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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44화 (144/357)

144화

“뭐라고?! 미끼? 너 지금 말 다 했어?!”

발끈한 서윤이 또 한 번 테이블을 내려쳤다.

미끼라니.

그게 지금 사람한테 할 소리인가?

“충분히 나올 법한 가능성을 말해본 것뿐이야.”

서윤과 달리 수지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괜찮아. 길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 생각도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자리에서 일어난 수지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네 생각? 그게 뭔데?”

“생각이 현실이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수지의 시선이 용주와 마주쳤다.

“그럼 피곤해서 먼저 일어날게. 네 침대, 내가 먼저 쓸 테니까. 마음대로 해.”

“뭐?!”

동시에 튀어나온 용주와 서윤의 목소리.

“하암~ 그럼 잘 자.”

용주를 뒤로한 수지는 먼저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저 녀석 대체 뭐야?!”

서윤이 신경질을 냈다.

조금 전 발언들, 하나같이 이해도 안 되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이해해라. 원래 그런 녀석이니.”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던 용주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길드가 그렇게 나오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용주는 이 말에 진심이었다.

가볍게 넘어갈 사건으론 보이지 않았다.

길드 상부가 결정권을 가지고 관여할 가능성이 크겠지.

그리고 그들이 내릴 결정이라면.

뭐라도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지만 미끼라니, 뭔가 께름칙하네요.”

주원이 눈치를 살폈다.

“아직 뭐가 확정된 것도 아니니, 단언하기엔 이를걸세.”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면, 또 검을 겨눠야 할 수도 있단 거네? 언노운이 아닌 사람한테….”

예나가 말끝이 떨렸다.

무서웠다.

언노운이 아닌 사람을 베어 내는 게.

칼에 묻는 피가 사람의 피라는 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눈앞에 있던 그 사람이.

괴물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면, 그때처럼 찌를 수 있었을까 하는….

“아가씨.”

승우가 예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희도 이만 일어나는 게 어떠신지요. 남은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 무사한 건 확인했으니.”

“응…. 다들 어떻게 생각해요?”

예나가 물었다.

“일단은 그러는 거로 하세. 다들 체력적으로도 방전 상태일 테니.”

금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용주는 이제 막 깨어난 참이었다.

의료 헌터의 손을 거쳤다 해도 휴식이 보약일 테지.

“음. 그래요. 그럼.”

빈 종이컵을 회수한 주원은 자진해서 테이블을 정리했다.

나머지 반을 정리한 승우는 주원과 같이 움직였다.

“저… 승우 형이라고 했죠?”

쓰레기를 버린 주원이 물었다.

“네. 편하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이주원 헌터. 아가씨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던가요?”

“…….”

갑작스러운 주원의 물음에 예나와 승우의 눈동자가 동시에 반응했다.

“아니, 왜인진 모르겠는데,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는 승우.

“음… 역시 그렇겠죠. 기분 탓이었나 봐요.”

“그럴 수도 있죠. 이해합니다.”

멋쩍게 웃어 보인 주원이 인사를 건넸다.

“그럼 버티 잘 좀 부탁드릴게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보죠.”

네 사람이 자리를 뜬 휴게실.

남아 있는 이는 이제 서윤과 용주 둘뿐이었다.

“야. 잠깐만 너 나랑 이야기 좀 해.”

서윤이 용주를 붙잡았다.

용주의 눈은 하려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더 물어볼 맘은 없어. 물어본다고 뭐 더 나오지도 않을 거고. 근데 역시 그건 물어봐야겠어.”

“그거?”

“그래. 그때 뿌려졌던 초록 가스지대. 그거 네가 한 거지?”

워낙 정신없이 판이 돌아간 터라 물어볼 타이밍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봤던 그건, 언노운이 사용하던 것과 너무도 닮은 것이었다.

“…그래.”

“‘그래’라고 하면 다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그걸 어떻게 네가 쓴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가스.

