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145화 (145/357)

145화

“특별 조사관이라면서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거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성덕이 다섯 사람을 쭉 훑어보았다.

“정말 다 말한 거 맞아? 숨기는 게 영 께름칙한데.”

“께름칙하긴 뭐가 께름칙해!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숨기는 거 같은 거 없거든?!”

서윤이 즉각 반발했다.

이거 갑자기 용의자 취급이지 않은가.

“쯧! 말버릇하고는. 대체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성덕이 혀를 찼다.

“거기, 너!”

주머니에서 손을 뺀 성덕이 용주를 가리켰다.

“그래, 너 말이야. 샐러맨더 꼬리에 붙어 있던 꼬꼬마. 널 보자마자 머리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렀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너희가 방금 너희 입으로 그랬지? E급 헌터였던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강한 힘을 사용하며 공격해 왔다고.”

“그래…. 그랬었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저자의 눈.

이미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듣기론 널 이렇게 부른다고 하던데. ‘좀비 헌터’라고. E급 언노운 하나를 상대로도 죽기 직전까지 간다던가?”

“…….”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네가 어떻게 그 시험의 자격을 얻고 통과했으며, 지금과 같은 힘을 부릴 수 있을까? 진각성을 경험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요점이 뭐냐?”

“너희가 말한 두 녀석의 공통점은 갑작스러운 힘의 상승과 스킬의 존재. 그렇게 정리할 수 있지.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이 말이야.”

“…….”

스리슬쩍 올라가는 성덕의 입술.

용주는 거기에 즉각 답변하지 못했다.

그 두 가지 관점에서 보면 자신도 확실히 해당하는 부분이 있었다.

티르의 손의 계측으론 변화가 없지만, 자신은 확실히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네가 받은 임무와 네가 한 활약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네 힘이 변화한 건 비밀의 방 사건이 있은 후부터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설명할 수 있어?”

“…….”

성덕의 추궁에 용주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아~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럴 것 같아서 내가 미리 정리를 해 왔으니까.”

성덕이 손을 쉬쉬 저었다.

“자~ 그럼 이제 퍼즐을 맞춰볼까? 넌 E급 중에서도 폐급 중에 폐급이었어.”

“야!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너 지금 말 다 했어?!”

“아~ 거 더럽게 땍땍거리네. 이래서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다니까. 쯧쯧쯧. 일단 듣기나 해.”

혀를 찬 성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네가 갑자기 큰 힘을 가지게 된 이유. 생각해 보면 너무 간단하지 않아?”

잠시 뜸을 들이는 성덕.

용주를 보고 있던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바로 그 팬텀의 일원인 거야.”

확신에 찬 성덕의 목소리.

그의 한마디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뭐?! 미친 소리 좀 작작 해!”

서윤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건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저딴 걸 추리라고….

“방금 그 발언엔 저도 이의가 있소이다만.”

“그래요. 용주 형이 팬텀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주장엔 근거가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용주 오빠가 예전에 비해 강해졌다. 근거는 그것뿐인가요?”

금화와 주원.

그리고 예나가 곧장 목소리를 냈다.

“그것뿐이라니? 그거면 전부야! 너희가 너희 입으로 말했잖아! 팬텀의 두 녀석이 갑자기 강해졌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럼 저 녀석에 변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예전에 그게 헛소문이었던 게 당연하잖아! 질투심에 막 싸지르는 놈들이 만든 그런 거였겠지!”

서윤이 반박했다.

시험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말 하던 녀석들 전부 탈락해 버렸지.

“쯧쯧쯧! 모르는 소리. 평판 같은 주관적인 요소를 빼더라도, 객관적인 데이터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 말이야. 병원 기록, 이형 결정체 정산기록, 임무 수주 기록 뭘 뒤져봐도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고. 저놈은 구제 불능의 쓰레기였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서윤이 앉아 있던 의자를 집어 던졌다.

옆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었다.

날아오는 의자를 마주한 성덕은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파지직!

그와 동시에 산산이 조각나는 의자.

성덕의 앞엔 모래로 만들어진 병사 하나가 서 있었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씨부리지 마! A급 헌터면 다야? 네가 뭔데 사람을 쓰레기다 뭐다 하는 건데?! 네가 얘를 알아? 뭘 알고나 말하는 거냐고?!”

