.

“…….”

용주의 시선이 이번에는 하늘로 향했다.

햇빛은 재에 가려 어둡고 음산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따뜻함도 없었고, 생기도 없었다.

“땅 전체가 마치 죽은 것 같군.”

용주는 낭떠러지와 맞닿아 있는 비탈길을 타고 올랐다.

곳곳에 문명의 흔적이 있었다.

비석 외에 성벽의 잔해나, 도시 건물의 잔해 같은 것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일단은 저기로 가면 되는 건가?’

언덕에서 이어진 내리막길 끝에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아치형의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의 양쪽엔 횃불이 하나씩 걸려 있었는데, 마치 이쪽으로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건….’

아치형의 문 앞에 선 용주는 시선을 집중했다.

문 너머로 보였던 형태가 이제 선명하게 보였다.

3층 높이로 둘러싸인 부서진 안뜰엔 갑옷 하나가 있었다.

‘갑옷을 입은 기사의 석상…인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거대한 대검 한 자루와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는 한 명의 기사.

크기로 미루어 짐작건대, 사람일 수는 없는 사이즈였다.

‘저게 혹시 퀘스트에서 말했던 잊힌 영웅인가?’

원형의 공간에 들어선 용주는 한 걸음씩 기사에게 다가갔다.

용주의 발자국을 따라 켜진 초들은 외곽을 밝히고 있었다.

▷ 충성을 다했다.

목숨을 바쳤다.

나의 죽음은 분명 가치 있었으리라.

용주가 기사 앞에 서자 한 가지 문구가 출력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생애 마지막에 생각했을 법한 말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용주는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입구 반대편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저 문은 닫혀 있다는 것.

문에 다가간 용주는 문을 열어 보려 했지만,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점멸을 사용하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충분히 시도해 볼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뒤에 있는 저자의 일을 처리한 다음이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번 퀘스트의 목적은 잊힌 영웅들의 영혼을 모두 거두는 것.

저게 그 첫 번째라 하면, 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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