살면서 처음 보는 거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그걸 이 녀석이 사용했단 말인가.

“특수한 도구라도 얻은 거야? 이형 결정체로 만든 그런 거?”

“…그래. 뭐, 그런 셈이지.”

그렇다고 말하는 건 쉬운 선택지였다.

동시에 아주 얕은 선택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은 그 정도로 해둬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규칙적으로 발현되는 스킬.

거기에 대해 당장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 게 있으면 있다고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았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서윤이 턱을 괴었다.

“그리고 이건 그거랑 완전 상관없는 이야긴데….”

서윤이 용주의 시선을 피했다.

“아까 그 A급 의료 헌터…. 무슨 관계야?”

의료 헌터가 부상입은 헌터를 돌보는 건 당연한 거였다.

안수지라는 그 사람.

시험장에서도 봤던 얼굴이었으니 서로 초면이 아닌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치료를 끝내고 의식만 돌아오면 되는 상황에 왜 굳이 본인이 간병을 자처하느냔 말이냐.

게다가 방금 그 사람이 했던 발언….

용주 침대에서 잘 테니, 마음대로 하라니.

그게….

평범한 헌터와 헌터 사이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냥 평범한 의료 헌터와 헌터의 관계다만.”

“웃기지 마! 대체 어떤 평범한 관계가 마음대로 하라는 소리를 하냐고?!”

“뭐…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서 말이야. 이주원 그 녀석보다 더 하면 더 한 타입이지.”

“…….”

서윤이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용주의 말투나 표정.

마치 상대방을 다 안다.

아니,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잠깐만. 나 지금 질투하는 거야?’

정신을 차린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진짜 하, 한 침대에서 자려는 건 아니지?”

스스로 한 말에 서윤의 얼굴이 붉어졌다.

“찾아보면 간병인들이 쓰는 간이침대가 있을 거다. 그게 아니면 의자에서 자면 되고.”

“그 사람도 좀 너무한다. 어떻게 방금 막 깨어난 환자 침대를 뺏을 생각을 해?”

“말했잖아. 원래 특이한 녀석이었다고.”

“…….”

서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간병을 한단 건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의료 헌터로서의 의무나 책임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그때와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을….

떼어놓고 싶었다.

“야. 이용주.”

무언가를 결심한 서윤이 용주를 불렀다.

“그러지 말고. 내 방으로 와라.”

“뭐?”

“이,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완전 어림도 없으니까! 그냥 침대 쓰라고 말한 거야. 너 깨어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간이 침대든 뭐든 내가 쓸 테니까 넌 좀 더 쉬라고.”

서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었다.

“마음은 고맙다만, 안 그래도 돼.”

“뭐? 왜? 거절 안 해도 된다니까?!”

서윤이 용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됐으니까 네 컨디션부터 챙겨. 얼굴에 힘들다고 적혀 있으니까.”

검지와 중지를 편 용주가 서윤의 이마를 콕 찔렀다.

“그럼 자라. 내일부턴 다시 바빠질지도 모르니.”

휴게실을 빠져나가는 용주.

‘이런 상황에서도 남 걱정하는 거야? 하여튼….’

혼자 남은 서윤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

‘지지 않을 거야. 선두가 몇 명이고, 누가 됐든지. 양보할 마음 없다고.’

파트너.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고 싶단 욕심이 들었다.

비록 첫사랑은 아니지만, 잡고 싶었다.

* * *

병실로 돌아온 용주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근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 녀석, 벌써 잠들었나 보네.’

환하게 켜져 있는 형광등 아래.

침대를 차지한 수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여튼….’

조명을 내린 용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다면 하는 녀석이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막상 눈으로 보니 좀 어이가 없기도 했다.

침대 좌측에 위치한 간병인 석에 자리를 잡고 누운 용주는 왼손을 바라보았다.

잘라 냈었던 게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고맙다는 말을 했던가?’