A급 헌터인 성덕의 스킬.

그걸 마주하고도 전혀 기죽지 않은 서윤이 외쳤다.

“그러는 너야말로 A급 헌터를 대체 뭐로 보는 건지 모르겠네. 이 몸이 좋게좋게 봐줬더니 옆집 친구로 보이나 보지? 예절 주입이나 좀 시켜줄까?”

한껏 격해진 분위기.

방관하고 있던 동제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성덕 헌터님. 거기까지만 하시는 게 어떠실는지요. 제가 듣기에도 발언 수위가 너무 높았습니다. 서윤 헌터님도 방금 행동은 너무 과격했습니다.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높기는! 이렇게 말해야 이야기가 팍팍 진행되는 거라고. 나 때는 그런 말 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했어.”

모래 병사를 지운 성덕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지만 저희는 물론이고, 용주 오빠도 이번 팬텀 습격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인데요.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생각을 정리하던 예나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래서 애들은 안 된다니까.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하는 거야. 사건의 연속성, 거기에 바로 답이 있는 거라고.”

성덕이 양손을 쫙 펼쳤다.

테이블 위에서 자라난 모래들은 입체적인 그림이 되고 있었다.

“자, 잘 봐. 내 대전제는 이거야. 저 녀석이 팬텀이다. 그럼 팬텀이 팬텀을 공격한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녀석이 배신자거나 이탈자이기 때문이야.”

“배신자?”

“이탈자라고?”

“사건의 시작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바로 녀석이 박형만이랑 만났을 무렵이지. 두 사람. 아니, 거기에 안수지까지 더하면 세 사람이지. 세 사람은 같은 D급 게이트에 들어갔어. 동행의 책임자는 박형만이었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모래들.

세 사람의 모습을 만든 모래는 위에서 내려다본 카오스 게이트의 단면을 만들어냈다.

“난 당시의 사건이 조작 은폐되었다고 생각해. D급 게이트에 그런 게 있었다는 걸 대체 어떻게 믿으란 거야? 같은 사례가 과거에도 없고, 지금까지도 한 번도 없는데.”

“그 이야기라면, 지난번에 한 번 말씀드렸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동제가 이야기했다.

“물론, 그때 일은 나도 기억하지. 누가 아주 시원하게 물 먹여 줬었는데 어떻게 잊겠어.”

성덕과 동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반박당한 논리가 분명 그거였지. 박형만의 팔이 잘렸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랬었죠.”

“그 퍼즐을 찾아 한참을 헤맸단 말이지. 그리고 해답을 찾았다 이 말이야.”

“…….”

“저 녀석이 팬텀이다. 그리고 거기 있던 D급 헌터들을 살해한 것도 저 녀석이 한 일이다.”

“그 발언, 책임지실 수 있으십니까?”

“후! 들어나 봐! 아주 깜짝 놀랄 테니까! 너희들이 만났던 녀석. 통제 불가능한 뭔가에 휩쓸렸다고 했지?”

성덕이 주원을 가리켰다.

“네. 그랬긴 했는데요….”

“그리고 너희들이 상대했던 윤현도 폭주하듯 모습을 바꾸었다고 했고.”

이번에는 용주를 가리킨 성덕이 의자에 최대한 몸을 뉘었다.

“거기서도 같은 일이 있었던 거야. 팬텀으로서의 역량을 확인하기 전에 언노운을 상대로 녀석의 힘을 시험해 보려고 했던 거였는데, 그 자리에서 녀석이 폭주해 버렸던 거라고!”

“그 말씀은….”

“박형만, 안수지. 두 녀석도 팬텀이다. 그럼 앞뒤가 딱딱 들어맞지 않아?”

“…전 그 논리에 쉽게 설득당하지 못하겠는데 말입니다.”

“하~ 참 답답하네. 특별 조사관이라면서 대체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는 게 제일 안전한 법이야. 그런데 거기서 녀석이 폭주해 버린 거지. 그 자리에 있던 D급 헌터들은 싹 다 죽어 버렸고, 뒷수습은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야. 자! 그럼 여기서 그 둘은 어떻게 뒷수습을 했을까?”