수지에게도 그렇고, 예나에게도 해야 했던 말이었다.

‘……?’

생각에 잠긴 용주는 뭔가 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왼손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용주는 수면등이 켜진 테이블을 살펴보았다.

핸드폰이나 생수 정도 외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잃어버린 건가?’

고대의 재앙에게 팔을 빼앗겼을 때까진 반지를 끼고 있었다.

잃어버린 건 팔을 자르고 난 이후.

‘하긴, 팔을 돌려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고대의 재앙은 팔을 삼키고 튀어나왔다.

그걸 생각하면 팔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왼팔은 영영 사용할 수 없게 됐을 테지.

아무리 A급 의료 헌터인 수지라도, 왼팔이 소실됐다면 어떻게 해주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도 그게 사라진 건 타격이 큰데.’

공간 균열의 반지는 여러모로 유용한 물건이었다.

위기를 탈출하는 능력도.

변수를 창출하는 능력도 발군.

무엇보다 움직임의 한계나 물리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이점이었다.

물론, 언젠간 마주했어야 할 일이었다.

반지의 서린 균열의 저주가 다 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맛을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맛을 알아 버린 뒤였으니까.

‘이제 그런 건 못하겠네.’

왼손을 움켜쥔 용주가 점멸을 사용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남은 아쉬움을 던져 버리자는 의미에서 해본 동작이었다.

그런데.

‘……!’

순식간에 풍경이 변화했다.

앞에서 들려오던 숨소리가 이젠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대체 뭐가….’

놀란 용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곤히 잠든 수지의 뒷모습이 거기 있었다.

‘이건 분명…. 그렇지만 어떻게….’

이 감각.

이 상황.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지는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아이템이 아니야…. 그럼 혹시?’

스킬창을 불러온 용주가 스킬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껏 없었던 스킬들을.

▶ 공간 균열 (Lv. Max)

- MP소모량 : 0

- 공간을 움켜쥐어 짧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는 제한이 있으며,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다.

▶ 아웃레이지 스내치 (Lv. 1)

- HP 소모량 30, MP 소모량 : 30

- 자신의 피를 활용한 강렬한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공간 균열은 분명 반지에 있던 그 능력이었다.

아웃레이지 스내치라는 기술은 지금껏 없던 방대한 요구치를 자랑하는 스킬.

어떤 루트로 이 두 스킬이 발현된 건지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스킬창을 닫은 용주는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55.

레벨이 올라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대항력 수치도 2 상승한 2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스킬에 레벨에 대항력…. 카오스 게이트에서 이게 올랐다고?’

이전엔 없었던 일이었다.

자신을 잃어버렸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그림이 있었다.

고대의 재앙.

녀석을 쓰러뜨린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 * *

“이야기는 거기까지입니까?”

햇살이 들어오는 회의실.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사내가 물었다.

차동제.

다른 사건에서 용주가 만난 적 있는 인물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아니면 그냥 인력 부족 때문인 건진 모르겠지만, 특별 조사관의 자격으로 나왔던 그자가 이번에도 조사를 나왔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특별 조사관 외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 정도.

삐딱하니 앉아 있는 저 헌터의 이름은 오성덕.

꼰대 헌터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A급 헌터였다.

동제의 반응을 보아하니, 사전에 합의가 없던 불청객인 모양이다.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대략 그 정도다.”

용주가 지난밤에 오갔던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그렇군요. 윤현 헌터 외에 나머지 한 명에 대한 조사도 곧 시작될 겁니다. 사망이 확인됐으니, 실종자를 뒤져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동제의 입에서 나온 ‘사망’이라는 단어에 예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프라이드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자에 대한 몽타주 작업도 곧 들어갈 겁니다. 그때까지 대기해 주시면….”

“잠깐잠깐. 이래서 꼬꼬마 조사관은 안 된다니까.”

성덕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동제를 향한 성덕의 말투에선 지난날의 앙금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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