“비밀의 방이란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이십니까?”

“그래! 이제야 좀 머리가 돌아가네. 바로 그거라고!”

“박형만 헌터님께서 팔이 잘리신 건?”

“당연히 쇼지! 상황을 덮으려면 그 정도 쇼는 있었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이슈를 이슈로 덮은 거야! 사신형 언노운? 점자가 쓰여 있는 석판? 하! 정말 상상력 하난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 어때? 이제 이해가 가? 푸핫! 하하하핫!”

승리를 만끽하는 듯한 성덕의 웃음.

“하아…. 이야기는 다 끝난 거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제 와서 발뺌하려고 해 봤자 소용없어! 나의 이 완벽한 논리! 완벽한 추리 앞에서 통할 변명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유다만, 이쪽 입장에선 워낙 문제점투성이라 어디서부터 걸고넘어져야 할지 모를 정도인데 말이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주가 입을 열었다.

“흥! 그래? 어디 말해보시지, 이 살인자 녀석. 그 뻔뻔스러운 가면이 벗겨질 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너도, 박형만 녀석도 곧 끝날 거라고.”

“잊어나 본데, 생존자 중엔 한태영도 있었다.”

“아~ 그거? 그럼 뭐 그 녀석도 한패였나 보지. 아니면 목숨을 구걸한 대가로 협력하기로 했든가. 그 녀석도 잡아놓고 털면 다 나올 거라고.”

“팬텀이 그런 테스트가 필요하다면, 왜 헌터 길드에 정식으로 의뢰를 받고, 리스트를 등록하지? 그냥 들어가서 클리어하고, 들어오는 헌터가 있으면 마찬가지로 처리하면 일거양득일 텐데? 뭣하러 그렇게 번거로운 짓을 벌이지?”

“그, 그건…. 음….”

단 두 발언 만에 성덕의 말이 삐걱거렸다.

“아! 그래! 게이트 정보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녀석들이 게이트 정보를 그런 식으로 알아 낸다고? 그럼 우리가 습격당했던 게이트 정보를 조회한 헌터가 더 누가 있지? 윤현이나 기타 다른 누군가가 조회한 기록이 있었나?”

“그… 있을 거야! 아마도.”

“해당 임무에 추가 조회 기록이 한 건 있습니다.”

노트북을 두드린 동제가 대신 대답했다.

“아, 그렇지. 거 봐!”

“한 건 있는 조회는 구조 연락이 취해진 이후입니다.”

“…….”

성덕의 안색이 나빠졌다.

“팬텀이 내부 정보망을 이용할 순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멍청한 방법으로 이용하진 않을 거다.”

“멍청…!”

“그리고 네 주장대로 내가 폭주했다고 쳐도 이상한 점이 있다. 난 거기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정말로 내가 폭주했었다면, 왜 날 거기 두고 가지? 필요 없다면 죽이면 되고, 필요했다면 업고 나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그건 그러니까….”

용주의 반박에 성덕의 얼굴이 붉어졌다.

“게다가 내가 배신했다고? 내가 배신자라면 나보다 늦게 팬텀에 들어온 윤현에게 처리를 맡겼을까? 네 주장대로라면, 힘이 검증된 형만이나 수지가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쉴 틈 없이 이어진 용주의 반박.

마땅한 반박거리를 찾지 못한 성덕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그럼 네가 갑자기 성장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말해 봐! 말해보라고!”

궁지에 몰린 듯 다급해진 성덕이 외쳤다.

“어느 날 갑자기 눈 떠보니 그렇게 됐다…. 그렇게 말하면?”

“뭐? 무슨 삼류 소설 제목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글쎄…. 과연 어떨까?”

용주가 입술을 실룩였다.

“팬텀이 어떻게 힘을 증폭시키는진 몰라도, 나랑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내게 변화가 생겼다면 그걸 밝히는 건 길드가 할 일이겠지. 물론, 이미 한 번 어울려준 일에 다시 어울려줄 맘은 없지만.”

용주의 시선이 동제를 향했다.

용주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잘 알아들었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